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글로벌 관세’에 美-EU 무역 갈등 재점화, 관세 장벽 재건 시나리오 부상
트럼프 ‘글로벌 관세’에 美-EU 무역 갈등 재점화, 관세 장벽 재건 시나리오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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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는 합의다" EU, 美 글로벌 관세 부과에 강력 반발 무역협정 관련 표결 연기·ACI 동원 가능성 고개 들어 트럼프, 무역법 301조 등 앞세워 관세 조치 복원 전망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미국에 기존 무역 합의 조건 이행을 요구하고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미국 대법원의 상호관세 무효화 판결 이후 전 세계에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자, 지난해 미국과 무역 합의를 체결했던 EU가 반발 의사를 표명한 것이다. 미국발(發) 글로벌 무역 갈등에 재차 불이 붙은 가운데,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향후 별도의 법적 근거를 동원해 관세 장벽을 점진적으로 재건해 나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린다.
신규 관세 부과한 트럼프, EU '경계 태세'
22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이날 성명을 통해 지난해 체결된 EU-미국 무역 합의 조건을 미국이 반드시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집행위는 성명에서 “합의는 합의(A deal is a deal)”라며 현 상황이 양측이 합의한 ‘공정하고 균형 잡힌 상호 이익의 무역 관계'를 실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앞서 지난해 7월 양국은 미국이 EU 회원국들에 대한 상호관세를 30%에서 15%로 낮추고, EU는 그 대가로 6,000억 달러(약 870조원)를 미국에 투자하는 내용의 합의를 체결한 바 있다.
EU가 이처럼 미국에 항의의 뜻을 표출한 배경에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내놓은 글로벌 관세 부과 조치가 있다. 지난 20일 미국 대법원이 트럼프 대통령의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하다고 판결하고, 트럼프 행정부가 세계 각국에 매긴 관세를 무효화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 직후 무역법 122조에 근거해 전 세계에 10%의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으며, 다음날인 21일 글로벌 관세를 10%에서 15%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24일 실제 관세 발효 시 적용되는 초기 세율은 10%인 것으로 전해졌다.
관건은 트럼프 대통령의 새로운 관세가 EU와의 기존 합의를 대체할지다. 만약 대체된다면 신규 관세가 기존 최혜국 관세에 추가로 부과될 가능성이 있으며, 미국과 합의를 체결하지 않은 국가들에도 동일한 관세율이 적용돼 EU가 누렸던 비교 우위도 사실상 사라지게 된다. 무역 정책 모니터링 기관 글로벌 트레이드 얼럿은 해당 조치로 인해 EU 전체가 0.8%P 불이익을 받고, 이탈리아는 1.7%P의 추가 관세 부담을 짊어지게 될 것으로 추산했다.
ACI 앞세워 맞불 놓을 가능성도
유럽에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회 위원장은 22일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에 "트럼프 대통령이 (연방대법원 위헌 판결 이후) 15% 글로벌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힌 것은 우리가 합의한 협정을 명백히 위반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당분간 협정 승인을 중단할 것을 제안하겠다"며 "재협상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경고했다.
랑게 위원장은 같은 날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에도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로 인해) EU와 다른 미국 교역 상대국의 불확실성만 커지고 있다"며 "턴베리 협정(미-EU 관세 협정)의 조건과 법적 기반이 달라졌다"고 지적했다. 이어 "무역법 122조에 따른 새로운 관세가 협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지 의문"이라며 "적절한 법적 평가와 미국 측의 명확한 약속이 나올 때까지 관련 입법 절차 중단을 제안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랑게 위원장의 무역협정 이행을 위한 법안 표결 연기 제안은 24일 임시회의에서 논의될 전망이다. 미-EU 무역협정 이행을 위한 법안 표결은 25일로 예정돼 있다.
향후 EU가 '반격'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도 존재한다. 니콜라 포리시에 프랑스 무역장관은 21일 파이낸셜타임스(FT) 인터뷰에서 "EU는 트럼프 관세 문제에 대해 반격할 수단을 갖고 있다"며 "현재 트럼프 대통령 결정과 관련해 EU 집행위위원회 등 관계자들과 논의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필요하다면 EU는 적절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며 미국 빅테크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언급했다. 소위 '무역 바주카포'라고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의 유럽 시장 접근을 차단하는 조치로, 2023년 채택 이후 아직 한 번도 발동된 사례가 없다.

트럼프 행정부의 플랜 B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EU와의 갈등을 촉발한 트럼프 대통령의 글로벌 관세가 사실상 '임시방편'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미국이 무역법 122조를 앞세워 당장의 시간을 벌고, 향후 무역법 301조와 무역확장법 232조 등을 동원해 관세 장벽을 재건해 나갈 것이라는 분석이다. 무역법 301조는 외국 정부의 불합리하거나 차별적인 무역 관행으로부터 미국 상거래를 보호하기 위해 무역대표부(USTR)에 조사와 대응 조치 권한을 부여하는 조항이다. 관세율 상한 규정이 없어 이론적으로는 초고율 관세도 부과할 수 있다. 지난 2018년 트럼프 1기 행정부는 해당 조항을 근거로 중국의 기술 이전·지식재산권 침해 등을 문제 삼았고, 2018~2019년에 걸쳐 약 3,700억 달러(약 534조원) 규모의 중국산 수입품에 7.5~25%의 관세를 매긴 바 있다. 이 조치는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쳐 현재까지 유지 중이다.
문제는 무역법 301조를 통한 관세 부과 절차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점이다. 해당 조항을 근거로 관세를 매기기 위해서는 조사 개시 공지와 최소 30일의 의견 수렴, 대상국과의 최소 60일 협의, 공청회 개최, 최종 결정 및 연방관보 공고 순으로 절차를 밟아야 한다. 해당 절차에는 통상 6개월에서 1년 이상이 소요되며, 행정부가 일방적으로 기간을 단축할 경우 행정절차법(APA) 위반 소송에 직면할 수 있다. 하지만 일단 관세가 부과되고 나면 USTR에는 세율을 비교적 자유롭게 수정할 수 있는 재량권이 주어진다. 판례는 이 권한이 세율의 인상과 인하 모두에 적용된다고 본다.
무역확장법 232조는 대통령이 '국가 안보'를 위해 직접 수입 제한 및 관세 부과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이다. 조사를 담당하는 상무부 장관은 개시 270일 이내에 결과를 보고해야 하며, 이후 대통령이 최종 제재 여부를 결정한다. 트럼프 행정부는 1기 때부터 이 조항을 근거로 다양한 품목에 관세를 부과해 왔고, 2기 들어서도 자동차·철강·알루미늄 등에 추가 관세를 적용했다. 현재는 반도체·의약품 분야에서도 조사가 진행 중이다. 232조는 301조와 마찬가지로 관세율 상한이 존재하지 않으며, 발동 이후 세율 조정의 자유도가 301조보다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