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로 끝난 이란 침공” 미국-이란 종전 합의, 협정 서명해도 본협상 ‘산넘어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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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이란, 종전 MOU 타결·19일 서명식 최종 합의까지 60일 벌었지만 핵·동결자금 놓고 ‘외교전쟁’ 예고

세계 경제를 짓누르며 중동 전역을 화약고로 만들었던 이란 전쟁이 종식 수순에 들어갔다. 올해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전쟁이 시작된 지 106일 만이다. 다만 핵 프로그램과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 대이란 제재를 둘러싼 핵심 갈등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란 체제 역시 건재함을 과시한다. 전쟁은 멈췄지만 중동을 둘러싼 긴장의 뇌관은 여전히 제거되지 않은 셈이다.
트럼프 “호르무즈 개방·이란 해상 봉쇄 즉시 해제 승인”
14일(이하 현지시간)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소셜미디어(SNS)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이슬람 공화국과의 (종전) 협상이 완료됐다”며 “모두 축하한다”고 밝혔다. 이어 “나는 이로써 호르무즈 해협의 통행료 무료 개방을 전면 승인하며, 동시에 미국 해군의 즉각적인 봉쇄 해제를 승인한다”고 강조했다. 또 “전 세계 선박들이여, 엔진을 가동하라. 석유가 흐르게 하라(Ships of the World, start your engines. Let the oil flow!)”고 덧붙였다.
이란도 미국과의 종전 사실을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발표 직후 이란 카젬 가리바바디 외무부 차관은 이란 국영 TV에 출연해 “카타르의 중재로 약 15시간 동안 진행된 막판 협상에서 양측이 수정된 합의안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이란에 대한 미국의 해상 봉쇄 해제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분쟁이 종식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란의 합의 이행은 19일부터 공식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부연했다.
종전 양해각서(MOU) 체결 소식을 가장 먼저 알린 파키스탄의 셰바즈 샤리프 총리도 X를 통해 “미국과 이란 양측은 레바논을 포함한 모든 전선에서 군사 작전을 즉각적이고 영구적으로 종료한다고 선언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양국 간 막후 중재자 역할을 해 온 샤리프 총리는 공식 서명식이 19일 스위스에서 열릴 것이라고도 확인했다. 이어 “협상 타결에 따라 중재국들은 이번 주에 일련의 회의를 주선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발표는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한 이후 약 106일 만에 나왔다. 앞서 이란 국영 언론 등을 통해 유출된 14페이지 분량의 평화협정 초안에 따르면, 미국은 이란에 대한 석유 수출 제재를 전면 해제하고 이란은 협정 체결 후 30일 이내에 글로벌 에너지 젖줄인 호르무즈 해협을 완전 재개방하기로 합의했다. 양국 합의는 미국과 이란이 전황과 협상 조건을 두고 수주 동안 날 선 공방과 엇갈린 메시지를 주고받는 일촉즉발의 상황 속에서 이뤄졌다. 외교적 노력이 치열하게 전개되는 동안 유지돼 온 불안정한 휴전 체제가 평화협정으로 결실을 맺은 것이다.

핵·동결자금 놓고 팽팽한 줄다리기 전망
다만 실제 타결까지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가장 시급한 변수는 이란의 핵물질 처리다. 미국은 향후 60일의 협상을 통해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을 완전히 뿌리 뽑겠다는 심산이다. 미국은 이란이 그동안 농축해 온 고농축 우라늄 등 모든 핵물질의 즉각적인 '국외 반출'(제3국 이전) 또는 '영구적 폐기'와 향후 이란 영토 내에서의 핵물질 농축 활동 원천 금지라는 초강력 사후 통제 장치의 제도화를 요구하고 있다. 고농축 우라늄의 경우 이란 내 폐기에 미국이 동의하는 등 다소 물러선 상황이지만, 추가적인 핵물질 농축 활동 금지를 비롯한 사후 통제 장치에 대해선 한 치의 양보도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 이란은 미국과의 핵 협상은 종전 합의안이 이행된 후에나 이뤄질 것이라고 맞서고 있다. 이란은 핵물질 처리 문제를 주권 사안으로 규정하며 미국의 요구에 선을 그었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14일에도 "이란은 우라늄 농축 권리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며 "핵 프로그램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 아래 운영되는 평화적 사업"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미국이 요구하는 농축 활동 전면 중단과 핵물질 국외 반출은 협상 의제가 될 수 있어도 일방적 강요의 대상은 아니라는 입장을 거듭 확인했다.
해외에 묶여 있는 수백억 달러의 이란 자금 동결 해제 문제 역시 핵 문제 못지않게 본협상의 또 다른 난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제 제재로 민중봉기까지 경험한 이란으로서는 즉각적인 자금 유입과 경제 제재의 철회가 종전 협상을 수용한 최대 명분이다. 그만큼 이란으로서는 동결 자금 해제를 통한 조속한 자금 유입을 바라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자국 내 매파들의 반발을 의식해 조건 없는 동결 자금 해제 대신, 이란의 비핵화 조치 등 이행 수준에 따라 동결 자금을 단계적으로 풀어주는 '행동 대 행동' 원칙을 내세울 것으로 관측된다. 동결 자금을 즉각적으로 회수해 파탄 난 경제를 살리려는 이란과, 이를 최후의 제재 지렛대로 남겨두려는 미국의 줄다리기가 거세질 수 있다는 의미다.
