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권 상·매각 부실채권 10조원 상회, 연체율 증가에 금융 건전성 위기 심화
은행권 상·매각 부실채권 10조원 상회, 연체율 증가에 금융 건전성 위기 심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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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둔화·구조적 불황 속 기업대출 연체율 증가 이자 못 갚은 한계기업 비중, 2010년 이후 최대 부실채권 시장 확대 효과에도 '장기 리스크' 여전

국내 은행권의 부실채권(NPL)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0조원을 넘어섰다. 경기 둔화와 구조적 불황 속에서 기업 대출 연체율과 한계기업 비중이 확대되자, 은행들이 부실채권 매각과 상각 등으로 건전성을 방어하는 모양새다. 이에 자연스럽게 부실채권 시장이 확대되며 부실채권 전업투자사의 역할도 커지고 있지만, 시장에서는 근본적인 경제 구조 개선과 함께 장기적 리스크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해 연간 부실채권 상·매각 12조원 추산
8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주요 시중은행과 특수·지방·인터넷은행 등 19개 은행이 상·매각한 부실채권 규모는 총 10조1,347억원(3분기 누적)으로 집계됐다. 전년 동기 대비 18.6% 늘어난 수치로, 은행권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가 3분기 누적 기준 10조원을 넘어선 건 이번이 처음이다. 이 추세를 고려하면 연간 부실채권 상·매각 규모는 1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시중은행(국민·신한·하나·우리·SC제일·한국씨티·iM뱅크)은 전년 동기 대비 25.4% 늘어난 4조4,549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특수은행(산업·기업·농협·수협)과 지방은행(부산·경남·광주·전북·제주)은 각각 15.7%, 10.3% 증가했다.
은행권이 대규모 부실채권 정리에 나선 것은 연체율 상승 등으로 건전성 지표에 경고등이 켜졌기 때문이다. 부실채권 상·매각은 은행의 건전성 지표를 방어하기 위한 최후의 카드로 통한다. 통상 3개월 이상 연체된 대출채권은 부실채권으로 분류되고, 회수가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자산유동화전문회사에 넘기거나 장부상 손실로 처리하는 상각 절차를 밟는다. 문제는 부실채권을 상·매각으로 정리하는 속도보다 경기 둔화로 새로 발생하는 연체·부실의 증가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이다. 지난해 10월 국내은행 원화대출 연체율은 0.58%로 10월 기준으로는 2018년 이후 7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이 같은 상황은 기업 대출에서도 확인된다. 금융당국이 주택담보대출을 조이고 기업대출을 유도하고 있지만, 시중은행의 올해 기업대출 목표치는 크게 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시장에서는 기업대출의 위험가중치가 여전히 주담대보다 낮은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기업대출의 평균 위험가중치는 43% 수준으로 상향된 주담대 가중치와 비교해 두 배 이상 높다. 이는 기업대출을 크게 늘리겠다는 금융당국의 바람과 차이가 있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금융당국의 요구에 맞춰 생산적 금융 확대 계획을 내놨지만, 결국 은행권이 고위험 자산을 저렴한 가격에 떠안는 과도한 부담에 내몰리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소기업 대출 비중 큰 기업은행 연체율 1%
앞으로의 전망도 밝지 않다. 경기 부진에 중소기업 경영난이 심화하고 있는 까닭이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 불확실성이 확대되는 상황에서 건설 경기 등 내수 부진이 장기화하면서 자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의 사정이 더 어려워졌다. 특히 기업은행은 다른 시중은행과 달리 전체 대출에서 중소기업 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80%가 넘어 이러한 구조적 부담이 더욱 크게 작용하고 있다. 실제로 기업은행의 지난해 3분기 대출 연체율은 전 분기 대비 0.09% 포인트 상승한 1.0%로,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시중은행에서도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 증가세가 뚜렷하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지난해 3분기 중소기업 대출 연체율은 0.53%로, 지난 2017년 1분기(0.59%) 이후 최고 수준이다. 연체율 상승과 함께 이들 은행의 모회사인 4대 금융그룹의 작년 9월 말 기준 손실추정 대출채권액도 2조7,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9% 급증했다. 손실추정 대출액은 부실채권으로 분류하는 고정이하여신 중에서도 파산·폐업이나 1년 이상 연체 등으로 사실상 돌려받지 못하는 악성 대출을 의미한다.
이자를 갚지 못하는 한계기업도 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이자보상배율이 3년 연속 1을 밑돈 한계기업 비중은 17.1%에 달한다. 2010년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이자보상배율은 기업의 영업이익으로 이자를 얼마나 감당할 수 있는지 나타내는 수치다. 이 배율이 1보다 낮으면 기업이 버는 돈으로 이자조차 감당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은은 “중소기업은 2023년 영업손실을 기록한 이후 적자가 지속하고 있으며, 손실 규모도 확대되고 있다”면서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이자보상배율 격차도 더욱 확대됐다”고 진단했다.

불황 장기화에 부실채권 전업투자사 실적 상승세
최근 부실채권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한계 기업 증가에 따른 것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국내 은행의 부실채권 매각 규모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높은 수준을 유지할 전망이다. 경기 불황 속에서도 업황이 상대적으로 우호적이며, 채권 매입률이 낮아 수익성 확보 측면에서도 일부 긍정적이다. 다만 부실채권 매입에 따른 차입부채 확대와 이자비용 부담이 존재하는 만큼, 부실 증가 속도와 투자사 체력 간 균형이 장기적으로 어떻게 유지될지가 관건으로 꼽힌다.
국내 부실채권 전업투자사로는 업계 1위 연합자산관리(유암코)를 비롯해 은행계열의 하나에프앤아이, 우리금융에프앤아이, 비은행계열의 대신에프앤아이, 키움에프앤아이 등이 있다. 상호금융권에서는 신협중앙회, 수협중앙회, 새마을금고중앙회가 부실채권 전업사를 운영 중이다. 최근 이들 전업사의 실적은 뚜렷한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특히 은행권 투자사인 하나에프앤아이와 우리에프앤아이는 지난해 1분기 영업이익이 30억원을 넘어서며 수익성 개선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는 장기적 리스크 관리의 필요성도 커지는 분위기다. 단기적으로는 투자사의 수익이 증가하고 부실채권 정리 속도가 빨라 긍정적이지만, 경기 부진과 중소기업 재무 취약성이 지속되는 한, 부실채권 규모 증가와 금융권 체력 부담이 동시에 커질 가능성이 있어서다. 이에 업계 일각에서는 현재 부실채권 시장 성장세가 금융권과 투자사 모두에 기회를 제공하지만, 근본적인 경제 구조 개선 없이는 리스크가 해소되기 어렵다는 지적도 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