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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기업이 최우선" 공급망서 中 밀어내는 EU, 역내 제조업은 구조적 고비용 속 붕괴 국면

"유럽 기업이 최우선" 공급망서 中 밀어내는 EU, 역내 제조업은 구조적 고비용 속 붕괴 국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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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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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U의 '中 밀어내기' 행보, 무역 장벽·규제 전면 강화
유럽 제조업계 침체 국면, 대체 생산 여력 부족
'자국 우선주의'로 위기 타개하려는 EU, 에너지·인건비 구조 문제는 여전

유럽연합(EU)이 중국을 공급망에서 배제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통신, 철강, 재생에너지 등 역내 산업계 전반에서 공급망 자립 전략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다만 시장에서는 이미 기초 체력을 잃고 붕괴 위기에 직면한 유럽 제조업계가 중국의 빈자리를 메꾸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린다.

EU, 대중 무역 장벽 높여

2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최근 EU는 중국 기업·제품에 대한 무역 장벽을 속속 높이고 있다. EU 집행위원회는 지난달 새로운 사이버보안법(Cybersecurity act)을 공개하며 중국 통신 기업을 유럽 내 핵심 기반 시설에서 사실상 퇴출하기로 했다. 해당 법안에는 이동통신망 내 고위험 공급업체의 장비 사용 중단을 핵심으로 한 ‘5G 사이버보안 툴박스(tool box)’를 법제화하고, 장비 사용 규제 범위를 5G 이외로 확대하는 내용이 담겼다. 화웨이·ZTE 등이 고위험 공급업체로 지목된 가운데, 이들 업체 장비를 회원국 통신망에서 단계적으로 철거하도록 강제한 것이다.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도 올해 1월 1일부로 확정 기간에 돌입했다. 이에 따라 EU로 철강, 알루미늄, 시멘트 등을 수출하려는 기업은 단순히 탄소 배출량을 보고하는 것을 넘어, 검증된 배출량에 상응하는 CBAM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구매해 제출해야 한다. 이는 탄소 배출 집약도가 높은 중국산 철강을 겨냥한 조치로 풀이된다. 미국의 환경 및 에너지 컨설팅 기업 글로벌 이피션시 인텔리전스는 해당 조치로 인해 중국 철강업계가 톤당 최대 65유로(약 11만원)의 추가 비용을 짊어지게 될 것으로 추정했다.

이탈리아는 지난해 12월 EU 국가 중 처음으로 태양광 패널 공급 경매에서 중국산 모듈, 셀, 인버터의 참여를 전면 금지하기도 했다. 올해는 다른 유럽 국가들도 유사한 규정을 도입해 EU산 부품을 우선시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이 같은 '에너지 자립' 조치가 즉각적인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의 추정에 따르면, 중국산 부품 배제 결정 이후 이탈리아의 태양광 프로젝트 비용은 약 17% 증가했다. BNEF는 EU의 기후 정책 자금이 민간 투자를 충분히 유도하기에 부족한 가운데, 중국을 대체할 유럽 자체 생산 능력이 단기간에 확충될 가능성은 낮다고 지적했다.

가라앉는 유럽 제조업계

이 같은 비용 상승 문제는 재생에너지를 넘어 중국산 저가 제품 유입이 차단된 산업 분야 전반으로 확산할 가능성이 크다. 현재 유럽 제조업계가 공급망을 떠받칠 여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기 때문이다. 특히 유럽 제조업의 심장으로 꼽히는 독일에서는 기업들이 줄줄이 무너지며 위기가 가시화하고 있다. 할레경제연구소(IWH) 분석 결과, 지난해 독일에서 법적 청산 절차를 밟거나 활동을 중단한 기업은 총 1만7,605개에 이른다. 이는 2005년 이후 가장 높은 수치이자,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보다도 많은 수준이다.

