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테라팹' 구상, AI 칩 공급 불안이 부른 파운드리 내재화 실험
테슬라 '테라팹' 구상, AI 칩 공급 불안이 부른 파운드리 내재화 실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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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 테라팹 승부수, 높은 진입 장벽에 회의론 적자 속 기술 투자 나선 인텔, 테슬라 가세 시 과도한 출혈 경쟁 테슬라 수주로 실적 숨통 튼 삼성전자, 장기적 경쟁 심화 우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반도체 공급망 불안 해소를 위해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인 '테라팹(TeraFab)' 건설을 공식화하면서 파운드리업계에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다만 막대한 자본과 노하우가 필요한 시장 특성상, 반도체 명가 재건을 노리는 인텔조차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며 고전하고 있어 실현 가능성에는 물음표가 붙는다. 삼성전자도 당장 테슬라 물량 확보라는 호재를 맞았지만, 장기적으로는 고객 이탈과 새로운 경쟁자 부상에 따른 출혈 경쟁이라는 복합적인 위기 상황을 마주하고 있다.
공급망 불안이 쏘아 올린 공
1일(이하 현지시간) 반도체업계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최근 2025년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자체 반도체 생산 시설인 테라팹 건설의 필요성을 공식화했다. 머스크 CEO가 구상하는 테라팹은 단순한 위탁 생산 공장을 넘어 파운드리와 메모리, 첨단 패키징 설비까지 모두 갖춘 완전 수직계열화 형태의 종합 반도체 제조 시설로, 미국 내 구축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는 전기차의 배터리와 부품, 완성차를 한곳에서 생산해 효율을 극대화한 테슬라 기가팩토리와 유사한 형태로, 매달 10만 장 이상의 웨이퍼를 생산하는 세계 상위 파운드리 기업 수준의 역량을 지향한다.
머스크 CEO가 대규모 자체 생산 시설 구축을 계획한 배경에는 기존 반도체 공급망의 구조적 한계와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작용했다. 그는 삼성전자와 대만 TSMC, 미국 마이크론 등 주요 파트너사의 생산량을 최대치로 가정하더라도 3~4년 후 급증할 AI 수요를 충족하기 어렵다고 진단했으며, 특히 첨단 반도체 생산의 90% 이상이 한국(삼성전자)과 대만(TSMC)에 집중된 상황에서 대만 해협의 긴장 고조가 TSMC 공급망 차단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과거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의 반도체 부족 사태와 최근 팀 쿡 애플 CEO가 언급한 3나노(㎚·1나노=10억분의 1m) 공정 병목 현상, 그리고 고성능 메모리 가격 상승 압력 또한 이러한 판단에 힘을 실었다. 머스크 CEO는 인공지능(AI) 칩이 제때 공급되지 않으면 테슬라의 주력 제품인 옵티머스(Optimus) 로봇은 '오즈의 마법사'에 나오는 깡통 인간처럼 무용지물이 될 것이라며 반도체 확보가 곧 기업의 생존 과제임을 강조했다.
하지만 테슬라가 내놓은 구상이 실제로 구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파운드리 운영을 공학과 과학, 예술의 경지(artistry)가 결합된 고난도 영역으로 정의하며, 오랜 기간 반도체 사업을 영위해 온 인텔조차 고전하는 현실에 비춰볼 때 테라팹 구축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IT 매체 톰스하드웨어 역시 삼성전자와 TSMC만이 진입한 2나노 공정에 제조 경험이 전무한 테슬라가 곧바로 뛰어든다는 발상 자체가 최첨단 반도체 생산 시설의 복잡성을 간과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테슬라-인텔 치킨게임 전망
전문가들의 지적처럼 테라팹은 막대한 자본과 수십 년간 축적된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파운드리 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을 넘어야 한다. 테슬라에 앞서 반도체 명가 재건을 목표로 시장에 재진입한 인텔의 사례는 이러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준다. 펫 갤싱어 인텔 CEO는 2021년 3월 글로벌 미디어 브리핑을 열고 파운드리 사업 계획 등을 담은 'IDM 2.0' 비전을 발표했다. 인텔은 200억 달러(약 29조원)를 투자해 미국 애리조나주에 새로운 팹(공장) 두 곳을 건설하고 파운드리 시장에 진출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인텔 파운드리 부문은 2024년 4분기에만 22억6,000만 달러(약 3조원), 연간으로는 134억800만 달러(약 19조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애널리스트들은 인텔 순손실이 지난해 2억6,700만 달러(약 3,800억원)에서 올해 4억 달러(약 5,800억원)로 확대돼, 3년 연속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한다. 