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유럽 금융통합의 마지막 과제는 공동 예금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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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 예금보험 부재에 금융시장 분절 고착 규제 장벽이 기업 자금조달 비용 상승 초래 은행동맹 완성 위한 감독 강화·정치적 결단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로존 금융시장은 단일통화(유로화)를 도입한 지 20여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국가별 규제의 벽을 넘지 못했다. 다른 회원국 은행이 공급한 기업대출은 전체의 1%에 그친다. 유럽연합(EU)이 10여 년 전 은행동맹 구축에 나섰지만, 금융시장 통합은 사실상 제자리걸음을 이어온 셈이다. 그 배경으로 국가별 감독체계와 예금보험제도가 꼽힌다. 각국 감독당국은 자국 은행을 우선 보호하기 위해 자본과 유동성의 이동을 제한한다. 그 결과 기업들은 불필요하게 높은 자금조달 비용을 부담하고, 유로존도 단일통화가 가져올 규모의 경제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국가별 안전망이 묶어둔 자본
유럽은 재정위기 이후 유럽중앙은행(ECB)으로 은행 감독을 일원화하고 부실은행 공동 정리체계를 마련하며 은행동맹 구축을 추진했다. 그러나 마지막 단계인 공동 예금보험제도는 각국 정부의 반대로 도입이 무산됐다. 이 공백은 지금까지도 유럽 금융시장 통합을 가로막는 핵심 요인으로 남아 있다. 공동 예금보험이 없는 상황에서는 해외 계열사를 둔 은행그룹이 위기에 처하더라도 손실은 해당 국가의 예금보험기금이 부담해야 한다. 각국 감독당국이 자국 예금자를 보호하기 위해 자본과 유동성을 다른 국가의 계열사로 이전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링펜싱(ring-fencing)'을 유지하는 이유다. ECB에 따르면 이로 인해 약 2,250억 유로(약 375조원)의 자본과 2,500억 유로(약 416조원)의 유동성이 각국 자회사에 묶여 효율적으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구조는 미국과 대비된다. 미국은 연방 예금보험제도와 단일 최종대부자, 전국 공통 자본규제를 기반으로 은행 감독과 예금보험을 연방 차원에서 운영한다. 이에 따라 은행은 주(州) 경계와 관계없이 자유롭게 영업하고 예금자도 동일한 보호를 받는다. 반면 유로존은 단일통화와 공동 감독체계를 갖췄음에도 공동 예금보험을 마련하지 못해 금융시장이 여전히 국가별로 분절돼 있다.

규제 장벽이 막은 금융시장 통합
금융시장 분절은 실제 대출 자료에서도 확인된다. 유럽 신용등록부 분석 결과 2019년 이후 다른 회원국 은행이 공급한 기업대출은 전체 기업대출의 5.6%, 전체 대출 가운데서는 1%에 그쳤다. 이는 주식 등 다른 금융자산보다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대부분 은행은 자국 기업에만 대출했고 국가 간 거래가 전혀 이뤄지지 않은 사례도 적지 않았다.
문제는 대출금리가 아니라 시장 진입 장벽이었다. 외국 은행이 기업에 적용한 대출금리는 현지 은행보다 평균 28bp 낮아 차이가 크지 않았다. 반면 새로운 기업과 거래를 시작하거나 다른 회원국 시장에 진출하는 과정에서는 훨씬 큰 비용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금리로 환산하면 신규 기업과 거래를 시작할 때는 65%포인트, 새로운 국가 시장에 진출할 때는 99%포인트의 불이익을 떠안는 것과 맞먹는 수준이다.
이 같은 진입 장벽은 국가마다 다른 금융 규제에서 비롯된다. 감독체계와 예금보험, 부실은행 정리제도, 파산법 등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유로존 회원국 간 금융 규제는 약 25%가 여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이로 인해 국가별 규제로 시장 진입 비용이 크게 늘어나면서 은행들도 해외 영업을 쉽게 확대하지 못하고 있다.

금융통합과 함께 커지는 새로운 과제
국가 간 금융 장벽이 낮아지면 자본과 유동성은 더욱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다. 동시에 위험 공유도 확대되는 만큼 금융안정을 유지하기 위한 감독의 중요성 역시 커진다. 공동 예금보험기금은 은행의 위험 부담 구조 자체를 바꾸기 때문이다. 부실 자회사가 그룹 내 다른 계열사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면 외부 자본확충 압박은 줄어들고 과도한 위험을 감수하려는 유인도 강해진다. 반대로 건전한 자회사의 지원 여력이 확대되면서 그룹 전체의 건전성을 유지하려는 동기도 함께 강화된다.
이 때문에 금융통합 과정에서는 감독 강화가 필수적이다. 금융 규제 100년을 분석한 결과 규제 완화 이후 4년 동안 GDP 대비 신용 비율은 약 7%포인트, 예금 대비 대출 비율은 약 10%포인트 상승하는 경향이 확인됐다. 이는 자본 이동만 확대하고 감독이 뒤따르지 않으면 금융 불안이 커질 수 있음을 뒷받침한다.
금융통합이 가져올 성장 효과
감독체계가 뒷받침된다면 금융시장 통합이 가져올 경제적 효과도 상당하다. 신용등록부 자료를 활용한 일반균형모형 분석 결과 국가 간 금융거래 장벽을 10% 낮추면 유로존 국내총생산(GDP)은 1.6%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됐다. 해외 금융기관에 대한 접근성이 개선되면서 기업의 자본조달 비용이 낮아졌고, 이에 따라 투자와 고용이 함께 늘어난 영향이 컸다. 전체 성장 효과의 약 96%가 이 과정에서 발생했으며 생산설비 등 기업의 자본 규모는 2.4%, 고용은 1.6%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별 효과에는 차이가 있었다. 아일랜드와 룩셈부르크 등 금융허브와 소규모 개방경제의 수혜가 가장 컸고, 스페인·그리스·포르투갈·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는 상대적으로 효과가 제한적이었다. 이 같은 효과는 공동 안전망의 사례에서도 확인된다. EU 공동 재원으로 조성된 '회복·복원기금(RRF)'은 2020년 이후 스페인과 그리스, 이탈리아의 국가신용등급 평가에서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했고, 세 나라의 실질 GDP와 고용, 투자도 당초 전망을 웃돌았다. 공동 재원을 기반으로 한 위험 분산 장치가 시장의 불안 심리를 낮춘 것이다. 은행동맹 역시 감독체계가 충분히 뒷받침된다면 재정 이전에 의존하지 않고 금융시스템 자체를 통해 비슷한 효과를 낼 수 있다.
은행동맹 완성의 마지막 과제
물론 공동 예금보험제도를 둘러싼 우려도 여전하다. 재정이 건전한 국가의 납세자가 다른 회원국 금융기관의 부실까지 떠안을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공동 예금보험 자체보다 제도 설계에 있다. 국가별 링펜싱으로 사후 대응하기보다 위험이 커지기 전에 통일된 감독체계를 통해 위험을 관리하는 편이 금융안정을 유지하는 데 더 효과적이다.
공동 예금보험과 감독체계는 서로 보완하는 제도다. 감독 없이 위험 공유만 확대하면 금융 불안이 커질 수 있고, 공동 예금보험이 빠진 금융통합으로는 시장 분절을 해소하기 어렵다. 따라서 유럽이 진정한 단일 금융시장을 구축하려면 두 과제를 함께 추진해야 한다. 필요한 제도적 기반은 대부분 마련됐다. 이제 남은 것은 은행동맹을 완성할 정치적 결단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Banking Union Is the Missing Piece in Europe's Capital Market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