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직업면허제도의 역설, 경쟁 막고 혁신 늦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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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면허, 기존 종사자 보호 장치로 변질 경쟁 제한·혁신 저해·소비자 부담 확대 공공 위험 중심 면허제 개편 필요
본 연구 기사는 유럽 경제 연구소 The Economy의 연구위원(Fellow)들이 작성한 The Economy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인 의견이며, The Economy 또는 집필자의 소속 기관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취업자의 20%가 넘는 노동자가 생계를 위해 정부의 직업면허를 취득해야 한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직업면허 보유 비중은 21.6%다. 1950년대만 해도 이 비율은 약 5%에 불과했다. 지난 70년 동안 직업면허는 의사와 변호사 같은 전문직을 넘어 미용과 조경, 실내장식 등 일상적인 서비스업까지 빠르게 확대됐다. 그동안 직업면허 확대는 소비자 안전을 위한 제도라는 명분 아래 추진돼 왔다. 그러나 실제로는 기존 종사자의 시장 지위를 보호하는 장치로 기능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경쟁자의 시장 진입을 어렵게 만들고 가격 경쟁을 완화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면허 비중과 소득의 역설
오랫동안 직업면허제는 미국 특유의 과도한 규제로 여겨졌다. 대표적인 사례가 루이지애나주의 꽃꽂이 면허다. 단순히 꽃꽂이를 하는 데도 정부 면허가 필요하다는 규정은 직업면허 남용을 상징하는 사례로 자주 언급됐다. 그러나 최근 발표된 국가 간 비교 연구는 직업면허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적으로 확산한 제도라는 점을 보여준다. 올해 발표된 44개국 비교 연구에 따르면 직업면허는 전 세계 노동력의 평균 약 25%에 적용된다. 인도와 남아프리카공화국은 노동자의 40% 이상이 직업면허를 보유해 미국과 대부분의 유럽 국가보다 비중이 높았다. 호주와 독일, 일본, 칠레에서도 노동력의 30% 이상이 면허 규제를 받고 있었다.
국가별 면허 비중은 기존 통설과도 다른 양상을 보였다. 그동안 면허제 옹호론자들은 경제가 발전할수록 직업면허도 자연스럽게 늘어나고 저소득 국가는 아직 그 단계에 이르지 못했을 뿐이라고 설명해 왔다. 하지만 비교 결과는 정반대였다. 직업면허 비중이 높은 국가일수록 1인당 소득은 오히려 낮았고, 높은 진입 비용을 감당하지 못한 노동자가 비공식 경제로 이동하는 비중도 더 컸다. 이 같은 결과는 시장 진입 기준이 기존 종사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결정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용과 조경, 단순 회계 업무까지 면허 취득을 의무화한 사례도 소비자 안전보다는 경쟁을 제한하려는 업계의 요구가 제도에 반영된 결과로 해석된다.

면허가 만든 '지대', 비용은 소비자 몫
국가 간 비교 연구에서도 직업면허가 기존 종사자의 임금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조사 대상 44개국에서 직업면허 보유자는 비슷한 조건의 비면허 노동자 대비 평균 6~19% 높은 임금을 받았다. 이 같은 임금 프리미엄은 서로 다른 법체계와 문화권에서도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면허가 단순히 숙련도와 안전성을 보상하는 제도라면, 교육 수준이 높은 국가일수록 임금 격차는 줄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거의 모든 국가에서 비슷한 수준의 프리미엄이 유지됐다. 연구진은 이를 경쟁자의 시장 진입이 제한된 결과로 해석했다.
경제학에서는 이처럼 진입장벽을 통해 기존 종사자가 얻는 초과수익을 '지대(Rent)'라고 부른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Brookings Institution) 분석도 같은 결론을 뒷받침한다. 학력과 경력 등 다른 요인을 통제한 이후에도 직업면허 보유자의 임금은 비면허 노동자 대비 평균 4% 높았다. 의료와 건설, 운송 분야에서는 임금 프리미엄이 더욱 두드러졌다.
