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 노조가 반도체社에 교섭 요구” 현실이 된 ‘노란봉투법’ 부작용, 기업 성장 불모지 자초하는 꼴
“건설 노조가 반도체社에 교섭 요구” 현실이 된 ‘노란봉투법’ 부작용, 기업 성장 불모지 자초하는 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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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적 불확실성 확대 속 산업 생태계 경색 우려 확산 쟁의 범위 확장에 기술 도입·경영 판단도 파업 빌미로 노동권 강화 취지 실현 전제는 기업의 ‘지속 가능성’

'노란봉투법'으로 불리는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시행되면서 산업 현장이 거센 후폭풍에 직면했다. 법 시행 첫날부터 조선·자동차·철강 등 주력 제조업종은 물론 청소 노동자, 택배기사까지 원청 사업자를 상대로 한 하청 노조들의 '직접 교섭' 요구가 빗발치는 모습이다. 이에 경영계의 긴장감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다층적인 하도급 구조를 가진 제조업 중심 경제에서 원청 책임이 광범위하게 확대될 경우 투자 위축과 경영 불확실성이 동시에 커질 가능성을 우려하는 분위기다.
“진짜 사장 나와라” 노동계, 일제히 원청 교섭 요구
11일 산업계와 노동계에 따르면 전날 노란봉투법이 시행된 직후부터 하청노조들은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하며 조직적인 행동에 나섰다. 첫날 교섭을 요구한 하청노조 소속 조합원들만 최소 10만 명을 넘어선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36개 하청지회(조합원 약 1만 명)는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 현대중공업, 포스코, 한화오션 등 주요 원청 기업을 대상으로 단체교섭 요구 내용증명을 발송했고, 금속노조는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업체 교체 시 고용 및 단체협약 승계 보장, 임금 인상 등을 핵심 교섭 의제로 제시했다.
인천국제공항공사·부산교통공사 자회사, 대학 청소노동자, 금융권 콜센터 등 9,600여 명이 소속된 공공운수노조도 각 사업장 원청에 교섭을 요구했다. 삼성물산·한화 등 건설, CJ대한통운·쿠팡씨엘에스·한진 등 택배사, 지방자치단체 생활폐기물 수집·운반·처리 업무를 맡은 민간위탁업체의 원청 사업주들도 하청노조의 교섭 요청서를 받았다.
복수 노조가 존재하는 사업장에서는 교섭단위 분리신청도 잇따랐다. 앞서 고용노동부와 노동위원회는 조합원 수가 한 명이라도 더 많으면 교섭권을 가져가는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문제점을 고려해, 직무·하청업체·상급단체 등으로 교섭단위 분리를 폭넓게 허용하겠다는 방침을 밝힌 바 있다. 이에 따라 쿠팡CLS의 민주노총 전국택배노조, 포스코의 금속노조 조직, 하나은행·국민은행·국민카드 콜센터 노동자들이 속한 공공운수노조 든든한콜센터지부 등도 교섭단위 분리 신청 절차에 들어갔다.
원청 사용자성 인정 쟁점, 구조조정도 쟁의 대상
이번 노란봉투법 시행으로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사용자 범위’의 확대다. 기존에는 노동조합법상 사용자를 통상 노동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맺은 사업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하청업체 노동자의 경우 법적으로는 하청업체가 사용자로 인정되는 구조가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개정법이 시행되면서 기준이 달라졌다. 노동자의 임금이나 근로조건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기업이라면 직접적인 고용 관계가 없더라도 사용자로 인정될 수 있게 된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청과 하청 구조다. 이에 따라 하청 노동자가 자신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원청 기업을 상대로 단체교섭을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통로가 열리게 됐다.
노동부가 마련한 ‘원·하청 상생 교섭절차 매뉴얼’에는 이러한 제도 변화의 구체적인 적용 기준이 담겨 있다. 노동부는 원청 노조와 하청 노조의 교섭단위를 서로 다른 범주로 해석했다. 교섭권의 범위와 사용자 책임의 범위, 근로조건 결정 방식 등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이에 법 시행 이후 원청 기업은 기존처럼 자사 노조와 교섭을 진행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하청 노동자 노조와도 별도의 교섭 절차를 마련해야 하는 구조가 됐다. 또한 하청 노조가 교섭을 요구할 경우 원청 사용자는 이를 다른 하청 노조와 노동자에게 공고해야 하며,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쟁의행위와 관련된 손해배상 책임 규정도 달라졌다. 종전에는 쟁의행위가 불법으로 판단될 경우 기업이 노조뿐 아니라 개별 노동자에게까지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이 때문에 거액의 손해배상 청구나 가압류가 이어지면서 노동자 개인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운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개정법은 이러한 부담을 완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앞으로는 쟁의행위와 관련해 기업이 노동자 개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광범위하게 청구하는 방식이 제한된다. 책임을 따지는 경우에도 노동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여부, 실제 행위와 손해 발생 간의 인과관계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책임 범위를 판단하도록 기준을 마련했다.
