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착시’가 이끈 성장률 방어, 올해도 반도체 빼면 부진 터널
‘반도체 착시’가 이끈 성장률 방어, 올해도 반도체 빼면 부진 터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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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호황에도 4분기 성장률 다시 마이너스 연간 성장률은 2020년 이후 5년 만에 최저치 K자형 성장 함정에 빠진 한국, 반도체 쏠림 극심

마이너스로 고꾸라졌던 한국 경제성장률이 반도체 호황 덕에 지난해 간신히 1% 성장을 기록했다. 주요 기관들은 한국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힘입어 올해는 최대 2%대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반대로 말하면 반도체나 인공지능(AI) 경기에 문제가 생길 경우 한국 경제가 예상치 못한 충격을 받을 위험이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성장률 수치는 개선되고 있지만 성장의 동력이 특정 산업에 집중되면서 체감 회복과 산업 전반의 회복력은 여전히 제한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작년 4분기 0.3% ‘역성장’, 연간은 1% ‘턱걸이’
22일 한국은행이 발표한 '2025년 4분기 및 연간 실질 국내총생산(GDP)' 속보치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연간 경제성장률은 1.0%로 집계됐다. 이는 한은 전망치와 동일한 것으로 직전년(2.0%)의 절반 수준이다. 한국의 연간 성장률은 코로나19 충격이 가해진 2020년 -0.7%를 기록한 이후 2021년 4.6%로 반등했고 이후 2022년 2.7%로 집계됐다. 이어 2023년에 1.6%를 기록한 후 2024년에는 2.0%로 반등했지만 지난해 다시 1%대로 내려앉았다.
연간 성장률 1%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 경제 전망’이 집계한 30개국 중 다섯 번째로 낮다. 선진국 평균 1.7% 및 미국·유로존·일본 등 주요국에도 못 미친다. 또한 한은의 통계 작성 이래 역대 6번째로 낮은 수치기도 하다. 역대 최저치는 1998년 외환위기 당시의 -4.9%이며, 이어 2차 오일쇼크가 발생한 1980년(-1.5%)과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인 2020년(-0.7%)이 그 뒤를 잇고 있다. 0%대 저성장을 기록했던 사례도 한국전쟁 직후로 식량난이 심각했던 1956년(0.7%)과 글로벌 금융위기인 2009년(0.8%) 등 단 두 차례에 불과하다. 그나마 AI 호황에 힘입은, 하반기 반도체 수출 증가라는 호재를 제외하면 한국의 지난해 성장률은 바로 0%대로 고꾸라진다.
분기 성장률도 마찬가지다. 분기 성장률은 2024년 1분기 1.2%를 찍은 뒤 2분기엔 -0.2%까지 추락했다가, 3분기(0.1%)와 4분기(0.1%) 정체를 거쳐 작년 1분기(-0.2%) 다시 뒷걸음쳤다. 이후 2분기(0.7%) 반등에 성공한 뒤 3분기(1.3%) '깜짝 성장'했지만 4분기 다시 역성장(-0.3%)을 기록했다. 4분기 성장률은 한은이 두 달 전 제시한 예상치(0.2%)보다 0.5%p나 낮은 수치이자, 2022년 4분기(-0.4%) 이후 3년 만에 가장 낮은 기록이다.
4분기 역성장은 직전 분기 수출 호조에 따른 기저효과와 함께 투자 부진이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지난해 3분기 실질 GDP는 수출 증가에 힘입어 전기 대비 1.3% 성장했지만, 4분기에는 수출이 전기 대비 2.1% 감소했고 수입도 1.7% 줄었다. 지출 항목별로 보면 민간소비는 승용차 등 재화 소비가 줄었으나 의료 등 서비스 소비가 늘면서 전기 대비 0.3% 증가했다. 정부소비도 건강보험 급여비 지출을 중심으로 0.6% 늘었다. 반면 투자는 전반적으로 부진했다. 건설투자는 건물건설과 토목건설이 모두 줄어 전기 대비 3.9% 급감했고, 설비투자 역시 자동차 등 운송장비를 중심으로 1.8% 감소했다.
한은은 앞서 지난해 11월 조사국 전망에서 연간 성장률을 1.0%로 제시하며 4분기 성장률을 0%대 초반으로 예상한 바 있다. 그러나 실제 수치는 역성장을 기록했고, 특히 건설투자 감소 폭이 예상보다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해 4분기 성장 기여도를 보면 내수에서는 건설투자가 -0.5%포인트, 설비투자가 -0.2%포인트씩 성장률을 끌어내렸고, 순수출도 -0.2%포인트를 기록하며 전체 성장률을 깎아내렸다. 연간 기준으로 보면 건설투자 부진은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해 건설투자는 전년 대비 9.9% 감소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13.2%) 이후 가장 큰 감소 폭을 기록했다. 수출은 연간 4.1% 증가해 성장에 기여했지만, 증가율은 전년(6.8%)에 비해 둔화됐다.

