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월 수사 압박에 美 신용강등 경고장, 달러 신뢰 흔들리면 국채·금리 충격 현실화
파월 수사 압박에 美 신용강등 경고장, 달러 신뢰 흔들리면 국채·금리 충격 현실화
입력
수정
파월 수사 압박에 연준 독립성 훼손 논란, 피치는 신용강등 경고 정치 개입이 부른 고물가와 국채 급락에 외국인 자금 이탈 우려 재정 우위가 달러 패권 기반 흔들며 금융 시스템 리스크 증폭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압박이 법무부 수사라는 초유의 사태로 번진 가운데, 미국의 국가 신용등급 강등 위험이 현실화하고 있다. 단기적 금리인하를 노린 중앙은행의 독립성 훼손이 오히려 인플레이션 고착화와 국채 금리 급등을 불러 국가 신용도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하는 분위기다. 이는 천문학적인 국가 부채 문제와 맞물려, 기축통화로서 달러 패권 자체를 위협하는 거대한 뇌관으로 부상했다.
파월 압박에 연준 독립성 논란 확산, 피치 “연준 정치화는 美 신용에 부정적”
1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국제 신용평가사 피치 레이팅스(Fitch Ratings)는 미국 달러화의 글로벌 기축통화 지위 약화 조짐을 가장 심각한 위험 요소로 지목했다. 제임스 롱스던(James Longsdon) 피치 국가신용등급 책임자는 중앙은행의 완전한 정치화는 미국을 비롯한 모든 국가 신용도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하며, 달러의 준비통화 위상에 대한 신뢰가 곧 미국의 재정적 유연성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라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달러 신뢰를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행위는 신용등급에 악재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으나, 현재 단계에서는 뚜렷한 징후가 포착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리처드 프랜시스(Richard Francis) 피치 수석 이사 역시 연준의 독립성을 미국 신용등급(AA+)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로 정의하며, 향후 등급 평가에서 거버넌스 변화와 제도적 견제와 균형, 물가 안정 성과 등을 집중적으로 살피겠다고 예고했다.
피치의 이번 경고는 제롬 파월(Jerome Powell) 연준 의장이 법무부의 수사 압박 사실을 공개하며 연준 독립성 논란이 확산하는 가운데 나왔다. 오는 5월 의장 임기 만료를 앞둔 파월 의장은 지난 11일 영상을 통해 지난해 6월 의회 증언과 관련해 미 법무부(DOJ)로부터 9일 대배심 소환장과 형사 기소 위협을 받았다고 폭로했다. 수사의 표면적 명분은 워싱턴DC 연준 본부 청사의 25억 달러(약 3조원) 규모의 개보수 공사 비용 초과 논란과 증언의 적정성을 둘러싼 위증 의혹 제기다. 이에 대해 파월 의장은 "금리인하를 강요하기 위한 구실(pretext)"이라고 규정했다. 행정부가 통화정책에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수사권을 남용했다는 비판이다.
이후 전직 연준 의장을 비롯한 경제 석학들은 공동 성명을 통해 연준의 독립성과 이에 대한 대중의 신뢰는 물가 안정, 최대 고용, 적정 장기 금리 달성 등 경제 성과에 필수적이라고 비판했다. 성명에는 벤 버냉키, 앨런 그린스펀, 재닛 옐런 등 전직 연준 의장과 티머시 가이트너, 제이컵 루, 헨리 폴슨, 로버트 루빈 전 재무장관을 비롯해 케네스 로고프 하버드대 교수, 그레고리 맨큐, 재러드 번스틴, 제이슨 퍼먼, 글렌 허버드, 크리스티나 로머 등 전직 백악관 경제자문위원장까지 포함해 13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은 수사가 연준의 독립성을 훼손하는 공격이라며, 이는 제도가 취약한 신흥시장에서나 볼 법한 방식이자 인플레이션을 유발하고 경제 기능을 저해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3대 신용평가사인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레이팅스 역시 이미 지난해 10월 보고서를 통해 정치적 환경 변화로 제도적 건전성과 정책 실효성이 훼손될 경우 등급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고 지적하며, 연준의 신뢰성이야말로 달러의 위상을 지탱하는 근간임을 재확인한 바 있다.
