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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냐 안보냐” EU, 우크라이나 가입 협상 개시, 돈바스·크림반도 향방에 달린 우크라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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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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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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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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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제도·법률' 분야 논의 착수
헝가리 정권 교체에 물꼬 트여
전후 유럽 안보 구조 재설정 가능성

유럽연합(EU)이 러시아 침공에 맞서 5년째 전쟁 중인 우크라이나를 회원으로 받아들이기 위한 가입 절차를 공식 개시했다. 표면적으로는 법치주의와 제도 개혁을 검증하는 절차지만, 이면에서는 돈바스와 크림반도의 향방을 둘러싼 전후 질서 재편 논의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우크라이나의 EU행이 현실화될수록 러시아와 서방이 수용 가능한 새로운 균형점에 대한 논의도 한층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후보국 된 지 4년 만에 첫 단추

15일(이하 현지시간) EU는 룩셈부르크에서 열린 27개 회원국 외무장관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의 가입 협상 첫 클러스터(단계)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첫 단계에서는 법치주의, 사법 개혁, 공공행정 기준 등 EU 가입의 토대가 되는 핵심 제도들이 다뤄진다. 회의에 참석한 타라스 카츠카 우크라이나 부총리는 “우리에게 이는 진정한 ‘루비콘강’을 건너는 순간이자 역사적 이정표”라며 “우크라이나 사회 전체는 EU 가입을 국가적 꿈으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의 위협에 맞서 국가 안보를 보장하고 장기적인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EU 가입이 필수적이라고 판단해 이를 핵심 외교 목표로 추진해 왔다. 우크라이나는 2022년 2월 러시아의 침공 직후, 역시 러시아의 안보 위협을 우려하던 이웃 국가 몰도바와 함께 EU 가입을 신청했다. 두 나라는 같은 해 6월 EU 후보국 지위를 획득했다. EU는 2024년 6월 우크라이나와 몰도바를 상대로 가입 협상을 개시할 계획이었지만, 친러시아 성향의 빅토르 오르반 전 총리가 이끌던 헝가리의 반대로 실질적인 협상은 시작조차 하지 못했다.

교착 상태에 빠졌던 협상은 지난 4월 실시된 헝가리 총선에서 오르반 전 총리가 16년 만에 실각하며 트였다. 머저르 페테르 신임 총리는 최근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지지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던 우크라이나 내 헝가리계 소수민족의 권리를 강화하기 위한 합의를 젤렌스키 대통령과 타결 지으며, 우크라이나는 2년간 진도를 내지 못하던 EU 가입 협상의 첫 단추를 끼울 수 있게 됐다. 다만 실제 가입까지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EU 가입 후보국은 법치, 안보, 환경, 농업 등 6개 분야와 35개 세부 항목에 걸쳐 자국 법과 제도를 EU 기준에 맞춰야 한다. 최종 가입에는 기존 27개 회원국 모두의 동의가 필요하다.

EU행 최대 변수, 돈바스와 크림반도

우크라이나의 EU 가입 협상 재개가 주목받는 이유는 돈바스와 크림반도 문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점령하거나 실효 지배 중인 영토를 둘러싼 분쟁은 그동안 우크라이나의 서방 편입 과정에서 가장 복잡한 지정학적 난제로 꼽혀 왔다. 러시아는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했고, 돈바스 일대의 친러 분리주의 세력을 정치·군사적으로 지원해 왔다. 2022년 전면전 이후 이 지역은 러시아가 전쟁 목표를 정당화하는 중심 명분으로 고착됐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크림반도와 돈바스는 주권 회복의 상징이자 국내 정치 정당성의 기반이다. 그러나 전쟁 장기화와 인명·재정 부담이 누적되면서 서방 일각에서는 영토 문제와 안보 보장을 연계하는 현실론이 재차 제기됐다. 최근 미국발 평화 구상에서도 돈바스 양보와 장기 안보 보장을 묶는 방안이 거론되며 우크라이나의 전략 선택지를 압축시켰다.

러시아의 계산 역시 단선적으로 보기 어렵다. 러시아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확대를 직접 안보 위협으로 규정해 왔지만,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에는 상대적으로 유연한 언급을 내놨다. 실제 크렘린궁은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주권적 선택으로 표현하면서도 나토 가입은 별개 안보 사안으로 분리했다. 이 간극은 향후 협상에서 EU 가입과 군사동맹 배제를 교환하는 절충 구도의 여지를 남긴다는 평가를 받는다.

