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에 하이브리드차까지" 대중국 무역 장벽 높인 EU, 中 보복·산업 경쟁력 약화로 '역풍' 위험
입력
수정
EU, 中 전기차 이어 하이브리드차에도 관세 부과 검토 中 통상 보복 나설 가능성 커, 장기 소모전 리스크 부각 경쟁력 잃어 가는 유럽산 완성차, 中 공세 이겨낼 수 있나

유럽연합(EU)이 중국산 하이브리드차(PHEV)에 상계관세를 매기는 강수를 준비 중이다. 수년 전부터 중국산 전기차에 강력한 통상 제재를 이어 온 데 이어,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재차 무역 장벽을 높이는 양상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유럽의 자동차 산업 자체가 전통적 입지를 잃어가고 있는 만큼, 향후 EU가 중국의 강력한 맞대응으로 인한 '역풍'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EU, 對중국 견제 조치 강화
지난 19일(이하 현지시각) 독일 경제지 한델스블라트 보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현재 중국산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차에 대한 상계관세를 부과할 예정이다. 집행위는 EU 회원국의 승인이 이뤄질 경우 관련 조치를 즉시 시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친 것으로 전해졌으며, 관세 부과 대상으로는 비야디(BYD), 체리자동차, SAIC(MG) 등이 거론된다. 중국 업체들이 EU 시장 공략을 위해 하이브리드차 판매 비중을 확대하자, 재차 대(對)중국 무역 장벽이 높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도 이미 강력한 통상 제재를 가한 상태다. 시발점은 2023년 본격화한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반보조금 조사였다. EU는 약 1년간의 조사 끝에 중국 정부의 보조금이 역내 시장 경쟁을 왜곡했다고 판단했고, 2024년 7월 중국산 전기차에 잠정 상계관세를 부과했다. 이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첫 대규모 무역 제재였다. 이후 같은 해 10월 EU는 회원국 승인을 거쳐 중국산 전기차에 업체별로 최대 35.3%의 추가 관세를 매기기로 최종 확정했다. 현재 양국은 중국 업체가 일정 수준 이상의 최저 판매가격을 보장하면 관세를 일부분 완화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나, 아직 실질적인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다.
EU는 중국산 전기차 및 하이브리드차의 공세를 일종의 안보 위협으로 간주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을 통해 생산된 저가 차량이 유럽산 자동차의 산업 경쟁력을 약화하고 있는 데다, 핵심 부품인 배터리 소재·희토류 등 전략 원자재 공급망도 중국에 편중돼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델스블라트는 유럽이 새로운 ‘중국 쇼크(China Shock)’를 우려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중국 쇼크는 2000년대 중국 제조업의 급성장으로 미국과 유럽 제조업이 막대한 타격을 받은 상황을 일컫는 용어다.
中 '강경 대응' 기조 유지 가능성
다만 이러한 EU의 조치가 불러 올 파장은 아직 미지수다. 중국의 강력한 무역 보복으로 인해 오히려 역풍이 몰아닥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위험성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미국과 중국의 무역 분쟁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2월 펜타닐 유입 차단을 명분으로 중국산 수입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한 바 있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같은 해 3월 해당 관세율을 20%로 높였고, 4월에는 이른바 ‘해방의 날’을 선언하며 중국산 제품에 34%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밝혔다. 이는 중국을 겨냥한 별도 관세와 전 세계 교역국을 대상으로 한 기본 10% 관세가 결합한 형태였다.
중국은 즉각 보복했다. 지난해 2월에는 미국산 석탄과 액화천연가스(LNG)에 15%, 원유·농기계·대형 자동차 등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했고, 3월에는 미국산 농산물과 식품을 겨냥한 추가 조치를 내놨다. 해방의 날 선언이 나온 직후에는 모든 미국산 수입품에 34%의 추가 관세를 매기겠다고 맞불을 놓은 것은 물론, △희토류 일부 품목에 대한 수출 통제 △미국 기업의 수출 통제 명단 추가 △일부 미국산 농산물 수입 중단 등 비관세 조치까지 병행하기도 했다. 이후 양국은 관세율을 100% 이상까지 끌어올리며 첨예하게 맞섰고, 정상회담과 고위급 협상을 수차례 거친 뒤에야 관세율을 일부 낮췄다. 다만 현시점 미국의 대중 관세는 30% 안팎, 중국의 대미 관세는 10% 안팎으로 여전히 갈등 이전보다 높은 수준에 머물러 있다.
