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 외교 2막 시동” 우크라 종전 정조준한 트럼프, 러-우 자존심 걸린 ‘돈바스’가 협상 관건
입력
수정
푸틴과 약 1시간 통화 "전쟁 중단 필요" 강조 젤렌스키와도 전장 상황·평화 방안 논의 중동 분쟁 봉합 이후 우크라 외교전 재가동

이란과의 종전 합의의 토대를 마련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에 시동을 걸고 있다. 지난 4개월간 중동 전쟁에 가려졌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다시 협상 전면에 나서는 모습이다. 다만 핵 개발 제한과 제재 완화라는 비교적 명확한 교환 구조가 존재했던 이란 전쟁 협상과 달리 우크라이나 전쟁은 영토와 안보 체제가 정면으로 충돌하는 사안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중동 협상 과정에서 축적한 거래 외교와 중재 경험을 돈바스(루한스크·도네츠크)라는 난제에 어떻게 적용할지가 종전 협상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푸틴·젤렌스키와 연쇄 통화
14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유리 우샤코프 크렘린궁 외교정책 보좌관은 이날 기자들에게 트럼프 대통령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우크라이나 분쟁과 관련해 적대행위 중단이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다시 강조했다"고 전했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또 트럼프 대통령이 이번 주 프랑스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논의를 포함해 유럽 국가들, 키이우(우크라이나 정부)와 함께 행동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위한 미국의 중재 협상을 이끌어온 스티브 위트코프 트럼프 대통령 중동특사와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가 조만간 러시아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만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은 미국 행정부가 최근 이란 문제에 집중하면서 교착 상태에 빠진 상황이다. 크렘린궁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과 푸틴 대통령은 이날 통화에서 이란 분쟁과 관련한 외교 협상도 논의했다. 우샤코프 보좌관은 "미국과 이란 간 양해각서(MOU)를 둘러싼 상황이 논의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합의가 가까워졌으며 어렵지만 결국 성공적인 협상의 결과가 공개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통화는 트럼프 대통령이 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프랑스로 출국하기 직전에 이뤄졌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이번 정상회의의 핵심 의제 가운데 하나로 다뤄질 전망이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같은 날 트럼프 대통령과 별도로 전화 통화를 했다. 젤렌스키 대통령은 텔레그램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의 80세 생일을 축하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원에 감사를 표명했다고 공표했다. 또 평화를 앞당길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으며 우크라이나 동부 전선에서 자국의 군사적·전략적 위치가 개선되고 강화된 상황을 설명했다고 말했다. 양국 정상은 G7 정상회의 기간에 만나 추가 논의를 이어가기로 합의했다.
'3자협상' 과정서 거듭 종전 자신감 피력
이란과의 종전 협상을 사실상 마무리 단계에 올려놓은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을 다음 외교 과제로 삼고 있다. 중동에 이어 유럽에서도 중재에 성공할 경우 '전쟁을 끝낸 대통령'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확보하는 동시에 노벨평화상 도전에도 한층 힘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지난 1년 6개월여간 우크라이나 전쟁을 끝내기 위해 펼친 행보를 돌아보면, 미국이 지켜보는 가운데 러시아·우크라이나를 한자리에 모아놓고 협상하도록 '판'을 만든 것은 그 자체가 성과로 여겨진다.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전쟁 종전에 대한 낙관론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24년 미 대선을 전후로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미국 대권을 잡으면 취임 첫날 전쟁을 바로 끝낼 수 있다고 자신했었다. 이는 푸틴 대통령과의 개인적 친분에서 비롯됐다. 러시아 침략에 맞선 우크라이나의 항전을 유럽 동맹과 함께 강력하게 지원하던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의 노선에서 벗어나, 오히려 우크라이나에 양보를 강요하면서 푸틴과의 담판 외교로 전쟁 종식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은 것이다.
실제 트럼프 대통령의 이러한 구상은 지난해 1월 20일 집권 2기 취임과 함께 현실화했다. 그는 미국 우선주의에 따라 동맹을 상대로도 거래적 접근을 하는 데 기반을 둔 외교 정책 속에 그간의 지원 및 종전 중재를 빌미로 우크라이나 희토류 등 광물 활용권에 대한 미국과의 협정을 강요했다. 또 종전 협상에서 유럽을 패싱했다. 사사건건 침략국인 러시아의 손을 들어주는 모습 탓에 국제사회에서 '더티 딜'(dirty deal·추악한 거래)에 대한 우려와 비판을 키우기도 했다. 작년 2월 28일 백악관에서 열린 트럼프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의 미-우크라이나 정상회담이 트럼프 측의 젤렌스키에 대한 고성 및 질타 끝에 파국으로 끝난 것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이런 트럼프식 종전 접근법은 지난해 5∼6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양측을 튀르키예 이스탄불에 차려진 협상장에 앉히는 데까지는 성공했지만 미국이 빠진 협상 테이블에서 종전을 향한 진전은 사실상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이 푸틴 대통령에 대한 태도를 바꾸기 시작한 것도 이즈음이다. 그는 푸틴 대통령을 향해 "완전히 미쳤다", "불장난을 하고 있다", "우리에게 거짓말을 하고 있다" 등 거친 언사를 공개적으로 표출했다.
