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유로존 은행, 감독 일원화됐지만 손실 부담은 국가별
입력
수정
공동 감독·국가별 구제 이중구조 시장 분절이 키운 경쟁력 격차 공동 안전망 구축, 남은 금융통합 과제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로지역 은행들이 납세자 부담 없이 부실을 처리하기 위해 공동 조성한 단일정리기금(SRF) 규모는 810억 유로(약 135조원)에 달한다. 그러나 국경을 넘는 은행이 위기에 처하면 대응과 손실 부담은 여전히 본사가 있는 국가에 집중된다. 유로존이 공동 정리 체계를 완성하기에 앞서 공통 감독 체계를 먼저 구축한 결과다. 감독은 유럽 차원에서 이뤄지지만, 위기 대응과 손실 부담은 여전히 국가별로 이뤄진다. 이에 따라 유럽 전역에서 영업하는 은행의 위험을 개별 국가가 떠안는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공동 감독과 국가별 구제의 모순
유로존 은행 상당수는 본사가 있는 국가를 넘어 여러 회원국에서 지점을 운영하며 대출과 예금, 트레이딩 자산을 통화동맹 전역에 걸쳐 운용한다. 2014년 출범한 유럽중앙은행(ECB) 단일감독기구(SSM)에 따라 이들 은행의 평시 감독은 ECB가 맡는다. 감독 체계만큼은 유럽 차원에서 일원화된 셈이다.
하지만 위기가 발생하면 금융 안전망은 다시 국가별 체계로 돌아간다. 예금보험이 국가별로 운영되는 만큼 위기 대응 자금도 사실상 해당 국가의 재정에 의존한다. 유럽은행감독청(EBA)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유럽연합(EU)과 유럽경제지역(EEA)의 보호 대상 예금은 약 9조1,000억 유로(약 1경5,170조원)다. 반면 이를 뒷받침하는 예금보장기금 준비금은 총 850억 유로(약 142조원)에 그친다. 이마저도 33개 국가가 각각 운영하는 기금으로 나뉘어 있어 다른 회원국의 금융위기 대응에 자유롭게 활용하기 어렵다.
이 같은 한계는 2000년대 후반 유럽 재정위기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국경을 넘어 영업하던 은행들은 시장 자금 조달이 막히자 결국 자국 정부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아일랜드와 스페인, 키프로스는 유로존 전역으로 영업을 확대했던 자국 은행을 국가 재정으로 구제해야 했다. 특히 2012년 스페인의 은행 구제금융은 대형 회원국의 금융권 부실이 유로존 전체의 금융안정을 흔들 수 있음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다.

위기 이전부터 왜곡되는 위험 가격
현재의 국가별 안전망은 위기 발생 이후뿐 아니라 평상시에도 시장에 영향을 미친다. 손실을 최종적으로 본사가 있는 국가가 부담하는 구조가 유지되면서 은행과 감독당국 모두 위험을 바라보는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은행은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본사가 있는 국가가 최종적으로 손실을 떠안을 것이라는 기대 아래 위험을 충분히 반영할 유인이 약해진다. 반면 진출국 감독당국은 외국계 은행 지점이 부실해질 경우 자국 납세자를 보호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자국 은행 대비 높은 수준의 자본과 유동성을 요구하게 된다.
실제 손실은 다른 국가가 부담하지만 위기에는 대비해야 하는 만큼 외국계 은행에 더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려는 유인이 커지는 것이다. 이처럼 은행과 감독당국이 서로 다른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이면서 통화동맹 전반의 위험 가격도 왜곡된다. 이러한 왜곡은 특정 은행의 재무제표에는 드러나지 않지만, 유럽 전역의 대출과 자금 배분에 영향을 미친다. 이로 인해 일상적인 감독만으로는 이 같은 왜곡을 바로잡기 쉽지 않다. 은행이 실제로 반응하는 것은 손실이 발생했을 때 누가 최종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느냐다.

시장 분절이 드러낸 경쟁력 약화
이 같은 구조적 한계는 각종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유럽의회가 발표한 2025년 은행동맹 보고서에 따르면 시장 분절과 더딘 국경 간 통합은 유럽 은행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미국 은행과의 수익성 격차를 확대하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실제 감독 대상 은행의 부실채권(NPL)은 약 9,890억 유로(약 1,649조원)에서 3,560억 유로(약 593조원)로 감소해 자산 건전성은 크게 높아졌다. 그러나 감독 성과가 은행시장의 통합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유럽금융시장협회(AFME)의 2025년 연구도 같은 문제를 보여준다. EU 은행들은 위험가중자산 대비 평균 28%의 자본 및 손실흡수 능력 요건을 적용받아 영국(27%)과 미국(22%)보다 높은 규제 부담을 지고 있다. 국경 간 은행 인수·합병(M&A)에 걸리는 기간도 평균 285일로 10년 전 대비 약 100일 늘어났다.
금융 국제화와 주권의 착시
이 같은 한계는 유럽 은행의 경쟁력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2024년 마리오 드라기 전 유럽중앙은행(ECB) 총재 보고서에 따르면 EU 상위 10개 은행의 시가총액을 모두 합쳐도 미국 제이피모건체이스(JPMorgan Chase) 한 곳에 미치지 못한다. 드라기 전 총재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국경 간 영업 비중이 높은 은행을 국가별 자회사의 집합이 아닌 하나의 금융기관으로 보고, 감독과 위기 대응도 이에 맞춰 일원화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국경을 넘는 은행을 개별 국가의 규제만으로 관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러나 은행동맹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핵심 과제인 유럽예금보험제도(EDIS)는 2015년 처음 제안된 이후 지금까지도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회원국들이 다른 나라 은행의 손실까지 공동으로 부담하는 데 부담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공동 예금보험이 도입되지 못하면서 은행동맹도 마지막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공동 예금보험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건전한 금융시스템을 갖춘 국가가 상대적으로 취약한 국가의 부담까지 떠안을 경우 도덕적 해이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국가별 금융감독 권한이 약화될 수 있다는 반론도 나온다. 이에 대해 EU 집행위원회는 은행별 위험 수준에 따라 기여금을 차등 부과하는 방식을 제시했다. 위험이 큰 은행일수록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도록 설계해 공동 부담에 따른 도덕적 해이를 최소화하려는 취지다. 경제정책연구센터(CEPR)는 금융 국제화가 진전된 환경에서는 국가별 규제만으로는 금융시장을 관리하기 어렵다고 지적한다. 한 국가가 단독으로 규제를 강화하면 금융활동이 규제가 느슨한 다른 국가로 이동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국경을 넘는 금융시장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려면 국가별 감독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공동 감독과 공동 안전망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것이다.
SRF는 개별 국가의 대응만으로는 국경을 넘는 은행 부실을 감당하기 어렵다는 판단 아래 마련됐다. 하지만 은행동맹은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공동 감독 체계는 2014년 출범했지만 예금보험과 손실 공동 부담은 아직 국가별 틀을 벗어나지 못했다. 은행의 영업 범위는 이미 국경을 넘어섰지만 위기 대응 체계는 여전히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간극을 해소하려면 공동 예금보험제도를 완성하고 국경 간 자본과 유동성 이동을 제약하는 규제를 정비해야 한다. 예금보험과 손실 공동 부담까지 포함한 공동 안전망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유로존 금융시스템의 구조적 취약성도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When Euro Banks Fail: The Case for Cross-Border Banking Regulation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