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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방위는 유럽이 맡아라” 美, 유럽 내 미군 주둔 재검토 착수, ‘NATO 3.0’ 전환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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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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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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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이야기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다만 우리 눈에 그 이야기가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서 함께 공유하겠습니다.

수정

미국, 유럽 방위 태세 전면 검토 착수
유럽 동맹국 재래식 방위 책임 전환 가속
‘중국 견제’ 위해 인도·태평양 집중

미국 정부가 유럽에 배치된 미군의 주둔 태세를 전면 재검토하기 시작했다. 유럽 주둔 미군 감축과 방위비 분담 확대를 동시에 압박하는 조치로, 미국이 유럽 방위의 선봉에 서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체제를 사실상 재설계하고, 유럽에 자주국방의 부담을 떠넘기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여기엔 중국 견제와 중동 대응에 막대한 군사비가 드는 현실에서, 러시아의 재래식 위협이 약화한 유럽에까지 전력을 상시 투입할 필요가 줄었다는 미국의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유럽 방위 책임 확대 요구

29일(이하 현지시간) AP통신에 따르면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차관은 27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국방부가 ‘유럽 태세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콜비 차관은 이번 검토에 대해 “유럽이 재래식 방어의 주된 책임을 지도록 빠르고 되돌릴 수 없는 방향으로 전환하는 실질적인 절차”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번 검토 결과는 더 강하고, 더 공평하며, 지속 가능한 동맹으로서 나토의 전환을 가속할 것"이라며 "이를 통해 강력한 전투 조직으로서 나토의 성격을 완전히 복원한다는 목표, 즉 '나토 3.0'을 더욱 진전시킬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콜비 차관은 이번 검토를 통해 유럽 내 미군 태세에 2025년 국가안보전략(NSS)과 2026년 국방전략(NDS) 기조를 충실히 반영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2025년 NSS에는 미국이 "문명의 소멸"을 겪는 유럽의 "궤도 수정"을 이끌어야 한다는 내용이 담겼고, 2026년 NDS에는 동맹국과 파트너국을 대상으로 방위비의 "공정한 부담"을 강조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앞서 피트 헤그세스 미 국방장관은 지난달 18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나토 국방장관 회의에 참석해 유럽 주둔 미군 문제에 대해 향후 6개월간 새로운 검토를 거치겠다고 예고한 바 있다. 당시 헤그세스 장관은 유럽 내 미군 병력의 최소 규모를 법으로 규정한 미국 의회와의 협의도 함께 진행하겠다고 언급, 사실상 유럽에서 미군 주둔 규모를 감축하겠다는 취지로 받아들여졌다. 헤그세스 장관은 또 미국의 나토 분담금은 다른 동맹국들의 국방비 지출 목표 달성 여부에 달려 있다며 "다른 동맹국들이 시급히 국방비를 지출하지 않으면 우리의 분담금은 줄어들 것"이라고 압박하기도 했다.

트럼프 1기 미완의 감축안 재가동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이 세계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로 벌어질 수 있는 복수의 분쟁에 대비하려면 더 많은 군사 자원을 확보해야 한다며 유럽에 지원하는 병력 규모를 감축하려 하고 있다. 지난 2020년 7월 트럼프 1기 행정부는 독일 주둔 미군 약 3만6,000명 가운데 1만2,000명을 감축·재배치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일부 병력은 미국 본토로 복귀시키고, 일부는 벨기에·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로 옮기는 방안으로, 독일의 국방비 지출과 대미 무역 문제를 둘러싼 갈등이 격화한 시점에 나온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계획은 정권 교체 뒤 사실상 중단됐다. 조 바이든 행정부가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 주둔 미군을 다시 늘리면서, 트럼프 1기의 감축 구상은 실행되지 못했다. 러시아 위협이 급격히 커진 시기였던 만큼 유럽 방위력 보강이 백악관의 우선 과제가 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조건이 달라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5월 독일 주둔 미군 5,000명을 감축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다. 감축 완료 시점은 6~12개월로 잡았다. 1기 행정부 때 발표에 그쳤던 유럽 주둔군 조정이 실제 병력 이동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자료: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직격탄 맞은 독일, 국방비 28% 증액

특히 독일은 이번 재검토의 분기점이 될 국가다. 유럽 최대 규모인 약 3만6,000명의 미군 현역 병력이 독일에 주둔하고 있다. 람슈타인 공군기지와 슈투트가르트 유럽사령부, 그라펜뵈어 훈련장은 유럽 방위 태세를 떠받치는 핵심 시설이다. 독일 내 미군 기지는 유럽 전구에만 묶여 있지 않다. 동유럽 전선의 병력 증원과 장비 수송을 지휘하는 한편, 중동·아프리카 작전까지 뒷받침하는 병참망의 중심에 놓여 있다. 독일 주둔군 감축은 유럽의 억지력 약화 문제와 함께 미국의 해외 작전 운용에도 연쇄 변화를 일으킬 수 있다.

독일이 방위력 확충을 서두르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일은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1,000억 유로(약 165조원) 규모의 특별방위기금을 편성했고, 국방예산 증액을 위해 재정 규율 완화까지 추진했다. 지난 4월에는 내년 국방비를 올해보다 28% 늘려 1,058억 유로(약 175조원)로 편성하는 내용의 예산 지침을 의결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유럽 국가 중 처음으로 국방비가 1,000억 유로를 넘게 됐다. 독일 정부는 이와 함께 인프라 투자 등을 포함해 총 5,433억 유로(약 897조원) 규모의 내년도 예산안 편성 지침도 확정했다. 미국의 유럽 관여가 줄어들 수 있다는 신호가 반복되자, 미국의 안보 보장을 전제로 유지해 온 전력 구조부터 손질하고 있는 것이다.

