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파이낸셜] 기축통화 지위 잃는 비용은 얼마나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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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축통화 프리미엄 약화, 미국 경제 부담 확대 달러 비중 감소·금 보유 확대에 따른 달러 위상 변화 조달 비용 상승 반영한 정책 전환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기축통화 지위는 미국이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고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는 기반으로 꼽힌다. 최근 발표된 경제모형은 미국이 기축통화 지위를 완전히 상실할 경우 국부가 약 30조 달러(약 4경3,290조원)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GDP)에 육박하는 규모로, 기축통화 지위 상실에 따른 경제적 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한 결과다. 이 모형은 달러의 급격한 붕괴보다 기축통화 지위가 장기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약화되는 과정에 주목했다. 외국인의 미 국채 보유 비중 감소와 채권금리 상승,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 확대는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로 제시됐다.
기축통화 특권 약화의 파급효과
기축통화 지위 약화는 환율보다 금리를 통해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분석됐다. 그동안 해외 투자자들은 높은 안전성과 유동성을 갖춘 달러 자산을 보유하는 대신 낮은 수익률을 받아들여 왔다. 그 결과 미국은 다른 국가보다 낮은 비용으로 자금을 조달하는 기축통화 프리미엄을 누릴 수 있었다. 세계가 달러의 안전성과 유동성에 일정한 대가를 지급해 온 셈이다. 이 같은 구조가 약화되면 해외 자금 유입이 둔화하면서 달러 가치가 하락한다. 이어 외국인 투자자의 미 국채 매입 감소분을 국내 투자자가 떠안으면서 국채금리와 차입비용도 오르게 된다. 여기에 기축통화 프리미엄 축소가 더해지면서 국부 감소로 이어진다. 이러한 변화는 금융위기나 전쟁이 없어도 나타날 수 있다. 달러 자산에 대한 해외 수요가 장기간 완만하게 감소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통계로 확인되는 달러 비중 축소
기축통화 지위 약화는 주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세계 외환보유액에서 달러가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대 초 약 72%에서 2025년 말 57% 미만으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미 정부부채에서 외국인 보유 비중도 약 45%에서 30% 수준으로 축소됐다. 감소세는 민간 달러표시 채권보다 미 국채에 집중되는 양상을 보였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이 달러를 국제 결제통화로 계속 활용하면서도 미국 정부의 신용위험은 별도로 평가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 같은 변화는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운용에서도 나타난다. 세계 중앙은행들은 2022년부터 2024년까지 매년 1,000톤이 넘는 금을 매입했다. 이는 1960년대 말 이후 가장 빠른 증가세이자 이전 10년 평균의 약 두 배에 이르는 규모다. 이에 따라 공식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도 2015년 10% 미만에서 23% 이상으로 높아졌다. 폴란드는 준비자산에서 금이 차지하는 비중을 약 3분의 1까지 높이기로 했으며, 인도는 해외에 보관하던 금을 국내로 옮겼다. 이와 같이 중앙은행들이 세계에서 가장 유동성이 높은 미 국채보다 거래상대방 위험이 없는 금을 선택한 것은 수익률보다 안전성과 신뢰를 우선한 결정으로 해석된다.

역사가 보여준 기축통화의 전환 과정
과거 기축통화의 교체는 장기간에 걸쳐 진행됐으며, 전쟁과 같은 대형 사건은 이미 진행되던 시장의 변화를 확정하는 계기가 됐다. 전간기 국제통화 질서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달러는 1920년대 중반 이미 영국 파운드를 제치고 세계 주요 준비통화로 부상했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시점보다 20여 년 이른 시기다. 뉴욕 금융시장이 성장하면서 달러의 영향력은 커졌고, 파운드와의 격차도 점차 뚜렷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은 이러한 변화를 촉발한 사건이라기보다 이미 진행되던 흐름을 확정한 계기로 평가된다. 비슷한 사례는 19세기 초에도 찾아볼 수 있다. 1805년 트라팔가르 해전 당시 스페인 페소는 이미 수십 년에 걸쳐 대서양 무역에서 영향력을 잃고 있었다. 트라팔가르 해전은 시장에서 누적돼 온 변화를 분명하게 드러낸 계기가 됐다.
시장 변화는 이미 진행 중
달러는 강력한 무역 결제망과 통화스와프 체계, 세계 최대 규모의 금융시장을 갖춘 만큼 기축통화 지위 변화도 과거보다 훨씬 더디게 진행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그러나 1920년대 영국 파운드 역시 당시 가장 발달한 금융 인프라를 갖추고 있었지만, 10여 년 만에 달러에 기축통화 지위를 내주기 시작했다. 이처럼 금융시장의 규모와 유동성은 전환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통화에 대한 신뢰 약화까지 되돌리지는 못한다. 기축통화 지위 약화는 단기간에 나타나는 충격이 아니다. 외환보유액에서 달러 비중이 낮아지고, 해외의 미 국채 수요가 줄어들며, 각국 중앙은행의 금 매입이 늘어나는 변화가 누적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만약 정책당국이 명확한 위기 신호만 기다린다면 대응 시기를 놓칠 가능성이 크다.
달러를 둘러싼 변화는 이미 주요 경제지표와 중앙은행의 준비자산 운용에서 확인된다. 외환보유액 내 달러 비중 축소와 해외의 미 국채 보유 감소, 금 보유 확대는 국제통화 질서가 점진적으로 재편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에 따라 정책당국과 시장은 낮은 차입비용이 장기간 유지될 것이라는 기존 전제에서 벗어나 기축통화 프리미엄 약화와 구조적인 조달 비용 상승 가능성을 반영한 재정·통화정책과 자금 운용 전략을 마련할 시점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Dollar's Quiet Unwinding: What a Reserve Currency Status Simulation Really Shows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