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딥파이낸셜] 은행 자본 규제 완화에도 대출 증가는 없었다

[딥파이낸셜] 은행 자본 규제 완화에도 대출 증가는 없었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

수정

영국 은행 기본자본비율 인하
대출 확대 기대와 달리 주주 환원 선택
조건 없는 자본 조정의 정책 한계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025년 12월, 영국 금융정책위원회(FPC)는 은행권에 적용되는 기본자본(Tier 1) 비율 기준을 약 14%에서 13%로 낮췄다. 은행의 자기자본 부담을 낮춰 대출 여력을 넓히겠다는 정책 신호였다. 그러나 조치 이후 나타난 결과는 기대와 달랐다. 영국중앙은행에 따르면 기준 조정 이후 은행들은 기업과 가계 대출을 확대하기보다 자본을 유지하거나, 여유분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등 주주 환원에 활용했다. 수익성 있는 대출 수요가 제한된 상황에서 자본 완화는 신용 증가나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았고, 정책 효과는 실물경제보다 주주 수익률 제고에 그쳤다.

정책 기대와 실제 결과의 괴리

정책 당국의 설명은 명확했다. 자본 규제를 완화하면 은행의 부담이 줄고, 그만큼 대출이 늘어 경제 전반에 활력이 확산될 것이라는 구상이었다. 그러나 2025년 말 영국에서 확인된 흐름은 달랐다. 대출 확대는 나타나지 않았고, 완화된 자본은 주주 환원으로 흡수됐다. 금융정책위원회의 기준 조정은 정책 방향 전환을 알리는 신호였지만, 은행의 자금 배분을 바꿀 만한 추가 장치는 제시되지 않았다. 신용 수요가 약한 환경에서 자본 기준 변화만으로 대출 행태가 달라지기는 어려웠다. 그 결과 기준 조정 이후에도 신용 증가나 생산성 개선으로 이어지는 변화는 확인되지 않았다.

은행의 선택은 구조적으로 설명된다. 주주가 중시하는 지표는 자본비율 자체가 아니라 자기자본이익률이다. 수익성이 낮은 장기 대출과 단기 효과가 분명한 배당이나 자사주 매입 가운데, 은행이 후자를 선택한 것은 예외적인 판단이 아니었다. 자본 기준이 완화됐다는 인식은 이러한 선택을 더 강화했다. 이 같은 결과는 이미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지배구조나 위험 가중치, 목적성 대출 유인에 변화가 없는 상태에서 자본 기준만 조정할 경우 은행의 행동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경고였다. 실제로 기준 조정 이후에도 은행의 대출 행태에는 뚜렷한 변화가 나타나지 않았다. 자본 정책이 의도한 방향과 현실 사이의 간극이 다시 확인된 셈이다.

기본자본비율 변화에 따른 기대 순효과 추정
주: 금융정책위원회(FPC) 기준치 인근에서 순효과가 가장 크게 나타나며, 자본 요건을 더 낮출수록 효과는 줄어드는 흐름을 보인다. 이는 추가적인 자본 완화로 얻을 수 있는 이익이 제한적임을 시사한다.

자본 완화와 대출 부진의 배경

은행의 자본 운용은 거시 여건과 수익 판단에 좌우된다. 자본 요건 완화는 규제 부담을 줄이는 효과는 있지만, 대출 수요나 위험 인식을 직접 바꾸지는 않는다. 자본이 늘어났다고 해서 대출이 자동으로 확대되는 구조는 아니다. KPMG의 2025년 12월 보고서에 따르면 영국 경제는 완만한 성장 흐름을 유지했지만, 내수 회복은 제한적이었다. 노동시장 둔화와 가계 심리 위축으로 소비 증가세도 미미했다. 영란은행 자료에서도 주택 구매ㄴ 관련 모기지 승인 감소 흐름이 이어지며 대출 수요 부진이 확인됐다. 이런 환경에서는 추가로 확보된 자본이 신규 투자 대출로 연결되기보다 유보되거나 주주 환원, 또는 안전자산 운용으로 흡수될 가능성이 높았다.

대출 확대 여부는 자본 규모보다 수익성과 위험 판단에 달려 있다. 중소기업 금융이나 장기 투자 대출은 심사와 관리 비용이 많이 들고, 경기 불확실성이 높을수록 손실 위험도 커진다. 차입 수요가 약한 국면에서는 은행이 대출 확대보다 보수적인 자금 운용을 택하는 경향이 강화된다. 여기에 주주 환원 압력까지 더해지면서 자본은 대출보다 유지와 환원 쪽으로 흐르게 됐다. 영국중앙은행의 스트레스 테스트와 보통주자본(CET1) 비율은 은행권의 재무 건전성을 보여준다. 다만 건전성은 위기 대응 능력을 의미할 뿐, 자금 운용 방향 전환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번 사례는 자본 규제 조정만으로 대출 확대를 유도하기 어렵다는 점을 분명히 드러냈다.

