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남유럽 경기 되살린 RRF, 진짜 성과는 이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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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RF가 이끈 남유럽 경기 회복 그리스·스페인·이탈리아, 분야별 회복 성과 구조개혁과 생산성이 경제 수렴의 관건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난해 그리스의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2019년 대비 10.8% 증가했다. 회복·복원력기금(RRF) 지원 규모가 상대적으로 작았던 다른 유로존 국가들과 비교해도 높은 증가율이다. 장기간 경기 침체를 겪으며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국가라는 점을 감안하면 회복 속도는 더 두드러진다. 그러나 남유럽의 회복을 곧바로 경제 수렴의 성과로 평가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팬데믹 이후 경기 회복이지만, 이러한 성장세가 유럽 평균과의 경제 격차를 지속적으로 줄이는 단계로 이어졌는지는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하다.
남유럽 대규모 지원의 배경과 의미
남유럽에 지원이 집중된 것은 RRF의 설계 방식과 직결된다. 보조금 배분 공식에는 국가 규모뿐 아니라 소득 수준과 고용 여건, 코로나19 피해 정도 등이 함께 반영됐다. 이에 따라 2023년 명목 GDP 대비 지원 약정 규모는 그리스 16.1%, 이탈리아 9.1%, 스페인 6.8%에 달했다. 이는 실제 집행액이 아닌 약정 기준이며 보조금과 대출을 모두 포함한 수치다. 금은 회원국이 약속한 구조개혁과 투자 계획의 단계별 이행 실적에 따라 순차적으로 지원이 이뤄졌다.
물론 최근의 경기 회복을 모두 RRF의 성과로 보기는 어렵다. 팬데믹 이후 각국의 재정정책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에너지 가격 하락, 과거 구조개혁의 효과가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지원 규모가 컸던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에서는 실질 GDP와 노동시간, 투자가 모두 증가했다. 지원금이 본격적으로 집행되기 전부터 국채 금리 스프레드가 축소된 점도 눈에 띈다. 공동 재정이 회원국의 재정 안정성을 뒷받침할 것이라는 시장의 기대가 선제적으로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이 같은 효과는 남유럽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만약 그리스와 이탈리아, 스페인이 급격한 재정 긴축에 나섰다면 역내 수출기업과 금융기관, 관광산업, 공급망은 물론 유로화 체계 전반으로 충격이 확산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와 같이 RRF는 재정 여력이 부족한 회원국의 투자 기반을 유지하는 동시에 국가 간 경기 회복 속도 차이에서 비롯될 수 있는 금융시장 분절 위험을 완화했다.

그리스, 가장 폭넓은 경기 회복 달성
그리스는 RRF의 효과가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 국가로 평가된다. 지난해 실질 GDP는 2019년 대비 10.8% 증가해 팬데믹 이전 성장 경로를 웃돌았고, 노동시간도 7.5% 늘었다. GDP 대비 투자 비중은 5.9%포인트 상승해 세 나라 가운데 가장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투자 비중 확대가 곧바로 투자 규모나 생산성 향상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금융위기 이후 장기간 이어진 투자 부진에서 벗어났다는 점은 분명한 변화다.
이 같은 회복은 투자 확대와 구조개혁이 맞물리며 이뤄졌다. RRF 대출은 민간은행과 공동 투자 방식으로 운영돼 민간자본 유입을 촉진했고, 세제와 공공행정, 사법, 노동시장, 디지털 전환, 에너지, 직업교육 분야의 개혁도 동시에 추진됐다. 재정 지원과 제도 개선이 병행되면서 투자 환경이 개선됐고 성장 기반도 더욱 탄탄해졌다.
성과는 경제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생산 확대와 자본축적이 동시에 이뤄졌고 총요소생산성(TFP)도 개선됐다. 성장의 중심이 노동시간당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졌다는 점도 특징이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RRF가 올해 그리스 GDP를 정책이 없었을 경우보다 약 4.5%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했다. 초기에는 투자 확대가 성장을 견인하고 이후에는 신규 자본과 구조개혁의 효과가 생산성을 높이는 구조라는 분석이다.
물론 이러한 성과를 모두 RRF의 영향으로만 설명하기는 어렵다. 관광산업 회복과 과거 구조개혁의 성과, 은행 건전성 개선, 정부의 재정정책도 성장세를 뒷받침했다. 그럼에도 RRF는 국가 재정만으로는 확보하기 어려운 투자 규모와 정책의 연속성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반면 연구개발(R&D) 투자와 인재 양성은 여전히 부족하며, 투자 확대가 수입 증가로 이어지는 산업 구조와 높은 해외 공급 의존도는 향후 개선해야 할 과제로 지적된다.