올해 최대 2% 성장 전망되지만, 반도체 제외 아랫목은 냉기
올해 경제성장률은 지난해보다 소폭 오른 1%대 후반에서 2% 초반 수준으로 전망된다. 20일 IMF는 올해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종전보다 0.1%포인트 올린 1.9%로 발표했다. 이는 지난해 10월 전망치인 1.8%에서 상향된 것으로 IMF는 지난해 7월 이후 한국의 성장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다. 이번에 조정된 1.9%는 주요 선진국 평균 성장률인 1.8%를 웃도는 수치다.
한국은행도 올해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8월 전망보다 0.2%포인트 상향한 1.8%로 제시했다. 한은은 경제전망보고서에서 대외 통상환경의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하반기 이후 내수 회복 흐름이 경제성장률을 끌어올릴 것으로 분석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역시 올해 경제성장률을 1.8%로 전망하며 민간소비와 투자 여건이 점차 개선될 것으로 내다봤다. 설비투자는 완만한 증가세를 이어가고, 건설투자 역시 전년 대비 회복 흐름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금융연구원은 금융 여건 완화와 정책 효과를 반영해 보다 높은 2.1%의 경제성장률을 제시했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같은 전망치를 내놓으며 한국 경제가 2025년을 저점으로 2026년에는 완만한 반등 국면에 들어설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밖에 주요 기관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아시아개발은행(ADB) 1.7%, 산업연구원 1.9%, 골드만삭스 1.9%, 호주뉴질랜드은행(ANZ) 2.0%, 옥스퍼드이코노믹스 2.1%, UBS 2.2% 등이다.
국내외 주요 기관들이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을 높게 점치는 주된 이유는 반도체 업황의 회복세다. 말을 바꾸면 올해 성장률 역시 글로벌 호황을 누리는 반도체 착시효과로, 역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통 수출 품목들의 산업 체력 전반을 끌어올리지 않는 한, 지난해 성장률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반도체↑ 철강·기계↓, 커지는 양극화
실제로 반도체 효과를 걷어내면 수출 전반에는 짙은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다. 한은의 ‘주요 품목별 수출 경쟁력 평가’ 보고서를 보면, 한국 수출은 외형적 성과와 달리 세계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2018년 이후 낮아지는 추세로, 반도체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장 없이 정체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우선 한국 철강 제품의 경우 2010년대 중반부터 중국이 설비를 늘리면서 가격 경쟁력이 약화했고, 2021년 헝다(恒大·에버그란데) 사태에서 비롯한 부동산 불황의 영향으로 중국이 수출량을 늘리면서 더더욱 설 자리가 좁아졌다.
한국 기계 역시 동남아 시장 등에서 중국 기계에 밀렸다. 중국 기계제품의 가격이 더 싼 데다 첨단산업 발전을 위한 국가 정책(중국 제조 2025) 등으로 수준까지 높아지면서다. 한은은 보고서에서 “올해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본격 시행으로 통상 비용이 증가하면서 앞으로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더 약화할 우려가 있다”며 “최근까지는 주요 철강 수출국 중 한국의 시장 경쟁력이 이탈리아·네덜란드 등보다 상대적으로 높았지만, 탄소배출권 비용 부담이 높아지면 EU 내 한국 수출 입지가 좁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반도체 분야의 품목 경쟁력은 높아졌다. 여기엔 국내 메모리 업체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더블데이터레이트(DDR)5 등 고부가가치 품목을 경쟁국보다 빠르게 개발·상용화한 점이 주효했다. 국가데이터처(옛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수출 증가액은 261억 달러(약 38조3,000억원)지만 반도체 증가액은 315억 달러(약 46조2,000억원)에 달했다. 나머지 산업에서는 수출이 오히려 54억 달러(약 7조9,000억원)나 줄어든 것으로, 한국 경제가 반도체 부문과 비반도체 부문으로 양분되는 ‘K자형 성장’의 함정에 빠진 셈이다. K자형 성장은 한 나라의 경제가 알파벳 K처럼 좋은 쪽은 더 좋아지고, 나쁜 쪽은 더 나빠져 격차가 확대되는 현상을 가리킨다. 이 같은 함정에 빠지면 겉으로는 경제가 회복하는 듯 보이는 착시효과가 생겨 오히려 성장 기반이 무너지는 것을 방치하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