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위해 인간 조직 다시 짜는 빅테크, 혁신보다 먼저 시작된 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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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인한 美 고용 시장 지각변동 인프라 투자 확대, 화이트칼라 직군 직격 기술혁신 명분 앞세운 'AI 워싱' 논란도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한 번에 수백명에서 수천명의 직원을 내보내는 해고 칼바람이 불고 있다. 주요 기업은 올해 들어서만 10만명이 넘는 인력을 감축했다. 기업들은 인공지능(AI) 중심 조직 재편과 생산성 향상을 구조조정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지만, 정작 AI가 해당 인력을 대체할 수준에 도달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적지 않다.
메타, 화이트칼라 줄이고 데이터센터 올인
10일(이하 현지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메타는 최근 아시아 지역 직원을 시작으로 감원 대상자들에게 이메일 통보를 시작했다. 미국 직원들도 현지 시간 기준 순차적으로 통보를 받을 예정이며, 회사는 일부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권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감원은 엔지니어링과 제품(product) 조직을 중심으로 진행된다. 메타 내부 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들은 올해 안에 추가 감원이 이뤄질 가능성도 있다고 WSJ에 전했다.
메타는 동시에 약 7,000명의 직원을 새 AI 조직으로 재배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새 조직은 AI 에이전트와 AI 기반 제품 개발 등을 담당하게 된다. 메타의 전체 직원 수는 올해 3월 말 기준 약 8만 명 수준이었다. 메타 인사 책임자인 자넬 게일은 내부 메모에서 “더 작은 팀과 수평적 구조로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단계에 도달했다”며 “조직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변화”라고 설명했다.
마크 저커버그 메타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AI를 회사의 최우선 과제로 내세우며 조직 전반을 AI 중심으로 재편하는 중이다. 메타는 올해에만 AI 인프라 구축 등에 1,000억 달러(약 150조원) 이상을 투입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저커버그 CEO는 엔지니어들에게 AI 코딩 도구 활용을 독려해 왔으며, 직원 피드백 수집 등 일부 CEO 업무를 처리하는 AI 비서를 직접 개발하는 데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메타는 이번 구조조정을 대규모 AI 투자 비용을 일부 상쇄하기 위한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에버코어는 이번 감원으로 절감되는 비용이 30억 달러(약 4조5,0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했다.
美 빅테크, 올해 10만 명 이상 감원
메타의 감원 행보는 빅테크 업계 전반에서 진행되고 있는 조직 슬림화 흐름과 맞닿아 있다. 채용·해고 추적 사이트 레이오프스닷에프와이아이(Layoffs.fyi)에 따르면 올해 들어 미국 테크 업계에서만 10만8,700명 이상이 AI발(發) 구조조정의 여파로 일자리를 잃었다. 올 1분기에만 8만1,700명이 잘렸는데, 이후 6주 사이에 약 2만 명이 추가로 해고된 셈이다. 약 5개월 만에 지난해 감원 규모인 12만4,000명에 근접했다. 기업들은 이구동성으로 "AI 중심으로 조직을 재편한다"를 대규모 인력 감축의 이유로 내세웠다. 직원을 AI로 대체하고, 감원으로 확보한 자금을 AI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관련 설비 투자에 쓰겠다는 의미다.
아마존은 현재 가장 공격적인 감원을 진행 중인 기업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지난해 10월 1차 구조조정에 착수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도 추가로 1만6,000명의 기업 부문 인력 감축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부터 누적 감원 규모는 3만 명 수준으로 확대됐다. 감원 대상은 인사(HR), 운영, 디바이스·서비스, AWS 등 핵심 사업부 전반에 걸쳐 분산됐으며, 이는 아마존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력 감축으로 기록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역시 감원 기조를 이어가고 있다. MS는 작년 5월 전 세계 인력의 약 3%에 해당하는 6,000명을 감축한 데 이어 수주 뒤 추가로 300명 이상의 인력 조정을 단행했다. 이후 Xbox와 영업 조직을 중심으로 추가 감원 가능성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으며, 애저·혼합현실(HoloLens) 조직까지 영향권에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MS 산하 이력·커리어 중심 비즈니스 소셜미디어(SNS) 링크드인도 지난달 AI 중심 조직 재편 차원에서 전체 인력의 5%인 약 875명을 내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번 구조조정은 링크드인의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의 성장세를 기록한 가운데 이뤄졌다.
