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 늘려도 살 사람이 없다” 빚에 눌린 가계·판로 막힌 기업, 中 산업 부양 딜레마
입력
수정
소득 감소·고용 불안, 가계 살림 압박 빚 갚을 여력 줄고 소비마저 위축 내수기업 판매 부진 속 투자 회복도 난항

중국 가계가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에 시달리면서 빚 상환과 소비를 감당할 여력이 약해지고 있다. 은행들이 상환 능력을 믿었던 중년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카드 연체가 늘어 가계 형편이 팍팍해진 현실을 드러냈다. 여기에 부동산 불황으로 자산 가치까지 떨어지자 가계는 지출을 줄였고, 내수기업들도 판매 부진에 투자 확대를 주저하는 상황이다. 중국 정부는 첨단산업 육성으로 부동산 침체의 공백을 메우려 하지만, 생산 확대가 고용과 소득 증가로 충분히 이어지지 않아 소비 회복에도 힘이 붙지 않고 있다. 산업 지원으로 생산 능력을 키우는 동안 가계의 구매력은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장기 침체 우려가 커지는 양상이다.
중국 부실채권 매물 한 분기 새 50% 급증
2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올해 3분기 공식 부실채권 거래 플랫폼인 은행신용자산등록유통센터에 신규 등록된 채권은 원리금 기준 1,481억 위안(약 30조원)으로, 전 분기보다 약 50% 늘었다. 이 가운데 신용카드 연체 채권이 35.2%를 차지해 단일 부문으로는 비중이 가장 컸다. 이달 들어서도 22일까지 신규 채권 포트폴리오 82건이 등록되며 매각 물량이 쌓이고 있다. 올해 1~9월 누적 등록액은 3,222억 위안(약 63조8,50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6.4% 늘었다.
은행권에서는 부실채권 매각과 함께 손실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도 확대하는 추세다. 중국 경제매체 차이신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중국 상장 은행 상당수에서 개인대출 부실이 늘었으며, 손상차손 충당금 적립액은 전년 동기보다 17.8% 증가했다. 차주의 상환 능력이 약해진 데다 대출 건전성 분류 기준까지 강화되면서 은행들이 부실로 인식하고 손실에 대비해야 할 부담이 커진 것이다. 실제 중국 6대 국유은행 모두 6월 말 개인대출 부실채권 비율이 지난해 말보다 높아졌다. 교통은행은 이 비율이 0.44%포인트 오른 2.02%를 기록했고, 공상은행도 0.19%포인트 상승한 1.77%로 집계됐다.
개인대출 부실이 늘어나는 가운데 은행들이 상환 능력을 믿었던 중년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카드 연체가 확산하고 있다. 주요 금융기관이 공개한 연체 카드 고객의 평균 연령은 대체로 40~50세였으며, 핑안은행 역시 해당 차주들을 중년층으로 명시했다. 국유은행의 상하이 지점에서 카드 업무를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국유기업과 정부기관 등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고객 사이에서도 연체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연체 고객 상당수는 급여 삭감이나 실직으로 카드 대금을 갚기 어려워졌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득이 줄자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과 가족 생활비부터 충당하면서 카드 대금 상환을 뒤로 미루고 있다는 설명이다.
