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조선업 르네상스 구상에 뒤따르는 “환상” 평가, ‘메이드 인 USA’ 비용 문제 간과했나
美 조선업 르네상스 구상에 뒤따르는 “환상” 평가, ‘메이드 인 USA’ 비용 문제 간과했나
입력
수정
생산능력·건조 단가·공급망 밀집도 격차
해외 건조→미국 현지 유지보수 시나리오
숙련 인력 부족 및 고임금, 산업 재건 난항

미국 정부가 조선업 부활을 핵심 산업 전략으로 내세우며 대규모 지원과 제도 개편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현지 연구기관과 전문가 사이에서는 이미 붕괴한 제조업 생산 기반과 산업 경쟁력 격차를 단기간에 회복하기 어렵다는 회의론이 주를 이룬다.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 움직임이 줄을 잇는 가운데, 보조금 정책의 실효성과 노동·이민 정책 등 각종 변수가 맞물리면서 미국의 ‘조선업 르네상스’ 구상은 기대와 의문이 동시에 제기되는 국면에 접어든 모습이다.
보조금 중심 접근 한계 지적
11일(이하 현지시각) 해양 산업 전문 매체 아이마린에 따르면, 미국의 자유시장 성향 싱크탱크 카토연구소(Cato Institute)는 지난달 발간한 보고서에서 “미국 정부의 조선업 부흥 계획은 환상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연구소는 “미국의 ‘자국산 집착’이 오히려 국가안보 역량을 약화시키는 실정”이라고 진단하며 “이미 무너질 대로 무너진 공급망을 보조금 등 부수적 수단으로 되살리려는 발상은 현실과 매우 동떨어진다”고 꼬집었다.
카토연구소의 콜린 그라보 부국장은 미국 상선 조선업을 “완전한 붕괴(Near total collapse)” 상태로 규정했다. 실제 2024년 기준 미국 조선소의 세계 시장 점유율은 0.04%에 불과했고, 최근 10년간 대형 원양 상선 건조 실적도 37척에 그쳤다. 같은 기간 중국 조선소가 전 세계 인도량의 절반에 해당하는 6,765척을 인도하고, 일본과 한국 역시 각각 3,130척과 2,405척을 기록한 것과 대비된다. 이를 근거로 보고서는 “미국은 시장 참여자라기보다 예외적 존재에 가깝다”고 평가했고, “단기간 내 반등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단언했다.
가격과 납기 경쟁력 격차도 구체적으로 제시됐다.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한 컨테이너선의 척당 가격은 3억3,000만 달러(약 4,750억원) 안팎으로 아시아 조선소 건조 가격인 5,500만~7,000만 달러(약 790억~1,000억원)와 비교해 5배 이상 차이를 보인다. 건조 기간도 미국은 약 40개월이 소요되는 반면, 한국 조선소는 유사 선형을 6개월 남짓한 시점에 인도한 사례가 다수 보고됐다. 그라보 부국장은 이를 두고 “보조금이 가격과 시간을 동시에 압축하지는 못한다”고 짚었다.
정책 수단의 한계도 뚜렷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조선업 재건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우리는 훨씬, 훨씬, 훨씬 뒤처져 있다”고 언급했다. 이후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중국 선박 제재와 미국 내 건조 의무화를 포함한 조치를 내놨고, 의회 역시 보조금 지원 법안을 추진하고 나섰다. 그럼에도 카토연구소는 △숙련 인력 부족 △노후화된 설비 △부품·철강 공급망 부재를 미국 조선업 재건의 “삼중 제약”으로 정의하며 “산업 기반이 사라진 상태에서 재정 투입만으로 경쟁력을 회복하기는 어렵다”고 결론냈다.

완전 현지 건조 모델, 채산성에 의문 부호
한국을 비롯해 호주, 이탈리아, 캐나다 등 글로벌 조선사들의 ‘미국 진출 붐’이 기대한 만큼의 성과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론이 제기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조선업 재건 선언 이후 미국 내 노후 조선소를 거점으로 한 인수·합작·설비 투자 계획이 잇따르고 있지만, 이러한 움직임은 단기간 내 완전한 현지 건조 체제를 구축하려는 의도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다. 업계는 대부분 조선사가 미국 내 사업 기반을 단계적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봤다.
