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산 인버터가 파고든 美 전력망, 값싼 설비의 대가는 ‘안보 경보’
중국산 인버터가 파고든 美 전력망, 값싼 설비의 대가는 ‘안보 경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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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시장 환경 따라 비용 절감 우선 데이터 통제 리스크로 떠오른 인버터 에너지 안보-비용 부담 충돌 국면

미국 전력망에서 중국산 태양광 인버터 사용 비중이 빠르게 높아졌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전력 설비를 둘러싼 안보 논의 또한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에서도 인버터의 통신·제어 기능이 전력망 안정성에 어떤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문제 삼기 시작했고, 여기에 태양광 설비 확대와 전력 수요 증가라는 현실까지 맞물리며 전력망 확장 단계에서 어떤 설비를 선택할 것인지를 둘러싼 논의 또한 비용과 안보 측면으로 확장되는 추세다.
“심각한 국가 안보 문제 야기”
16일(이하 현지시각) 전략 정보분석기관 스트라이더 테크놀로지스에 따르면 미국 내 전력 생산 업체 중 85% 이상이 중국 정부와 군에 연계된 기업의 인버터 장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전기를 전력망과 호환되는 전류로 변환하는 인버터는 손상 시 금융·통신 등 다른 시스템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핵심 장비다. 스트라이더는 이번 조사가 미국 전체 전력 생산량의 12%를 담당하는 업체들을 대상으로 진행됐다고 밝히며 “중국 정부가 연계 기업과 데이터 네트워크 통제를 통해 위기 상황에서 미국 전력망을 조작하거나 교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미국 내 중국산 인버터 사용 확대는 태양광 발전 설비 확산 과정과 맞물려 진행됐다. 지난 10여 년간 미국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 정책 아래 태양광 설비 설치를 빠르게 늘려 왔고, 신규 전력 생산의 상당 부분을 태양광에 의존했다. 자국 정부의 지원책을 등에 업고 가격 경쟁력을 갖춘 중국산 인버터는 설비 도입 및 교체 현장에 빠르게 침투하며 미국 시장 내 점유율을 키웠다. 그러는 사이 미국 내 인버터 제조사들이 가격 경쟁에서 밀리며 시장에서 퇴출당하는 사례도 왕왕 발생했다.
부작용은 광범위하게 일어났다.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hina Economic and Security Review Commission)는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서 지난해 11월 중국 제조사 닝보 더예 테크놀로지가 계약 분쟁 도중 미국 내 설치된 자사 인버터 여러 대를 원격으로 비활성화했다고 밝히며 인버터를 “심각한 국가 안보 문제를 야기하는 취약점”으로 규정했다. 보고서 발표 직후 공화당 소속 의원 52명은 하워드 러트닉 상무장관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산 인버터의 수입 제한을 요구했지만, 이후 구체적인 조처는 나오지 않고 있다.
중국산 인버터 확산은 비단 미국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한국 역시 태양광 인버터 시장에서 중국산 비중이 급격히 높아진 상태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에 유통되는 인버터의 이상이 중국산으로 추정되는데, 대부분 중국에서 설계·개발·제조한 제품에 한국 기업의 브랜드만 붙여 판매하는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방식을 취한다. 이 같은 소위 ‘택갈이’ 논란이 계속되자, 산업통상자원부는 보안 문제와 국내 산업 영향에 대한 현황 파악에 착수했다. 향후 업계와의 논의를 거쳐 국내산 제품에 대한 인증제도 강화, 보조금 등 대응 방안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원격 통신·제어 기능이 갖는 위험
태양광 인버터는 설치 당시에는 가격과 효율이 우선 고려되는 설비지만, 운영 이후에는 외부 통신과 제어 기능을 포함한 ‘연결 장비’로 작동한다. 태양광 패널이 생산한 전력을 계통에 맞게 변환하는 과정에서 실시간 출력 조정, 상태 모니터링, 원격 업데이트 기능을 수행하며 전력망 운영 데이터와 직접 연결되는 까닭이다. 이는 곧 설치 시점에서는 비용과 공급 속도가 주요 판단 기준이 되지만, 가동 이후에는 어떤 경로로 데이터가 오가고 누가 접근 권한을 갖는지가 핵심 문제로 부상한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에서는 중국산 인버터의 통신 기능을 둘러싼 의심 사례들이 잇따라 확인됐다. 로이터통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 당국은 지난 5월 일부 중국산 인버터 내부에서 문서화되지 않은 통신 장치를 발견했다. 