“기존 설비 활용 10배 효율” 탄소 반도체, 연구실 넘어 웨이퍼 단위 제조 가능성 확인
“기존 설비 활용 10배 효율” 탄소 반도체, 연구실 넘어 웨이퍼 단위 제조 가능성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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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 공정 활용, 상용화 기반 확보
장비·공정 독점 구조 완화 시도 가속
전력, 소재 등 ‘반도체 바깥’ 기술 전쟁

미국 연구진이 탄소 나노튜브 기반 반도체 공정을 구현하며 연구 단계에 머물렀던 기술이 실제 제조 환경에서도 적용 가능한 수준에 도달했음을 선언했다. 특정 장비와 기업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기존 공정을 벗어난 생산 방식이 등장하며 반도체 산업의 경쟁 구도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오랜 시간 제한됐던 기술 체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대규모 투자와 공급망 재편도 가속하는 추세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기술 경쟁이 제조 공정에 머물지 않고 전력과 소재 영역까지 확장되는 흐름이다.
“전면 대체 시기상조, 혼합 생산 가능성”
5일(이하 현지시각)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과 아날로그 반도체 분야 글로벌 2위 기업 아날로그디바이스(ADI)는 이달 1일 글로벌 과학 저널 네이처에 ‘탄소 나노튜브 현장 효과 트랜지스터의 상업용 웨이퍼 제조 자동화’ 논문을 공동 게재했다. 연구팀은 해당 논문에서 기존 실리콘 파운드리 시설을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탄소 나노튜브를 정밀하게 배치하는 상용화 공정을 증명해 냈다. 이는 그동안 불가능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탄소 반도체의 대량 생산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입증했다는 점에서 학계와 업계의 이목을 단숨에 집중시켰다.
탄소 나노튜브 기반 전계효과 트랜지스터(CNFET)는 전자 이동 특성과 열 관리 측면에서 실리콘 소자를 상회하는 성능을 제시한다. 기존 실리콘 트랜지스터는 미세공정이 3나노 이하로 진입하면 누설 전류 증가와 발열 문제가 동시에 확대되는 양상을 보이는 반면, 탄소 나노튜브는 동일 전력 조건에서 더 높은 전류 전달 능력에도 불구하고 발열이 상대적으로 낮은 특성을 지닌다. 2019년 MIT 연구진이 처음 공개한 16비트 RISC-V 마이크로프로세서는 실리콘 대비 약 10배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기록한 바 있다.
기술적 난제는 대량 생산 과정에서 발생하는 결함 제어였다. 탄소 나노튜브는 일부가 금속성을 띠면서 트랜지스터 동작을 방해하는 문제가 반복적으로 제기됐다. 업계에서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약 99.999999%(8나인) 수준의 고순도를 요구했지만, 현실적인 양산 조건과는 괴리가 컸다. 이에 MIT 연구진은 금속화된 탄소 나노튜브의 복원력 디자인(DREAM) 설계로 이 같은 문제를 우회했다. 금속성 나노튜브를 회로 내에서 기능적으로 무력화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순도 요구 조건을 약 99.99%(4나인) 수준까지 낮춘 것이다.
업계는 이러한 발견이 반도체 생산 체계 전반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내다봤다. 탄소 나노튜브는 용액 기반 공정으로 웨이퍼 위에 배치가 가능한 만큼 트랜지스터 형성 단계에서 기존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 의존도를 낮출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다만 배선 공정 등 후속 단계에서는 기존 장비 체계가 여전히 필요하다는 점에서 전면 대체를 선언하기에는 이르다는 평가 또한 존재한다. 연구가 상용 생산 수준으로 확대될 경우, 기존 설비를 유지한 채 새로운 소자 기술을 적용하는 혼합 생산 구조가 가능하다는 게 업계 중론이다.
반도체 패권 재편 가속
기술 혁신에 발맞춰 투자 규모 또한 확대되는 흐름이다. 가장 상징적인 사례는 텍사스 인스트루먼트(TI)의 600억 달러(약 90조원) 투자 계획이다. TI는 지난해 6월 미국 내 7개 반도체 공장에 600억 달러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히며 이를 통해 총 6만 개 이상의 미국 내 일자리를 지원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위성, 산업장비에 들어가는 기초 반도체 수요가 동시 확대되는 국면에서 아날로그와 임베디드 프로세싱 칩을 미국 내에서 안정적으로 공급하겠다는 구상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 정부의 산업 전략과도 맞물린다. 하워드 러트닉 미 상무부 장관은 TI를 두고 “거의 한 세기 동안 기술과 제조 혁신을 주도해 온 미국의 중추적인 기업”이라며 애플, 포드, 메드트로닉, 엔비디아, 스페이스X 등 다수 기업과 TI의 협력 사례를 높이 평가했다. 미국 정부가 반도체를 경제 안보와 제조업 부흥의 접점에 놓고 바라본다는 점도 이 대목에서 확인된다. 미국 반도체 제조 역사상 최대 규모에 달하는 TI의 투자는 미국 내 제조 확대가 실제 구매 계약과 공급망 장기 안정성 논리 위에서 추진된다는 점을 보여주는 보강 자료에 가깝다는 해석이다.
