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나노 공정부터 SSD·GPU까지"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힘 싣는 삼성전자, 핵심은 '자력 성장'
"2나노 공정부터 SSD·GPU까지" 반도체 경쟁력 제고에 힘 싣는 삼성전자, 핵심은 '자력 성장'
입력
수정
삼성전자 2나노 시험 생산 임박, 파운드리 선단 경쟁 본격화 Arm 손 놓은 삼성전자, 오픈소스 아키텍처 'RISC-V' 적극 활용 "2027년 AMD 의존 끝낸다" GPU까지 설계 독립 가속

삼성전자의 2nm(나노미터, 10억분의 1m)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 시험 생산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2나노 공정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설계자산(IP)과 고객사 수요가 모두 확보된 가운데, 본격적인 최선단 경쟁에 시동이 걸린 것이다. 이 밖에도 삼성전자는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 그래픽처리장치(GPU) 등의 설계 독립에 착수하며 근본적인 반도체 경쟁력을 제고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삼성전자 파운드리, 2나노 경쟁에 박차
5일(이하 현지시각) IT 전문 매체 Wccftech는 삼성전자의 2나노 게이트올어라운드(GAA) 공정 수율이 약 60% 수준에 도달하면서 시험 생산에 착수할 준비가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재 삼성전자는 기존 4나노 공정을 위해 건설된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을 2나노 생산 거점으로 전환 중이다. 일부 시설은 임시사용승인(TCO)을 받아 엔지니어 투입과 장비 설치가 진행되고 있으며, 네덜란드 반도체 장비업체 ASML도 극자외선(EUV) 장비 설치를 지원하기 위해 현장에 인력을 파견한 것으로 전해졌다.
2나노 공정의 한계로 꼽히는 발열 및 면적 효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IP도 마련된 상태다. 반도체 공정이 미세화하면 칩 내부의 열 밀도가 상승하고, 누설 전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 전력 효율이 낮아지게 된다. 그간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들은 칩 내부 온도를 확인하기 위해 칩 하단부인 FEoL(Front-End-of-Line) 영역에 온도 센서를 탑재해 왔으나, 이 방식은 칩의 두뇌 역할을 수행하는 트랜지스터 등 실제 연산 소자의 공간을 침범한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다. 이에 삼성전자는 기존 FEoL에 위치했던 온도 센서를 상단 배선층(BEoL)으로 옮겨 칩 내부 공간 낭비를 줄이는 기술을 개발했다. 업계에서는 향후 삼성전자가 자체 모바일 AP(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인 엑시노스 시리즈 등 고성능 칩에 이 기술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엑시노스 시리즈는 삼성전자 2나노 파운드리 공정에서 생산될 대표 제품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갤럭시 S26 일반·플러스 모델과 올해 출시될 갤럭시 Z플립 신제품에 2나노 공정 기반 엑시노스 2600을 탑재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테슬라의 인공지능(AI) 칩 ‘AI5’와 ‘AI6’도 2나노 공정을 통해 양산할 예정이며, 퀄컴의 신규 AP 수주 분량도 2나노 공정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높다. 미국 자율주행 AI 반도체 기업 암바렐라도 삼성전자에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2나노 칩 주문을 넣은 상태다.
Arm 품 떠나 오픈소스 아키텍처 채택
삼성전자는 2나노 선단 공정 외에도 반도체 사업 전반에서 '자체 경쟁력'을 확보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영국 Arm과 거리를 두기 시작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Arm은 칩 설계 IP 분야의 절대 강자로, 특히 중앙처리장치(CPU) 아키텍처(명령어 집합) 부문에서 독보적인 입지를 점하고 있다. 지금까지 삼성전자는 모바일 AP의 CPU 코어는 물론 SSD 컨트롤러, 각종 IoT·모뎀 칩의 내장 프로세서 등을 제조할 때도 ARM의 아키텍처와 코어 설계 IP에 직접 의존해 왔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양 사의 '연결고리'가 급격히 헐거워지는 추세다. 지난 4일 Wccftech는 삼성전자가 차세대 기업용 SSD 라인업인 ‘BM9K1’의 두뇌 역할을 하는 컨트롤러 칩에 오픈소스 아키텍처인 ‘RISC-V(리스크-파이브)’를 적용한다고 전했다. Arm에 대한 기술 의존도를 낮추며 강력한 ‘설계 독립’ 선언을 내놓은 것이다. 삼성전자가 시제품 단계를 넘어 실제 양산 제품에 RISC-V를 전면 도입한 사례는 지금껏 전무했다.
