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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집트·카타르 노력에도 양국 모두 중재안 거부
필라델피 회랑 통제 및 피난민 검문 등 쟁점에서 이견
협상 당일 헤즈볼라· 하마스 이스라엘 공격, 전면전 '초긴장'
이집트 카이로에서 열린 가자지구 휴전 협상이 별다른 성과 없이 종료됐다. 이스라엘과 레바논 무장 정파 헤즈볼라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의 휴전 협상이 또다시 결렬되면서 전면전 확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가자 휴전협상 또 결렬, 철군 등 조건서 이견
25일(이하 현지시간) 로이터 통신은 이집트 소식통들을 인용해 협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가 중재국들이 제시한 타협안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미국, 이집트, 카타르의 중재로 24∼25일 카이로에서 휴전 협상을 벌였다. 양측이 모두 카이로로 협상 대표단을 보내면서 타결 기대감이 높아지기도 했지만, 이스라엘이 주장하고 있는 핵심 쟁점에 하마스가 거부 의사를 밝히면서 협상은 또다시 교착에 빠진 것으로 전해졌다.
이집트 소식통에 따르면 중재국들은 이스라엘군이 이집트와 가자지구 사이 국경 완충지대인 ‘필라델피 회랑(Philadelphi Corridor)’과 가자지구를 남북으로 가르는 ‘넷자림 회랑(Netzarim Corridor)’에 주둔하는 문제에 대해 여러 대안을 제시했으나 이스라엘과 하마스 모두 거부했다. 이스라엘은 또 하마스가 석방을 요구하는 팔레스타인 수감자 중 몇몇에 대해서 유보하는 입장을 표명했고, 이들이 석방된다면 가자지구를 떠나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와 관련해 오사마 함단(Osama Hamdan) 하마스 대변인은 이날 하마스가 운영하는 알아크사TV 방송에서 이스라엘이 필라델피 회랑에서 군을 철수하겠다던 말을 뒤집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휴전이 시작되면 가자지구 북부로 귀환하는 피란민들을 검문하겠다는 방침도 제시했다면서 “우리는 합의된 것을 철회하거나 새로 조건을 더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겠다”고 밝혔다. 필라델피 회랑 주둔과 귀환 피란민 검문 방침은 이스라엘이 지난 5월 제시한 휴전안에는 명시적으로 담기지 않은 내용으로,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이스라엘 총리가 지난달에 새로 추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블링컨 장관의 '마지막 기회' 강조에도 협상 교착
휴전 협상을 앞두고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이 양측의 중재 외교에 돌입해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음에도 협상이 결렬되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연내 협상 타결은 사실상 어렵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18일 이스라엘 경제 중심지인 텔아비브에 도착한 블링컨 장관은 다음 날 네타냐후 총리, 이츠하크 헤르초그 대통령,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 등을 만났다. 그는 헤르초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이번 휴전 협상을 두고 “11개월째에 접어든 전쟁을 끝내기 위한 마지막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의 중동 방문은 지난해 10월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 발발한 후 벌써 9번째다.
당초 네타냐후 총리는 내각 회의에서 “협상은 받는 것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유연성을 발휘하지 않을 영역도 있다”며 노골적으로 불만을 나타냈었다. 하지만 블링컨 장관과 만난 뒤 기존 입장을 일부 수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는 지난해 10월 이스라엘 기습 공격을 주도한 하마스 정치국 최고지도자 야흐야 신와르가 휴전 협상에 비판적이라는 점과 하마스가 15∼16일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휴전 협상에 협상단을 보내지 않았다는 점을 문제 삼으며 협상에 부정적이었다.
미 국무부에 따르면 하마스 측은 “네타냐후 총리가 휴전에 관해 계속 새로운 조건과 요구를 하는데도 미국이 용인했다”며 휴전안을 거부했다. 하마스는 특히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와 이집트를 잇는 라파 국경검문소 등에 군대 주둔을 고집하고 있다는 점에 반발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곳곳에서 산발적인 교전과 테러도 이어졌다. 18일 텔아비브 도심에서는 한 행인의 배낭 속 폭발물이 터져 최소 1명이 숨졌는데 당시 이스라엘 측은 “하마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이스라엘 측도 같은 날 가자지구에 대한 공습을 이어갔고, 19일에는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북부의 아크레 군사기지를 무인기(드론)로 공격했다.
다만 미국은 협상 지속 가능성을 열어둔 상태다. CNN에 따르면 한 미국 관료는 "최근 며칠 카이로에서 진행한 고위급 회담은 모든 당사자들이 최종적으로 실행 가능한 합의에 도달하려는 정신 아래 건설적으로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남은 문제와 세부 사항을 추가로 해결하기 위해 향후 며칠간 실무 그룹 차원에서 절차가 계속될 것"이라며, 협상팀이 카이로에 남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협상 재개 시점에 대한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스라엘·헤즈볼라 간 대규모 공습, 전면전 우려↑
그간 가자지구 휴전은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보복과 중동 내 광범위한 갈등 촉발을 억제할 수 있는 핵심 열쇠로 꼽혔다. 이란은 하마스 정치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가 지난달 말 테헤란에서 암살된 이후 이스라엘에 대한 보복을 공언해 왔는데, 보복을 언급한 지 3주가 넘도록 아직 실행에 옮기지 않고 있는 이란은 가자지구 휴전 협상의 추이를 지켜봤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가운데 이스라엘군과 친이란 세력 헤즈볼라가 가자지구 휴전 협상 당일 대규모 미사일 공방을 주고받으면서 전면전 발발 우려를 높이고 있다. 25일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이날 헤즈볼라의 공격 조짐에 선제 대응하기 위해 레바논 내 표적을 공습했다고 밝혔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수석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군은 헤즈볼라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미사일과 로켓을 발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했다”며 “이런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자기방어 행위로 레바논 내 테러 표적을 타격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어 “헤즈볼라가 작전을 벌이는 지역에 있는 민간인들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 즉각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라”고 경고했다.
해당 발표가 나온 직후 헤즈볼라 역시 대규모 드론 공격에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지난달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고위 지휘관인 푸아드 슈크르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사망한 데 따른 보복이다. 헤즈볼라는 “아이언돔(이스라엘 방공망) 플랫폼과 병영을 비롯한 특수 군사 목표물을 겨냥했다”고 발표했다. 곧이어 “이스라엘 북부로 로켓 320발 이상을 발사했고 드론을 날려 군사기지 11곳을 타격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스라엘도 즉각 대비 태세에 나섰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이날 오전 6시부터 48시간 동안 전국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에 국제 사회는 확전 가능성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일단 헤즈볼라가 1단계 공격이 완료됐다고 밝힌 만큼 이스라엘과의 이날 교전이 당분간은 진정 국면에 접어들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사미 나데르 레반트 전략문제연구소 소장은 중동 매체 알자지라를 통해 “이날 선제공격과 보복 공습이 전쟁 범위와 강도 면에서 확전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지만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 본격적인 전쟁을 피하려고 노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 전쟁으로 지쳐 있고 헤즈볼라는 레바논이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해 있어 2006년처럼 확전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란 설명이다. 하지만 중동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어 헤즈볼라의 향후 행동에 따라 전쟁 확대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시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