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정부는 왜 높은 부채보다 높은 금리에 반응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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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비율보다 중요한 원리금 상환 부담 금리와 자금조달 여건이 재정 위험 좌우 재정 감시도 상환 부담 중심으로 전환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국가 재정 건전성을 평가할 때 가장 널리 활용되는 지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부채비율이다. 일정 수준 이상으로 부채가 늘어나면 정부가 긴축에 나설 것이라는 판단 역시 이 지표를 중심으로 이뤄져 왔다. 그러나 장기 시계열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정부의 재정 대응은 부채 규모보다 원리금 상환 부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부채의 원리금 상환 비용이 10% 증가하면 미국의 기초재정수지는 GDP 대비 약 2.8%, 선진국 전체에서는 약 1.35% 개선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는 원리금 상환 부담이 커질수록 정부가 지출을 줄이거나 세입을 늘리는 방식으로 재정 건전화를 추진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금리가 바꾸는 재정 건전성의 기준
정부가 실제 부담하는 재정 비용은 매년 지급해야 하는 이자와 원금의 규모에 좌우된다. 따라서 같은 수준의 부채를 보유하더라도 금리와 경제성장률, 자금조달 여건에 따라 재정 부담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저금리와 안정적인 성장세가 이어지면 높은 부채를 장기간 유지해도 재정 부담은 크지 않다. 반대로 자금조달 비용이 급등하면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더라도 재정 여력은 빠르게 악화한다.
이 같은 흐름은 역사에서도 반복됐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 미국 연방정부의 부채는 GDP의 100%를 웃돌았지만 강한 경제성장과 낮은 차입비용에 힘입어 대규모 기초재정흑자 없이도 부채비율은 꾸준히 하락했다. 반면 1980년대 초 폴 볼커(Paul Volcker)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의 긴축 국면에서는 부채 규모가 상대적으로 크지 않았음에도 실질금리가 급등하면서 원리금 상환 부담이 빠르게 늘었고, 강도 높은 재정 긴축이 뒤따랐다. 이 같은 양상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에도 이어졌다. 두 시기 모두 부채비율은 크게 상승했지만, 역사적으로 낮은 금리가 원리금 상환 부담을 억제하면서 예상됐던 수준의 재정 긴축은 나타나지 않았다.

정부가 긴축에 나서는 시점
이와 같은 역사적 흐름은 200년이 넘는 장기 데이터에서도 일관되게 확인됐다. 1800년부터 2023년까지 미국의 시계열 자료와 12개 선진국의 장기 패널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정부의 기초재정수지는 부채비율보다 원리금 상환 비용과 훨씬 밀접하게 움직였다. 원리금 상환 비용을 함께 반영하면 부채비율의 설명력은 크게 낮아졌다.
이는 원리금 상환 비용이 단순히 부채 규모만으로 결정되지 않기 때문이다. 자금조달 여건과 부채 만기 구조, 물가상승률, 투자자가 요구하는 위험 프리미엄 등이 함께 작용하면서 실제 재정 부담이 결정된다. 같은 부채비율을 기록한 국가라도 장기·저금리로 자금을 조달한 국가와 단기·고금리로 차입한 국가는 재정 부담에서 큰 차이를 보일 수 있다.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될수록 정부의 재정 대응도 뚜렷해졌다. 특히 부채금리가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시점부터 긴축 강도는 빠르게 높아졌다. 차입 비용이 성장률을 넘어서는 순간 부채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 속도를 앞지르면서 정부는 기존 재정모형이 예상한 수준 대비 강도 높은 재정 조정에 나섰다. 이 같은 결과는 다른 분석 기법에서도 확인됐다. 벡터자기회귀(VAR)와 상태의존적 국소투영(local projections) 분석에서도 원리금 상환 비용 증가는 장기간의 기초재정수지 개선으로 이어졌다. 반면 부채 규모 변화에 따른 재정 대응은 제한적이었다.

취약한 경제일수록 커지는 상환 부담
재정 기반이 취약한 소규모 개방경제에서 이와 같은 흐름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카리브해 국가들을 분석한 결과, 2011년 이 지역의 공공부채 중앙값은 GDP의 71%로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보다 6%포인트 높아졌다. 문제는 이를 감당할 수 있는 재정 여력이었다. 세수와 경제성장률을 반영한 자연부채한도(natural debt limit) 모형으로 분석한 결과, 실제 부채는 지속 가능한 수준의 2~3배에 달했다. 특히 소규모 개방경제이면서 자연재해에 자주 노출되는 국가들은 금리 변화에도 크게 영향을 받았다. 실질금리가 1%포인트 오르면 적정 부채 한도는 평균적으로 GDP 대비 13%포인트 낮아졌고, 금리 상승과 성장 둔화가 동시에 발생하면 GDP의 12.3%까지 떨어졌다.
재정 부담을 키운 요인은 금융시장 구조에서도 찾을 수 있다. 카리브해 국가들은 국내 은행과 연기금을 중심으로 자금을 조달하면서 시장 위험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은 금리를 유지해 왔다. 그 결과 부채 부담은 실제보다 낮게 평가됐고, 안티과바부다의 공기업 지급보증(GDP 대비 14.6%)과 벨리즈의 우발채무(GDP 대비 17%)처럼 공식 통계에 반영되지 않은 잠재적 재정 부담도 누적됐다.
이 같은 구조는 외부 충격이 발생했을 때 한계를 드러냈다. 자연재해나 금융시장 불안으로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되자 그동안 가려져 있던 원리금 상환 부담과 우발채무가 한꺼번에 재정으로 전이됐다. 실제로 바베이도스와 그레나다, 자메이카 등은 부채비율을 목표 수준(GDP 대비 60%)으로 낮추기 위해 GDP의 5%를 웃도는 재정 조정을 추진했다. 이는 단순한 부채비율만으로는 이러한 재정 압박을 미리 포착하기 어려웠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재정 감시의 기준을 바꿀 때
부채비율은 국가의 재정 여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의미가 있지만, 이를 중심으로 재정 건전성을 판단하면 자금조달 여건이 급변할 때 대응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커진다. 이에 따라 재정 감시 체계도 부채비율과 함께 원리금 상환 부담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보완이 필요하다. 세수 대비 원리금 상환 비용을 핵심 지표로 관리하고, 이자비용 증가 속도가 경제성장률을 웃도는 국가를 조기에 식별해야 한다. 또한 금리와 성장률 변동성을 반영한 스트레스 테스트를 통해 자금조달 여건 변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
장기 데이터와 카리브해 국가들의 사례는 정부가 실제 재정을 조정하는 시점이 부채 규모보다 원리금 상환 부담과 자금조달 여건의 변화에 더 크게 좌우된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따라서 재정 건전성을 평가할 때는 부채비율뿐 아니라 원리금 상환 부담과 자금조달 여건을 함께 반영하는 방향이 바람직하다. 그래야 금리 충격에 따른 재정 위험을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Debt-Service Costs, Not Debt Ratios, Decide When Governments Must Ac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