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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폴리시] 전쟁 앞에 선 민주주의, 권력 집중은 비상조치로 멈추지 않는다

[딥폴리시] 전쟁 앞에 선 민주주의, 권력 집중은 비상조치로 멈추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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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months 1 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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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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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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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 국면 속 민주주의 지수 장기 하락
비상 권한 확대·제도 균형 약화
승패와 무관한 권력 집중의 고착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전쟁은 민주주의를 하루아침에 무너뜨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전쟁이 시작되는 순간, 권력 구조는 거센 재편의 압력에 놓인다. 2019년부터 2024년까지 전 세계 40%가 넘는 국가에서 민주주의 지표가 후퇴했다는 통계는 이러한 변화가 일시적 동요에 그치지 않음을 보여준다. 특히 무력 분쟁을 겪은 국가들에서는 법원과 언론의 독립성, 시민의 자유가 빠르게 위축됐고, 일부 국가는 10년이 지나도록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했다.

전쟁은 단기적 충격이 아니라, 제도의 경로 자체를 바꾸는 전환점으로 작동한다. 전쟁의 영향은 전장의 승패로만 가늠할 수 없다. 핵심은 권력이 어떻게 재배분되는가에 있다. 비상 상황은 권한 집중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되고, 강화된 행정 집행 수단은 이를 현실로 만든다. 민주주의의 균형은 바로 그 지점에서 서서히, 그러나 분명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전쟁과 민주주의 후퇴의 실증 근거

전쟁과 민주주의 후퇴의 관계를 뒷받침하는 실증 연구도 축적되고 있다. 올해 초 미국 국립경제연구소(NBER)가 발표한 보고서 '전쟁과 민주주의 후퇴(War and Democratic Backsliding)'는 1948년 이후의 무력 분쟁 자료와 민주주의 지표를 결합해 분석했다. 연구진은 전쟁에 돌입한 국가들을 유사한 정치·경제적 조건의 비전쟁 국가들과 비교했으며, 그 결과 분쟁 개시 시점을 전후해 시민의 자유, 사법부 독립, 언론 자유가 동시에 하락하는 뚜렷한 패턴을 확인했다.

이러한 하락은 단기에 그치지 않았다. 특히 내부 갈등을 겪은 국가, 전쟁을 처음 경험한 국가, 정치적 분열이 심한 사회일수록 민주주의 지표의 하락 폭이 크고 회복까지 걸리는 기간도 길었다. 반면 외부 분쟁이 단기간에 종료되거나 국제적 제약이 강하게 작동한 경우에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전쟁의 유형과 국내 정치 구조가 제도 후퇴의 강도와 지속성을 좌우한 셈이다.

또한 연구는 전쟁 이전부터 민주주의가 뚜렷한 하향 추세에 있었다는 증거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쟁이 기존 쇠퇴의 연장보다 제도 변화의 분기점이 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전쟁은 잠재된 취약성을 단순히 드러내는 사건이 아니라, 권력의 작동 방식을 재조정하는 계기로 기능한다.

주: 분쟁 발생 시점을 기준(0년)으로 민주주의 지수 추정치를 비교한 결과, 전쟁 직후 지수가 하락하며 이후 약 10년간 전쟁 이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는 흐름이 나타났다.

검열과 사법 재편, 단계적 권력 이동

제도 약화는 대개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첫 단계는 정보 통제다. 러시아 고등경제대학교(HSE) 소속 세메노프(Semenov)와 알류코프(Alyukov)의 '전시 미디어 모니터(Wartime Media Monitor)' 보고서는 2022~2023년 갈등 국면에서 국가의 미디어 개입이 급격히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전장 정보 접근 제한, 허위 정보 단속 강화, 온라인 검열 확대가 동시에 이뤄졌고, 그 결과 공적 토론 공간이 축소되면서 시민사회의 조직 역량과 비판의 통로도 함께 위축됐다.