한번 도입된 면허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미국 공익법률단체 사법연구소(Institute for Justice)에 따르면 저소득 직종 102개에만 2,749개의 주(州)별 면허가 운영되고 있다. 면허를 취득하려면 평균 362일의 교육을 이수하고 시험과 수수료도 거쳐야 한다. 지난 40년 동안 기존 면허가 완전히 폐지된 사례는 극히 드물었다. 면허를 보유한 기존 종사자들이 자신들의 '지대'를 유지하려 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에서는 이러한 행태를 '지대추구(Rent seeking)'라고 부른다. 그 결과 소비자는 더 높은 가격을 부담하고 선택권은 줄어들며 필요한 분야의 신규 인력 유입도 늦어지게 된다.

혁신을 가로막는 면허제도
직업면허의 문제는 경쟁 제한에 그치지 않는다. 시장의 혁신 속도까지 늦춘다는 점에서 부작용은 더욱 크다. 면허위원회는 대부분 기존 면허 보유자로 구성돼 새로운 기술과 사업 모델보다 기존 규정을 유지하려는 유인이 강하다. 이 때문에 디지털 플랫폼이나 새로운 서비스 방식을 도입하려는 사업자와 노동자는 오래된 면허 규정에 가로막혀 시장에 진입하거나 혁신을 시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경쟁이 제한되면 기존 종사자가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거나 가격을 낮춰 경쟁할 필요도 줄어든다. 반면 젊은 노동자와 새로운 기술을 갖춘 인력은 수개월에 걸친 교육과 비용 부담 때문에 시장 진입 자체를 포기하기 쉽다. 결국 시장은 기존 구조를 유지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게 된다.
노동시장 구성에도 변화가 나타난다. 면허 취득이 어려울수록 젊은 인력과 경력 전환을 원하는 노동자의 진입은 줄고 기존 종사자의 비중은 높아진다. 연구진은 이를 면허 시장의 '베이비붐 세대 효과(boomer effect)'로 설명했다. 그 결과 소비자는 새로운 기술과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자보다 기존 공급자에게 의존할 가능성이 커진다. 또한 직업면허 확대가 소비자 보호로 이어졌다고 보기 어려웠다. 직업면허 비중이 낮은 북유럽 국가들이 면허 비중이 높은 국가보다 소비자 보호 수준이 떨어진다는 근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연구는 직업면허 확대가 소비자 안전으로 이어진다는 일반적인 통설을 뒷받침할 증거는 충분하지 않다고 평가했다.
소비자 위한 제도 개혁 필요
직업면허 개혁이 의료와 법률, 항공처럼 공공 안전과 직결된 분야의 면허를 폐지하자는 뜻은 아니다. 핵심은 공공 위험이 큰 분야에 필요한 규제만 유지하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면허를 도입하거나 기존 제도를 유지할 때 해당 규제가 실제로 공공의 위험을 줄이는지부터 따져야 한다. 위험이 크지 않은 직종은 민간 자격인증과 소비자 평가, 보증제도, 손해배상보험 등으로도 소비자 보호가 가능하다.
기존 면허도 예외는 아니다. 면허 관련 법률에 일몰조항(sunset clause)을 도입해 일정 기간마다 규제의 필요성을 다시 평가하고, 주(州) 간 면허 상호인정을 확대해 노동자의 이동을 가로막는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필요한 규제는 유지하되 시대 변화에 맞지 않는 면허는 정비하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직업면허는 소비자 보호를 위한 제도로 출발했다. 그러나 제도가 확대되면서 경쟁은 제한됐고 혁신은 늦어졌으며 소비자 부담도 커졌다. 이제 직업면허는 얼마나 많은 규제를 유지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떤 규제가 공익에 필요한지를 다시 묻는 단계에 들어섰다. 소비자 보호에 필요한 면허는 유지하되 경쟁만 제한하는 규제는 과감히 정비하는 것이 직업면허 개혁의 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The License to Overcharge: Why Occupational Licensing Protects Insiders, Not the Public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The Economy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