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보스 포럼] 트럼프 "미국만이 그린란드 지킬 수 있다", 지정학적 위기에 흔들리는 대서양 동맹
[다보스 포럼] 트럼프 "미국만이 그린란드 지킬 수 있다", 지정학적 위기에 흔들리는 대서양 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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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러·중 견제, 국제 안보 위해 그린란드 병합해야" 전략적 요충지 차고스제도 모리셔스 반환 두고도 비판 러 "그린란드에 관심 없어, 유럽이 트럼프 업적 막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러시아·중국 견제를 위한 ‘국제 안보 카드’로 공식화하며 대서양 동맹에 균열을 내고 있다. 자원 확보 논리를 부인한 채 군사·지정학적 요충지 논리를 전면에 내세운 트럼프 대통령은 유럽 동맹국의 안보 책임론을 정조준했고, 국제법에 근거한 영국의 차고스제도 반환 결정까지 공개 비판하며 미국 우선주의의 선을 한층 끌어올렸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와 중국은 그린란드 자체보다 미·유럽 갈등이 만들어낼 전략적 공간에 주목하며 극지로 확장되는 미·중 경쟁의 향배를 계산하는 분위기다.
"2차 세계대전에서 미국이 그린란드 지켜내"
21일(이하 현지시각) 트럼프 대통령은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 연차 총회 특별 연설에서 "모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동맹국은 자국 영토를 방어할 의무가 있고 그린란드를 제대로 지킬 수 있는 나라는 미국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의 역할에 대해 언급했다. 그는 "미국이 아니었다면 여러분은 모두 독일어나 일본어를 하고 있을 것"이라며 "당시 그린란드를 방어할 수 없는 덴마크를 위해 미국이 그린란드를 지켰다"고 주장했다. 이어 덴마크를 향해 "은혜를 모른다"고 비판하며 "전쟁 이후 그린란드를 덴마크에 돌려준 것은 바보 같은 짓"이라고 덧붙였다.
그린란드 병합 목적에 대해서는 "그린란드는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중요한 전략적인 위치에 있다"며 "국제 안보를 위한 것이지 수백 피트 아래 묻혀 있는 희토류 때문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덴마크로부터 우리가 원하는 것은 단 하나"라며 "위험한 잠재적 적들을 억제하기 위해 이 땅을 달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그린란드는 사실상 얼음덩어리고 미국이 제공할 수 있는 것에 비해 매우 적은 대가"라며 "미국은 그린란드에 가장 위대한 골든돔(golden dome)을 건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골든돔은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한 최첨단 다층 미사일 방어망이다.
나토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다. 그는 "미국은 러시아로부터 유럽을 보호하며 수년 동안 그들을 도왔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며 "오히려 나토 비용의 거의 100%를 미국이 부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을 향해서는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지 않다"며 "유럽은 미국을 따라 하면 시민들의 삶을 개선하고, 경제적인 기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린란드를 지키기 위해서는 그린란드에 대한 소유권이 필요하다"며 즉각적인 협상을 촉구했다. 군사력 사용 가능성에 대해서는 "사용할 필요가 없고, 사용하고 싶지도 않다"며 강제 병합에 나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국제법 부인한 트럼프, 차고스제도 반환도 지적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 전날에도 그린란드 병합을 반대하는 정상들을 겨냥한 메시지를 게시하며 유럽을 압박했다. 그는 20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이 보낸 메시지를 각각 공개했다. 공개된 메시지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친구'라고 부르며 22일 파리에서 G7(주요 7개국) 회의를 열 테니 만찬을 함께 하자고 제안했고, 뤼터 총장은 "시리아, 가자, 우크라이나에서 보여준 당신의 업적을 널리 알리겠다"며 트럼프 대통령을 치켜세웠다. 이는 현재 유럽 지도자들이 그린란드 문제에서 미국에 맞서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저자세의 친미적 태도를 취하고 있음을 부각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영국도 공격을 피해 가지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같은 날 영국이 차고스제도를 모리셔스에 반환한 결정을 두고 "충격적이게도 나토 동맹국인 영국이 미군 기지가 있는 차고스제도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을 모리셔스에 넘길 계획"이라며 "이렇게 중요한 땅을 내주는 것을 매우 멍청한 행동이며 이것이 바로 그린란드를 합병해야 할 수많은 이유 중 하나"라고 했다. 차고스제도는 인도양 중앙에 위치한 군도로, 영국은 나폴레옹 전쟁 이후 체결된 파리 조약에 따라 1814년 모리셔스와 함께 이 섬들을 차지했다. 이후 1965년 식민지였던 모리셔스에서 차고스제도를 분리했고, 이후 1968년 모리셔스가 독립한 뒤에도 차고스제도는 영국령으로 남았다.