표1. 중국 부실채권 증가 및 개인대출 연체 확산
| 구분 | 주요 항목 | 내용 |
|---|---|---|
| 부실채권 등록 | 올해 3분기 신규 등록액 | 원리금 기준 1,481억 위안 전 분기 대비 약 50% 증가 |
| 신용카드 연체 채권 비중 | 3분기 신규 등록액 대비 35.2% 단일 부문 중 최대 | |
| 올해 1~9월 누적 등록액 | 3,222억 위안 전년 동기 대비 26.4% 증가 | |
| 10월 신규 등록 | 22일까지 채권 포트폴리오 82건 | |
| 은행 건전성 부담 | 손상차손 충당금 적립액 | 올해 상반기 전년 동기 대비 17.8% 증가 |
| 6대 국유은행 | 6곳 모두 6월 말 개인대출 부실채권 비율 상승 지난해 말 대비 | |
| 은행별 개인대출 부실채권 비율 | 교통은행 2.02%, 지난해 말 대비 0.44%포인트 상승 공상은행 1.77%, 지난해 말 대비 0.19%포인트 상승 | |
| 부담 확대 요인 | 차주 상환 능력 약화 대출 건전성 분류 기준 강화 | |
| 카드 연체 확산 | 연체 고객 특성 | 주요 금융기관 공개 자료 기준 평균 연령 대체로 40~50세 국유기업·정부기관 등 안정적 직장 고객 연체 증가 |
| 광다은행 매각 사례 | 8월 매각 대상 부실채권 100억 위안 이상 해당 채권 묶음 내 전문대졸 이상 학력자 비중 높음 | |
| 상환 지연 배경 | 급여 삭감·실직에 따른 소득 감소 주택담보대출 원리금·가족 생활비 우선 충당 카드 대금 상환 후순위 |
중국 성인 1억 명, 빚 못 갚는 처지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중년층의 연체 증가는 가계의 소비 여력이 그만큼 약해졌다는 신호로 읽힌다. 투자분석업체 가베칼 드라고노믹스가 26개 은행의 재무자료 등을 분석한 결과, 지난해 말 중국의 부실 가계부채는 2조2,200억 위안(약 439조9,370억원)으로 1년 새 21% 불어났다. 신용카드 대출과 주택담보대출 등을 제때 갚지 못하는 성인도 1억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됐다. 전체 가계부채가 지난 10년간 약 세 배로 늘어 83조 위안(약 1경6,450조원)에 달한 가운데, 소득 감소와 고용 불안이 겹치며 상환에 어려움을 겪는 차주가 늘어난 것이다. 빚을 감당하지 못하는 개인이 채무를 조정하거나 면책받을 수 있는 전국 단위의 개인파산 제도도 갖춰지지 않아 연체자의 경제활동 복귀를 뒷받침할 장치가 부족한 실정이다.
빚에 묶인 가계가 지출을 줄이고 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이면서 소비 회복도 제약을 받고 있다. 중국 정부는 올해 소비자대출 이자 지원 한도를 1인당 3,000위안(약 60만원)으로 세 배 늘리고 신용카드 할부까지 지원 대상에 포함했으나, 은행권에서는 추가 부실을 막기 위해 심사를 강화하는 움직임이 이어졌다. 대출을 받아 소비하려는 수요도 부진해 지난 6월 가계 단기대출 잔액은 전년 동기보다 7% 감소했다. 신용도가 높은 고객들까지 카드 사용을 줄이는 추세여서 소비를 끌어올리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글로벌 신용평가사 무디스에 따르면 신용도가 높은 고객들은 신용카드 사용을 줄이고, 신용도가 낮은 소비자들은 여전히 대출에 의존하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상환 여력이 있는 고객의 차입은 줄어드는 가운데 자금 사정이 어려운 차주들의 대출 수요가 이어지면서 은행이 떠안는 부실 위험도 커지는 형국이다.
부동산 불황이 소비·투자 동반 위축 불러
가계의 소비 심리를 짓누르는 부동산 침체도 길어지고 있다. 집값 하락으로 보유 자산 가치가 줄면서 주택 구입과 지출을 미루는 흐름이 이어지는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부동산 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20.6% 감소했고, 주택 판매도 위축됐다. 주택이 팔리지 않으면 개발업체의 분양대금 유입이 줄어 토지 매입과 신규 공사에 쓸 자금도 부족해지는 만큼, 판매 부진이 투자 회복까지 가로막는 구조다. 부동산 경기 회복이 지연되면서 내수 부진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옥스퍼드이코노믹스의 시아나 웨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중국의 주거용 부동산 투자가 2031년에야 회복될 것으로 예상하며, 부동산 침체 장기화를 반영해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4.3%로 낮췄다.
부동산 불황이 소비와 투자 위축으로 이어지면서 중국이 ‘잃어버린 10년’에 접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자산 가치가 떨어진 가계와 기업이 빚을 줄이기 위해 소비와 투자를 억제하면, 매출 감소와 소득 부진이 다시 지출 축소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진다는 지적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일부 경제학자들은 2021년 부동산 거품 붕괴를 중국의 장기 침체가 시작된 시점으로 보고, 이미 ‘잃어버린 10년’의 절반을 지났다고 진단했다. 민간이 빚을 갚느라 줄인 지출을 정부가 메우지 않으면 수요 부족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을 연구해 온 리처드 쿠 노무라종합연구소 수석이코노미스트도 중국 내에서도 재정 부양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넓어졌으나 정부의 정책 기조는 충분히 바뀌지 않았다고 짚었다. 민간이 지출을 꺼리는 상황에서 정부 대응까지 늦어질 경우 부동산 침체의 충격이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경고다.