구글도 예외는 아니다. 구글은 지난해부터 플랫폼·디바이스 조직과 클라우드 조직, 인사 부문 등을 중심으로 수백명 단위 감원을 반복해 왔다. 대규모 일괄 해고보다는 사업부별 조직 재편 방식이 주를 이루고 있지만, 실제 감원 범위는 여러 부문에 걸쳐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 세일즈포스도 올해 초 1,000명 안팎의 인력을 감축한 데 이어 최근에도 마케팅, 제품관리, 데이터 분석, AI 관련 조직을 대상으로 추가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감원은 특정 사업부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조직에 걸쳐 분산적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본사 조직 역시 예외가 아니다.
전통적인 IT 인프라 기업들도 인력 감축 행렬에 동참하고 있다. 시스코는 지난달 14일 실적발표에서 전체 인력의 5%에 해당하는 4,000여 명을 감원한다고 발표했다. 시스코는 최근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 증가한 158억4,000만 달러(약 23조원)을 기록해 시장 전망치를 상회했지만, AI 사업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기 위해 인력 감축을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미국 인터넷 인프라 기업 클라우드플레어 역시 1분기 역대 최대 실적을 냈음에도 전체 인력의 약 20%인 1,100명을 내보내기로 했다. 매튜 프린스 클라우드플레어 CEO는 "개발자부터 인사(HR), 재무, 마케팅까지 회사 전반에서 매일 AI 에이전트를 활용해 업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일자리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될 것이라고 시사했다.

AI 효과 아직인데, 선제적 감원 '핑계'
다만 이 같은 대규모 해고의 이면에는 복잡한 속사정이 숨어 있다. 우선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과잉 채용에 대한 구조조정이다. 실리콘밸리 IT 기업들은 2022년 이후 전 세계적으로 70만 명 이상의 인력을 감축했는데, 이는 대부분 코로나19 당시 급격히 늘린 인력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 이런 상황에서 실제 AI가 업무를 대체하기도 전에 기업들은 ‘AI가 곧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만으로 감원을 단행할 좋은 핑계가 되는 셈이다. 이를 'AI 워싱(AI-washing·이미지 포장)'이라 부른다. 환경주의인 척하는 ‘그린워싱’이나 윤리 경영으로 위장하는 ‘에틱스 워싱’처럼 대중을 현혹하는 마케팅 관행에 빗댄 표현이다.
이는 수치로도 드러난다. 하버드비즈니스리뷰(HBR)가 올해 1월 글로벌 경영진 1,006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60%가 AI의 ‘잠재적 기대치(anticipation)’ 때문에 이미 인력을 감축했다. 응답자 가운데 AI 기술이 업무를 실제로 대체할 수 있어서 채용을 줄이거나 해고한 경우는 단 2%에 불과했다. 즉, 98%의 기업은 AI의 실제 생산성 제고 효과가 아니라 막연한 잠재력만을 근거로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고 있는 셈이다.
이는 투자자들에게 긍정적 신호로도 작용한다. AI와 노동 문제를 연구하는 브루킹스연구소의 몰리 킨더 선임 연구원은 이러한 형태의 선제적 해고가 경영진으로 하여금 시장에 일종의 신호를 보낼 수 있게 한다고 분석했다. 킨더 연구원은 뉴욕타임스(NYT)에 “‘우리는 최첨단 기업이며, AI를 도입했고, 비용 절감 방안까지 찾아냈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 ‘회사가 경영난을 겪고 있다’는 고백보다 투자자들에게 훨씬 매력적인 메시지가 된다”고 설명했다. AI 핑계는 정치적 위험을 피할 수 있는 안전한 선택지가 되기도 한다. 미국에 부메랑으로 돌아온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 등을 해고의 원인으로 돌리는 것보다는, 기술 혁신인 AI를 원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게 IT 업계의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