가장 적극적인 행보에 나선 곳은 한화오션이다. 지난 2024년 펜실베이니아주 필리조선소를 인수한 한화오션은 미 해군 함정 사업 총책임자를 지낸 톰 앤더슨 전 미 해군 소장을 영입하며 군함 수주 역량 강화에 한창이다. 다만 필리조선소는 현재 상선 건조에 집중하는 까닭에 향후 군함 사업까지 확장하겠다는 구상을 현실화하려면 인프라 개선과 인력 확보가 불가피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의 핵 추진 잠수함은 필리조선소에서 건조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지만,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신중론이 우세한 분위기다.
HD현대는 협력 모델을 택했다. 미 방산 조선사 헌팅턴잉걸스(HII)와 합의각서(MOA)를 체결하고, 차세대 군수 지원함을 공동 건조하기로 한 것이다. 국내에서 제작한 모듈과 숙련 인력, 장비를 미국 조선소에 투입하는 이 같은 방식은 기존 글로벌 생산 역량을 활용해 미국 사업을 확장하는 절충형 모델에 가깝다. 이는 미국 시장을 단번에 대체 생산 거점으로 전환하기보다는 해외 건조 역량을 유지한 채 현지 유지·보수(MRO)와 일부 공동 건조로 보폭을 넓히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호주 오스탈은 미국 현지 법인 오스탈USA를 통해 8억 달러(약 1조1,500억원)를 투자하고 인력을 기존 3,000명에서 5,000명으로 확대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또 이탈리아 핀칸티에리는 위스콘신주 조선소에서 연초 이후 600명 이상을 추가 채용했고, 캐나다 데이비는 텍사스주 조선소를 10억 달러(약 1조4,400억원)에 인수해 건조 기능을 확충한다는 계획을 알렸다. 그러나 이들 조선소 대부분 미 해군 및 상선 MRO 수요를 흡수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는 점에서 전면적인 현지 건조 체제로의 전환이 즉각 수익성 확보로 이어질지에 대해서는 미지수인 실정이다.
‘이민 단속 강화-노동 공급 확대 전략’ 충돌
비용과 노동, 이민 정책도 미국 조선업 재건에는 좌시할 수 없는 변수로 지목된다. 미 해군 함정은 방산 물자로 분류돼 시민권자만 건조에 참여할 수 있다. 한 조선업체 임원은 “현지에서 인력을 채용해도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퇴사율이 100%에 달할 정도”라며 “그마저도 숙련도가 높지 않고 약물 복용 등 여러 문제가 끊이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미 노동부는 4년간 800만 달러(약 110억원) 규모의 ‘국제 펠로우십 프로그램’을 발표했지만, 연간 200만 달러(약 27억원) 수준으로 약 40명을 해외에 파견하는 수준에 그쳐 실효성은 매우 제한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책 기조 역시 상충하는 실정이다. 미 정부는 지난해 7월 국제개발처(USAID)를 해제하고, 식량 원조 정책을 축소한 바 있다. 해당 조치는 미 해운사들의 안정적 물량 기반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으로 이어졌다. 다수의 해운사가 USAID의 식량 지원 운송을 안정적인 수익 모델로 삼아 왔는데, 당장 선박이 운항을 멈추면서 직원들을 내보낼 처지에 놓였다. 아울러 ‘존스법’ 폐지를 골자로 한 ‘수역 개방 법안’도 상·하원에 발의됐으나, 통과 가능성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미국 내 항구 간 해상 운송을 미국 건조·소유·승무 선박으로만 허용하는 존스법은 산업 재편 경로를 차단하는 핵심 규제로 지목된다.
이민 정책은 투자 심리와 직결된다. 지난해 9월 조지아주에서 LG에너지솔루션 공장을 급습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으로 300명이 넘는 한국인 기술자가 체포된 사건은 상징적 장면으로 남았다. 체포된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합법적 상용 비자(B-1) 체류자였는데, 이 때문에 산업계에선 “미국이 더 많은 투자를 요청하면서도 사업에 필수적인 외국인 근로자들을 범죄자처럼 취급하고 있다”는 비판이 쇄도했다. 비슷한 시기 백악관은 국가안보회의(NSC) 산하 조선 담당 사무국 인력을 7명에서 2명으로 축소하면서 단기 구호와 장기 산업 전략 사이의 간극을 드러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