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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걸릴 일을 한 달 남짓에” 미국, 규제 빗장 풀고 ‘원전 르네상스’ 시동

“10년 걸릴 일을 한 달 남짓에” 미국, 규제 빗장 풀고 ‘원전 르네상스’ 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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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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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소형 원자로 ‘핵 배터리’ 양산 허가
전력난에 에너지 안보 위기 의식 고조
속도전 이면, 기술 한계 극복에 사활
사진=래디언트

과거 수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소요되던 미국 내 원자력 발전 인허가 절차가 단 45일로 단축되면서 원전 산업 또한 전례 없는 속도전에 돌입했다. 미 정부는 자국 벤처기업의 초소형 원자로 설계를 파격적인 속도로 승인하며 지난 40여 년간 시장을 짓눌렀던 규제 관행을 타파하는 상징적 이정표를 세웠다. 이는 폭발적인 전력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행정력을 총동원한 결과로, 대규모 자본 투입과 기술 혁신까지 이어지는 모양새다. 규제의 빗장을 풀고 첨단 기술을 이식한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가 전 세계 에너지 지형에 미칠 영향에 이목이 쏠린다. 

초고속 승인 앞세워 개발 속도↑

23일(이하 현지시각) 미국 경제 전문지 내셔널리뷰에 따르면 미 에너지부(DOE)는 지난 15일 자국 원전 벤처기업 래디언트가 개발한 초소형 원자로 ‘카레이도스(Kaleidos)'의 설계 및 안전성을 최종 승인했다. 카레이도스는 통상 수년 이상 걸리던 원전 인허가 절차를 단 45일로 단축한 ‘신속 승인 경로(Authorization Pathway)’를 적용한 최초의 프로젝트다. 과거 원자력규제위원회(NRC)가 설계 승인 한 건에 평균 5억 달러(약 7,200억원) 이상의 비용과 10년 안팎의 시간을 허비하게 했던 관행과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변화로 평가된다.

카레이도스는 1.2메가와트(MW)급 전력을 생산하는 초소형 원자로로, 약 1,000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성능을 갖췄다. 핵심 경쟁력은 기존 대형 원전이 현장에서 수년간 대규모 토목 공사를 거쳐야 했던 것과 달리, 공장에서 완제품으로 제작해 트럭이나 화물기로 어디든 운송할 수 있는 ‘핵 배터리’ 형태라는 점이다. DOE 관계자는 이번 인허가 과정에 대해 “안전성을 철저히 검증하면서도 불필요한 행정 절차를 과감히 걷어낸 새로운 표준을 정립했다”고 설명했다. 래디언트 측은 이번 승인을 바탕으로 오는 2028년까지 실제 상용 모델을 현장에 배치한다는 구상이다. 

미국 에너지 정책의 속도전은 연료 분야에서도 확인된다. 아마존의 투자를 받은 차세대 원자력 기업 엑스에너지는 연방정부로부터 차세대 원자로용 우라늄 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승인을 획득했다. NRC가 신규 연료 생산 라이선스를 발급한 것은 1974년 설립 이후 처음이다. 엑스에너지의 자회사 트라이소-엑스는 테네시주 오크리지 부지에 첫 번째 공장을 건설 중이며, 이번 라이선스를 통해 해당 부지에 두 개의 생산 시설을 건설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트라이소-엑스는 향후 2년간 본격적으로 삼중 피복 입자 연료 ‘트라이소 펠릿’ 제조에 나설 예정이다. 

행정력의 집중은 군사적 활용과 자원 확보 영역까지 일사천리로 이어지는 양상이다. 지난 15일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사상 처음으로 미군 C-17 수송기를 동원해 연료가 들어있지 않은 초소형 원자로 ‘워드 250’ 모델을 유타주 힐 공군 기지로 공수했다. 수송에 동행한 마이클 더피 국방부 획득 담당 차관은 “가장 필요로 하는 때와 장소에 원자력 에너지를 배치함으로써 우리 군의 승리에 한 걸음 더 다가가게 됐다”고 이번 작전의 의미를 밝혔다. 이와 더불어 미 내무부는 유타주 우라늄 광산 개발에 초고속 환경심사를 적용해 승인하는 등 규제 개혁을 통해 원자력 발전 용량을 2050년까지 4배로 늘리겠다는 행정명령 이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100만 가구 전력난이 당긴 방아쇠

미국이 이처럼 원전 확대에 속도를 내는 것은 에너지 안보에 심각한 경고등이 들어온 탓이다. 인공지능(AI) 시대의 도래로 전기 수요가 폭증하는 상황에서 미국 내 노후 발전소의 교체 시기까지 겹치며 에너지 수급 불균형이 국가적 위기로 부상했다. 특히 뉴욕 등 일부 지역에서는 전력 공급 부족으로 산업 경쟁력 저하 우려까지 확산했다. 이에 캐시 호컬 뉴욕주지사는 지난해 5월 뉴욕전력공사(NYPA)에 최소 1기가와트(GW)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을 지시하며 대응에 나섰다. 1GW는 약 10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수준으로, 지난 2010년 이후 미국에서 추진된 원전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였다.

