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최저임금이 바꾸는 기업 내부의 조정 지도
[딥파이낸셜] 최저임금이 바꾸는 기업 내부의 조정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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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 하단 고정, 조정의 방향 결정 숙련 인력이 완충재로 이동하는 구조 측정과 이동성 대응, 정책 성패 가름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최저임금은 단순한 임금 기준을 넘어, 기업 내부의 조정 구조를 바꾸는 제도다. 2010년대 후반부터 202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 한국의 법정 최저임금 인상은 이러한 변화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 ILO)에 따르면 2017년 한국의 월 최저임금은 135만2,230원으로 집계됐고, 이를 기점으로 반복적 업무의 임금은 다수 기업에서 법적으로 고정된 기준선이 형성됐다.
이 기준선은 평상시에는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경기 둔화나 매출 감소와 같은 충격이 발생할 경우 기업의 선택지를 제한하는 역할을 한다. 하단 임금이 법으로 묶이면서 비용 조정은 자연스럽게 다른 영역으로 이동했고, 그 흐름은 상위 임금 구간과 고숙련 인력으로 이어졌다. 최저임금 인상은 단순한 임금 조정이 아니라, 위기 국면에서 기업이 어떤 순서로 비용 조정에 나설지를 미리 규정하는 제도적 장치로 작동했다.
위기 때 작동하는 임금 안전장치
최저임금은 위기 국면에서 기업의 비용 조정 순서를 먼저 바꾼다. 매출이 감소하면 기업은 임금과 고용을 포함한 비용 구조 전반을 점검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법으로 보호된 임금은 가장 마지막에 조정 대상이 된다. 반복 업무의 임금이 법적으로 고정되면서 기업이 선택할 수 있는 조정 수단은 자연스럽게 줄어들었고, 그 결과 조정의 방향은 보너스 축소와 중간 직급 근로자의 근로시간 감축으로 이동했다.
조정 압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고숙련 인력의 임금 인하와 고용 축소로까지 이어졌다. 실제 연구들은 이러한 내부 이동이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으로 반복된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다. 최저임금은 하위 임금 구간의 임금 손실을 완화하는 효과를 보였지만, 같은 기업 내부에서는 고임금 근로자에게 더 큰 임금 조정과 해고 위험이 집중되는 흐름이 나타났다.
임금 하단이 고정될수록 기업 내부의 충격은 다른 구간으로 이동했고, 이 과정에서 최저임금의 성격도 분명해졌다. 위기 상황에서 최저임금은 단순한 임금 보호 장치를 넘어, 기업의 조정 방향을 규정하는 내부적 보험으로 작동했다.

주: 최저임금이라는 법적 하한을 제거했을 때 숙련도 수준에 따라 근로자의 기대 후생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보여준다.
고숙련 인력, 완충재가 되는 구조
이러한 구조는 기업의 성장 경로를 직접 흔든다. 조정 압력이 고숙련 인력에 집중될수록 기업은 단기적인 운영은 유지할 수 있지만, 위험을 수반하는 혁신 투자에는 소극적으로 대응하게 된다. 현장 운영은 계속 이어지는 반면, 신제품 개발이나 공정 개선과 같은 중장기 과제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난다. 이 흐름이 누적되면서 숙련 인력에 대한 투자는 점차 축소되고, 장기적인 제품 전략을 추진할 동력도 약해졌다. 도제식 훈련이나 내부 교육, 멘토링처럼 시간이 필요한 고급 기술 축적 역시 영향을 받았다.
실증 분석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2024년 아테네경제·비즈니스대 연구진의 분석과 유럽경제정책연구센터(Centre for Economic Policy Research, CEPR) 산하 정책·연구 플랫폼 복스이유(VoxEU)의 연구에 따르면, 기업 내부의 조정 패턴은 개별 기업 차원에 그치지 않고 공공 직업훈련 프로그램과 대학 교육 과정, 나아가 국가 혁신 정책으로까지 확산됐다. 고숙련 인력이 완충재로 활용되는 구조가 고착될수록, 기술 축적의 방향과 속도 또한 함께 바뀌었다. 결국 기업 내부의 조정 방식은 경제 전반의 성장 궤적을 좌우하는 핵심 요인으로 작동하게 된다.
조정 흐름을 읽는 지표
이 쟁점의 출발점은 찬반이 아니라 수치다. 정책 판단을 위해서는 먼저 기업 내부의 구조를 확인해야 한다. 각 기업에서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어느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는지, 매출 변동이 발생했을 때 고임금 구간의 임금과 고용이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지표를 산업과 지역 단위로 축적하면, 조정 압력이 어디로 이동하는지가 드러난다. 특히 숙련 인력이 완충재로 활용되는 시점과 범위가 보다 선명해진다.
이러한 측정 결과 위에서 정책 수단을 설계해야 한다. 고숙련 실직자를 대상으로 한 임금 연동형 지원은 일반적인 실업급여와는 구조가 다르다. 재취업과 재교육 기간 동안 발생하는 소득 손실의 일부를 보전해 노동시장 이탈을 막기 위한 장치다. 김경필의 분석은 한국의 실업급여가 전일제 최저임금 근로자의 순소득을 웃돌 수 있음을 보여주며, 현행 고용보험 구조에 왜곡이 존재함을 드러낸다. 측정이 빠진 정책은 효과를 담보하기 어렵다. 정확한 지표와 표적화된 지원이 함께 작동할 때, 정책의 방향과 효과도 비로소 분명해진다.

주: 생산성 하락 충격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숙련도별로 고용을 어떻게 조정하는지를 보여준다.
이동성이 바꾸는 인재 유지
숙련 인력의 이동성은 정책 설계의 난도를 한층 끌어올린다. 국내 생산성이 약화될 경우, 고숙련 인력은 저활용 상태에 머무르기보다 해외로 이동하는 선택을 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 이민 전망(International Migration Outlook) 2023』에 따르면, 2021~2023년을 전후로 선진국으로의 영구 이주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이동이 가능한 환경에서는 인재 유출의 속도가 빨라지고, 그만큼 공공 교육과 직업훈련에 투입된 비용을 회수할 가능성은 낮아진다.
반대로 이동성이 낮은 시장에서는 다른 문제가 나타난다. 숙련 인력은 국내에 남지만, 고숙련 일자리가 충분히 늘지 않으면서 저품질 일자리에 묶이는 현상이 확산된다. 이 과정에서 교육 투자에 대한 수익은 약화되고, 장기적인 숙련 축적의 유인 역시 줄어든다.
해법은 단순하지 않다. 이동 가능한 임금 지원과 단기 재교육, 한시적 공공 프로젝트를 함께 설계해 숙련 인력이 노동시장과 연결된 상태를 유지하도록 해야 한다. 최저임금 보호를 유지하면서도 성장 기반을 지키는 해법은 결국 정책 설계의 정밀도에 달려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Protect the Floor, Save the Top: Rethinking the Firm-Level Minimum Wag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