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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심장 vs 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 12조원 베팅한 토요타의 승부수

엔진은 심장 vs 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 12조원 베팅한 토요타의 승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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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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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키오 회장의 ‘엔진 보존’ 철학, 토요타 12조원 투자 재원 확보
자동차 시장의 가전화: V2L, 에너지 아비트라지
전기차 기술 병목 해소 시 고효율 엔진은 베타맥스처럼 고립될 수도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이 ‘기계 공학의 정수’에서 ‘바퀴 달린 전자제품’으로 급변하는 가운데, 일본 토요타자동차는 이와 정반대인 내연기관 고도화의 길을 걷고 있다. 토요타는 전기차 대중화가 지체되는 ‘캐즘’의 틈새를 하이브리드 전략으로 파고들어 막대한 투자 재원을 확보하는 등 현재로서는 확실한 실리를 챙기는 모습이다. 그러나 시장의 흐름이 결국 가전화(家電化)로 굳어질 경우, 토요타가 지키려는 고성능 엔진 기술은 과거 기술적 우위에도 불구하고 표준 경쟁에서 자리를 내준 ‘베타맥스(Betamax)’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엔진은 기술적 영혼", R&D에 자금 쏟아붓는 토요타의 실리적 역주행

7일 닛케이 아시아 보도에 따르면, 토요타는 중국의 급격한 전동화 흐름에 맞서면서도 미국 시장의 강력한 하이브리드 수요를 공략하기 위해 내연기관 엔진과 하이브리드 기술에 대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고 있다. 이는 토요타 아키오 토요타 회장의 확고한 철학에서 기인한다. 그는 최근 “자동차가 AI와 배터리 성능에만 의존하면 결국 산업용 소모품(Commodity)으로 전락할 것”이라며, “자동차 제조사의 영혼인 엔진이 사라지는 것은 기술적 손실”이라고 역설했다. 아키오 회장은 전기차 전환이 진행되더라도 순수 전기차(BEV)가 차지하는 비중은 최대 30% 수준일 것으로 내다봤다. 나머지 70% 시장을 차지할 하이브리드와 수소엔진차를 위해서라도 엔진은 포기할 수 없는 핵심 경쟁력이라는 논리다.

토요타의 이러한 ‘청개구리 행보’는 철저한 실리주의와 자신감에 기반한다. 경쟁사들이 전기차 전환에 몰두하며 수익성 악화로 고전할 때, 토요타는 자신들이 가장 잘하는 하이브리드에 집중해 막대한 수익을 확보했다. 실제로 전기차 캐즘이 닥친 2025 회계연도 1분기(2024년 4~6월), 토요타·렉서스의 하이브리드(HEV) 판매량은 99만8,000대로 전년 동기 대비 23.8% 급증했다. 이에 힘입어 영업이익은 17.7% 증가한 1조3,084억 엔(약 12조원)을 기록했다. 하이브리드와 고효율 엔진에서 번 돈으로 미래 전동화 연구비를 조달하는, 이른바 ‘엔진으로 미래를 사는’ 선순환 구조를 구축한 것이다.

이 전략은 지역별 특성에 맞춘 다중 경로(Multi-Pathway)로 구체화됐다. 먼저 미국 시장에서는 실질적인 수요에 근거해 하이브리드 패권 굳히기에 나섰다. 하이브리드 수요가 급증하자 토요타는 2030년까지 미국에 최대 100억 달러(약 14조4,800억원)를 추가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특히 미국 내 5개 공장에서 차세대 하이브리드용 엔진과 트랜스액슬 등 핵심 파워트레인 생산 능력을 대폭 확충해 부품 의존도를 낮출 계획이며, 베스트셀러 SUV인 ‘RAV4’ 역시 미국 판매분 전량을 현지에서 생산하는 표준 하이브리드 체제로 전환했다.