삼성전자가 RISC-V를 채택한 핵심 원인으로는 막대한 라이선스 비용이 꼽힌다. Arm 설계를 사용한 기업은 칩 출하량에 비례해 로열티를 납부해야 한다. 이는 대량 납품이 일반적인 SSD 시장에서 수익성을 저해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반면 RISC-V는 누구나 무료로 사용 가능한 오픈소스 표준이다.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이번 전환이 로열티 비용을 절감하고,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일종의 포석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수정 자유도' 역시 Arm 설계의 한계로 꼽힌다. Arm은 고객사가 설계를 변경하는 것을 라이선스 위반으로 판단해 엄격하게 제한한다. 반면 RISC-V 아키텍처를 사용하면 필요한 기능을 얼마든지 추가할 수 있다. 실제 삼성전자는 RISC-V에 자사만의 확장 기능을 추가해 신제품 성능을 끌어올렸다. 낸드 셀 관리, 오류 정정(ECC), AI 워크로드 특유의 불규칙한 읽기·쓰기 패턴 등의 기능을 정교하게 조정한 전용 컨트롤러를 독자 개발한 것이다. 이에 따라 해당 제품의 순차 읽기 속도는 전 세대(BM9C1) 대비 1.6배 향상됐으며, 에너지 효율은 23% 개선됐다.

GPU 독자 생존 계획도 구체화
GPU 부문에서도 독립을 위한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2019년 미국 팹리스 기업 AMD와 파트너십을 맺고, 2022년부터 엑시노스 시리즈에 AMD의 'RDNA' 아키텍처 기반 GPU를 탑재해 왔다. 이는 그래픽 성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올해 출시된 엑시노스 2500, 엑시노스 2600에도 AMD 기술이 적용된 GPU가 쓰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오는 2027년 양산 예정인 엑시노스 2800(가칭)부터는 자체 개발 GPU를 사용하겠다는 방침이다. 이 칩은 2028년 출시할 갤럭시 S28 시리즈의 두뇌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삼성전자는 GPU 분야에서의 독자 생존을 위해 지난 3년간 글로벌 반도체 기업 출신 GPU 엔지니어를 대거 채용했다. 주요 수석급 엔지니어에게는 3억~4억원에 달하는 연봉을 제시하며 인력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특히 주목할 만한 인물로는 지난해 영입한 존 레이필드가 꼽힌다. 그는 AMD, 브로드컴, 인텔 등에서 모바일·AI 칩 설계를 주도해 온 GPU 분야의 거물이다. 삼성전자는 레이필드를 앞세워 미국 오스틴과 새너제이 연구소(SARC/ACL)를 중심으로 자체 아키텍처 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다.
GPU 독립은 단순 스마트폰 성능 최적화를 넘어 첨단 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중장기 포석이다. 자체 GPU 아키텍처를 확보하면 자율주행차, 휴머노이드 로봇, 스마트 글라스를 비롯한 확장현실(XR) 기기 등 다양한 플랫폼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MS), 오픈AI 등 빅테크 고객사를 위한 맞춤형 AI 반도체(ASIC) 시장에서 브로드컴, 마벨과 경쟁할 기술적 토대도 마련된다. 다만 현재 전 세계에서 독자 GPU 아키텍처를 성공적으로 상용화한 기업은 엔비디아, AMD, 퀄컴, 애플, Arm 등 극소수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전문가는 "삼성전자의 GPU 내재화는 미래 성장을 위한 필수적인 절차"라면서도 "관건은 삼성전자가 수십 년간 축적된 특허 장벽과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단기간 내에 추월할 수 있을지다"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