푸틴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은 듯 작년 7월에는 우크라이나에 대한 미국산 패트리엇 방공체계 추가 제공 등 지원 재개, 러시아에 대한 관세 및 2차 관세(러시아와 교역하는 국가의 대미 수출품에 부과하는 관세) 부과 위협 등 대러 압박 조처를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런 압박을 토대로 작년 8월 15일에는 푸틴 대통령을 미국 영토인 알래스카로 끌어내 정상회담을 하는 데 성공했다.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국제사회에서 심각하게 고립된 푸틴 대통령을 글로벌 강대국 정상으로서 극진히 대접했다. 하지만 결과는 휴전과 종전 중 어느 것도 합의되지 않은 노딜이었다. 이후 물밑에서 잠잠하게 이어진 트럼프 대통령의 종전 노력은 이달 14일 이란과의 종전 합의를 마무리하면서 다시 시동이 걸린 모양새다.

트럼프가 마주한 돈바스의 벽
다만 우크라이나 전쟁은 중동 협상보다 훨씬 복잡한 문제를 안고 있다. 이란과의 협상은 핵 개발 제한과 제재 완화라는 교환 조건이 존재했다. 미국은 군사 압박을 통해 협상력을 확보했고, 이란은 경제적 출구를 확보하는 방식으로 타협점을 찾았다. 협상 과정은 복잡했지만 거래 구조 자체는 비교적 명확했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성격이 다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북부 수미주와 하르키우주 일부 점령지를 반환하는 대신 돈바스 전역에 대한 통제권을 요구하고 있다. 현재 러시아는 돈바스 전체 면적의 약 88%를 장악 중이다. 문제는 교환 비율이다. 러시아가 반환하겠다고 제시한 면적은 440㎢ 수준인 반면, 우크라이나가 넘겨야 하는 지역은 약 6,600㎢에 달한다. 단순 면적 기준으로도 격차가 크다. 러시아는 크림반도 병합 인정과 일부 경제제재 해제도 요구하고 있다. 영토 인정과 제재 완화를 동시에 확보하려는 계산이다.
더구나 돈바스는 러시아가 침공 명분으로 내세운 지역이다. 러시아어 사용 비중이 높고 친러 세력이 강한 지역적 특성이 존재한다. 푸틴 대통령은 개전 이후 줄곧 러시아계 주민 보호를 전쟁 명분으로 제시해 왔다. 종전 과정에서 이 지역을 양보하는 순간 전쟁의 정치적 정당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다. 군사적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돈바스는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하는 전략 축선이다. 러시아는 전쟁 기간 동안 이 지역을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해 왔다. 전략적 가치도 상당하다. 돈바스를 확보할 경우 크림반도와 본토를 육상으로 연결할 수 있다. 흑해 접근성과 산업 기반, 자원 지대까지 동시에 확보하게 된다.
하지만 우크라이나 역시 물러설 공간이 넓지 않다. 돈바스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철도와 도로망이 집중된 전략 거점이다. 수도 키이우를 비롯한 핵심 도시들과 연결되는 교통망이 형성돼 있다. 특히 도네츠크 서부에는 우크라이나군이 10년 이상 구축해 온 요새 벨트가 존재한다. 코스탄티니우카와 슬로우얀스크를 연결하는 방어선은 러시아군 진격을 차단해 온 핵심 축이다. 전쟁연구소(ISW)는 우크라이나군이 해당 지역 방어 체계 구축에 막대한 자원을 투입했다고 평가한다. 러시아가 이 지역을 확보할 경우 향후 추가 공세를 위한 군사적 교두보를 확보하게 된다는 의미다. 유럽 각국이 돈바스 협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러시아가 돈바스 지역을 완전히 통제하면 전후 유럽 안보 환경 자체가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트럼프 행정부 입장에서도 중동 경험이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국면은 아니다. 이란 협상은 경제적 보상을 통해 상대국의 행동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나, 우크라이나 전쟁은 영토와 국가 안보가 결부된 사안이다. 거래 비용도 훨씬 크고 정치적 부담도 훨씬 무겁다. 결국 우크라이나 종전 협상의 성패는 돈바스 동부를 포기하는 대가로 우크라이나가 무엇을 확보하느냐에 달려 있다. 미국과 유럽의 안전보장, 전후 재건 지원, 장기 군사원조가 결합되지 않으면 우크라이나가 영토 양보를 수용할 정치적 명분을 확보하기 어렵다.
최근 미국과 우크라이나가 논의한 종전 구상에 돈바스 일부를 비무장지대 또는 자유경제구역으로 전환하고 국제사회가 관리하는 방안이 포함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해당 구상은 군사 충돌을 통제하면서도 영토 문제의 최종 결론을 유예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러시아의 완전한 병합도, 우크라이나의 즉각적인 영토 회복도 현실성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돈바스를 별도 관리구역으로 묶어두려는 시도다. 다만 러시아가 이를 순순히 수용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한 외교 전문가는 "돈바스 문제는 영토 분쟁을 넘어 전후 질서 재편과 직결돼 있다"며 "국제사회가 개입하는 장기 관리 체제가 현실적인 선택지로 거론되지만, 푸틴 대통령 입장에서는 승전 서사의 상당 부분을 내려놔야 하는 부담이 따를 것"이라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