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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무즈 해협 개방에도 웃지 못하는 산유국” 이란 복귀·우회망 확충 이중 압박, 중동 경제 치명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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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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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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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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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이란 전격 합의로 열린 호르무즈 해협
전쟁이 키운 우회 수송망에 흔들리는 해협 독점력
이란산 원유 복귀까지 겹치며 공급 우위 시장 본격화

미국과 이란이 전격적으로 휴전에 합의하며 호르무즈 해협이 다시 열렸지만, 중동 에너지 시장은 이미 전쟁 이전과 다른 국면에 진입했다. 전쟁 기간 중동 산유국들이 우회 수송망을 대거 확충하고 아시아 수입국들 역시 공급선 다변화에 착수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독점해 온 전략적 위상에 균열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해협 재개방으로 단기적인 공급 불안은 완화됐지만, 에너지 물류망 재편에 더해 이란산 원유 복귀까지 맞물리면서 중동 원유 시장은 공급 경쟁 심화와 가격 협상력 약화라는 새로운 환경에 직면하게 됐다.

미-이란 종전 MOU 서명, 호르무즈 조기 개방

18일(이하 현지시간) JD 밴스 미국 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전날 체결된 양해각서(MOU)의 세부 사항을 조율하기 위한 60일 협상 시한이 시작됐다고 밝혔다. 그는 이란이 향후 호르무즈 해협 통과 선박에 통행료를 부과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 “국제 수로는 자유롭게 이용돼야 한다”며 “해협이 개방되지 않는다면 최종 합의도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이날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에 “석유가 다시 흐르고 있다(Oil is flowing)”고 적으며 합의 발효를 환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이스라엘과 함께 지난 2월 말 시작한 대이란 군사작전을 중단하고 협상을 개시하는 내용의 MOU에 서명했다.

당초 이번 서명식은 19일 스위스에서 진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중개국 외교관과 사안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양측은 호르무즈 해협의 조기 개방을 위해 일정을 앞당기는 방안을 긴밀히 논의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소식통은 핵심 쟁점인 호르무즈 해협 개방에 대해 양국 간 이견이 없었던 점이 전격적인 조기 합의를 이끈 주된 요인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였던 유조선들의 운항도 재개됐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1,000만 배럴 규모의 원유를 실은 선박들이 해협을 통과했거나 통과를 준비 중이며, 전쟁 발발 이후 처음으로 사우디아라비아 소유 유조선도 운항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쿠웨이트는 원유 생산 확대 계획을 밝혔고, 이란도 남부 항구의 상업 선박 운항이 정상화됐다고 발표했다.

해협 재개방에 따라 영국 해군 산하 해상안보기구인 영국해사무역기구(UKMTO)는 이날 호르무즈 해협의 해상 안보 위협 수준을 기존 '심각(Critical)' 단계에서 '보통(Moderate)' 단계로 하향 조정했다. UKMTO가 지난 4월 중순 위협 수준을 최고 단계로 상향한 이후 약 두 달 만이다. 미군도 대이란 해상 봉쇄 조치를 해제했다. 미 중부사령부(CENTCOM)는 이날 성명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 지시에 따라 이란 항만과 연안 지역을 오가는 모든 해상 교통에 대한 봉쇄를 해제했다"며 "아라비아만과 오만만의 이란 항만을 오가는 선박 통항을 방해하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에너지 물류 지도 재편, 호르무즈는 전쟁 전 70% 수준

다만 이번 전쟁 국면에서 호르무즈 해협의 절대적 위상은 상당 부분 약화됐다. 전쟁을 치르는 동안 중동 산유국들이 호르무즈 해협을 우회하는 대체 수송로를 적극적으로 개척하면서 역내 에너지 물류 지도가 근본적으로 재편됐기 때문이다. 골드만삭스가 17일 발표한 ‘전쟁 전 호르무즈 통항량의 70%가 새로운 100%가 될 것’이란 제목의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이전에는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와 석유제품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했다. 걸프 지역 산유국들의 원유 수출이 전쟁 전 수준으로 정상화되려면 현재 통항량에서 하루 1,300만 배럴이 추가로 늘어나야 한다. 하지만 현재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가시적인 원유 물동량은 하루 약 130만 배럴 수준에 불과하다. 선박의 조명과 자동식별장치(AIS)를 끄고 오만만을 통과하는 이른바 ‘암흑 항해’ 물량 160만 배럴을 더해도 개전 전에 한참 못 미친다.

