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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만 토큰’ 시대 개막, AI 에이전트가 흔든 금융·소프트웨어 판도

‘100만 토큰’ 시대 개막, AI 에이전트가 흔든 금융·소프트웨어 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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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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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실행 기능 AI 대체 가능성 부각
앤스로픽 “무엇이든 수행” 에이전트 공개
SaaS 시장 위기, ‘사스포칼립스’ 담론 부상

인공지능(AI) 에이전트 확산이 소프트웨어업계를 넘어 금융시장까지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고 있다. 실행형 AI가 자문·세무·자산관리 업무를 자동화하며 금융권의 수수료 기반 모델을 압박할 수 있다는 전망이 제기된 것이다. 동시에 100만 토큰을 지원하는 차세대 에이전트 모델이 등장하고, 구독형 소프트웨어의 과금 체계 재편 논의 또한 가속하면서 산업 전반의 수익 구조와 플랫폼 경쟁 구도 또한 재정렬되는 흐름이다. AI 에이전트의 등장이 개별 기업의 운영 방식과 시장 가치 평가 기준까지 흔드는 모양새다. 

소프트웨어 넘어 금융시장까지 충격

11일(이하 현지시각) 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전날 뉴욕 증시에서 LPL파이낸셜, 찰스슈왑, 레이먼드 제임스 파이낸셜, 모건스탠리 등 주요 금융주들은 일제히 급락세를 보였다. 금융업 전반에 반복 업무를 효율화하던 기존 AI를 넘어 의사결정과 실행까지 가능한 AI 에이전트가 잇따라 도입되면서 금융 자문과 자산관리를 중심으로 구축된 업계의 전통적 수익 모델이 흔들릴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 데 따른 결과다. 이들 기업의 주가는 이튿날 혼조세로 돌아섰지만, 투자자들의 매도 심리는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게 시장 전반의 시각이다. 

주가 하락은 구체적 수치로 확인된다. LPL파이낸셜은 10일 장중 11%까지 급락한 뒤 8.31% 하락으로 마감했고, 레이먼드 제임스는 8.75% 떨어졌다. 찰스슈왑은 7.42% 하락했으며, 모건스탠리는 2.4% 밀렸다. 발단은 핀테크 업체 올트루이스트(Altruist)가 자사 플랫폼 헤이절(Hazel)에 AI 기반 세무 계획 도구를 추가한 것이다. 해당 도구는 고객의 세금 신고서, 급여명세서, 계좌 내역, 이메일 등을 분석해 몇 분 만에 맞춤형 세무 전략을 제시한다. 과거 전문가가 높은 수수료를 받고 수행하던 업무가 자동화되면서 소비자들이 부담하는 서비스 비용도 낮아질 공산이 커졌다. 

AI 에이전트 충격은 금융에 앞서 소프트웨어업계를 흔든 바 있다. 지난 3일 세일즈포스의 주가수익비율(PER)은 15배까지 떨어지며 역대 최저 수준으로 밀렸다. 인간의 지적 노동을 대신하는 AI 에이전트가 기존 구독형 소프트웨어와 정보 서비스의 가치를 잠식할 수 있다는 판단이 투자 심리를 압박했다. 블룸버그 인텔리전스의 닐 사이프스 애널리스트는 “AI가 단순 보조 기능을 넘어 중개와 의사결정 영역까지 업무 범위를 확장할 경우, 플랫폼 기업이 소프트웨어나 금융과 같은 여타 시장의 상당 부분을 흡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공포가 과도하다는 시각도 공존한다. JP모건은 올해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AI가 전문 지식의 비용을 ‘제로’에 가깝게 만들었다”면서도 “AI 에이전트는 기존 소프트웨어와 데이터를 활용하는 도구에 불과하다”고 진단했다. 전문 전략과 분석이 저비용으로 제공될수록 고가 수수료 기반 금융 서비스 모델에 타격이 불가피하지만, AI 에이전트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고갈 문제가 심화한 만큼 이를 둘러싼 확장성도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금융과 소프트웨어를 둘러싼 충격은 AI 대체와 공생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는, 일종의 재평가 국면으로 읽힌다. 

사진=앤스로픽

비서형 AI에서 자율 수행형 에이전트로

이런 가운데 앤스로픽은 지난 5일 100만 토큰 컨텍스트 창을 지원하는 모델 ‘클로드 오퍼스 4.6’을 공개하며 인텔리전스의 자율적 수행 능력을 전면에 내세웠다. 토큰 컨텍스트 창은 코드베이스 분석, 문서 추적, 복합 추론 작업을 하나의 세션 안에서 처리할 수 있는 범위를 의미한다. 앤스로픽은 “오퍼스 4.6은 더 오래, 더 안정적으로, 더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모델”이라면서 “계획 수립과 장기 작업 수행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이전 세대 생성형 AI와는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이는 AI가 업무 현장의 실행 주체로 이동하고 있음을 공식화한 메시지로 해석된다. 