다전구 압박, 유럽 우선순위 후퇴

미국이 유럽 주둔군 감축을 검토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중국 견제를 위해 인도·태평양에 더 많은 전력을 투입해야 하는 데다, 중동에서도 언제든 대규모 군사 대응이 필요한 상황이다. 유럽에 병력과 전략자산을 계속 묶어 두기에는 미국의 국방 부담이 너무 커졌다. 복수의 전선에 같은 수준의 전력을 유지하기에는 병력과 탄약, 방공 자산의 여유가 크지 않다.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에 방위 책임을 넘기려는 것도 이 같은 군사·재정 여건과 맞물려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이 그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본다.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 나토 회원국이 러시아를 억제할 충분한 잠재력을 갖췄다고 판단한다. 미 국방부가 2026년 NDS에 제시한 수치에 따르면, 미국을 제외한 나토 회원국의 2024년 명목 GDP는 26조 달러(약 3경7,300조원)로 러시아(2조 달러·약 2,870조원)를 압도한다. 독일 한 국가의 경제 규모도 러시아보다 크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러한 경제력을 병력과 탄약, 방공망, 장거리 타격체계로 전환하면 유럽이 재래식 방위를 주도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여기엔 미국이 유럽의 재래식 방어까지 장기간 떠맡을 이유가 약해졌다는 인식도 깔려 있다. 유럽 방위의 비용을 미국 납세자가 부담해 온 체제를 손보겠다는 것이다.

냉전기 미군 감축 구상은 좌초

미국 내 유럽 주둔군 감축 논의는 냉전기에도 있었다. 1969년 '나토 전력 감축 논의' 당시 리처드 닉슨 행정부는 유럽 주둔 병력을 대폭 줄이고 동맹국의 국방비 지출을 늘리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시 멜빈 레어드 국방장관은 유럽 주둔 미군을 10만~15만 명 수준으로 감축하는 구상을 내놨다. 동맹국의 방위 부담을 늘리고 국방예산을 국민총생산(GNP)의 9%에서 7%로 낮추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헨리 키신저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재래식 전력이 줄면 나토의 억지력도 약해질 수 있다며 반대했다. 전쟁 수행능력이 뒷받침되지 않은 억지력은 신뢰를 얻기 어렵고, 재래식 방어력이 약화하면 미국 대통령이 유럽 포기와 핵전쟁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을 수 있다는 논리였다. 급격한 병력 조정이 동맹국의 정치적 불안을 자극하고 유럽의 세력균형을 흔들 가능성도 경고했다. 결국 감축안은 집행되지 않았다. 1971년 마이크 맨스필드 상원의원이 유럽 주둔 미군을 15만 명으로 제한하는 수정안을 발의했지만 상원에서 36대 61로 부결됐다.

러시아 약화에 힘 실린 유럽 자력 방위론

다만 현재의 러시아는 냉전기의 소련과 사정이 다르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로 병력과 전차, 포병 전력을 대거 소진했다. 그런 만큼 미국은 유럽이 자체 전력을 확충하면 러시아의 재래식 위협에 대응할 수 있다고 본다. 유럽의 국방비 증액도 이런 미국의 판단에 힘을 실어 주고 있다. 나토 회원국은 지난해 헤이그 정상회의에서 2035년까지 GDP의 5%를 국방·안보 분야에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핵심 군사력에 3.5%, 군사 인프라와 사이버 방어, 민방위, 방위산업 기반에 1.5%를 배정하는 구조다. 유럽 회원국과 캐나다의 2025년 국방비는 전년보다 실질 기준 약 20% 증가했고, 2021년 불변가격 기준 총액은 5,710억 달러(약 820조원)를 웃돌았다.

그렇다고 유럽의 불안이 쉽게 가라앉을 상황은 아니다. 러시아는 여전히 핵전력과 장거리 미사일, 사이버·전자전 능력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은 지난해 러시아가 5년 안에 나토 영토를 위협할 수 있다며 방공·미사일 방어 역량을 대폭 확충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프랑스군도 러시아가 손실을 감수하면서도 재무장을 이어가고 있으며, 2030년 전까지 유럽 동부전선의 실질적 위협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폴란드와 발트 3국, 루마니아가 미군 감축에 민감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미국은 이미 나토가 위기 발생 시 동원할 수 있는 미군 전력 일부를 축소했으며, 나토 임무에 투입 가능한 F-15 계열 전투기는 3분의 1 줄어든 99대, MQ-4·MQ-9 무인기는 절반 감소한 12대로 조정된 것으로 전해졌다. 공중급유기와 함정 전력도 축소 대상에 포함됐다. 유럽 국가들이 전투기와 무인기 일부를 보충할 수는 있지만 장거리 정밀타격과 위성정보, 감시정찰, 공중급유, 전략수송, 통합 지휘통제 역량을 단기간에 대체하기는 어렵다.

보리스 피스토리우스 독일 국방장관도 유럽이 보충 시점을 확정하기 전에 미국 전력이 빠져나가면 ‘위험한 역량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실제 유럽 주둔군 재편의 파급력은 감축 병력의 총수보다 철수 대상 전력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전투부대 감축보다 정보·정찰과 공중급유, 장거리 타격, 지휘통제 자산의 이탈이 나토의 초기 대응능력에 더 큰 충격을 줄 수 있다. 미국의 재편 속도와 유럽의 전력 보강 속도가 어긋날 경우 대서양 동맹의 억지력은 상당 기간 불안정한 전환기를 거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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