정보 통제가 강화되면 다음 단계는 사법 구조의 조정으로 이어진다. 유럽의회조사서비스(EPRS)의 '민주주의 후퇴 속의 법원'은 전쟁과 안보 압력이 사법 독립에 미친 영향을 추적했다. 판사 재임명, 임명 규칙 변경, 특별재판소 설치, 검찰 통제 강화 같은 조치가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효율성과 국가 안보가 명분으로 제시됐지만, 실질적으로는 행정부 권한의 확대를 낳는 경우가 많았다.

국제민주주의선거지원연구소(International IDEA)와 스웨덴 민주주의 지표 연구기관 브이-뎀 연구소(V-Dem Institute)의 비교 연구 역시 같은 흐름을 보였다. 민주주의 후퇴는 급격한 권력 전복의 형태로 나타나기보다, 법률 개정과 제도 조정을 통해 점진적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다. 전쟁은 제도의 방향을 틀고, 그 방향은 시간이 지나며 구조로 굳어진다.

주: 분쟁 이후 민주주의 지수는 전쟁의 승자와 패자 모두에서 하락하는 경향을 보였다. 특히 승자 집단에서도 지수 하락이 지속되는 모습이 확인되며, 이는 제도 약화가 전장 결과와 무관하게 정치적 유인에 의해 발생했음을 시사한다.

정치적 유인과 전후 권력의 고착

전쟁 이후 민주주의가 낮은 수준에 머무르는 배경에는 분명한 정치적 유인이 작동했다. 연구 자료에 따르면 갈등의 승자와 패자 모두에서 민주주의 지표가 하락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이는 전장의 결과 그 자체보다, 전쟁을 계기로 권력을 행사하는 주체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제도의 경로를 좌우했음을 시사한다.

행정부는 비상 권한을 확대하고, 선거 규칙을 조정하며, 야당 활동을 제한하는 장치를 단계적으로 도입한다. 긴급 조치의 적용 범위는 점차 넓어지고 시행 기간도 연장되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조치가 군사적 성과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경우는 제한적이지만, 통치 권한의 집중과 정치적 통제력 강화에는 분명한 효과를 낳는다. 특히 감시와 견제 기능이 약화된 환경에서는 제도 변경이 비교적 신속하게 진행된다.

문제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확대된 권한이 원상으로 복원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권한 확대로 이익을 얻은 집단은 이를 되돌릴 유인이 크지 않다. 비상 권한은 일상적 통치 수단으로 흡수되고, 선거 제도와 사법 구조의 변화는 정치 지형을 재편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 집중은 예외적 조치가 아닌 관행으로 굳어진다.

위기 대응 및 민주적 안전장치의 설계

해법은 결국 제도 설계에 있다. 비상 권한에는 명확한 종료 시점과 엄격한 의회 승인 절차가 부여돼야 하며, 사법적 검토와 독립적 감사 체계 역시 전시 상황에서도 예외 없이 작동해야 한다. 정보 접근권과 언론의 자유를 보장하는 장치 또한 긴급 상황이라는 이유로 전면 중단돼서는 안 된다.

핵심은 권한 확대의 필요성을 인정하되, 그 범위와 기간을 통제할 수 있는 장치를 동시에 마련하는 데 있다. 전쟁은 불가피하게 권력의 재배치를 촉진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재배치가 민주주의의 지속적 약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일시적 조정에 머물지는 사후 복원 장치와 견제 구조의 설계 방식에 의해 결정된다. 위기는 피하기 어려우나, 권력이 향하는 방향은 제도의 선택이 규정한다. 민주주의의 장기적 안정성은 전쟁 이후 어떤 균형을 복원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전망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War Weakens Democracy: Why Conflict Is an Opportunity for Durable Institutional Rollback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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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과학의 언어로 읽고, 사실 위에 통찰을 더하는 글을 전합니다. 복잡한 현상 속에서 본질을 찾아 독자와 함께 사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