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 통제 흐름과 반대로 가는 스페인, 불법 체류자 100만 명 합법화하며 경제 성장과 사회통합 정조준
이민 통제 흐름과 반대로 가는 스페인, 불법 체류자 100만 명 합법화하며 경제 성장과 사회통합 정조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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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관광 등 핵심 산업에 이주민 적극 활용 2000년대 초부터 이민자 포용 정책 지속 "공공 시스템 부담 요인" 비판 제기

스페인 정부가 불법 이민자에게 합법 체류와 노동 허가를 부여하는 대규모 합법화 계획을 내놨다. 이번 조치는 미국과 유럽에서 강화되는 이민 통제 흐름과 달리, 농업과 관광 등 핵심 산업의 노동력 확보와 사회 통합을 동시에 겨냥한 포용적 정책으로 평가된다. 스페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를 적극 수용하며 경제 성장을 이끌었지만, 아프리카 출신 난민의 제한적 수용, 일부 산업의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 증가, 공공복지 부담 확대 등 현실적인 제약이 여전히 논란이 되고 있다.
성장과 통합의 양립 추구하는 이주 모델
27일(이하 현지시각) 영국 BBC,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스페인 정부는 최대 100만 명 이상의 미등록 이주민에게 합법 지위를 부여하는 대규모 합법화 계획을 발표했다. 엘마 사이스 포용·사회보장·이주 장관은 “오늘은 우리나라에 역사적인 날”이라며 “이번 조치는 인권·통합·공존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경제 성장과 사회적 결속이 양립 가능한 이주 모델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농업과 관광을 비롯한 여러 산업에서 이주 노동력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스페인에서 이번 조치의 중요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스페인 정부는 △2025년 12월 31일 이전에 스페인에 도착했고 △최소 5개월 이상 스페인에 실제 거주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범죄 경력이 없는 미등록 이주민들이 이번 합법화 대상에 포함된다고 밝혔다. 난민 신청자 역시 조건을 충족할 경우 대상이 될 수 있으며, 이미 스페인에 거주하고 있는 자녀도 포함된다. 이 같은 요건을 갖춘 이주민이 신청해 승인을 받으면 최초 1년짜리 거주 허가가 부여되고, 이후 갱신을 통해 체류를 연장할 수 있다. 해당 허가에는 스페인 전역에서 어떤 사업체에서든 합법적으로 일할 수 있는 노동 허가도 함께 포함된다.
NYT는 스페인의 이번 결정이 미국과 유럽 각국이 이민자 단속과 배척을 강화하는 흐름과 대비된다고 짚었다. 미국은 불법 체류자 추방을 위해 수백만 명을 체포하는 공격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으며, 영국은 난민 인정 요건을 대폭 강화하고 불법 입국자 송환과 수용 규정을 강화했다. 그리스는 망명 신청 기각 이후에도 체류하는 이주민들에게 징역형을 부과하고 있으며, 이탈리아는 망명 신청자를 알바니아에 수용한 상태에서 심사를 진행하고 있다. 프랑스도 이민 규제를 강화하는 법안을 잇달아 통과시키며 복지 접근과 가족 결합 요건을 제한했다.
그레코 계획 성과로 경제적 호황기 맞이
스페인은 2000년대 초반부터 일관되게 이민자 포용 정책을 유지해 온 국가로 평가받는다. 특히 스페인어를 사용하고 종교와 문화적 배경을 공유하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들을 적극적으로 수용했다. 이러한 정책 전환의 출발점으로 꼽히는 것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시행된 ‘그레코 계획(Plan Greco)’이다. 이 계획은 불법 이주민을 포용해 노동력 부족이 심화한 건설업과 농업의 인력으로 투입하는 등 이들을 경제와 사회 통합의 자원으로 관리하겠다는 인식 전환을 공식화한 정책으로, 합법화 확대와 제도적 통합에 방점을 뒀다.