반면 가격 전쟁이 치열한 중국에서는 철저한 현지화로 승부수를 띄웠다. 광저우자동차그룹(GAC)과 공동 개발한 ‘bZ3X’는 저렴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시작 가격을 10만9,800위안(약 2,100만원)으로 낮췄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이 모델은 출시 직후 1만 대 이상의 주문이 몰리며 초기 흥행에 성공했다. 한 토요타 임원은 “본사가 주저한다면 직접 설득해서라도 중국 투자를 관철하겠다”며 시장 사수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유연한 시장 전략의 밑바탕에는 압도적인 기술 투자가 있다. 토요타는 2025 회계연도 연구개발(R&D)비로 BYD(약 11조3,000억원)나 테슬라(약 6조 5,000억원)를 상회하는 1조3,264억 엔(약 12조2,000억원)을 책정했다. 이를 통해 스바루, 마쓰다와 협력, 기존보다 10~20% 작고 가벼우면서도 합성 연료, 바이오디젤, 수소 등 탄소중립 연료 대응이 가능한 차세대 1.5리터·2.0리터 신형 엔진을 개발 중이다.

나아가 토요타는 내연기관 기술의 정점인 ‘고성능 퍼포먼스’ 분야에서도 기술적 도전을 멈추지 않고 있다. 7일 공개된 2027년 출시 예정 플래그십 스포츠카 ‘GR GT’에는 토요타가 자체 개발한 신형 4.0리터 V8 엔진이 탑재된다. 엔진 개발을 총괄한 타카시 우에하라 파워트레인 부문 사장은 “새로운 V8은 고회전 성능을 극대화해 목표 출력 650마력 이상을 내도록 설계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GR GT3’는 외부 충전 없이 주행 중 스스로 충전하는 ‘자체 충전식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적용해, 레이싱카의 효율성을 유지하면서도 즉각적인 가속 응답성과 정제된 배기음을 구현할 전망이다.

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 가전화되는 자동차 시장

다만 토요타의 이러한 전략이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시장과 산업의 현장은 토요타의 바람과 정반대인 가전화로 질주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한국GM의 행보다. 한국GM은 2016년 쉐보레 볼트 'EV(Bolt EV)'의 출시 행사를 자동차업계의 홈그라운드인 모터쇼가 아닌, 국내 대표 전자·IT 전시회인 한국전자전(KES)에서 개최했다. 이는 전통의 내연기관 강자인 GM조차 자동차를 더 이상 기계가 아닌 첨단 전자 기기로 규정했음을 보여준 상징적 장면이었다. 신생 기업인 테슬라뿐만 아니라, 막대한 제조 경험을 가진 레거시 업체들도 이미 오래전부터 자동차의 정체성을 가전으로 이동시키고 있었던 셈이다.

실제로 기술적 관점에서 전기차는 ‘바퀴 달린 스마트폰’에 가깝다. 2만 개가 넘는 부품이 정교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기계 장치라기보다, 거대한 배터리 위에 고성능 프로세서와 소프트웨어를 얹은 형태에 가깝기 때문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와 기아 'EV6' 등이 V2L(Vehicle to Load) 기능을 통해 외부로 최대 3.6킬로와트(KW)의 전력을 공급하며 고용량 콘센트로 쓰이는 현상은 자동차가 가전제품화됐음을 보여주는 결정적 증거다. 이제 소비자에 있어 자동차는 단순한 이동 수단을 넘어, 캠핑장에서 커피머신과 전자레인지를 돌리고 야외 영화관을 만들어주는 초대형 보조 배터리이자 공간 가전으로 소비되고 있다.

소비자들의 사용 패턴은 한술 더 떠 에너지 저장 장치(ESS)의 영역까지 넘나든다. 최근 일부 이용자들 사이에서는 심야 시간대의 저렴한 전기로 전기차를 완충한 뒤, 전력 요금이 비싼 낮 시간에 V2L로 에어컨 등 집안 가전을 가동해 가정용 누진세를 피하는 에너지 아비트라지(Arbitrage·차익 거래) 사례까지 거론된다. 기아 EV6 매뉴얼이 V2L 사용법을 안내하며 “차에서 220V를 꺼내 쓰는 경험”을 공식화했듯, 대중에게 전기차는 이미 타는 것을 넘어선 쓰는 것(Device)이다.