이와 함께 앤스로픽은 해당 모델이 에이전트 코딩 평가인 터미널-벤치(Terminal-Bench) 2.0에서 최고 점수를 기록했으며, 전 세계 학자들이 만든 ‘인류의 마지막 시험(Humanity’s Last Exam)에서도 주요 경쟁 모델을 앞섰다고 밝혔다. 경제적 가치 기반 지식 작업을 평가하는 GDPval-AA에서는 GPT-5.2 대비 144포인트, 이전 버전인 클로드 오퍼스 4.5 대비 190포인트 높은 성적을 기록했다는 수치도 제시됐다. 앤스로픽은 이를 통해 실제 업무 생산성 지표에서의 경쟁력을 강조하고자 했다. 

에이전트의 성격도 변화했다. 초기 생성형 AI가 질문에 답하는 ‘어시스턴트’였다면, 최신 모델은 도구를 활용해 목표를 달성하는 ‘행동 주체’에 가깝다. 코드 리뷰와 디버깅을 스스로 수행하고, 문서·스프레드시트·프레젠테이션을 생성·편집하며, 협업 환경에서 멀티태스킹을 수행한다는 설명은 실행 중심 모델로의 진화를 시사한다. 응용프로그램인터페이스(API)에는 장기 작업을 위해 자체적으로 컨텍스트를 요약하는 컴팩션(compaction) 기능이 추가됐고, 추론 깊이를 조절하는 적응형 사고(adaptive thinking)와 노력 제어(effort control) 옵션도 도입됐다.

문제는 이러한 자율성 확대가 통제와 책임 문제를 수반한다는 점이다. AI 에이전트는 로그 조회, 위협 정보 검색, 장비 제어 등 실제 시스템과 상호작용하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에 따라 ‘휴먼 인 더 루프(Human-in-the-loop)’ 구조, 즉 인간 검증을 전제로 한 단계적 권한 위임이 핵심 설계 요소로 부상한다. 에이전트가 어떤 근거로 특정 판단을 내렸는지 설명 가능성을 확보하지 못할 경우, 금융·보안·의료 등 고위험 영역에서의 적용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다. 결과적으로 100만 토큰 모델의 등장 역시 AI를 업무 실행 주체로 받아들일 것인지에 대한 산업 전반의 기준을 재설정하는 계기로 작동하는 양상이다.

구독형 소프트웨어 → AI 기반 플랫폼 변화 조짐

이 같은 변화가 누적되면서 프로그램 라이선스 판매에 기반한 기존 소프트웨어 산업 모델은 재편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도 힘을 얻는 추세다. 특히 앤스로픽이 오퍼스 4.6 공개에 앞서 기존 클로드 모델에 ‘리걸(Legal)’ 플러그인을 추가하자,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업계에선 이른바 ‘사스포칼립스(SaaSpocalypse)’ 공포가 급속히 확산했다. 계약서 분석부터 조항 비교, 리스크 표시, 수정 제안까지 자동화하도록 설계된 해당 플러그인은 협업형 에이전트와 결합할 경우 계약서 수신→자동 검토→위험 조항 수정 초안 작성→상대 버전 비교→변경 사항 요약 이메일 작성→내부 결재 문서 생성→문서관리시스템 저장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을 일괄 수행하는 게 특징이다. 

해당 소식이 전해진 4일 하루 동안 뉴욕 증시에서는 2,850억 달러(약 410조원)가량의 시가총액이 증발했는데, 감소분의 대부분이 세일즈포스, 서비스나우, 마이크로소프트(MS), 워크데이 등 전통적 SaaS 기업들의 주가 변동성에서 기인했다. 이에 앤스로픽도 이례적으로 우려의 뜻을 내비쳤다. 앤스로픽은 “우리는 워크데이, 세일즈포스, 넷스위트 등 전통적 SaaS를 여전히 사용 중”이라고 밝히며 “AI 에이전트는 SaaS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상위 레이어에서 통합·조율하는 게 목표”라고 강조했다. 

전통적 SaaS 기업들도 과금 체계를 손보는 등 체질 개선을 병행하고 나섰다. 세일즈포스는 자사 에이전트포스(Agentforce)에 대해 고정 금액으로 무제한 사용이 가능한 모델을 도입함으로써 기존 사용자 수 기반 ‘시트 라이선스’ 방식에서 벗어났다. MS는 사용자당 월정액을 유지하면서도 사용량 기반 과금 서비스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러한 변화의 배경에는 AI 자동화로 동일 업무를 더 적은 인력으로 수행할 수 있게 될 경우, 기존 시트 기반 모델은 매출 감소 압력을 피할 수 없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오라클의 행보는 SaaS 재편 방향을 보다 구체화한다. 지난 10일 오라클은 계획과 조달, 제조, 유지보수, 물류에 이르는 공급망 전 영역에 AI 에이전트를 기본 탑재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에이전트는 오라클 퓨전 클라우드 애플리케이션에 내장되며, 클라우드 인프라스트럭처(OCI)에서 실행된다. 오라클은 “공급망이 점점 복잡해지고 시장 교란이 빈번해지는 상황에서 더 빠르고 자동화된 운영 방식이 필요하다”고 도입 배경을 밝혔다. SaaS가 독립된 제품을 판매하는 모델에서 한 단계 진화해 AI 기반 실행 플랫폼으로 거듭나고 있음을 유추할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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