당시 업계에선 기존 전력회사들이 구축한 사이버 보안 방화벽을 우회할 수 있는 원격 통신 경로가 존재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 경우 전력 손실이나 정전은 물론 전력 인프라 자체에 물리적 손상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이 같은 우려는 유럽에서도 빠르게 확산됐다. 유럽 태양광제조위원회(ESMC)는 유럽 태양광 설비의 약 200기가와트(GW)가 중국산 인버터에 의존하고 있다고 짚으며 이를 200기 이상의 원자력 발전소에 해당하는 규모로 환산했다. ESMC는 특정 공급업체에 대한 높은 의존도, 인버터의 잠재적 사이버 조작 가능성, 전력망 운영 데이터 접근 위험 등을 근거로 “보안 위험이 시스템 전반에 걸쳐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컨설팅사 DNV와 산업단체 솔라파워유럽이 공동으로 작성한 보고서 역시 “중국산 인버터 공격 위험은 허용 가능한 수준을 초과한다”고 평가하며 “단 3GW 규모의 인버터 용량만 공격받아도 전력 시스템에는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문서로 공식화했다. EC는 최근 공개한 경제 안보 강화 문서에서 중국 공급업체의 태양광 인버터를 ‘고위험 의존 분야(high-risk dependency)’로 규정하며 “에너지 및 사이버 안보 차원의 대응이 필요하다”고 명시했다. 나아가 “향후 네트워크 및 정보 보안 지침 개정 규정(NIS2)에 따른 평가와 사이버 회복력법, 넷제로 산업법의 비가격 기준을 활용해 보안 취약점을 식별하고 완화 조치를 검토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중국산 배제 논의가 불러올 비용 충격
다만 미국의 경우, 노후 전력망 교체가 지연된 가운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에 대응하기 위해 전력 공급 확대를 피할 수 없는 국면에 들어선 상황이다. 생성형 AI와 대규모 연산 수요가 늘어나면서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비는 기존 인터넷 서비스와 비교해 훨씬 빠른 속도로 증가하게 된 것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0월 보도에서 “미국 내 데이터센터는 이미 전체 전력 수요의 6%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2030년까지 이 비중은 약 11%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전했다. 이 같은 추세라면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속도에 비해 발전·송전 설비 확충이 이를 따라가지 못할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 또한 뒤따랐다.
전력 인프라의 제약은 수치로도 드러난다. 미국에는 13개의 주요 지역 전력망이 존재하는데, 이 가운데 8곳의 잉여 발전 용량이 이미 임계 수준 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확인됐다. 미국 전력연구소(EPRI)는 AI 검색 기능이 기존 검색 서비스에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단일 검색당 전력 소모가 최대 30배 가까이 늘어날 수 있다고 관측하기도 했다. 실제로 구글 검색 1회당 평균 전력 소모량이 약 0.3와트시(Wh)인 반면, 생성형 AI 기반 검색은 약 2.9Wh를 사용하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는 전력 수요 구조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 같은 압박은 지역 전력망 운영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미국 동부와 중서부 13개 주 송전망을 관리하는 PJM 인터커넥션 관할 지역에서는 데이터센터 건설이 집중되면서 추가 부하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이 때문에 PJM의 독립 감시기관은 연방에너지규제위원회(FERC)에 전력망이 감당 가능한 범위 내에서만 신규 데이터센터 연결을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서를 제출하기도 했다. 텍사스 지역을 관할하는 ERCOT 역시 대규모 데이터센터 프로젝트가 대기 중인 상황으로, 향후 수년간 전력망 부담이 지속될 가능성이 농후한 상태다.
이처럼 전력망 확장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중국산 전력 설비 배제 논의는 비용 문제와 맞물려 복합적인 파장을 예고한다. 블룸버그NEF에 의하면 중국산 태양광 패널 가격은 지난 10년간 약 90% 하락해 2024년 말 기준 와트(W)당 9센트 수준을 나타냈다. 미국의 W당 40센트, 유럽의 30센트와 비교하면 압도적인 가격 차다. 이러한 가격 경쟁력은 중국이 전 세계 태양광 모듈 생산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기반이 됐다. 이처럼 가격 구조를 전제로 구축된 전력 설비에서 중국산 비중을 줄일 경우, 대체 설비 확보와 전력망 증설 비용이 동시에 상승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