돈바스와 크림반도는 러시아에 있어 군사적 완충선이자 국내 정치적 전리품이다. 돈바스 확보는 러시아어권 주민 보호와 산업지대 장악이라는 명분을 제공하고, 크림반도는 흑해함대와 남부 해상 접근권을 보장한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노리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이곳이 지리적 요충지기 때문이다. 크림반도를 병합함으로써 1년 내내 얼지 않는 부동항을 확보하게 된 러시아 입장에서는 어떻게든 크림반도와 러시아 본토를 연결시키는 육로가 필요하다.

현재 크림반도는 여전히 본토와 떨어진 외딴섬 같은 존재로, 2018년 개통된 케르치 해협 다리를 통해서만 본토와 연결돼 있다. 하지만 돈바스 전역을 정복할 경우, 마리우폴 항구를 통해 크림반도와 지중해로 연결되는 새로운 접근 통로를 확보하게 된다. 특히 러시아가 이 두 축을 확보한 상태에서 우크라이나의 EU 가입을 묵인하면, 전쟁 목표의 최소 충족과 서방과의 장기 충돌 완화라는 이중 효과를 노릴 수 있다.

러시아 침공 차단할 ‘EU 방패’

우크라이나에는 정반대의 계산이 작동한다. 우크라이나 입장에서도 돈바스를 잃는 건 비극이다. 돈바스는 2014년 내전 이후 우크라이나가 공들여 요새를 구축해 온 핵심 방어선 역할을 하고 있는 곳이다. 이 방어선이 무너질 경우 서쪽에 위치한 평원지대인 하르키우, 드니프로페트로우스크에 새로운 방어선을 구축해야 한다. 돈바스는 또한 우크라이나의 교통 요지기도 하다. 수도 키이우와 동부 하르키우를 잇는 철도가 지나가며, 마리우폴로 가는 철도 역시 이곳을 통과한다. 러시아가 돈바스를 점령하면 수도 키이우까지 곧바로 노출될 가능성이 높아지는 셈이다.

하지만 영토 일부의 상실을 감수하더라도 EU 제도권 편입이 확정되면 우크라이나는 경제 재건, 제도 안정, 장기 안보 후견을 동시에 확보할 수 있다. 러시아가 향후 우크라이나를 다시 압박하는 순간 EU의 정치·경제 영역을 직접 흔드는 사안으로 비화하기 때문이다. EU 가입은 나토식 집단방위 조항과는 성격이 다르지만 우크라이나에 강력한 억지 자산으로 기능하는 건 매한가지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EU 편입은 유럽 안보의 전방선을 동쪽으로 이동시키는 결정이다. 기존 EU의 실질 방어선이 폴란드와 발트 3국을 중심으로 형성됐다면, 우크라이나 가입 이후 경계선은 돈바스와 흑해 북부까지 확장된다. 러시아를 유럽 안보 질서의 외부자로 고착시키는 동시에 EU가 전쟁 이후 우크라이나의 재건·방위·제도 개혁 비용을 장기간 떠안는 구도다.

물론 EU 내부의 부담도 없진 않다. 우크라이나는 대규모 농업 생산국이자 전쟁 피해 복구 수요가 막대한 국가다. EU는 올해 우크라이나 지원을 위해 900억 유로(약 157조7,800억원) 규모의 금융 패키지를 승인했으며, 에너지 인프라 복구와 방산 생산 확대 지원도 병행하고 있다. 가입이 현실화될 경우 공동농업정책, 지역개발기금, 노동시장, 에너지망, 방위산업 조달 구조가 모두 조정 압력을 받는다. 프랑스와 폴란드 등 농업 이해관계가 큰 회원국의 반발도 협상 후반부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EU가 협상 개시에 나선 배경에는 장기 안보 비용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다. 우크라이나를 회색지대로 남겨둘 경우 러시아의 재침공 가능성, 난민 유입, 에너지 교란, 사이버 공격, 군비 경쟁이 반복될 공산이 크다. 이에 EU는 우크라이나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불안정의 외부 비용을 내부 통제 비용으로 전환하려 하는 것이다. 서방 강경론 진영 일각에서는 영토 양보를 전제로 한 종전안이 1938년 뮌헨협정의 재현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오지만, 현재 유럽 안보 환경은 당시와 다르다. 수데텐란트 할양 이후 체코슬로바키아는 외부 안보 보장 체계와 분리됐으나, 우크라이나는 유럽 정치·경제 체제 내부로 편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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