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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發 ‘가스 시한폭탄’ 지중해 표류, 제재와 안전 사이 유럽 대응 시험대

러시아發 ‘가스 시한폭탄’ 지중해 표류, 제재와 안전 사이 유럽 대응 시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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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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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 적재 상태 방치, 환경 재앙 가능성 부각
러시아 “해상 드론 이용한 해적 행위” 주장
공격 사례 축적, 장거리 해상 드론 현실화
몰타 남동쪽 지중해 해역에 표류 중인 LNG 운반선 '아크틱 메타가즈'/사진=X 캡처

지중해 한복판에 러시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 파손된 채 표류하는 상황이 이어지면서 유럽 전역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대량의 연료를 적재한 채 통제 불능 상태에 놓인 선박이 해상에 방치되며 ‘환경 재앙’ 가능성이 공식 제기된 것이다. 유럽 내 다수의 국가는 긴급 대응을 촉구하고 나섰지만, 제재 유지라는 원칙과 충돌하는 딜레마 또한 동시에 드러났다. 러시아가 이번 사건을 외부 공격으로 규정하며 책임을 돌린 가운데, 우크라이나의 과거 해상 무인기(드론) 공격 사례가 다시 주목받는 흐름이다. 

“생태학적 재앙 상태” 경고

18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탈리아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연합(EU) 9개 회원국은 최근 유럽 집행위원회(EC)에 공동 서한을 보내 러시아 LNG 운반선 아크틱메타가즈(Arctic Metagaz) 관련 사태에 긴급 대응을 촉구했다. 이들 국가는 서한에서 “대규모 LNG를 싣고 선원 없이 표류 중인 선박의 상태를 고려할 때, EU 해역 중심부는 ‘임박하고 심각한 생태학적 재앙 상태’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면서도 “감시나 기술 지원을 포함한 어떠한 대응도 EU 대러 제재 체제의 완결성과 실효성, 억지력을 훼손할 수 있다”는 우려를 동시에 담았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3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몰타 남동쪽 약 170해리 해상을 지나던 아크틱메타가즈에서 연쇄 폭발이 발생했다. CNN에 의하면 해당 폭발로 선박은 약 30도 기울어진 상태에서 갑판이 주저앉고 배관이 뒤틀렸으며, 함교 일부가 불에 탔다. 승무원 30명은 구명보트를 통해 전원 탈출했으며, 이후 선박은 무인 상태로 해상에 남겨졌다. 조사를 진행한 이탈리아 당국은 선체 내부에 경유 약 900 톤(t)과 LNG 6만 t 이상이 적재된 상태라고 설명했다. 알프레도 만토바노 이탈리아 내각 사무처장은 문제의 선박을 “가스로 가득 찬 시한폭탄”이라고 규정하며 “언제든 폭발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후로도 선박은 별도의 안정성 강화 조치도 취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표류를 계속했다. 이에 폭발로 약해진 선체가 파도의 충격을 견디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는 한층 짙어졌다. 세계자연기금(WWF)은 해당 해역이 “참다랑어와 황새치의 주요 이동 경로이자 지중해에서 생물 다양성이 높은 구간”이라고 지적하며 “LNG는 섭씨 영하 162도에서 저장되는 물질로, 누출 시 해수와 접촉하며 극저온 환경을 형성해 해양 생물에 치명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기화 과정에서 형성되는 가스 구름 또한 육상으로 확산될 경우 추가 위험 요인이 된다”고 부연했다. 

아크틱메타가즈는 러시아 가스업체 노바텍(Novatek)의 ‘아틱 LNG 2’ 사업과 연계된 것으로 파악됐는데, 북극 항로 운항 과정에서 쇄빙선 지원을 받은 이력도 확인됐다. 이에 EU는 해당 선박을 러시아의 제재 회피 수단으로 분류된 ‘그림자 함대’ 소속으로 지정해 제재 목록에 포함한 상태다.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국제사회의 목소리에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 마리아 자하로바는 “국제법상 표류 선박 문제를 해결할 책임은 연안 국가에 있다”고 밝히며 직접적인 대응 여부와 관련해 유보적 입장을 보였다. 