영국과 미국은 1971년 소련의 군사적 영향력 확대를 저지하기 위해 차고스제도 내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CNN은 이 기지를 미국의 가장 중요하고도 비밀스러운 해외 자산 중 하나로, 아시아 전역에서 작전을 수행하는 폭격기의 핵심 거점이자 두 차례 이라크 침공을 지원한 전략적 요충지로 평가했다. 그러나 모리셔스는 차고스제도에 대한 주권을 주장하며 국제 재판소를 통해 소송을 이어왔고, 2019년 국제연합(UN) 최고 법원인 국제사법재판소(ICJ)는 영국이 차고스제도를 모리셔스에 신속하게 반환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UN 총회 결의와 아프리카연합(AU)의 모리셔스 지지 성명 등 국제사회의 압력이 이어졌다.
이에 영국 정부는 지난해 5월 차고스제도의 주권을 모리셔스에 이양하는 대신 제도 내 디에고 가르시아 섬의 군사기지를 최소 99년간 통제하는 협정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영국은 디에고 가르시아 군사기지를 임차하는 대가로 모리셔스에 매년 1억100만 파운드(약 1,998억원)를 지급할 예정이다. 협정 논의 당시 영국 정부는 백악관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지지를 확보했고, 미 국무부도 "워싱턴은 영국과 모리셔스 간 합의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돌연 입장을 바꾼 것을 두고 "미국과 영국 두 지도자의 세계관 충돌을 보여준다"며 "키어 스타머 총리가 차고스제도 양도의 법적 의무가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국제법의 필요성을 부인해 온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그런 제약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것"이라고 짚었다. BBC는 "양국의 의견 대립은 이것으로 끝이 아닐 수도 있다"며 "영국 정부가 새로운 중국 대사관 건립을 승인한 결정이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를 다시 자극하는 계기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극지로 확대되는 미·중 경쟁 요충지
이런 가운데, 오랜 동맹이었던 미국과 유럽의 갈등을 지켜보는 러시아의 시선은 비교적 냉정하다. 20일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모스크바 외무부 청사에서 러시아의 2025년 외교 성과를 정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원칙적으로 그린란드는 원래 덴마크의 일부가 아니지 않나"라며 "식민지 정복의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그린란드가 노르웨이의 식민지였다가 덴마크의 식민지가 됐고, 20세기 중반에야 그린란드가 식민지가 아닌 덴마크의 일부라는 협정이 체결됐다고 설명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의 근거로 '러시아와 중국의 위협'을 거론하는 데 대해서는 "러시아는 그린란드 점령 계획과 아무 관련이 없다"며 "러시아와 중국에 그런 계획이 없다는 사실을 미국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어 "서방의 경제학자와 정치과학자도 이런 주장을 부인한다"며 "많은 러시아인은 그린란드 문제가 부상하기 전까지 그린란드가 무엇인지도 몰랐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린란드 문제는 심각한 지정학적 사안으로,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러시아 정부 관보 로시야스카야 가제타(Rossiyskaya Gazeta)는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병합한다면 링컨의 노예제 폐지에 버금가는 역사적 업적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 돌파구'라고 평가했다. 반면 덴마크·영국·프랑스 등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 대해서는 ‘미국의 위대함을 가로막는 고집’이라고 비판했다. 이 매체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공식 입장을 반영하는 관영 신문으로, 이러한 논조는 러시아가 그린란드 자체보다도 미-유럽 동맹과 나토 내부의 균열을 전략적 이익으로 보고 있음을 시사한다.
중국 역시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중국 인민대 왕이웨이 국제사무연구소장은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는 중·러를 억제하기 위한 전략"이라며 “과거의 라이벌인 러시아보다는 장기적으로는 중국을 겨냥한 움직임”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미국이 그린란드를 확보하면 미사일 방어체계와 해저 광케이블, 핵잠수함 등 주요 군사 자산을 배치할 수 있다”며 “미래 미·중 경쟁의 무대가 우주와 극지로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유럽과의 교역을 위해 북극 항로 개척에 나선 중국 입장에서는 미국의 그린란드 통제가 파나마운하처럼 전략적 해상 요충지 접근을 제한하는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