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전장으로 떠난 일손과 멈춰 선 공장, 우크라이나 전시 노동 마찰의 그늘
[딥폴리시] 전장으로 떠난 일손과 멈춰 선 공장, 우크라이나 전시 노동 마찰의 그늘
입력
수정
전쟁 충격 속 노동시장 구조 변화 군수 산업 호황·서비스업 침체 격차 확대 재교육·소득 지원 결합된 정책 대응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노동시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바꾼다. 2022년 러시아의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에서는 노동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약 300만 명이 경제 활동에서 이탈했고, 남은 인력 가운데 상당수도 전선에 투입되거나 거주지를 잃었다. 그 결과 노동 수요와 인력 공급 사이의 불일치가 크게 확대됐다. 이러한 구조적 괴리는 ‘전시 노동시장 마찰(wartime labor market friction)’이라 불리는 새로운 형태의 혼란을 낳고 있다.
시장에 나타난 양상은 극명하다. 군수 생산이 활발한 지역에서는 부족해진 인력을 확보하려 기업들이 경쟁적으로 임금을 올린다. 반면 수요가 급감한 서비스·유통업 종사자들은 생계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다. 이 같은 노동시장 마찰이 얼마나 오래 이어질지, 어떤 경로로 작동할지 파악하는 일은 전시 민생 안정과 전후 재건의 성패를 좌우할 핵심 과제가 됐다.
전시 노동시장 마찰 공급 충격
전시 노동시장을 뒤흔든 직접적 원인은 노동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충격을 받은 데 있다. 수백만 명의 인력이 노동시장에서 이탈하면서 일부 산업에서는 인력 부족이 심화됐고, 시장 축소와 투자 위축은 다른 산업의 침체를 빠르게 키웠다. 2022년부터 2025년까지의 인구 통계를 보면 성인 수백만 명이 해외로 떠났고, 군 동원 인력도 최대 50만 명을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젊은 남성 인력이 전장으로 향하면서 노동 현장에서 활용할 수 있는 인력은 크게 줄었다.
이러한 격차는 산업별 상황에서 뚜렷하게 나타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건설·IT 등 국방 관련 산업에서는 인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며 임금이 상승했다. 반면 숙박업이나 도시 서비스업은 고객 감소로 매출이 줄면서 임금 인상 여력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그 결과 국가 전체의 실질임금 지표는 지역별 인력 부족, 산업별 수요 감소, 물류 차질이 겹치며 큰 격차를 드러낸다.

기술 불일치와 플랫폼 일자리
문제는 단순한 인력 부족에 그치지 않는다. 전시 경제가 요구하는 기술과 기존 노동력이 보유한 기술 사이의 격차가 더 큰 제약으로 작용한다. 방위 산업이나 재건 현장에서 필요한 숙련도는 과거 서비스업이나 소규모 자영업에 종사하던 인력의 역량과 크게 다르다. 여기에 숙련 노동자 상당수가 군에 복무 중이거나 해외에 체류하면서 기업들은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은 채용 비용을 높이고 생산성을 떨어뜨린다. 온라인 채용 데이터를 보면 특정 직종의 구인 공고는 크게 늘어난 반면 전통적인 서비스업 채용은 급격히 줄었다. 노동시장이 단순히 축소된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른 두 시장으로 분화됐다는 의미다.
공백을 일부 메운 것은 원격 근무와 플랫폼 노동이다. 유럽연합(EU) 기본권청(FRA)에 따르면 디지털 플랫폼은 해외로 떠난 우크라이나 가계에 새로운 소득원을 제공하며 일정한 완충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기회는 IT나 번역 등 특정 기술을 가진 노동자에게 주로 집중된다. 수입 구조도 불안정하고 환율 변동의 영향도 크게 받는다. 플랫폼 노동이 노동시장 문제의 근본적 해법이 되지 못하는 이유다.

재건을 위한 노동시장 정책
이 같은 구조적 마찰을 줄이고 전후 재건 기반을 유지하려면 보다 정교한 정책 대응이 필요하다. 그 중심에는 실직자가 재교육을 받는 동안 생계를 유지하도록 지원하는 표적형 소득 지원이 있다. 이는 노동자가 새로운 산업 현장에 안착할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는 정책적 장치 역할을 한다.
기업 수요에 맞춘 단기 직업 교육 확대와 난민·귀환 노동자의 자격 인증 절차 간소화도 시급한 과제다. 실제로 디지털 기술이나 기초 제조 분야의 집중 교육은 실업 기간을 줄이는 데 일정한 효과를 보였다. 아울러 핵심 기업이 유동성 위기로 무너지지 않도록 고용과 연계한 자금 지원을 병행해 산업 기반을 유지할 필요가 있다. 다만 정확한 통계가 부족하다는 점은 정책 수립의 제약 요인이다. 군 동원 인력의 숙련도 수준이나 전쟁 부상으로 인한 노동력 손실 규모는 여전히 명확히 파악되지 않았다. 비공식적인 노동 이동이 많아 공식 지표가 현실 변화를 충분히 반영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결국 전시 노동시장 마찰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문제가 아니다. 노동력 이탈과 산업 재편, 제도적 단절이 동시에 작용하는 구조적 위기이기 때문이다. 정책 당국이 이를 핵심 정책 과제로 다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소득 보호와 신속한 재교육, 기업 지원, 해외에서 쌓은 경력 인정 제도가 함께 작동할 때 노동시장 회복의 속도를 결정짓는 핵심 동력이 된다. 이러한 정책 조합이 마련될 경우 전후 재건도 더 빠르고 포용적인 방향으로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Limits of Resilience: How Wartime Labor Market Friction Reshapes Work and Wage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