반면 호르무즈를 우회해 사우디 홍해 연안 얀부 항구와 아랍에미리트(UAE) 푸자이라, 터키 제이한 등으로 빠져나간 원유는 하루 총 750만 배럴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전쟁을 계기로 중동 산유국들의 ‘호르무즈 탈출’ 행보가 가속한 데 따른 것이다. 사우디, UAE, 이라크 등 중동 주요 산유국들은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교전이 이어지는 동안 이란에 의해 사실상 봉쇄된 호르무즈 해협을 피할 수 있는 인프라 가동을 대폭 확대해 원유를 실어 날랐다.

사우디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동서 횡단 파이프라인을 증편해 홍해 연안으로 원유를 보냈고, UAE는 호르무즈 해협 외곽에 위치한 푸자이라 항구 연결관을 적극 활용했다. 이라크 역시 터키 제이한 항구로 연결되는 파이프라인으로 수출 물량을 돌렸다. UAE는 이달 초 호르무즈 해협 외곽인 오만만 연안의 항구를 대대적으로 확장하고 새 항만을 건설해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를 완전히 없애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는 미국과 이란 간 합의 이후에도 일부 선주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호르무즈 해협에 선박을 진입시키는 것을 꺼릴 수 있다고 짚었다.

중동 산유국 가격 주도권 흔들

수입국들의 에너지 안보 전략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번 전쟁은 아시아 국가들에 호르무즈 해협 의존이 곧 국가 경제의 취약성이라는 사실을 다시 각인시켰다. 이에 한국과 일본은 전쟁 기간 전략비축유 방출과 공급선 다변화를 병행하며 중동 중심 에너지 조달 체계의 재설계에 착수했다. 호르무즈 해협 재개방이 이뤄졌음에도 각국 정부가 기존 조달 체계로 복귀하는 데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배경이다.

먼저 한국 정부는 얀부 항구를 활용하는 대체 공급망 구축에 착수했고, 오만과 북아프리카 지역을 포함한 추가 공급선 확보에도 나섰다.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되면서 국내 정유업계와 해운업계가 경험한 공급망 충격이 상당했던 만큼, 중동 원유 수입 구조를 다변화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빠르게 확산한 데 따른 것이다. 일본 정부의 경우 전쟁 기간 푸자이라 항구를 활용하는 우회 공급망을 검토했고, 미국·중남미산 원유 도입 확대 방안도 추진했다. 호르무즈 봉쇄가 장기화될 경우 중동 의존 구조 자체가 국가 안보 리스크로 전환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이는 중동 산유국에 새로운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지금까지 중동 경제는 호르무즈 해협이 가진 지정학적 영향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수요를 확보해 왔지만, 전쟁 기간 형성된 조달선 재편은 해협 재개방 이후에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과 일본은 중동산 원유 수입 비중이 높은 대표적 아시아 수입국으로 꼽힌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한국 원유 수입의 70% 이상이 중동에서 들어오며, 상당 물량이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한다고 집계했다. 그러나 전쟁 기간 구축된 조달 경로가 유지될 경우 중동산 원유의 가격 협상력은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란산 원유의 복귀 가능성도 유가 하방 압력을 키우는 요인이다. 이번 MOU에 따라 미국은 이란산 원유 수출 재개를 허용하기 위한 제재 면제를 제공할 예정이다. 그간 미국의 원유 수출 제재로 심각한 경제적 타격을 입어 온 이란으로서는 이번 조치로 일단 숨통이 트일 전망이지만, 우회 수송망 확대와 이란산 원유 수출 재개가 합쳐지면 중동 시장은 공급 경쟁 심화와 가격 프리미엄 축소라는 이중 압박에 직면하게 된다. 이에 시장은 공급 확대와 수요 둔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국면에 진입할 가능성이 높다. 에너지 가격 안정은 글로벌 물가 상승세를 둔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겠지만, 중동 산유국들에는 정반대의 환경이 조성될 수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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