노동쟁의 대상 범위도 일부 확대됐다. 기존에는 노동쟁의가 임금, 근로시간, 복지 등 근로조건을 직접적으로 결정하는 사안에 주로 한정되는 경우가 많았으나, 개정법은 노동자의 근로조건에 영향을 미치는 경영상 결정까지도 쟁의 대상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열어뒀다. 구조조정이나 사업 재편과 같은 기업의 경영 판단이 노동조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경우, 노조가 이를 교섭 의제로 제기하거나 쟁의로 확산될 가능성이 커졌다는 얘기다.

외국 기업 ‘탈한국’ 이어지나
노동계는 이를 노조의 교섭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는 변화로 평가하고 있지만, 경영계는 기업의 경영 판단까지 노사 갈등 영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점을 크게 우려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법 시행을 이틀 앞둔 지난 8일 성명을 통해 “일부 노동계가 사용자성 인정 여부와 무관하게 원청 기업에 교섭을 요구하고, 사용자성이 인정되지 않은 사안까지 교섭 의제로 삼겠다고 밝히고 있다”며 “이로 인해 노사 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실제 법 시행 첫날 제기된 교섭 요구만 봐도, 원청의 생산 공정과 직접 관련이 없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자동차의 경우 미화·보안·급식 등 간접 업무를 담당하는 하청 노동자들이 원청과의 교섭을 요청하고 있으며, 한화오션에서도 청소·급식 하청업체 직원들이 원청 직원과 동일한 수준의 성과급 지급을 요구하고 있다. 플랜트건설노조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장의 발주처인 SK하이닉스를 상대로도 교섭을 요구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원청을 넘어 발주처까지 교섭 대상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경제는 수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하청 비율도 높다. 조선업의 경우 하청 비중이 63%에 달하며 철강과 자동차 산업 역시 다층적인 하도급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환경에서 실질적 지배력을 근거로 원청 기업이 수많은 하청 노조와 직접 교섭해야 한다면, 산업 현장은 1년 내내 교섭과 분쟁으로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
여기에 더해지는 노조의 과도한 비용 요구도 기업에 있어선 큰 짐이다. 주요 대기업 노조들은 최근 조합원 감소에 따른 재정 압박 등을 이유로 별도의 특별 성과급 지급이나 상여금 인상을 요구하며 협상 강도를 높이고 있다. 경영 환경이 악화된 상황에서도 기존 이익을 유지하려는 이러한 요구가 노란봉투법이라는 제도적 보호 장치까지 확보한 만큼, 기업의 투자 여력은 더욱 위축될 공산이 크다. 이는 한국 경제에도 큰 손실로 작용한다. 통상 투자율이 1%p 하락하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0.3~0.4%p 하락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외국 투자기업의 엑소더스가 발생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글로벌 기업들은 경영권 안정을 핵심 투자조건으로 보는데, 노란봉투법이 이를 훼손해 한국 투자 매력도를 낮출 것이란 지적이다. 실제 지난해 7월 주한외국기업연합회(KOFA)가 한국에 진출한 외국인 투자 기업 100개사 대표 및 인사 담당을 상대로 '노란봉투법 시행 이후 한국 내 투자 계획'을 조사한 결과, 35.6%가 ‘투자 축소 또는 한국지사 철수를 고려한다’고 답했다. 가뜩이나 한국은 경직된 노동 환경 때문에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라는 인식이 만연하다. 다국적 기업 지역본부만 보더라도 싱가포르에는 약 5,000개, 홍콩에는 1,500개, 중국 상하이에는 900개나 있지만 한국은 100개가 채 되지 않는다. 기업 하기 좋은 환경 경쟁력에서 상대적으로 뒤처지는 것이 가장 큰 이유다.
전문가들은 노란봉투법이 '한국 산업의 족쇄'가 되지 않으려면 경영권의 명확한 보호가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기술 도입이나 조직 개편처럼 기업의 핵심적인 경영 판단 영역이 쟁의 대상에 포함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설명이다. 한 대기업 고위 간부는 “노란봉투법의 취지가 노동권 보호에 있다면 그 전제는 기업의 생존”이라며 “공장이 멈추고 기술 경쟁에서 뒤처진 국가에서 노동자의 권리가 온전히 보장되기는 어렵다”고 일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