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현금 대체는 아직 진행형, 디지털 결제의 숙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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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디지털 결제 확대에도 현금 의존도 여전 생활 속 활용·저소득층 확산이 금융 포용성 가늠자 상호운용성·소비자 보호가 결제 생태계 경쟁력 좌우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금 사용은 예상보다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디지털 결제 수단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에도 실제 이용 행태와 시스템에 대한 신뢰 수준 사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간극이 존재한다. 2023년 신흥국과 개발도상국에서는 비현금 결제가 빠르게 늘어났지만, 국내총생산(GDP) 대비 현금 인출액 비중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용자들은 비용 부담이 낮고 접근성이 높으며 안전성이 확보됐다고 판단할 때 디지털 결제를 선택하지만, 불확실성이 커질 경우 현금에 의존하는 경향을 보인다.
디지털 결제 확산의 전제 조건
현금은 과거의 결제 수단이고 디지털 결제는 미래의 금융 인프라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다. 그러나 실제 정책 현장에서 중요한 것은 이용자가 체감하는 편의성과 신뢰다. 전 세계 수십억 명의 저소득층에게 현금은 단순한 지급 수단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인터넷 연결이나 데이터 이용, 전력 공급 없이도 사용할 수 있으며 금융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서도 거래가 가능하다. 거래 완료 여부를 즉시 확인할 수 있고 별도의 절차나 기술적 이해를 요구하지 않는다는 점도 강점으로 평가된다.
디지털 결제가 일상적인 지급 수단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이러한 현금의 특성을 상당 부분 구현해야 한다. 송금 속도가 빠르더라도 결제 실패가 잦거나 수수료 부담이 크고 이용 절차가 복잡하다면 이용 확산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이용자가 해당 계좌를 통해 생활비를 결제하고 가족에게 송금하며 오류 발생 시 손쉽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여부다. 이러한 기능이 충분히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계좌는 단순한 자금 수령 수단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생활 밀착형 결제의 정착
디지털 결제의 성과는 신규 계좌 개설 규모보다 실제 이용 수준으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특히 저소득층 이용자가 현금 인출 없이 계좌를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비중은 디지털 금융 정착 수준을 보여주는 핵심 지표로 꼽힌다. 주거비와 공공요금, 교통비, 교육비, 식료품 구매 등 생활과 밀접한 영역에서 디지털 결제가 활용되는지도 중요하다. 세금 납부나 급여 지급 등 기존 공식 경제 부문만 디지털화하는 것은 행정 절차를 전산화하는 수준에 머무르는 한계를 지닌다.
국제 통계 역시 금융 접근성과 실제 활용 사이에 상당한 간극이 존재함을 보여준다. 금융계좌 보유율은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했고 중·저소득국의 휴대전화 보급률도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전 세계 약 13억 명은 여전히 공식 금융 시스템 밖에 머물러 있으며 계좌 보유자 상당수도 공공요금이나 교육비를 현금으로 납부하고 있다. 이는 금융 서비스 접근성 확대만으로 이용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시사한다.

기술보다 중요한 생활 속 활용도
실제 디지털 결제 확산 과정에서는 계층 간 격차 문제도 함께 나타난다. 새로운 결제 기술은 대체로 고소득층과 도시 거주자, 고학력층을 중심으로 먼저 확산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에 따라 정책 평가는 디지털 결제가 저소득층과 취약계층으로 얼마나 빠르게 확산되는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기술 도입 과정에서 발생하는 격차를 줄이는 것이 디지털 금융 포용성의 핵심 과제로 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소득층일수록 결제 오류나 송금 실패는 일상생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교통과 의료, 공과금 납부 등 필수 지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다. 영세 사업자 역시 복잡한 결제 절차로 인해 고객 이탈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금융 포용의 핵심 과제
디지털 결제가 생활 속에 정착하기 위해서는 결제망 구조 역시 뒷받침돼야 한다. 현금이 오랫동안 범용 결제 수단으로 기능해 온 배경에는 높은 개방성이 자리하고 있다. 반면 상당수 디지털 결제 서비스는 특정 은행이나 전자지갑, 플랫폼 내부에서만 작동하는 구조적 한계를 지닌다. 이 경우 이용자는 주변에 같은 서비스를 사용하는 사람이 충분하지 않으면 활용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 역시 서비스별 단말기와 수수료, 정산 체계를 별도로 관리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된다.
가맹점 수용성은 디지털 금융 포용성을 결정하는 핵심 기반으로 평가된다. 지역 상권에서 디지털 결제가 널리 사용되지 못할 경우 소비자 역시 현금 의존도를 낮추기 어렵다. 복지급여를 디지털 방식으로 지급하더라도 결국 현금 인출을 거쳐야 소비가 가능하다면 결제 방식만 달라졌을 뿐 거래 구조 자체는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정책 측면에서도 특정 민간사업자의 시장 지배력에 의존하는 방식은 한계를 안고 있다. 시장 집중이 심화될 경우 수수료 부담 확대와 데이터 독점, 경쟁 제한 등 새로운 부작용이 발생할 우려가 크다. 이 때문에 공공 인프라 성격의 결제망 구축에 국가가 역할을 확대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지는 추세다. 이에 따라 정부가 모든 결제 서비스를 직접 운영할 필요는 없지만, 표준화된 결제 규격과 보안 체계, 사업자 간 연계 기준은 마련해야 한다.
신뢰와 선택권 보장
디지털 결제의 확산은 새로운 위험 요인이 확장되는 부작용을 낳는다. 금융 사기와 송금 오류, 개인정보 오남용, 계좌 동결 등은 금융 취약계층의 불신을 키우는 대표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고령층과 디지털 활용 역량이 낮은 계층은 모바일 금융서비스 이용 과정에서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한 경우가 많으며, 일부 여성은 가정 내 자산 통제권 문제로 금융 접근권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 때문에 현금 사용을 급격히 축소하거나 디지털 결제로의 전환을 강제하는 정책은 오히려 금융 취약계층의 소외를 심화시킬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소비자 보호와 투명한 수수료 체계, 개인정보 보호 장치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
현금의 역할 역시 당분간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디지털 결제망이 해킹과 통신 장애, 시스템 오류, 재난 상황 등 다양한 위험에 안정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확신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현금이 중요한 보완 수단으로 기능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디지털 결제와 현금 접근성을 동시에 보장하는 전환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임금과 복지급여, 공공요금 납부 등 디지털 방식이 실질적인 편익을 제공하는 분야부터 단계적으로 전환을 추진하는 한편 디지털 서비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계층을 위한 현금 접근성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디지털 결제의 경쟁 상대는 다른 결제 서비스가 아니라 현금이다. 이용자가 별도의 학습 없이 사용할 수 있고 일상적인 소비와 송금 과정에서 불편을 느끼지 않으며 문제 발생 시 충분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형성될 때 비로소 현금 의존도는 낮아질 수 있다. 현금을 대체하는 것은 이용자의 신뢰이며, 디지털 금융 포용성 역시 그 신뢰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완성된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Digital Payment Inclusion Is a Design Problem, Not a Cash Problem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