자본 규제 완화 이후 영국 은행 자금 사용 흐름
주: 확보된 자본 대부분은 주주 환원에 사용됐고, 신규 대출에 쓰인 비중은 크지 않았다.

자본 정책의 방향 전환

자본 조정이 대출로 이어지려면 정책 설계부터 달라져야 한다. 기준을 낮추는 방식만으로는 은행의 자금 배분을 바꾸기 어렵다. 대출 확대를 정책 목표로 설정했다면, 자본 여유는 중소기업 금융이나 탈탄소 투자처럼 명확한 분야에서 실제 대출 증가가 확인될 때 제공되는 구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장치가 없을 경우 완화된 자본은 자연스럽게 주주 환원으로 흡수된다.

위험 평가 체계 역시 함께 조정돼야 한다. 사회적으로 필요한 대출이 내부 심사 기준이나 위험 가중치 구조로 인해 수익성이 낮게 평가된다면, 자본 기준 조정만으로 은행의 판단이 바뀌기는 어렵다. 정책적으로 중요한 분야에 대해서는 위험을 현실에 맞게 반영하는 기준 정비가 병행돼야 자본이 실물 투자로 향할 수 있다. 2025년 12월 금융안정보고서도 실질적인 위험 감소가 확인되는 경우에 한해 제한적 조정 여지를 언급하면서, 무차별적인 완화가 장기 성장에 부담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감독 방식도 재정비가 필요하다. 자본비율 변화만 점검하는 방식으로는 정책 효과를 확인하기 어렵다. 확보된 자본이 실제로 어디에 배분됐는지, 어떤 분야에서 대출이 늘었는지를 점검하는 감독이 뒤따라야 한다. 은행이 추가 자본 운용 계획을 명확히 제시하도록 하고, 그 이행을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자본 정책이 행동 변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 논쟁과 평가 기준

자본 규제 완화가 은행의 충격 흡수 능력을 높이고, 배당 확대가 시장 규율에 기여한다는 주장은 원론적으로 성립한다. 다만 정책 목표가 대출 확대와 성장 촉진이었다면, 그 조치가 실제로 은행의 행동을 바꿨는지가 평가 기준이 된다. 자본은 주주에게는 곧바로 현금이 될 수 있지만, 대출로 전환된다는 보장은 없다.

목적성을 갖춘 조치가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그러나 현행 자본 체계 역시 중립적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모든 자본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구조에서는 수요가 약한 국면일수록 자금이 생산적 투자보다 안전자산이나 주주 환원으로 쏠리기 쉽다. 금융 시스템의 회복력 유지와 성장 촉진을 위한 조건 부여는 구분해 접근할 필요가 있다.

조건부 조치가 실행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측정 지연이나 데이터 오류 가능성이 이유로 제시된다. 그러나 감독 당국은 이미 스트레스 테스트와 소비자 보호를 위해 대출 단위의 세부 데이터를 확보하고 있다. 차입자 규모와 대출 기간, 용도별 순증 대출, 부실채권 추이 등은 충분히 점검 가능한 지표다. 필요하다면 일부 은행이나 특정 부문을 대상으로 제한적으로 적용해 효과를 검증하는 방식도 가능하다.

자본 정책에 구체적인 조건과 관리가 수반되지 않을 경우, 완화된 자본은 대출보다 주주 환원으로 흐르기 쉽다. 대출 확대를 목표로 한다면 자본비율은 정책 의도를 실현하는 수단으로 다뤄져야 한다. 자본 운용을 대출 증가와 연결하고, 공공 우선순위에 맞춰 위험 가중치를 조정하며, 자금 배분 결과를 지속적으로 점검하는 체계가 함께 작동하지 않는다면 자본 완화의 효과는 투자보다 은행 소유주 보상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Bank’s Gift to Shareholders: Why the “Capital Cut” Failed to Prime UK Lending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Real name
송혜리
Position
연구원
Bio
[email protected]

다양한 주제에 대해 사실에 근거한 분석으로 균형 잡힌 시각을 제공하고자 합니다. 정확하고 신뢰할 수 있는 정보 전달에 책임을 다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