이 기간 스페인 정부는 20만 명이 넘는 불법 체류자를 받아들이고, 노동 허가 절차를 간소화해 일정 기간 근로한 이주민이 영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동시에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언어교육, 직업훈련 등 다양한 통합 프로그램을 제공해 이주민의 지역사회 정착을 지원했다. 진보 정권인 사회당 집권 시기에 추진된 그레코 계획의 포용적 기조는 이후 대규모 합법화의 제도적 기반이 됐다. 이에 따라 2005년 보수 성향의 국민당 집권 시기에도 75만 명에 달하는 이주민을 대상으로 한 유럽 최대 규모의 특별 합법화 조치가 시행됐다.
이후에도 이러한 정책적 신념은 이어졌다. 지난 2018년 페드로 산체스 정부는 지중해에서 구조된 난민선을 적극적으로 수용하며 단기간에 수천 명의 난민을 받아들였고, 바르셀로나를 비롯한 주요 도시들은 지방정부 차원에서 포용과 연대를 강조하는 정책을 확산시켰다. 2024년에도 노동력 부족과 고령화 문제를 해결하고자 대대적인 이민법 개정이 이뤄졌다. 이를 통해 불법 이민자가 정식 체류증을 신청하기 위해 스페인에 거주해야 하는 기간을 현행 3년에서 2년으로 줄이고, 가족 재결합과 임시 취업 허가와 같은 절차도 간소화했다.
이러한 노력은 경제 성장으로 이어졌다. 그레코 계획이 기틀을 마련한 직후인 2005~2008년 스페인 경제는 호황을 맞으며 연평균 3%대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이 이주 노동력에 의해 뒷받침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2020년대에도 스페인은 유럽권에서 손꼽히는 고도성장 국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스페인은 독일(-0.2%), 이탈리아(0.5%), 영국(0.9%) 등 주요 유럽국이 역성장하거나 GDP 성장률 1%를 넘기지 못할 때 홀로 3.2% 성장하며 유럽 최고 수준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건설업 등 외국인 노동력 의존도는 과제
그러나 이러한 포용적 이민 정책에는 우려의 목소리도 존재한다. 한때 대규모 이민 확대 정책을 추진했던 유럽 주요국들은 이미 다문화주의 실현에 이르지 못했음을 자인했다. 2010년 앙겔라 메르켈 당시 독일 총리는 "다문화사회 건설 시도가 완전히 실패했다"고 밝혔고, 이듬해 데이비드 캐머런 당시 영국 총리 역시 "영국식 다문화주의가 자국의 가치 안에서 발전하지 못했다"고 선언했다. 이 시기 니콜라 사르코지 당시 프랑스 대통령도 다문화주의 정책 실패를 인정하면서 "이주민뿐 아니라 사회 정체성 측면을 함께 고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스페인은 지정학적으로 국제사회가 직면한 난민 위기의 최전선에 있다. 포용적 확대 기조에도 불구하고, 난민 인정률은 3%에 미치지 못해 정책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크다. 2024년 이후에는 아프리카 북서부 카나리아 제도를 통해 수만 명의 난민이 도착했는데, 모리타니와 세네갈에서 출발한 조각배를 이용한 불법 입국으로, 이들 대부분은 대기소에서 체류하다가 본토로 분산되거나 추방됐다. 인권 단체들은 경제적 이점이 있는 라틴아메리카 출신 이민자와 달리 아프리카 출신 난민은 언어 장벽과 저숙련 문제, 사회적 갈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사실상 제한적으로만 수용된다며, 스페인의 난민 시스템 개선을 촉구하고 있다.
스페인 내에서도 이주민 확대 정책이 일부 산업의 노동력 의존도를 높이고, 공공 시스템의 부담을 늘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페인 농업과 관광업 부문에서 외국인 노동자 비율은 80%에 달한다. 건설업에서는 2005년부터 이어진 경제 호황기에 라틴아메리카 노동력이 본격 투입됐고, 버블 붕괴 후에는 현지 노동자가 복귀를 거부하면서 외국인 의존도가 더욱 심화됐다. 특히 단기·저숙련 노동자의 비중이 증가하면서 산업 전반의 노동력 질이 낮아지고, 생산성 향상은 제한적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로 외국인 근로자가 지난 10년간 74% 증가하며 공공복지 부담은 급증했지만, 생산성 향상은 이에 비해 더딘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