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보험료 하락에도 수에즈 복귀 더뎌, 운임 역전·공급 충격 우려
홍해 보험료 하락에도 수에즈 복귀 더뎌, 운임 역전·공급 충격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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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해 보험료 0.2%로 하락했으나 흑해는 250% 급등, 지역별 리스크 디커플링 심화 SCA의 통행료 할인에도 안보 비용 부담이 커, 희망봉 우회가 유리한 '비용 역전' 지속 항로 정상화 시 운항 단축 효과와 사상 최대 신조선 인도 맞물려 공급 과잉 경고

홍해 항로의 지정학적 리스크 완화 조짐에도 불구하고, 흑해 지역의 긴장이 고조되는 디커플링(탈동조화) 현상으로 인해 글로벌 물류망의 불확실성이 여전한 분위기다. 이집트 수에즈운하청(SCA)의 뒤늦은 통행료 할인 공세에도 안보 비용이 이를 상쇄하는 비용 역전이 고착화되면서 선사들의 복귀도 요원한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향후 안보 리스크가 해소돼 항로가 정상화될 경우, 운항 거리 단축에 따른 톤마일(Ton-mile·화물 중량과 이동 거리를 곱한 값) 축소 효과와 사상 최대 규모의 신조선 인도가 맞물려 해운 시장에 구조적인 공급 이중 충격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홍해는 내리고 흑해는 오르고, 보험료 디커플링
16일(이하 현지시간)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 글로벌 코모디티 인사이트(Platts)에 따르면, 글로벌 해상 보험 시장에서 홍해와 흑해의 위험도가 정반대로 움직이는 디커플링 현상이 뚜렷해지고 있다. 홍해 통과 선박의 전쟁위험 보험료율은 선체 가치의 0.5% 수준에서 최근 0.2%대로 하락하며 안정세를 보인 반면, 러시아 흑해 항구행 추가 보험료율은 지난달 대비 급등세를 보이고 있다.
흑해 지역의 안보 리스크는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해양 인프라에 대한 공격 빈도를 높이면서 급격히 상승했다. 지난달 30일 마리아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노보로시스크항을 향하던 감비아 선적의 대형 유조선 두 척이 지난달 28일과 29일 잇따라 해상 드론 공격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들 선박은 제재 회피를 위한 ‘그림자 선단(Shadow Fleet)’으로 파악됐으며, 29일에는 노보로시스크 항구 역시 포격 피해를 입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달 2일 우크라이나 항구와 이를 지원하는 국가의 선박에 대한 보복 공격을 예고하며 강경 대응에 나섰다.
이러한 '강 대 강' 대치 국면은 즉각적인 보험료 폭등으로 이어졌다. 글로벌 보험 중개 및 위험관리 컨설팅업체 마시(Marsh)에 따르면 러시아 흑해 항구로 향하는 선박의 보험료율은 11월 중순(0.25~0.30%) 대비 250%가량 치솟았다. 원유 수송에 부과되는 추가 전쟁 보험료(AWRP) 역시 10월 말 배럴당 65센트(약 960원)에서 이달 4일 기준 85센트(약 1,260원)로 급등했고, 우크라이나 항구행 선박 요율 또한 기존 0.4%에서 0.8~1.0% 수준으로 두 배 이상 뛰었다.
리스크 프리미엄의 상승은 고스란히 물류비 부담으로 전가되고 있다. 흑해에서 서인도로 향하는 수에즈막스급(14만 톤) 러시아 원유 운반선의 운임은 불과 일주일 사이 톤당 42.86 달러(약 6만3,470원)에서 48.21 달러(약 7만1,390원)로 상승했다. 마시는 "특정 지역(홍해)의 요율 하락이 전체적인 안보 비용 감소를 의미하지 않는다"며 "시장의 불확실성 총량은 줄어들지 않고 위험의 진원지만 이동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선박들의 복귀 움직임이 더딘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국내 최대 수출입 물류 플랫폼 트레드링스에 따르면, 홍해와 인도양을 잇는 글로벌 물류의 핵심 관문인 바브엘만데브 해협(Bab el-Mandeb Strait)의 11월 30일 기준 주간 평균 통행량은 37척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34척) 대비 소폭 증가한 수치지만, 분쟁 이전(70척 이상)과 비교하면 여전히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유럽으로 향하는 핵심 항로임에도 불구하고, 지표상의 리스크 완화 시그널만으로는 선사들의 우려를 불식시키기에 역부족임을 시사한다.