정치 개입 신호 커질수록 위험프리미엄 확대, 고물가 우려 속 美국채 약세
더 큰 문제는 정치 개입 신호가 커질수록 시장이 이를 재정 리스크로 인식해 즉각 반응한다는 점이다. 연준의 독립성이 훼손될 경우 시장에서는 역설적인 금리 상승 현상이 발생할 것으로 분석된다. 통상 시장 참여자들은 중앙은행이 정치적 압력에 휘둘린다고 판단될 경우 인플레이션 위험과 정책 불확실성에 대한 리스크 프리미엄을 국채 금리에 추가하게 된다. 국채 가격은 미래에 받을 이자와 원금을 현재가치로 할인한 값이기 때문에, 리스크 반영으로 시장 금리가 오르면 채권 가격은 반대로 하락하게 된다. 트럼프 행정부는 금리인하를 위해 연준을 압박하고 있으나, 시장의 신뢰가 무너지면 국채 가격 폭락과 시중 금리 상승이라는 정반대의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히 이러한 압박의 이면에는 재정적자라는 구조적 뇌관이 자리 잡고 있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8조5,678억 달러(약 5경5,000조원)에 달한다. 미 의회예산처(CBO)는 장기 전망(2025~2055년)에서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 비율이 156%까지 높아지고, 순이자 비용은 GDP의 3.2%에서 5.4%로 확대될 것으로 봤다. 타일러 코언(Tyler Cowen) 조지메이슨대 교수는 연준 독립성 위협의 본질이 단순한 정치적 압박이 아닌, 누적된 재정적자라는 구조적 문제에 있다고 진단했다. 반복된 예산 타협과 감세로 부채가 임계점을 넘으면서, 미국이 증세나 지출 삭감 대신 인플레이션을 유발해 부채를 희석시키는 화폐화(Monetization)를 선택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다.
이는 레이 달리오(Ray Dalio) 브리지워터 창립자가 경고해 온 '빅 사이클(Big Cycle)' 이론과 맥을 같이한다. 달리오는 과도한 부채를 짊어진 민주주의 국가는 대규모 긴축이나 디폴트(채무불이행)보다는 정치적 저항이 가장 적은 인플레이션을 택하게 된다고 지적해 왔다. 코언 교수 역시 미국이 향후 5년간 연 7% 수준의 고물가를 용인하며 실질 부채 가치를 낮추는 '추악한 디레버리징(ugly deleveraging)' 국면에 진입할 것으로 전망했다. 결국 미래 세대가 가치가 폭락한 달러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서, 연준의 독립성은 거대한 부채 압력에 굴복해 잠식될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재정 우위가 달러 패권 3대 축 흔들며 금융 시스템 리스크 증폭
이러한 인위적인 인플레이션과 금리 발작은 미국 국채를 보유한 전 세계 투자자들에게 직접적인 타격이 된다. 지난해 11월 기준 해외 투자자들의 미국 국채 보유액은 전월 대비 1,128억 달러(약 166조원) 증가한 9조3,600억 달러(약 1경3,800조원)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일본(1조2,000억 달러·약 1,770조원)과 영국(8,885억 달러·약 1,300조원)이 주요 매수 주체로 떠오른 가운데 중국은 6,826억 달러(약 1,005조원)로 2008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하며 리스크 관리에 나선 상태다.
일각에서는 가상자산과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들이 국채 수요를 일부 방어하고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로고프 교수는 연준의 근본적인 신뢰가 무너질 경우 이들만으로는 글로벌 자금 이탈을 막기 어렵다고 반박한다. 그는 오히려 탈세나 불법 금융의 수단으로 악용할 가능성을 경계하며, 지니어스법안(GENIUS Act, 스테이블코인 규제법)과 같은 과도한 규제 완화는 큰 실수며 결국 나중에 수정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에 종속되는 재정우위(Fiscal Dominance)가 현실화되면, 글로벌 금융시장은 구조적 불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로저 퍼거슨 전 연준 부의장은 대통령의 압력이 연준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기축통화로서 달러의 신뢰를 훼손한다며, 투자자들이 더 큰 적자를 예상해 미 국채에 대해 더 높은 금리를 요구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실제로 최근 국채 금리 변동성 확대는 시장의 우려가 가격에 반영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해석된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흐름이 달러 패권을 지탱해 온 3대 축인 '안보(하드 파워)', '법치에 대한 신뢰', '연준의 독립성'을 동시에 뒤흔들고 있다고 진단한다. 로고프 교수는 이 세 축이 무너지면 위기 국면에서 반드시 값비싼 비용을 치르게 된다며, 현재의 기조가 이어진다면 4~5년 내 달러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모리츠 크래머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주립은행(LBBW) 수석 이코노미스트 역시 연준 독립성 훼손이 튀르키예와 같은 신뢰 붕괴를 초래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미 국채의 최대 보유 주체인 해외 투자자들이 달러 가치 하락과 금리 급등이라는 이중고에 직면하고 있는 지금, 시장은 금리를 소폭 낮추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국가 신용도와 금융 시스템의 붕괴일 수 있다는 점을 엄중하게 받아들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