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선거 겨냥한 트럼프의 ‘국정연설 쇼’, 무리수일까 승부수일까
중간선거 겨냥한 트럼프의 ‘국정연설 쇼’, 무리수일까 승부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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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분, 역사상 가장 긴 대통령 국정연설 경제·관세·이민부터 외교·군사 치적 부각 중간선거 이정표 염두, 강경 기조 유지할 듯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첫 국정연설(State of the Union Address)은 자신의 국정 기조인 ‘미국 우선주의(America First)’를 변함없이 관철하겠다는 선언으로 압축된다. 그는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여 간의 각종 대내·외 성과를 열거한 뒤 관세와 이민 정책은 물론 ‘힘을 통한 평화’를 축으로 한 외교·안보 노선 역시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는 대체로 큰 논란이 되면서 지지율 하락 등 여론 악화의 원인이 된 정책들이지만, 기조 수정이나 정책 조정 가능성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자신의 정치적 명운을 가를 중간선거에서도 이를 토대로 한 성과를 통해 유권자들로부터 평가받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은 황금시대”, 경제 성과 강조
2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DC 연방의회 의사당에서 1시간 48분에 걸쳐 2기 집권 첫 국정연설을 진행했다. 이는 2000년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세운 국정연설 최장 기록인 1시간 28분 49초를 20분이나 경신한 숫자다. 그는 이번 연설에서 자신의 경제 치적을 스스로 칭찬하는 데 가장 긴 시간을 할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조 바이든 전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은 경기 위축과 물가 상승, 불법 이민, 범죄 문제 등을 1년 만에 바로잡았다고 강조하며 “전례 없는 개혁과 역사적 전환을 이끌어냈다”고 자평했다.
이어 “지난 12개월 동안 우리 정부는 근원 인플레이션을 5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낮췄다”며 “지난해 마지막 3개월 동안은 1.7%까지 떨어졌다”고 자랑했다. 그러면서 “지금의 미국은 그 어느 시점보다 더 크고, 더 번영하며, 더 부강하고, 더 강인한 황금기를 맞고 있다”며 국경 통제 강화, 물가 안정, 소득 증가, 경기 확장, 대외적 억지력 회복 등을 일거에 열거했다.
투자 유치 성과도 핵심 메시지로 내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행정부는 4년 동안 1조 달러(약 1,420조원)에도 못 미치는 신규 투자를 유치했지만, 나는 단 12개월 만에 전 세계에서 18조 달러(약 2경5,000조원)가 넘는 투자 약속을 확보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대통령이 누구냐에 따라 달라지는 차이”라고 표현하며, 미국이 “전 세계에서 가장 뜨겁고 매력적인 투자처가 됐다”고 자평했다.
“관세로 수천억 달러 벌어들여” 자화자찬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경제 성적표 열거에 이어 대법원의 상호관세 위법 판결을 거론하며 “매우 유감스러운 판결이지만 거의 모든 국가와 기업이 그들이 이미 체결한 합의를 유지하고 싶어 한다는 것은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통령에게 부여된 법적 권한을 감안하면 새로운 조건이 그들에게 훨씬 불리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대법원의 개입 이전에 진행된 협상의 틀 안에서 협력이 지속될 것”이라고 장담했다. 자신이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의 권한에 의해 부과했던 상호관세를 위법이라고 결론지은 대법원 판결을 비판하면서 사실상 대체 수단으로 관세 부과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의 부담 주체와 효과에 대해서도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그는 “관세는 외국이 부담하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그 수입이 현대적 소득세 체계를 상당 부분 대체해 미국 가계의 부담을 완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관세 정책 덕분에 공장과 일자리, 투자, 수조 달러 규모의 자금이 계속 미국으로 유입될 것”이라고 강조하며 “우리나라가 역사상 최대의 놀라운 경제적 반전을 이룬 주된 이유 중 하나는 관세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또 다른 나라들이 수십 년간 미국을 착취해 왔다는 기존 주장을 재차 부각하면서 “관세를 활용해 수천억 달러를 확보했고, 이를 토대로 경제적·국가안보 면에서 우리나라를 위해 훌륭한 합의를 했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제시한 수치들은 대부분 실태에 맞아떨어지지 않거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그는 침체한 경제와 함께 위기에 빠진 나라를 물려받았다고 주장했지만, 당시 미국인들은 물가 상승 때문에 불만이 없진 않았으나 경기는 침체(국내총생산의 감소) 국면과 거리가 멀었다. 실제로 미국의 2024년 경제성장률은 2.8%로, 트럼프 대통령의 집권 2기 첫해인 2025년 2.2%보다 0.6%포인트 높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인들의 소득이 급격히 늘어나고 경제는 전례 없이 호황이라고 주장했지만, 실태를 보면 미국인의 2025년 실질소득은 전년보다 0.9% 늘어나는 데 그쳐, 바이든 집권기인 2024년 2.2%보다 눈에 띄게 둔화했다. 경기, 고용과 직결되는 외국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서도 진위 논란이 뒤따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에서 18조 달러가 넘는 돈을 쏟아붓겠다는 약속을 확실히 받아냈다고 주장했으나, 백악관이 홈페이지에 적시한 외국의 대미 투자 규모는 9조6,000억 달러(약 1경3,600조원)에 불과하다.
