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main content

“관세도 못 막은 中 전기차” EU, 무역 장벽 더 높인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8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

수정

유럽 자동차 산업 전반으로 확산되는 가격 경쟁 압박
EU, 현지 생산·공급망 요구 및 보조금 ‘역내 생산’ 기준 강화 추진
경제안보와 산업 주권 앞세운 EU의 보호주의 강화 움직임

고율 관세와 공급망 규제를 동원했음에도 중국 업체들의 수출 공세가 멈추지 않자, 유럽연합(EU)이 역내 제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한 ‘메이드 인 유럽(Made in Europe)’ 전략을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국가안보를 명분으로 중국산 전기차를 시장에서 퇴출한 가운데, 유럽 역시 경제안보와 산업 주권을 앞세워 대중 견제 수위를 높이는 모습이다.

유럽 車 업체들, 생존 위해 '적과의 동침'

17일(이하 현지시간) 독일 메르카토르 중국학연구소(MERICS)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3개월 동안 중국의 전 세계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 수출액은 전년 동기 대비 87% 급증한 206억 달러(약 31조4,000억원)를 기록했다. 이 중 31%가 EU로 향했으며, 영국과 노르웨이 등 비EU 유럽 국가까지 포함하면 전체 수출량의 42%가 유럽 시장에 집중됐다. 특히 이란 전쟁 여파로 호르무즈 해협이 폐쇄되면서 연료 가격이 폭등하자, 가성비를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유럽 소비자들의 수요는 더욱 치솟고 있다.

EU는 이미 중국산 전기차에 7.8%에서 35%에 달하는 상계관세를 부과했으나, 중국 제품의 가격 우위를 꺾지 못했다. 게다가 규제의 칼날과 달리, 유럽 현지 자동차 산업 현장의 기류는 복잡하게 흘러가고 있다. 현재 유럽 자동차 공장들은 불황으로 인해 평균 가동률이 50% 수준에 불과하다. 수익성 악화에 직면한 토종 기업들은 관세와 현지 생산 규제를 우회하려는 중국 BYD, 지리, 리프모터, 동펑 모터, 체리 등에 미사용 공장을 매각하거나 합작 생산을 추진하는 선택을 하고 있다.

이에 EU 당국은 더욱 강력한 보호주의 법안인 메이드 인 유럽 카드를 검토 중이다. 해당 법안은 유럽 내에서 최종 조립이 이뤄지고, 비배터리 부품의 최소 70%가 유럽산인 전기차에만 공공 보조금과 세금 감면 혜택을 주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 역시 주요 원자재와 부품 중 일부를 EU 내에서 조달해야만 유럽산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배터리 부문에서는 원재료 단계까지 관리 범위가 확대된다. EU는 배터리 셀 제조 공정뿐 아니라 양극재(CAM), 음극재, 분리막, 전해질 등 핵심 소재의 공급망 현황을 점검하는 체계를 마련하고 있다. 유럽교통환경연맹(T&E)에 따르면 EU는 2027년부터 배터리 핵심 부품 가운데 최소 3개 품목의 역내 생산을 요구하고, 2030년에는 적용 품목 수를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원산지 인증 과정에서도 원재료 채굴, 소재 가공, 부품 생산, 셀 제조에 이르는 공급망 데이터 제출이 요구될 전망이다.

법안은 생산시설 투자에 대한 관리 장치도 포함하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특정 국가가 세계 생산능력의 40% 이상을 점유한 전략 산업 분야에서 1억 유로(약 1,750억원) 이상 규모의 신규 투자가 이뤄질 경우 별도 심사를 진행하도록 규정했다. 심사 과정에서는 현지 고용 창출 규모, 기술 개발 계획, 연구개발(R&D) 투자, 공급망 구축 효과 등이 평가 대상에 오른다. 전기차와 배터리 산업 전반에 걸쳐 생산기지와 핵심 공급망을 EU 내부에 정착시키겠다는 구상이다.

유럽 덮친 中 전기차 공세

EU가 강력한 보호주의로 무장하는 배경에는 유럽 자동차 산업 전반에 깔린 위기감이 있다. 중국 전기차 산업의 팽창은 시장 경쟁의 범주를 벗어난 지 오래다. EU 집행위의 반보조금 조사 결과에 따르면 중국 업체들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제공한 세제 감면과 금융 지원, 토지 제공, 공급망 지원 정책의 수혜를 받아왔다. 수년간 누적된 국가 지원은 세계 최대 규모의 생산설비 확충으로 이어졌고 중국 자동차 산업은 내수 시장이 흡수하기 어려운 물량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남은 물량의 절반가량은 유럽 시장으로 향했다. 중국 업체들은 늘어난 생산량을 소화하기 위해 수출 확대에 나섰고, 시장 점유율 확보를 위한 가격 인하 경쟁도 본격화했다. 유럽 자동차 시장에 저가 물량이 대거 유입되면서 현지 완성차 업체들의 가격 결정력은 빠르게 약화되기 시작했다. 폭스바겐과 스텔란티스, 르노 등 주요 업체들은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가 유럽 시장 전반의 가격 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경고해 왔다. 전기차 전환을 위해 수십억 달러 규모의 투자를 집행하고 있는 유럽 업체들 입장에서는 판매가격 하락이 곧바로 수익성 악화로 연결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자동차 산업은 유럽 제조업을 떠받치는 핵심 축이다.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에 따르면 독일 내 자동차 산업 종사자는 78만 명에 달한다. 독일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에 구축된 생산기지는 완성차 업체를 중심으로 수천 개 부품사와 소재업체, 장비업체가 연결된 거대한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EU 집행위 역시 자동차 산업이 역내 제조업 부가가치의 약 7%를 차지하고 1,300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뒷받침하는 전략 산업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 만큼 완성차 업체의 수익성 저하는 개별 기업의 실적 악화에 그치지 않는다. 부품 공급망 투자 축소와 생산기지 경쟁력 저하, 고용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유럽 제조업의 기반까지 흔들 수 있다.