스페인은 고용, 이탈리아는 투자
스페인은 RRF 지원이 고용시장 개선으로 이어진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지난해 실질 GDP는 2019년 대비 10.2% 증가했고 총 노동시간도 7.4% 늘었다. 경제 규모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고용과 실제 노동 투입이 함께 증가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이 같은 변화는 노동시장 개혁과 직업훈련, 구직 지원 정책을 투자와 병행한 결과로 평가된다. 2022년 이후 기간제와 임시직 비중이 크게 감소하면서 오랫동안 지적돼 온 이중 노동시장 구조도 완화됐다. 이민 확대에 따른 노동 공급 증가와 관광산업 및 내수 회복도 고용 개선에 힘을 보탰다. 노동 투입은 잠재성장률 제고에 가장 크게 기여했고, TFP도 개선 흐름을 나타냈다.
반면 투자 확대는 상대적으로 제한적이었다. GDP 대비 투자 비중은 팬데믹 이전보다 0.3%포인트 높아지는 데 그쳤다. 고정투자와 생산은 증가했지만 장기실업과 서비스업의 낮은 노동생산성, 지역 간 생산성 격차는 여전히 해결해야 할 과제로 남아 있다. 지난해 실업률은 10.5%를 기록했으며 올해에는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 아래로 내려갈 것으로 예상된다. 앞으로는 고용시장 개선이 노동 이동성 확대와 고부가가치 산업 육성으로 이어져 생산성 향상을 뒷받침해야 한다.
반면 이탈리아는 투자 확대가 회복을 이끌었다. 지난해 실질 GDP는 2019년 대비 6.4% 증가해 세 나라 가운데 증가율은 가장 낮았지만, GDP 대비 투자 비중은 3.7%포인트 상승했다. 주택 개보수 지원제도인 '슈퍼보너스(Superbonus)'가 단계적으로 축소되는 과정에서도 주거용을 제외한 민간투자와 자본지출은 견조한 흐름을 이어갔다.
RRF는 도로와 철도, 디지털 인프라, 기계·설비, 기업 투자에 집중 투입됐다. 사법과 공공행정, 공공조달, 교육 분야의 개혁도 투자 환경 개선에 힘을 보탰다. 그러나 늘어난 투자가 생산성 향상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TFP는 여전히 이탈리아 경제의 가장 큰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는 이탈리아의 TFP 증가율이 2026년 0.5%, 2027년 0.6%에 머물 것으로 전망했다. 오랜 기간 누적된 사법 절차 지연과 행정 역량 부족, 낮은 고용률 등이 생산성 개선을 제약하는 구조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지속 가능한 경제 수렴을 위한 과제
남유럽의 경기 회복은 분명한 성과지만, 이를 유럽 평균과의 경제 격차 축소로 단정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국가부채 부담은 여전히 크고 성장 잠재력을 제약하는 구조적 문제도 남아 있다. 지난해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그리스 146%, 이탈리아 137%, 스페인 101%를 기록했다. 그리스는 부채비율이 점차 하락하고 있지만, 이탈리아는 2027년 139.2%까지 다시 상승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고령화에 따른 노동력 감소와 지역 간 생산성 격차, 일부 국가의 높은 실업률도 성장의 제약 요인으로 꼽힌다.
이 같은 과제는 RRF가 종료된 이후 더욱 뚜렷해질 가능성이 있다. 회원국들은 올해 8월까지 투자와 구조개혁 과제를 모두 완료해야 하며, 이후 공동 재정 지원은 사실상 막을 내린다. 그리스는 투자 감소의 영향으로 2027년 성장률이 1.6%까지 둔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탈리아와 스페인도 공공투자 축소와 재정 정상화 과정에서 성장세가 다소 약해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남유럽의 경제 수렴은 RRF 이후에도 투자와 생산성 향상을 이어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이를 위해 성장 파급효과가 큰 사업은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인허가 절차와 행정 규제는 합리화해 민간투자가 이어질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제도에 대한 신뢰를 높여 민간자본이 안정적으로 유입되는 구조를 만드는 일도 중요하다. 단기적인 경기 회복에 머무르지 않고 생산성과 투자 확대가 장기 성장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남유럽의 경제 수렴도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Europe’s Fiscal Turn] Southern Europe’s Gains - Southern Convergence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