정부 차원의 자금 지원과 민간 자본의 결합은 원전 르네상스의 동력으로 작용한다. 미국 정부는 웨스팅하우스의 대형 원전(AP1000) 건설을 지원하기 위해 800억 달러(약 117조원) 규모의 자금 조달과 인허가 지원을 보장하는 구속력 있는 합의를 대주주 측과 체결했다. 이러한 파격적인 금융 지원은 과거 조지아주 보글 원전 프로젝트 등에서 확인된 공기 지연과 비용 초과 문제를 자본력으로 정면 돌파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나아가 해당 합의를 통해 미 정부는 17억 달러(약 26조원)를 초과하는 수익의 20%를 환수할 권리도 확보했다. 

주정부들의 참여가 늘면서 원전 건설은 미 전역으로 확산하는 양상이다. 뉴욕을 비롯해 인디애나, 켄터키, 테네시 등 총 11개 주정부는 지난해 11월 ‘첨단 원자력 퍼스트 무버 이니셔티브’를 지지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신규 원전 건설을 위한 행정 절차에 착수했다. 이 가운데 일리노이주 의회는 1987년부터 유지해 온 신규 원전 건설의 30년 유예 기간을 해제하는 법안을 통과시키기도 했다. 당시 J.B.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는 “이번 조치를 통해 청정에너지 보급과 전력망 안정을 동시에 달성하겠다”고 밝혔다. 

연료 자립을 위한 공급망 강화 전략 역시 에너지 안보의 핵심 축을 담당한다. 미국은 지난해 5월 러시아산 우라늄 금수 법안에 서명한 뒤 자국 내 우라늄 농축 역량을 강화하는 데 모든 정책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이는 지금까지 수입 농축 우라늄에 의존하면서 발생한 전략 자산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긴급 조치다. 이에 따라 테네시밸리전력청(TVA)이 최대 6GW 규모의 소형모듈원자로(SMR) 배치를 추진하고, 빌 게이츠가 설립한 테라파워가 와이오밍주에 나트륨 원자로를 건설하는 등 자립적 공급망 확충도 속도를 높이게 됐다. 

현실 한계-전력난 ‘미스 매치’

그럼에도 미국의 원전 르네상스가 현실화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란 관측이 주를 이룬다. 원전 사업 자체가 수년 이상의 사전 작업이 필수적인 중장기 프로젝트인 까닭이다. DOE가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대응을 위해 2027년 말까지 후보지 가동을 목표로 한 SMR 역시 계획한 일정에 맞춰 상업화되기는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SMR 개발 기업인 나노 뉴클리어 에너지의 제임스 워커 최고경영자(CEO)는 “2030년 전 대규모 SMR 배치는 비현실적”이라며 속도전의 한계를 명확히 짚었다.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미 정부는 민간 기업과 손잡고 원전 건설 지형도 개편에 나섰다. 아이다호 국립연구소(INL)와 엔비디아(NVIDIA)는 AI 기술을 원전 건설과 운영 전반에 이식하는 협력을 맺었다. 이는 DOE가 추진하는 ‘제네시스 미션(Genesis Mission)’의 핵심 과제로, AI를 활용해 원자로 배치 속도를 두 배로 높이고 비용은 절반으로 낮추는 것을 목표로 한다. 프로메테우스(Prometheus)로 명명된 해당 프로젝트를 통해 설계부터 인허가까지 모든 단계를 가상 공간에 복제한 ‘디지털 트윈’ 기술을 기반으로 안전성 평가 기간을 획기적으로 줄인다는 방침이다.

AI 에이전트 기반의 작업 방식은 원전의 경제성을 근본적으로 개선할 열쇠로 주목받는다. 프로메테우스 시스템은 INL이 수십 년간 축적한 운영 기록과 실험 데이터를 학습해 원전 건설 현장의 오류를 사전에 차단하고, 운영 효율을 극대화한다. 존 조셉키스 엔비디아 부사장은 “우리의 AI 인프라와 INL의 전문 지식을 결합해 더 빠르고 안전하며 저렴한 비용으로 원자로를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자동화 공정이 도입될 경우 핵발전소 운영 비용을 현재보다 50% 이상 절감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보면, 미국의 원전 속도전은 규제 완화라는 행정적 혁신과 AI라는 기술적 혁신이 결합된 형태로 정의할 수 있다. 리안 바란 DOE 부차관보는 “AI 도입과 관련한 민관 협력은 원자력 배치 패러다임을 바꿀 잠재력이 있다”고 자평하며 “이 같은 모델을 원자로 개발사와 투자자 등 산업계 전반으로 확산시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다만 AI가 도출한 안전 진단 결과에 대해 규제 당국이 어느 정도의 신뢰를 보낼지 등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 또한 존재해 향후 상용화 가능성엔 여러 관측이 엇갈리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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