뒤늦은 할인에도 복귀 요원, 리스크 비용이 할인폭 집어삼켰다
선사들의 이탈이 장기화되자 당초 통행료 인상 기조를 고수하던 SCA의 태도도 변화했다. SCA는 안보 리스크가 고조되던 지난 1월 15일, 선종별 5~15%의 통과료 추가 인상을 강행하며 2년 연속 요금을 올렸다. 이는 안보 불안에 비용 부담까지 가중된 선사들이 최단 노선인 수에즈를 포기하고, 아프리카 희망봉 우회로를 택하는 결정적 명분이 됐다. 결과적으로 당시의 인상 조치는 안보 위협과 맞물려 물동량 이탈을 가속화하는 기폭제로 작용했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SCA는 결국 '가격 인하' 카드를 꺼내 들었다. 2024년 4분기 운하 수입이 8억8,090만 달러(약 1조3,040억원)에 그치며 전년 동기(24억 달러·약 3조5,520억원) 대비 60% 이상 급감하자, 이탈한 고객을 다시 붙잡기 위해 뒤늦은 유화책을 내놓은 것이다. 이에 SCA는 5월 15일부터 90일간 순톤수(SCNT) 13만 톤 이상 대형 컨테이너선을 대상으로 통과료 15%를 할인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하지만 이 같은 할인 공세에도 선박들의 복귀는 요원하다. 로이터통신은 SCA가 할인으로 선사들을 유인하려 하지만, 홍해 항로의 안보 우려와 보험료 부담이 여전히 변수라고 전했다. 선사들이 항로 복귀를 주저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안보 불안에 따른 리스크 비용이 운하청의 할인 폭을 상회하는 '경제성 역전' 현상 때문이다. 현재 홍해 항로에는 △전쟁위험 보험료(War Risk Premium) △전쟁위험 할증료(WRS) △선원 위험 수당(통상 급여의 2배) 등 각종 안보 비용이 붙어, 연료비 절감 효과를 완전히 상쇄하고 있다.
Platts 평가 기준으로 보면 운임 역전은 수치로 명확히 확인된다. 이달 4일 기준 아랍걸프발 유럽행 석유제품 운반선(LR1급)의 홍해 경유 운임은 톤당 52.31 달러(약 7만7,300원)를 기록해, 희망봉을 돌아가는 우회 항로 운임(50.77 달러·약 7만5,000원)보다 오히려 높게 나타났다. 컨테이너선 시장 역시 주요 선사들이 홍해 경유 화물에 TEU(20피트 컨테이너)당 최대 1,000 달러(약 147만8,900원) 수준의 WRS를 부과하고 있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전쟁위험 할증료 등 리스크 비용을 합산하면,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희망봉 우회가 총비용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판단이 확산되고 있다.

톤마일 축소와 신조선 인도 맞물려 공급 충격, 원자재價 연동 주목
전문가들은 향후 안보 리스크 해소로 항로가 정상화될 경우, 해운 시장이 '톤마일 축소'라는 구조적 충격에 직면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영국의 조선·해운 시황 분석기관 클락슨리서치에 따르면 아시아-유럽 항로가 희망봉 우회에서 수에즈운하로 복귀할 경우 편도 기준 운항 일수는 약 9~14일 줄어들 수 있다. 이는 항해일 축소로 선박 회전율이 높아지면서 시장에 체감 선복 공급이 늘어나는 효과로 이어진다. 시장에서는 항로 정상화가 진행될 경우 운임 하방 압력이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공급 과잉 우려는 사상 최대 규모의 신조선 인도 물량과 맞물려 증폭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팬데믹 호황기에 발주된 선박들이 2024~2025년 집중적으로 인도되면서 시장의 공급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 특히 컨테이너선은 2026년까지 선복 증가세가 이어질 전망이다. 다만 그동안 희망봉 우회 효과로 흡수되던 잉여 선복량이 항로 정상화와 함께 시장에 쏟아질 경우, 운임 방어력이 급격히 약화될 수 있다.
이 같은 물류비 변동은 원자재 가격 안정화 여부와도 직결된다. 2024년 수에즈와 파나마운하의 동시 병목 현상은 운임과 보험료를 끌어올려 원자재의 도착 원가(Landed Cost) 상승을 부추겼다. 이런 상황에서 향후 항로 정상화로 리스크 프리미엄이 제거되면 운송비 부담이 완화돼 원자재 가격 안정에 기여할 수 있다. 단, 원자재 시황은 수요·공급과 환율 변수가 복합적으로 작용해 물류비 하락이 즉각적인 가격 급락으로 이어질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도 상존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 산업계의 입장은 업종별로 갈린다. HMM 등 국적 선사들은 운임 하락에 따른 수익성 방어가 과제다. 반면 자동차, 배터리, 석유화학 등 주요 수출 기업들은 물류비 하향 안정화를 반기는 분위기다. 특히 유럽향 수출 비중이 높은 전기차 배터리나, 나프타 등 원자재 수입 의존도가 높은 석유화학업계는 물류비 하락이 제조 원가와 수출 채산성 개선으로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결국 해운 운임이 제조 원가를 거쳐 최종 물가로 전이되는 구조인 만큼, 시장에서는 향후 운임의 향방을 글로벌 인플레이션 압력 완화 여부를 가늠하는 핵심 선행 지표로 주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