러시아, 적법 운항·외부 공격 강조

러시아는 사고 발생 직후부터 우크라이나의 드론 공격에 따른 폭발이라는 주장을 전개해 왔다. 러시아 교통부는 4일 텔레그램 게시물을 통해 이번 사건을 “국제 테러 및 해적 행위이자, 국제 해양법의 기본 규범을 중대하게 위반한 행위”라고 규정했다. 이어 “해당 운반선은 모든 국제 규정을 완전히 준수하는 것은 물론 적법한 서류를 갖춘 화물을 싣고 항행 중이었다”고 밝히며 외부 공격에 따른 피해라는 점을 강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역시 이번 사건을 “테러 공격”이라고 표현하며 국가 차원의 입장을 명확히 했다.

러시아 측은 공격 방식과 실행 경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설명을 내놨다. 러시아 교통부는 “(공격이) 리비아 해안에서 발진한 무인 보트를 통해 수행됐다”고 지적했다. 이는 지중해 중부 해역까지 도달 가능한 작전 범위를 전제로 한 시나리오로, 공격 수단과 접근 경로를 동시에 특정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해당 선박의 항로와 관련해 러시아는 자국 무르만스크에서 출발해 이집트 포트사이드로 향하던 중 공격을 받았다고 설명했으나, 이집트 석유부는 “해당 선박은 이집트와 LNG 공급 또는 수령 계약에 포함된 바 없다”고 연계성을 부인했다.

사건 이후 해상 운송 경로에는 변화가 확인됐다. 런던증권거래소그룹(LSEG)의 선박 추적 데이터에 따르면 러시아 아틱 LNG 2 플랜트에서 생산된 LNG를 적재한 운반선 ‘부란’은 기존 지중해 항로를 벗어나 아프리카 북서부 해안을 따라 우회하는 경로로 항로를 변경했다. 이는 통상 해당 플랜트에서 출발한 LNG 운반선들이 지중해와 수에즈 운하를 거쳐 아시아 시장으로 이동하는 기존 흐름과 다른 움직임으로, 지중해 구간의 항로 안정성이 저하됐다는 러시아의 시각이 반영된 변화로 해석된다. 

해상 에너지 수송망 위험 노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측 주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 다만 과거에도 해상 및 에너지 인프라를 대상으로 한 드론 공격 사례가 축적돼 온 점이 눈길을 끈다. 전쟁 초기에는 우크라이나 남부 오데사 인근과 크림반도 해역을 중심으로 활동이 제한됐으나, 이후 드론의 항속거리와 작전 범위가 확대되며 흑해 전역으로 활동 영역이 넓어졌다. 특히 해상 운송 경로를 따라 이동하는 유조선과 에너지 물류 인프라가 공격 대상에 대거 포함되면서 해상 교통망 자체가 전쟁 리스크에 직접 노출되는 국면이 펼쳐졌다. 

지난해 11월 28일에는 튀르키예 배타적경제수역(EEZ)에서 러시아와 연관된 대형 유조선 카이로스와 비랏이 드론 공격을 받았다. 두 선박은 감비아 선적이지만 러시아 그림자 함대로 제재 대상에 포함된 상태였으며, 선박자동식별장치(AIS)를 끈 채 튀르키예 해안에서 51~65㎞ 떨어진 해역을 항해하고 있었다. 공격에 사용된 ‘시 베이비(Sea Baby)’ 수상 자폭 드론은 최대 850㎏ 폭발물을 적재해 1,000㎞까지 항속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당시에는 항속거리 확보를 위해 탄두 중량을 줄인 상태였고, 선박이 공선 상태였던 점까지 겹치며 대형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불과 이틀 뒤인 같은 달 30일에는 서아프리카 세네갈 다카르 항구 인근 해역에서 파나마 선적 유조선 메르신호가 드론 공격을 받아 기관실이 무너지고 선미가 침수됐다. 해당 선박은 서류상 튀르키예 회사 소속으로 분류됐으나, 러시아와 세네갈 간 불법 석유 환적에 관여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상태였다. 이 공격은 기존 작전 범위로 알려진 흑해를 벗어나 서아프리카 해역까지 확장된 사례로, 원거리 이동 중인 선박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해상 운송 과정 자체가 직접적인 위험에 노출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으로 평가됐다. 

러시아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모스크바 투자포럼 연설에서 “(해상 드론 공격을 막는) 가장 근본적 해결책은 우크라이나를 바다로부터 완전히 차단하는 것”이라며 “그래야만 해적 행위를 차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우크라이나를 지원하는 일부 국가의 유조선이 러시아 선박 공격에 관여하는 것으로 안다”며 “여기에도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이 같은 푸틴 대통령의 발언이 나왔음에도 같은 날 우크라이나는 튀르키예 인근 해역에서 자폭 드론을 사용해 러시아 유조선 미드볼가 2호를 공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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