중국은 법적 대응도 병행했다. 미국의 대중 관세가 세계무역기구(WTO) 규정에 어긋난다며 공식적인 제소를 단행한 것이다. 양국은 지난해 2월 WTO 분쟁 절차를 개시했고, 이후로도 꾸준히 추가로 문제 제기가 이어져 왔다. 이러한 갈등 양상은 EU의 대중국 견제 조치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정 산업을 보호하거나 불공정 경쟁을 바로잡겠다는 목적이 있더라도, 상대국이 관세와 비관세 장벽을 동시에 활용해 보복할 경우 정책 효과는 크게 약화한다. 미국의 사례처럼 제재가 곧바로 협상력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장기적인 소모전과 공급망 불안을 불러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실제 중국은 이미 EU의 전기차 관세에 맞서 유럽산 주류·농축산물을 겨냥한 보복성 조치를 취한 바 있다.

유럽 완성차 브랜드의 침몰
EU의 자동차 산업 경쟁력 역시 위험 요소로 꼽힌다. 중국산 전기차가 압도적인 성장세를 이어 가는 것과 반대로, 유럽 자동차 기업들의 입지는 나날이 약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는 2024년을 전후해 급격한 권력 이동이 일어나는 중이다. 수십 년간 내연기관 기술력을 바탕으로 시장을 지배해 온 유럽 제조사들과 신흥 세력인 중국 전기차 제조사의 순위 역전이 본격화한 것이다. 중국은 내수 시장을 넘어 동남아시아 및 유럽 시장까지 공격적으로 점유율을 확장했으며, 최근 들어서는 단순 점유율을 넘어 기술 주도권마저 중국으로 넘어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러한 흐름은 판매량 및 점유율 지표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국제에너지기구(IE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판매량은 2,000만 대를 넘어섰고, 이 가운데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공급한 물량은 전체의 60%에 달했다. 반면 같은 기간 유럽 완성차 업체들의 글로벌 전기차 판매 비중은 약 15%에 그쳤다. 제조 기반 격차 역시 뚜렷하다. IEA는 지난해 전 세계 전기차 생산량이 약 2,200만 대였으며, 이 중 중국이 약 75%를 생산했다고 밝혔다. 단순히 중국 시장에서 전기차가 많이 팔린 것을 넘어, 글로벌 전기차 공급망과 완성차 생산의 중심축 자체가 중국으로 이동했다는 의미다.
유럽 자동차의 위기는 개별 브랜드의 입지 붕괴를 통해서도 두드러진다. 일례로 고급 스포츠카를 상징하는 독일 포르쉐의 경우, 주력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마칸'의 풀체인지 모델을 전기차로만 공개해 고객들의 비판을 받았다. 독일 메르세데스-벤츠의 'EQ' 시리즈 플래그십 세단인 'EQS'는 공기역학을 위해 채택한 원보우(One-bow) 디자인으로 인해 S-클래스의 전통적 중후함을 훼손했다는 혹평을 받기도 했다. 결국 벤츠는 차세대 모델부터 EQ 브랜드를 폐지하기로 했다. 최근 공개된 메르세데스-AMG의 신형 'AMG-GT' 4도어 전기차 모델 역시 메르세데스-AMG 고유의 우아한 디자인을 잃었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탈리아 슈퍼카 브랜드 페라리가 내놓은 첫 전동화 모델 '루체'는 "중국도 따라 하지 않을 디자인”이라는 시장의 냉소와 함께 전통적인 팬덤으로부터 외면받고 있다.
이 같은 상황 속 유럽 자동차 업체들은 생존을 위해 중국 기업에 생산 시설을 내줘야 하는 처지까지 내몰렸다. 지난 19일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이 보도한 바를 종합하면, 프랑스 렌에 위치한 스텔란티스 공장은 오는 2028년부터 중국 둥펑자동차의 ‘보야’ 브랜드 차량을 생산할 예정이다. 여기에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및 스마트 모빌리티 스타트업 저장립모터와도 맞손을 잡고 '오펠', '시트로엥', '피아트' 등 자사 핵심 브랜드 모델에 중국산 기술을 이식하는 전략을 채택했다. 이는 단순한 위탁 생산 및 협력 구도를 넘어, 유럽 자동차 산업의 근간이 중국의 기술 및 물량에 잠식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