호르무즈 해협 정상화 역시 세부 협상에선 양측 간 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MOU 서명과 함께 해협의 즉각 개방에는 공감대를 이뤘지만 향후 협상 과정에서 이란은 사실상 '통행료'를 비롯한 자신의 통제권을 강하게 요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팽배하다. 이미 이란 의회에서 관련 법까지 통과시킨 바 있다. 아라그치 장관은 13일 이란 국영 TV에서 "호르무즈 해협 관리 문제는 전쟁 이전의 상태로 돌아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통행료 부과 방침을 시사했다. 이에 반해 미국은 종전처럼 자유로운 항행이 보장된 항로 정상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60일간의 휴전에 합의하더라도 협상 진행에 따라 이란 내 강경파가 득세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변수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이란 혁명수비대(IRGC)와 초강경 보수 진영은 이번 합의가 호르무즈 해협 통제권과 핵 프로그램을 협상 카드로 소진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공개적으로 반발하고 있다. 실제로 일부 강경파 의원들과 보수 성향 언론은 미국의 제재 해제와 동결 자산 반환이 명확하게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 핵 문제와 해협 운영권을 협상 테이블에 올린 것 자체를 '굴복'으로 규정하고 있다. 더욱이 이란 정치권 일각에서는 미국과의 합의 자체를 체제 정당성 훼손으로 인식하는 기류도 여전하다. 강경파 세력은 핵물질 반출과 농축 제한, 호르무즈 해협 운영권 조정 등을 국가 주권 침해 사안으로 규정하며 협상단을 압박하고 있다.
미-이스라엘의 중동 재편 구상, 만성적 위기만 남겨
이는 전쟁을 촉발한 갈등 구조가 여전히 남아 있음을 방증한다. 트럼프 대통령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란에 맞서 승리를 거두면 중동을 재편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공격했을 당시 목표는 단순한 핵시설 제거가 아니었다. 공격 대상에는 핵시설뿐 아니라 혁명수비대 지휘부, 전략미사일 기지, 군사시설, 핵심 권력 인사들이 포함됐다. 미국은 군사적 충격과 경제적 압박을 통해 이란 정권의 통제력을 약화시키고, 내부 불만이 확대되기를 기대했다. 여기에 핵무기 개발 능력 제거와 호르무즈 해협 자유통항 확보가 결합되면 중동 질서를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중동 질서는 재편되고 있다. 하지만 미국과 이스라엘이 예상했던 방식은 아니다. 대규모 봉기는 발생하지 않았고, 권력 승계 체계 역시 예상보다 안정적으로 작동했다. 주요 원인은 이란 사회가 외부에서 예상했던 것만큼 쉽게 붕괴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경제난과 전쟁 피해가 반정부 봉기로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지만, 실제로는 외부 공격에 대한 반발과 체제 결속이 강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권력 구조 역시 생각보다 안정적이었다. 최고지도부와 군 수뇌부가 타격을 받았음에도 종교지도부, 혁명수비대, 관료조직으로 구성된 국가 운영체계는 그대로 유지됐다. 일부 지도부가 제거된다고 국가 전체가 즉시 붕괴하는 구조는 아니었던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도 중요한 변수였다. 두 국가는 전쟁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았지만 이란 체제가 붕괴하도록 방치하지 않았다.
정권 교체 실패의 가장 큰 이유는 호르무즈 해협이었다. 전쟁이 장기화될수록 미국과 이란 모두 핵시설보다 더욱 강력한 전략 자산이 호르무즈 해협이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됐다. 핵시설은 파괴할 수 있지만 해협은 제거할 수 없다. 무엇보다 세계 경제는 여전히 호르무즈를 필요로 한다. 미국이 정권 교체라는 정치적 목표보다 핵 문제 통제와 자유 항행 확보라는 현실적 목표에 무게를 싣기 시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란 역시 체제 생존을 확보하는 동시에 호르무즈 해협을 협상 지렛대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전략의 중심축을 옮겼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끝에 호르무즈 해협 길이 다시 열렸지만, 재개방이 곧바로 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전쟁은 멈췄지만 전쟁이 남긴 비용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드러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이란이 설치한 해상 기뢰를 제거하는 작업이 남았고, 페르시아만에 발이 묶인 선박 수백 척의 운항 스케줄을 재조정하는 데만도 수개월이 필요하다. 여기에 60일 핵 해체 실무협상은 시한폭탄 같은 변수다. 양측 이견이 팽팽해 협상이 삐걱거릴 때마다 국제유가와 금융 시장은 언제든 다시 출렁일 수 있다. 이란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남긴 상처도 가볍지 않다. 흐트러진 공급망과 고유가 후폭풍은 실물경제 곳곳에 타격을 입혔다. 에너지 가격 급등이 촉발한 인플레이션 압력 또한 각국의 공통된 난제다.
이번 전쟁에서 미국은 세계 최강의 군사력을 보여줬다. 하지만 현대 전쟁에서 군사적 우위가 곧 정치·외교적 성공을 뜻하지는 않는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이 단적인 예다. 전쟁은 이겼으나 미국은 지역 안정과 평화 구축에 실패했고 국력을 막대하게 소모하고 물러났다. 미·이스라엘-이란 전쟁 역시 마찬가지다. 미국이 강력한 화력을 쏟아붓고도 과연 전략적으로 원하는 결과를 얻었는지에 대해 큰 의문이 남는다. 전쟁 이전과 비교하면 중동의 세력 구도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란은 여전히 역내 핵심 행위자로 남아 있고, 이스라엘은 안보 위협을 제거하는 데 실패했다. 미국 역시 중동 질서를 새롭게 설계할 수 있는 결정적 우위를 확보하지 못했다. 전쟁의 결과가 새로운 질서의 출현으로 이어지지 못한 채 기존 갈등 구도만 더욱 선명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