유럽 배터리 업계는 이미 같은 충격을 경험했다. 유럽 배터리 자립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노르웨이의 모로우배터리와 스웨덴의 노스볼트의 연쇄 파산은 유럽 배터리 산업의 현주소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난달 6일 파산을 신청한 모로우배터리는 2024년 셀 공장을 준공하고 상업 생산에 나섰으나 끝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했다. 리튬인산철(LFP) 분야에서 수명과 에너지 밀도를 개선한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하고 있었음에도 중국의 물량 공세 장벽 앞에서는 무력했다. 

이보다 앞서 무너진 노스볼트의 사례는 더욱 뼈아프다. 누적 자금 조달액만 140억 달러(약 21조3,000억원)에 달했던 노스볼트는 양산 체제 확립이 지연되는 가운데 중국 업체들의 저가 공세가 겹치면서 회생 불능 상태에 몰렸다. 중국 배터리 업계는 2025년 기준 글로벌 생산량의 80% 이상을 점유하는 압도적 독점력을 바탕으로 유럽 수출을 전년 대비 43%나 폭증시켰다. 특히 BYD는 가성비 높은 LFP 배터리를 앞세워 대유럽 공급량을 전년 대비 201.4% 늘리는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높아지는 유럽 장벽

EU의 규제 강도는 앞으로 더욱 세질 가능성이 크다. 중국산 전기차 관세를 둘러싼 충돌은 이미 자동차 산업 내부의 분쟁선을 벗어나 철강, 알루미늄, 농축산물, 핵심광물로 번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적용 대상을 철강·알루미늄 하위 제품 약 400개 품목으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완제품 형태로 탄소비용을 우회하는 수입을 차단하겠다는 취지다. 탄소 규범을 앞세운 통상 장벽이 철강에서 먼저 작동했고, 전기차와 배터리 공급망도 같은 압박선 위에 올라섰다.

이에 대한 중국의 대응도 거세다. 중국은 EU의 전기차 관세 부과 이후 유럽산 브랜디와 돼지고기, 유제품을 겨냥한 조사와 관세 조치를 잇달아 꺼냈다. 로이터통신은 중국 상무부의 대EU 반덤핑 조치가 전기차 관세 이후 무역 긴장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전했다. 전기차에서 시작된 충돌이 식품·소비재·소재 산업으로 확산되면서 양측의 협상 공간도 빠르게 좁아지고 있는 것이다.

외교 채널의 균열도 뚜렷하다. 중국은 이달 베이징에서 열릴 예정이던 EU와의 고위급 회담을 돌연 취소했다. 중국 측은 별도의 취소 사유를 설명하지 않았지만, 이러한 방식은 상대방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전달하기 위해 자주 사용된다. 실제로 지난해 EU는 여러 무역 분쟁에서 진전이 없다는 이유로 중국과의 정상 회의를 앞두고 핵심 경제 대화를 개최하지 않은 바 있다. 통상 협의가 정상 외교의 완충 장치로 기능하던 구도가 흔들리면서 갈등 역시 장기 소모전으로 굳어지는 흐름이다.

EU 내부의 강경론도 세를 키우고 있다. 현재 독일은 프랑스의 '미국식 긴급 관세·쿼터 도입' 구상에 힘을 싣고 있으며, 폴란드와 네덜란드, 벨기에까지 동조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산 제품의 과잉 유입이 독일 제조업 고용과 산업 기반을 흔들고 있다는 위기감이 커진 결과다. 기존 반덤핑·상계관세 체계로 중국의 생산능력 공세를 제어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EU 주요 회원국 사이에서 확산되고 있다.

미국의 선례도 EU의 판단에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은 중국 자동차 산업에 대한 강도 높은 차단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미 상무부는 지난해 중국과 러시아가 관여한 커넥티드카 소프트웨어와 통신 시스템을 국가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단계적인 수입 제한 조치를 확정했다. 차량이 수집하는 위치 정보와 주행 데이터, 카메라 영상 등이 해외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이 핵심 근거로 제시됐다. 해당 조치가 시행되면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사실상 미국 시장에서 퇴출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EU의 대응 역시 관세 부과 단계에 머물 가능성은 높지 않다고 본다. 원산지 검증과 현지 조달 의무, 보조금 제한, 공급망 심사 체계가 순차적으로 도입될 경우 중국 업체들이 직면할 진입 장벽은 한층 높아질 수밖에 없다.

Picture

Member for

1 year 8 months
Real name
김민정
Position
기자
Bio
[email protected]

오늘 꼭 알아야 할 소식을 전합니다. 빠르게 전하되, 그 전에 천천히 읽겠습니다. 핵심만을 파고들되, 그 전에 넓게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