독일 산업계 붕괴의 핵심 원인으로는 자동차 산업 부진과 제조업 경쟁력 추락이 꼽힌다. 중국의 저가 공세와 전기차 전환 지체로 독일 제조업이 설 자리를 잃었고, 이와 연계된 부품·물류·서비스업 등까지 연쇄적으로 타격을 입었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한 시장 전문가는 “제조업과 자동차 산업이라는 핵심 축이 흔들리면서 독일 경제 전체가 휘청이고 있다”며 “고금리와 인력난, 원자재 가격 상승 등이 기업들의 숨통을 옥죄고 있다”고 짚었다.

독일 제조업의 허리로 불리는 ‘미텔슈탄트(중소·중견 강소기업)’가 세계 각국에 팔려 나가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다. 지난달 30일 한국 공작기계 업체 DN솔루션즈는 독일 헬러(HELLER) 그룹의 인수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고 공시했다. 1894년 독일 뉘르팅겐의 장인 공방에서 시작된 헬러는 자동차 ·항공우주·방산 등 고난도 초정밀 공정에 특화된 독일의 대표적인 하이엔드 공작기계 업체다. 4대에 걸쳐 가족 경영을 이어가던 헬러가 경영권 매각에 나선 것은 '생존'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풀이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본격화한 공급망 위기와 핵심 전방 사업인 독일 완성차 업계의 부진으로 헬러의 부채비율은 386%까지 치솟은 상태였다.

삼성전자 역시 작년에만 두 곳의 독일 제조업체를 사들였다. 지난해 11월에는 유럽 최대 냉난방공조(HVAC) 기업 플랙트그룹을 인수했고, 12월에는 자회사인 하만이 독일을 대표하는 자동차 부품사 ZF 프리드리히스하펜(ZF)의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 사업 인수를 발표했다. 이 밖에도 독일 자동화 설비 제조 기업 만츠AG는 지난해 파산해 테슬라에 인수됐으며, 타이어 및 수리용품 분야 '히든챔피언'으로 불리는 레마팁탑,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핵심 부품 공급사인 리겐트파인바우 등도 해외 자본과의 인수 협상을 진행 중이다.

EU의 제조업 진흥 전략

EU는 이 같은 제조업계의 위기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자국 우선주의 노선을 택했다. 로이터에 따르면 EU 집행위는 이달 말 '산업 가속화법(IAA)'을 공개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스테판 세주르네 산업담당 수석부집행위원장이 주도하며, 중국산 저가 수입품에 맞서 유럽 산업을 강화하자는 취지로 추진된다. 궁극적인 목표는 2020년 기준 EU 총부가가치의 14.3% 수준이었던 역내 산업 생산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해당 법안에는 에너지 집약 산업, 자동차 산업 등 역내 주요 전략 산업 분야에 대한 외국인 투자 상한을 49%로 제한하고, 1억 유로(약 1,720억원) 이상 투자 시 사전 심사를 의무화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아울러 합작 투자 시 외국 기업이 확보한 기술 노하우를 EU 산업 발전을 위해 합작 대상 기업과 공유하도록 명시하고, 지식재산권(IP)은 EU 기업이 보유하도록 규정했다. 또한 외국 투자자는 합작법인 매출의 최소 1%를 EU 내 연구·개발(R&D)에 투자하고, 생산 제품에 투입되는 자재의 50% 이상을 EU 역내에서 조달해야 한다.

다만 이 같은 조치가 실질적인 경쟁력 제고 효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장에서는 독일을 비롯한 EU 국가들의 제조업 침체가 높은 에너지 가격과 인건비, 과도한 관료주의로 인한 행정 비용 부담 등 구조적 문제에서 기인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단순 보호무역만으로 위기를 해소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독일의 산업용 전기요금은 ㎾h(킬로와트시)당 181원으로 최근 4년 새 73%나 뛰었다. 재생에너지 비중을 높이는 과정에서 간헐성 한계를 넘지 못한 채 전력을 수입에 의존하면서 비용 부담이 대폭 가중된 것이다. 정부가 뒤늦게 산업용 전기요금 인상 억제 장치를 도입했지만, 이미 기업들은 버틸 체력을 잃은 상태다. 여기에 최저임금 역시 2020년 이후 37%나 뛰며 산업계 부담을 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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