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GE베르노바 밀려나" 스웨덴 SMR 공급사로 롤스로이스 낙점, 유럽 에너지 안보 강화 위한 선택인가
입력
수정
스웨덴 국영 바텐팔, 英 롤스로이스로부터 SMR 공급받는다 경쟁 상대 GE베르노바, 경험·기술력 갖춘 전통적 사업자 아직 상업 운전 경험 없는 롤스로이스, '유럽 우선' 기조 올라타

스웨덴 국영 전력회사 바텐팔이 차세대 소형모듈원자로(SMR) 공급사로 영국 롤스로이스를 선택했다. 실질적인 상업 원전 건설·운영 경험을 아직 갖추지 못한 롤스로이스가 검증된 사업자인 미국 GE베르노바를 제치고 사업권을 따낸 것이다. 이는 최근 유럽권 국가들 사이에서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에너지 안보 강화 기조에서 기인한 결정으로 읽힌다.
스웨덴 SMR 수주 경쟁 마무리
15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롤스로이스가 미국 GE베르노바를 제치고 바텐팔의 차세대 SMR 공급사로 등극했다고 보도했다. 앞서 바텐팔은 지난해 8월 자회사인 비데베리 크라프트가 총발전 용량이 각각 1,500메가와트(MW)에 근접하는 GE버노바의 BWRX-300 원자로 5기 또는 롤스로이스의 SMR 3기를 발주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비데베리 크라프트는 바텐팔이 80%, 스웨덴 주요 대기업들이 나머지 20%의 지분을 보유 중인 원자력 프로젝트 전문 기업이다.
이에 따라 롤스로이스는 스웨덴 남서부에 있는 기존 링할스 원전 부지에서 설계 기준 약 470MW급 원자로 3기를 동시에 건설하는 대규모 사업을 수행하게 됐다. 안나 보리 바텐폴 최고경영자(CEO)는 업체 선정 이유와 관련해 "롤스로이스 SMR의 제안이 공급망, 건설 시기, 수익성 측면에서 가장 우수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원전 핵심 부품과 관련해 공급망이 이미 잘 구축돼 있으며, 대부분의 공급업체가 지리적으로 스웨덴과 가깝다"며 "이는 운송 경로의 차질 위험이 적을 뿐만 아니라, 지정학적 영향에도 덜 노출된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스웨덴이 새 원전을 건설하는 것은 40여 년 만에 처음이다. 스웨덴은 지난 1980년 국민투표를 통해 기존 원전의 단계적 폐기 정책을 추진해 왔으나, 2022년 2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원전 부활 쪽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했다. 최근 스웨덴 정부는 최대 4,400억 크로나(약 70조7,000억원) 규모의 대출 지원, 40년 간의 전력 가격 보장, 핵폐기물 관리 지원 등의 유인책을 제시하며 최소 5,000MW 규모의 신규 원전 건설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스웨덴 내에서 가동 중인 원자로는 총 6기이며, 이를 통해 생산되는 전력은 전체 중 약 3분의 1 수준이다.
GE베르노바의 전통적 입지
시장은 바텐팔이 GE베르노바가 아닌 롤스로이스를 공급사로 낙점했다는 데 주목하고 있다. 건설 경험, 기술력 등을 고려하면 GE베르노바가 보다 '안전한' 선택지였다는 것이다. GE베르노바는 2024년 설립된 신생 기업이지만, 그 모태는 13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GE의 전력 사업이다. GE 파워, GE 리뉴어블에너지, GE 디지털, GE 에너지파이낸셜서비스 등을 통합해 출범한 것이 GE베르노바이기 때문이다. 현재 GE베르노바는 가스터빈, 원전, 수력, 풍력, 전력망 장비를 모두 보유한 세계 최대 에너지 장비 기업 중 하나이자, 탄탄한 발전소 건설·플랜트(EPC) 수행 경험과 글로벌 서비스 네트워크를 갖춘 검증된 사업자로 꼽힌다.