기술 우위가 승리 보장하진 않아, 베타맥스 교훈이 던지는 질문

이 같은 자동차 시장의 가전화에도, 토요타의 엔진 중시 전략이 현재 유효한 이유는 전기차가 아직 가전으로서의 편의성을 100% 제공하지 못하는 기술적 병목 상태에 있기 때문이다. 실제 소비자가 느끼는 장벽은 여전히 높고 구체적이다. 지난해 6월 미국자동차협회(AAA) 조사 결과, 소비자 대다수는 배터리 수리비(62%)와 차량 가격(59%), 장거리 주행의 어려움(57%)을 전기차 전환을 주저하게 만드는 핵심 요인으로 지목했다.

여기에 충전 스트레스와 겨울철 효율 저하라는 현실적인 문제도 더해진다. 미국 소프트웨어 스타트업 리커런트(Recurrent)의 테스트 결과 또한 영하 6.7도 환경에서 주행거리가 상온 대비 평균 30%나 급감함을 보여준다. 이처럼 전기차가 해결하지 못한 결정적인 불편함들이 존재하는 한, 토요타의 하이브리드 솔루션은 소비자에게 가장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으로 선택받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역사는 기술적 완성도가 반드시 시장의 승리를 보장하지 않음을 경고한다. 전문가들은 토요타의 현재 행보에서 1980년대 비디오테이프 표준 전쟁 당시 소니의 베타맥스 사례를 떠올린다. 당시 베타맥스는 경쟁 규격인 VHS보다 화질과 기계적 완성도 면에서 월등히 앞섰다. 하지만 소니는 기술 우위만 맹신한 채, 2시간(영화 한 편 분량) 녹화라는 사용자 편의성과 개방형 라이선스를 앞세운 VHS의 네트워크 효과에 밀려 표준 경쟁에서 자리를 내줬다. 이는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갖고도 독자 규격을 고집하다 고립되는 일본 전자산업의 갈라파고스 신드롬을 상징하는 대표적 사례로 회자된다.

자동차 시장 역시 엔진의 고성능보다는 충전의 신뢰성과 유지비의 예측 가능성이 승패를 가를 공산이 크다. 이미 변화의 조짐은 뚜렷하다. IT 매체 더버지(The Verge)에 따르면 히트펌프 기술 확산으로 전기차의 혹한기 효율이 8~10% 이상 개선되고 있다. 또한 미국 시장조사기관 JD 파워(J.D. Power) 조사에 의하면 ‘충전소에 갔지만 충전에 실패한 경험’은 2024년 20%에서 2025년 14%로 낮아지며 개선 추세를 보였다. 중국의 경우 다국적 대형 기름 제조업체인 셸(Shell)의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9%가 공공충전을 두고 ‘가성비가 좋다’고 평가해 유럽(17%)을 압도했다. 충전망과 신뢰가 갖춰지면 혹한조차 장벽이 되지 않음을 보여주는 노르웨이 사례도 있다. 노르웨이의 순수 전기차 비중은 2024년 88.9%, 2025년 95.9%까지 올라섰다.

만약 배터리 가격 하락과 인프라 확충으로 전기차의 병목이 해소되는 티핑 포인트(임계점)가 온다면 상황은 더욱 급변할 것으로 관측된다.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보다 더 편리하고 경제적인 순간이 오면, 토요타가 12조원을 들여 지키려는 고효율 엔진과 복잡한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소비자가 굳이 선택할 필요가 없는 과잉 기술(Over-engineering)이자 비싼 가격표로 전락할 위험이 크다. 베타맥스가 화질에서 앞서고도 시장 표준이 되지 못했던 것처럼, 토요타의 엔진 중심 전략 역시 전기차 대중화라는 대전환의 흐름 앞에서 소비자의 선택지 후순위로 밀려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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