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2조원 치매머니 공공신탁 확대, 이재명 정부 정책 실험 성공할까
172조원 치매머니 공공신탁 확대, 이재명 정부 정책 실험 성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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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치매 환자 100만 명 돌파, 2044년 200만 명 전망 국민연금 중심 공공신탁으로 치매 환자 자산관리 지원 전문인력 부족, 민·관 거버넌스 구축 등 과제도 산적

치매 환자 수가 100만 명 돌파를 앞둔 가운데, 인지 기능 저하로 사실상 사용이 중단된 이른바 '치매머니'의 규모가 170조원을 넘어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정부는 고령층 치매 환자의 자산 동결과 유용 위험을 구조적으로 해소하기 위해 국민연금을 중심으로 한 공공신탁 제도 확대에 착수했다. 치매안심 재산관리 지원 서비스를 통해 공공 영역에서 자산 관리의 부담을 지원한다는 취지지만, 현장의 전문 인력 부족과 공공·민간 협력 거버넌스 구축이라는 과제를 동시에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제도 안착까지는 넘어야 할 문턱이 적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 공공신탁 전남조직 신설
2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지난달 공공신탁 사업을 총괄하는 재산관리지원추진단을 신설하고, 기존에 19세 이상 장애인을 대상으로 운영해 온 공공신탁 사업을 올해부터 고령층 치매 환자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추진단은 지난해 말 변호사, 사회복지사 등 법률·재무·복지 분야 전문 인력 25명을 확충했다. 앞서 국민연금은 2022년 발달장애인 재산관리지원서비스를 출범한 데 이어, 2023년부터는 이를 본사업으로 전환해 운영 중으로, 현재까지 200여 명의 발달장애인으로부터 50억원가량의 자산을 위탁받아 관리하고 있다.
올해 시범 운영에 들어가는 치매안심 재산관리 지원 서비스는 고령자 또는 법정 후견인이 사전에 신탁 계약을 체결하면, 이후 치매 발병 시 수탁기관이 재산을 관리하면서 계약 내용에 따라 의료비, 요양비 등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인지 기능 저하로 의사결정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생활비와 치료비가 중단 없이 집행될 수 있도록 제도적 안전망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국민연금은 올해 상반기 750명 내외의 치매 고령층을 모집하는 것을 시작으로, 내년에는 대상자를 2,000여 명으로 확대하고, 2028년 본사업 전환을 추진할 계획이다.
치매 환자는 2023년 90만 명을 넘어선 데 이어 2025년 97만 명을 기록했다. 전체 고령 인구 대비 치매 유병률 역시 9%대를 유지 중이다. 보건복지부는 올해 치매 환자가 101만 명을 돌파하고, 2044년에는 2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한다. 치매 환자 급증과 함께 치매머니로 불리는 자산도 빠르게 늘고 있다. 치매머니는 치매 환자가 보유한 부동산, 예금, 주식 등 자산 가운데 인지 기능 저하로 인해 관리와 사용이 어려워지면서 사실상 동결된 자금을 의미한다. 지난해 말 기준 치매머니 규모는 172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공공후견제도 있지만, 한계도 많아
이처럼 치매 환자가 가파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공공신탁을 고령층 치매 환자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은 기존 치매 대응 정책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전문가들은 초고령화 사회에 들어선 한국에서 아직 치매머니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거나 보호하는 제도가 사실상 전무하다고 평가한다. 치매 공공후견제도가 있지만, 복잡한 업무의 특성상 이용률이 낮고 민간 신탁은 고액 자산가 중심의 영리 서비스로 설계돼 있어 대다수 치매 환자에게는 현실적인 대안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2018년 9월부터 2023년 말까지 누적된 후견 심판 청구 접수 건수는 680건에 그쳐 제도의 활용 범위가 극히 제한적임을 알 수 있다.
이런 한계 속에 이재명 정부는 지난해 '국정운영 5개년 계획안'을 통해 치매 국가책임제를 의료·돌봄 영역을 넘어 자산 관리와 생활 안정까지 확장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설정하고, 치매안심 재산관리 서비스를 중점과제로 제시했다. 관련 입법 논의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발의된 '치매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치매 환자, 경도인지장애 진단자 등 자산 관리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대상으로 재산의 관리·운용·지출을 지원하는 지원서비스의 제공을 명문화했다. 특히 국민연금공단을 주요 위탁 기관으로 규정하고, 필요시 관련 법인 또는 단체에 업무를 재위탁할 수 있는 조항을 포함해 민간 참여의 제도적 통로도 열어뒀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국에서 민관 협력 가능성을 열어둔 만큼, 일본 사례를 참고할 수 있다. 일본은 국가 차원의 관리와 행정적 통제를 넘어 민간의 자율적 역량과 공공의 신뢰성을 조화시키는 거버넌스 모델을 보여준다. 2000년대 이후 일본 정부는 비영리법인인 사회복지협의회와 은행권과 협력해 치매 환자의 예금 접근을 제한하고 보호하는 시스템을 구축해 왔다. 제도를 총괄하는 후생성은 지난 2024년 '고령자 등 종신 서포트 사업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는 등 공공 책임 하에 민간 서비스의 활성화를 독려하고 있으며, 민간 영역에서도 전국 고령자 등 종신 서포트 사업자 협회를 설립하는 등 제도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자발적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다.
노인 피해 예방 위한 장치 마련해야
그러나 한국이 일본과 같은 공공·민간 협력형 거버넌스 체제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선결 과제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한계로는 치매 환자 발굴과 서비스 연계를 담당하게 될 지역 치매안심센터의 전문인력 부족이 꼽힌다. 의료·요양·돌봄 서비스와 연계해 필요한 시점에 적절히 자금을 집행하기 위해선 대상자의 생활 환경과 욕구를 세밀하게 파악하고 서비스를 매칭할 수 있는 사회복지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 기준 치매안심센터 종사자 가운데 간호사가 53%를 차지하는 반면, 사회복지사는 14%에 그쳐 자산 관리와 생활 지원을 종합적으로 설계할 수 있는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평가가 제기된다.
노인 명의를 도용한 갈취나 횡령 피해를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도 과제로 지적된다. 실제로 재가 요양보호사가 치매 노인의 가정 상황을 파악한 뒤 입양 절차를 거쳐 재산에 접근한 사례가 보고된 바 있다. 독거노인의 경우, 요양보호사나 생활지원사에게 재산을 맡겼다가 피해를 입는 사례도 적지 않다. 가족의 부재와 돌봄 관계의 밀착이 동시에 위험 요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현장에서는 치매 환자의 가족 반발, 고령층의 심리적 거부감 등도 현실적인 걸림돌로 지목한다. 평생 재산을 직접 관리해 온 고령층은 통장을 제3자에게 맡기는 데 강한 저항을 보이고, 일부 가족은 상속권을 이유로 반대 민원을 제기하기도 한다.
금융권에서는 공공신탁 제도가 본격 도입될 경우, 유언대용신탁 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공공신탁 서비스는 무료인 데다, 재산 관리를 공공기관이 담당하도록 설계돼 있어 상당수 치매머니가 공공신탁으로 유입되고 유언대용신탁 이용자는 일부 고소득층에 한정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유언대용신탁은 생전에 재산 관리 방식과 사후 상속 대상, 지급 시기와 방법 등을 설계할 수 있는 상품으로, 최근 치매 환자의 자산 동결 문제가 부각되며 대안으로 주목받아 왔다. 다만 일각에서는 2050년 치매머니가 현재보다 3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중장기적으로는 관련 시장의 성장 가능성도 크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