SMR 시장에서의 존재감 역시 상당하다. 지난 2월 폴란드 국영 에너지 기업 오를렌과 화학 기업 신토스의 합작법인인 오를렌 신토스 그린 에너지(OSGE)와 SMR 'BWRX-300' 모델의 유럽형 설계를 위한 계약을 맺은 것이 대표적이다. 해당 계약은 1억 달러(약 1,510억원)를 웃도는 규모로, 기술 도입을 넘어 폴란드의 법적 규제 및 에너지 시장 환경에 최적화한 '폴란드형 SMR'을 설계하는 게 골자다. BWRX-300은 기존 대형 비등경수로(BWR) 기술을 소형화해 구조를 단순화한 모델이며, 현재 글로벌 SMR 시장에서 상용화 속도가 가장 빠르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에 더해 GE베르노바는 지난 3월 일본의 글로벌 테크놀로지 및 인프라 기업 히타치와 동남아시아 SMR 배치를 위한 양해각서(MOU)를 공식 체결하기도 했다. 동남아시아의 지리적·경제적 특성을 고려해 대형 원전 대신 초기 건설 비용이 저렴한 SMR을 앞세워 시장 공략에 나선 것이다. 현시점 동남아시아 내에서 특히 SMR 도입에 적극적인 국가로는 필리핀과 인도네시아가 꼽힌다. 필리핀은 전기 요금 급등 및 잦은 정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SMR을 '게임 체인저'로 지목한 상태이며, 인도네시아 역시 1만7,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국토 특성상 분산형 전원 구축에 적합한 SMR 건설을 검토 중이다.

롤스로이스 SMR 사업, 이제야 '첫발'
반면 롤스로이스는 아직 상업용 원전을 건설하거나 운영한 실적이 없는 기업으로, 오랫동안 영국 해군 핵잠수함용 원자로를 공급하다가 201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야 민간 원전 시장에 진출했다. 영국 정부 주도의 SMR 프로젝트에 발맞춰 약 150명 규모의 개발팀을 꾸리고, 경수로 기반 SMR 설계에 착수한 것이다. 해당 사업은 2017년 영국 정부로부터 최대 5,600만 파운드(약 1,130억원)의 연구·개발(R&D) 자금을 확보하면서 궤도에 올랐고, 2019~2021년에 걸쳐 두 차례 추가 지원금이 투입되며 본격적인 상용화 프로젝트로 발전했다.
다만 아직 상용화 준비가 완전히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롤스로이스 SMR은 2022년 영국 원자력규제청(ONR)의 일반설계심사(GDA)에 들어갔으며, 현재까지도 인허가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상업 운전 중인 원전은 단 한 기도 없다. 그럼에도 영국 정부는 지난해 약 2년간 이어진 국가 SMR 경쟁입찰 끝에 롤스로이스를 최종 사업자로 선정하고, 이를 "영국 최초 SMR 건설 프로젝트"로 규정했다. 사업 부지는 웨일스 윌파(Wylfa)로 최대 3기의 롤스로이스 SMR이 들어설 예정이다.
이 프로젝트의 재원 대부분은 정부에서 나온다. 영국 정부는 지난해 해당 사업에 25억 파운드(약 5조600억원)를 배정했고, 올해 국가부유기금(NWF)을 통해 최대 5억9,900만 파운드(약 1조2,100억원)를 추가 지원하기로 했다. 이는 롤스로이스 SMR이 아직 독자적인 상업성을 입증하지 못한 결과로 풀이된다. 프로젝트가 완성되면 최소 1,400MW의 전력이 향후 60년 이상 약 300만 가구에 공급될 것으로 추산되나, 최종 투자 결정(FID)이 2029년 전후로 예정돼 있는 만큼 실제 착공과 상업 운전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가능성이 크다.
전문가들은 바텐팔이 이처럼 아직 경험이 부족한 롤스로이스를 공급사로 선택한 핵심 배경으로 에너지 안보를 꼽는다. 한 시장 전문가는 "순수한 기술력이나 사업 경험만 놓고 보면 GE베르노바 같은 미국 기업이 더 무난한 선택지였을 수 있다"면서도 "하지만 최근 유럽 각국이 에너지 안보와 공급망 자립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스웨덴 입장에서는 역내 기술과 산업 생태계를 육성할 수 있는 유럽 기업에 더 높은 점수를 줬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