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유럽 평화배당금 시대 종료, 방산 자립·안보 재편 본격화
[딥폴리시] 유럽 평화배당금 시대 종료, 방산 자립·안보 재편 본격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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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안보 의존 균열 속 유럽 재무장 가속화 방산 생산·공급망 확보 중심 전략 자율성 강화 독일 국방 투자 확대 맞물려 유럽 안보 질서 재편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의 ‘평화배당금(Peace Dividend)’ 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 평화배당금은 전쟁이나 군사적 긴장이 완화된 이후 국방비 부담이 줄어들면서 군사 예산을 경제·복지·산업 분야로 돌릴 수 있게 된 여력을 뜻한다. 그러나 최근 안보 환경이 급변하면서 유럽의 정책 기조도 빠르게 전환되는 분위기다. 유럽연합(EU)의 국방비는 2024년 3,430억 유로(약 600조7,233억원)에서 2025년 3,810억 유로(약 667조2,758억원)로 증가했다. 2020년과 비교하면 60% 이상 증가한 규모다. 지난 30년 동안 미국의 안보 우산 아래 비용 부담을 줄여온 유럽이 이제는 자체 방위 역량과 전략적 자율성 확보에 본격적으로 나서는 양상이다.
평화배당금 균열, 유럽 안보 의존 한계
과거 유럽의 평화배당금은 미국이 안보를 담당하고 유럽은 경제 성장과 복지 확대에 집중하는 구조 위에서 형성됐다. 냉전기 소련의 군사적 위협 속에서 미국의 안보 지원은 서유럽 질서를 유지하는 핵심 기반 역할을 했다. 특히 1989년 냉전 종식 이후 유럽은 국방비 부담을 줄이는 대신 복지와 경제 통합에 재정을 투입하며 안보를 안정된 질서로 받아들여 왔다.
하지만 이런 구조는 이제 유럽의 전략적 취약 요인으로 지목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미뤄졌던 안보 문제가 전면에 부상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 시절부터 제기된 유럽의 안보 무임승차 논란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한층 강경해졌고, 최근에는 단순한 동맹 갈등을 넘어 구조적 위험 요소로 받아들이는 기류가 뚜렷하다. 미국의 독일 주둔 병력 축소 가능성과 정치 상황에 따른 무기 공급 제한 우려까지 겹치면서 유럽 내부에서는 미국 의존형 안보 체제의 불안정성이 본격적으로 가시화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수치에서도 확인된다. 지난해 기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전체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2% 국방비 지출 기준을 충족했다. NATO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35년 목표치를 5%로 상향하며 군사력뿐 아니라 사이버·인프라 등 안보 전반에 대한 투자 확대에 나선 상태다.

유럽 방산 자립 본격화
하지만 국방비 증액이 곧바로 방위 자율성 확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에 따르면 최근 유럽의 무기 수입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미국산인 것으로 나타났다. 안보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지출을 확대할수록 오히려 미국산 무기 체계와 공급망 의존이 심화되는 역설적 구조가 형성되고 있는 셈이다. F-35 전투기와 패트리엇 방공 시스템은 단기적인 전력 공백을 메우는 데 효과적이지만, 유지·보수와 부품 공급, 운용 체계 상당 부분을 미국에 의존해야 하는 한계도 안고 있다.
이에 따라 유럽 내부에서는 산업 자립 역량이 방위 독립의 핵심 조건으로 부상하는 흐름이다. 자체 생산 능력과 군수 체계 없이는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숙련 인력 확대와 독자 소프트웨어 개발, 부품 공급망 내재화, 탄약·드론 생산 능력 강화 등이 핵심 과제로 거론된다. EU의 유럽 방위백서(Readiness 2030)와 무기대출기금(SAFE) 역시 공동 조달과 방산 생산 역량 확대를 중심으로 추진되고 있다.

독일 재무장 본격화에 따른 유럽 질서 재편
유럽 안보 질서 변화의 상징적 사례로는 독일이 꼽힌다. 독일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 지원, 러시아의 저렴한 에너지, 중국 시장을 기반으로 성장 전략을 유지해 왔다. 그러나 지정학적 균형이 흔들리면서 기존 성장 모델 역시 한계에 직면했다. 이에 따라 독일은 재정 긴축 기조까지 일부 수정하며 국방·인프라 투자 확대에 나서는 모습이다.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이 안보 비용 부담을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유럽 전체의 전략 인식 변화와도 맞물린다는 평가가 나온다.
동시에 유럽 내부에서는 미국 중심 안보 질서에 대한 인식 변화의 기류가 확산하는 추세다. 그동안 유럽은 최종 전략 결정권이 사실상 미국에 있다는 전제를 바탕으로 움직여 왔다. 하지만 최근에는 이런 구조가 더 이상 안정적으로 유지되기 어렵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미국의 군사력 역시 국내 정치와 선거 주기, 산업 이해관계에 따라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현실이 부각되면서다. 이에 따라 유럽의 전략적 자율성은 미국 정책 변화와 관계없이 자체 안보 역량을 유지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재정의되고 있다.
지속가능한 평화 구축 과제
유럽이 직면한 가장 큰 위험으로는 국방비 확대 자체보다 국가별 분산 투자에 따른 비효율 문제가 꼽힌다. 공동 조율 없이 추진되는 재무장은 실제 억지력 강화로 이어지지 못한 채 재정 부담만 키울 가능성이 크다. 이에 따라 유럽 내부에서는 국방과 산업, 에너지, 재정 정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통합 전략 마련 요구도 한층 확대되고 있다.
유럽은 이제 안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할 영역으로 재정립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평화배당금 시대는 막을 내렸지만, 그 위에 형성된 유럽의 평화 질서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도 커지고 있다. 유럽이 자체 생산 역량과 공급망, 군수 체계를 구축하며 전략적 자율성을 확보할 경우, 미국 중심의 질서 변화 속에서도 독자적인 안보 역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End of the Peace Dividend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