정부 자금이 직접 첨단 장비 스타트업으로 향하는 점도 이전과 다른 대목이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12월 첨단 반도체 제조 기술 스타트업 엑스라이트(xLight)에 최대 1억5,000만 달러(약 2,260억원)를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2021년 설립된 엑스라이트는 네덜란드 ASML이 독점하는 EUV 시장을 겨냥한다. 생산 공장 유치와 별개로 장비 독점 구조 자체를 흔들 수 있는 후보 기술에 정책 자금이 직접 들어가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장비·공정 주도권 경쟁을 민간 자율 영역에만 맡기지 않겠다는 미국 정부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로 읽힌다.
이와 같은 대규모 자본 투입은 미국 반도체 공급망 재편 속도를 끌어올리는 결과로 이어졌다. 2020년 이후 애리조나에는 60건이 넘는 반도체 투자 프로젝트가 몰렸는데, 누적 투자액은 2,050억 달러(약 309조원)에 달했다. 대만 TSMC는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체결한 120억 달러(약 18조원) 애리조나 팹 건설 계약에 이어 지난해 3월 추가 1,000억 달러(약 150조원) 투자를 발표했고, 앰코 역시 투자를 20억 달러(약 3조원)에서 70억 달러(약 10조5,000억원)로 늘렸다. 또 SK하이닉스는 40억 달러(약 6조원) 규모 패키징 시설을 건설 중이다.

인프라·에너지 기술 경쟁 확장
기업과 국가의 대규모 투자를 발판으로 한 혁신이 전력 및 소재 분야로 확산하면서 기술 경쟁 또한 이전보다 한층 광범위하게 전개되는 양상이다. 지난 2월 마이크로소프트(MS)는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한 고온 초전도체(HTS) 기술을 연구해 이를 기반으로 한 서버랙 시제품을 구현했다고 밝혔다. 전기 저항이 거의 없는 소재인 HTS는 열 손실 없이 장거리 전력 전송이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MS는 이 기술을 적용해 변전소, 케이블, 전력선 등 전력 공급 장비의 규모를 줄이고,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동시에 인프라 구축 비용도 절감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러한 접근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집약적 컴퓨팅 수요가 급증하는 국면에서 전력 인프라 병목이 심각하다는 판단에서 비롯됐다. 데이터센터 운영 과정에서는 전력 전송과 전압 조정을 담당하는 변전소가 다수 필요한데, 이 과정에서 에너지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에 실제 필요한 전력보다 더 많은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는 지적이다. MS는 “HTS 송전선은 더 낮은 전압에서 기존과 동일한 전력량을 보낼 수 있고, 동일 전압 수준에서는 기존 전선보다 약 10배 높은 용량을 제공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이 같은 초전도 기술의 경제성과 실용성은 별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기술 전문 매체 데이터센터다이나믹스는 HTS가 일반적으로 극저온 냉각을 필요로 하며, 이 때문에 특수 냉각 시스템과 추가 비용이 뒤따른다고 지적했다. 현재 알려진 물질 가운데 일반 압력 환경에서 가장 높은 임계온도를 기록한 ‘Hg-1223’이 –140°C에서 동작하는 점을 고려하면, 데이터센터 내부 온도 18°C, 실외 온도 27°C 같은 운영 조건과는 큰 간극이 존재한다. 이는 곧 초전도체 기반 서버랙이 냉각 설비와 공간 설계, 유지보수 체계까지 함께 다시 짜야 하는 과제를 수반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최근에는 유럽도 초전도 AI 가속기 프로젝트에 박차를 가하고 나섰다. 유럽연합(EU)의 초고성능 컴퓨팅 공동 사업단(EuroHPC)은 이달 2일 ‘차세대 에너지 효율 컴퓨팅을 위한 초전도 AI 가속기 설계 프로젝트’ 추진 사실을 공개하며 “초전도 회로를 활용해 데이터센터 전력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용 프로세서 개발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기존 반도체가 쓰는 에너지의 단 5%만으로 동등한 연산력을 목표로 하는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냉각 비용이라는 새로운 부담이 생기더라도 에너지 효율 경쟁에서 승산을 찾겠다는 계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