이날 연설에서 또 하나 눈에 띈 대목은 이민자에 대한 혐오를 또다시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는 점이다. 그는 미네소타주에 많이 거주하는 소말리아계 이민자 공동체를 지목하면서 “미국 납세자들로부터 190억 달러(약 27조원)를 약탈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실제 금액은 이보다 훨씬 더 높다”고 주장했다. 고령층을 의식한 발언도 주목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를 반드시 보호하겠다”고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또 지난해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에서 우선순위로 지정한 서반구에서 미국의 지배력을 강화하겠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또 서반구에서 미국의 안보와 우위를 복구하고 있으며 우리의 국익을 확보하고 우리나라를 폭력, 마약, 테러리즘과 외국의 개입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운명, 11월 중간선거에 달려
정가에서는 이번 국정연설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권자 표심 공략에 나선 것이란 분석을 내놓는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간선거를 두려워하는 것은 당연하다. 중간선거는 ‘트럼프 시대’의 지속 여부를 결정지을 중대한 분수령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패할 경우 민주당이 하원 다수당 지위를 회복할 가능성이 큰데, 그렇게 되면 민주당은 곧바로 트럼프의 권위주의적 정책들을 저지하고 탄핵도 추진할 수 있다.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은 탄핵에 대해 극도의 혐오 반응을 보여왔다. 최근에는 공화당 의원들과의 비공개 모임에서 만약 선거에서 패할 경우 자신이 다시 탄핵당할 것이라고 공개 경고하기도 했다. 현시점 상원에서 탄핵안이 최종 가결되기에는 의석 구조상 한계가 존재하지만, 하원이 탄핵 결의를 추진하는 것만으로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가 얼마나 흔들리는지 그는 이미 두 차례나 경험한 바 있다. 의회의 탄핵 시도는 정치적 입지 약화는 물론, 트럼프 일가의 사업 영역 전반에도 큰 타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중간선거 승리를 향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지난해 주요 선거에 이어 올해 1월 ‘텃밭’ 격 지역에서까지 잇단 패배를 겪자 위기의식을 느끼고 사실상 ‘올인’ 태세에 들어갔다는 분석이다. 최근 의회를 건너뛰고 ‘전국 유권자 신분증’ 카드 꺼내 든 것도 이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3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의회의 승인 여부와 무관하게 중간선거에서 유권자 신분증 제도를 시행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나는 아직 공개되거나 검증되지 않은 법적 논거를 면밀히 연구해 왔으며, 가까운 시일 내에 반박 불가능한 근거를 제시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사실상 부정선거 프레임을 다시 꺼내든 것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 패배한 뒤부터 선거 조작 의혹을 꾸준히 제기하고 있다. 그는 특히 미국이 우편투표를 허용하는 유일한 국가이자, 특정 정당이 선거마다 부정을 저지른다는 주장을 반복해 왔다. 같은 맥락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중간선거 전에 모든 주에서 유권자 신분 확인을 강화하는 ‘미국인투표권보호법’(SAVE·Safeguard American Voter Eligibility) 처리도 의회에 촉구했다. 이 법은 유권자가 투표 등록 시 시민권 증명을 제시하고 투표할 때에도 신분증을 지참토록 하고 있다.
다만 지난해 공화당 주도로 하원을 통과했으나 상원 통과 가능성은 희박한 상황이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의회를 우회하려는 것으로 파악된다. 그만큼 올해 중간선거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올해 중간선거에서는 상원에선 전체 100명 중 35명, 하원에선 435명 전체를 새로 뽑는다. 현재 구도는 상원이 공화당 53석·민주당 47석, 하원이 공화당 218석·민주당 214석·공석 3석으로, 공화당이 근소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상·하원 중 한 곳이라도 민주당이 다수당이 되면 트럼프 대통령이 추진해 온 여러 정책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