그럼에도 인텔은 기술적 반등을 위해 대당 4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 1위 반도체 노광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의 차세대 고개구율(High-NA) 극자외선(EUV) 리소그래피 장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TSMC가 2028년까지 기존 장비를 활용하려는 것과 달리, 인텔은 2027년 14A(1.4나노미터급) 양산을 목표로 고NA 장비를 선제 배치해 기술적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러한 인텔의 공격적인 행보는 최근 미국 내에서 일정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인텔은 차세대 기술이 적용된 대형 AI 칩 테스트베드를 공개하며 18A(1.8나노급) 공정의 제조 및 패키징 역량을 시연했다. 미국 투자은행(IB) 키뱅크는 인텔의 18A 공정 수율이 60%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했는데, 이는 80% 수준인 TSMC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경쟁사인 삼성전자와 경합할 수 있는 수치라는 분석이다. 또한 엔비디아가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하고 아마존웹서비스(AWS) 등 주요 하이퍼 스케일러들이 인텔 공정 활용을 검토하는 등, 미국 정부의 지원 하에 자국 내 반도체 생태계의 호응을 이끌어내고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다만 업계 일각에서는 머스크 CEO의 예측대로 시장 규모가 급성장한다 하더라도, 과도한 투자 경쟁이 수익성을 갉아먹는 '치킨게임'으로 변질될 것으로 보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한정된 자원이다. 현재 미국 내에서 인텔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고 있는 상황에서 테슬라의 테라팹까지 더해질 경우, 한정된 장비와 인력, 보조금을 둘러싼 경쟁이 심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수요가 늘어나도 천문학적인 선행 투자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하는 구조 속에서는 후발 주자들이 수익분기점을 넘기기 어렵다고 입을 모은다. 자칫 미국 기업 간의 경쟁이 과열될 경우, 압도적인 점유율과 수율을 확보한 TSMC가 반사이익을 얻으며 독주 체제를 굳힐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의 파운드리 전략: 단기적 기회와 장기적 불확실성 공존
머스크 CEO의 테라팹 구상과 인텔의 행보는 삼성전자에 복합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단기적으로 AI 칩 확보에 대한 머스크 CEO의 강력한 의지는 삼성전자 파운드리에 기회 요인이다. 머스크 CEO는 지난달 18일 소셜미디어(SNS) X를 통해 AI 칩 'AI5' 설계가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고 'AI6' 개발도 착수했음을 알리며, 향후 9개월 단위의 설계 주기로 'AI9'까지 이어지는 개발 로드맵을 제시했다. 이 계획을 실행하기 위한 주요 파트너로는 삼성전자가 거론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7월 테슬라와 165억 달러(약 24조원) 규모의 공급 계약을 체결했고, 올 하반기 가동 예정인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서 AI5와 AI6를 양산할 계획이다. 테슬라의 물량이 TSMC와 삼성전자로 분산되면서 삼성전자는 수주 잔고를 확보하게 됐으며, 이는 2나노 GAA 공정의 레퍼런스 확보와 파운드리 사업 실적 개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애플의 이미지센서와 닌텐도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수주 등 고객사 다변화 흐름에 테슬라의 물량이 더해지며 실적 반등의 계기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볼 때 테슬라의 내재화 전략은 삼성전자와의 협력 관계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머스크 CEO가 칩 개발 과정에서 수율 관리나 비용 협상의 한계를 인식하고, 결국 생산 통제권을 갖는 자체 생산을 목표로 하는 것으로 분석한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테슬라는 표면적으로 듀얼 소싱 전략을 유지하고 있으나, 테라팹 선언은 궁극적으로 외부 의존도를 낮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이 장기적 파트너십보다는 테슬라가 자체 역량을 갖추기 전까지의 과도기적 성격을 띨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업계에서는 테슬라가 당장은 공급 부족 해소를 위해 협력하고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주요 고객사 명단에서 이탈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더욱이 테슬라의 테라팹 구상은 삼성전자와의 파운드리 경쟁을 의미한다. 테슬라가 자체 물량을 소화한 후 잉여 생산 능력을 활용해 구글이나 메타 등 다른 빅테크 기업들의 칩 생산까지 수주할 경우, 파운드리 시장 구조에 변화를 줄 수 있다. 1위 TSMC가 시장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인텔이 추격해 오고 테슬라마저 진입할 경우, 한정된 시장 내에서 경쟁이 심화되고 수익성이 저하될 우려가 있다. TSMC와의 기술 격차를 좁히는 과제와 동시에, 자금력을 갖춘 테슬라 및 인텔의 추격을 방어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