표2. 중국 생산·소비·투자 주요 지표
| 구분 | 주요 지표 | 올해 1~9월 전년 동기 대비 |
|---|---|---|
| 첨단산업 생산 | 첨단 제조업 부가가치 | 14.3% 증가 |
| 리튬이온 배터리 생산량 | 39.5% 증가 | |
| 산업용 로봇 생산량 | 29.1% 증가 | |
| 소비 | 소매판매 | 1.1% 증가 |
| 투자 | 전체 고정자산 투자 | 7.2% 감소 |
| 부동산 개발 제외 투자 | 4.2% 감소 | |
| 민간투자 | 10.4% 감소 |
내수 부진, 산업 부양 효과 잠식
하지만 중국 정부의 부양 자금은 첨단산업의 생산 능력을 키우는 데 집중돼, 민간의 소비 위축을 메우는 데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산업 육성에 막대한 자금을 쏟아부어 공급을 늘려도 국내 구매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늘어난 물량의 판로를 해외에서 찾아야 하는 구조다. 정부가 집중 지원한 첨단산업에서는 이미 생산이 크게 늘었다. 중국 국가통계국에 따르면 올해 1~9월 첨단 제조업의 부가가치는 전년 동기보다 14.3% 증가했으며, 리튬이온 배터리와 산업용 로봇 생산량도 각각 39.5%, 29.1%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소매판매 증가율은 1.1%에 그쳐 국내 소비 회복이 더딘 상태다. 국내에서 충분한 판로를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로서는 해외 판매에 더욱 의존할 수밖에 없다. 결국 내수 회복 없이 생산 지원이 이어지면 보조금의 혜택이 저가 제품을 구매하는 해외 소비자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내수 부진은 첨단산업을 키워 부동산 침체의 공백을 메우려는 정부의 구상에도 부담이다. 국내에서 제품이 더 팔릴 것이라는 기대가 약하면 기업들도 공장을 짓거나 설비를 늘리는 데 선뜻 돈을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1~9월 중국의 전체 고정자산 투자는 전년 동기보다 7.2% 감소했다. 부동산 개발을 제외한 투자도 4.2% 줄어 투자 위축이 여러 산업에 걸쳐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민간투자 역시 10.4% 감소해 기업들의 사업 확장 움직임은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정부 지원이 집중된 첨단업종에서 생산량이 늘어도, 기업 전반의 투자 회복으로 이어질 만큼 국내 판매 전망이 개선되지는 못한 셈이다.
경제 체질 개선 가로막는 고용·소득 부진
첨단산업 육성이 경제 전반의 투자 회복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중국의 성장 구조 전환도 진통을 겪고 있다. 부동산과 기반시설 투자에 의존해 온 경제에서 새로운 산업이 성장하더라도, 기존 부문에서 줄어든 일자리와 소득을 채우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동안 중국은 지방정부의 투자 유치와 국유은행의 자금 공급을 통해 생산시설을 늘리는 데 힘을 쏟았다. 가계의 소비를 성장 동력으로 키우려면 기업에 집중된 재원 배분과 투자 실적을 중시하는 지방정부의 정책 유인도 함께 바꿔야 한다는 게 국제통화기금(IMF)의 진단이다. 다만 기업 지원 축소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과세 강화에는 단기적인 경기 충격이 수반될 위험이 따른다. 기존 산업에서 줄어든 일자리와 소득을 새 산업이 충분히 채우지 못하면, 가계 지원을 늘려도 소비 회복은 더뎌질 가능성이 크다.
첨단산업의 생산 확대가 내수 회복으로 이어지는 데는 고용 구조도 걸림돌이다. 전기차 등 중국 정부가 집중 육성한 업종은 대규모 설비와 자동화에 의존해 생산을 늘려도 신규 채용과 가계소득 증가로 이어지는 효과가 크지 않다. 마니시 레이차우두리는 25일 로이터통신 기고에서 첨단 제조업 투자가 성장률을 떠받쳤지만 실업 문제를 해소하는 효과는 제한적이었다고 짚었다. 기술 자립을 우선하는 자금 배분 탓에 노동집약적 산업에 대한 지원도 줄었다고 지적했다. 첨단업종의 채용 확대가 충분하지 않은 상태에서 인력을 많이 쓰는 산업의 지원 여력도 약해져 고용 불안을 해소하기가 더욱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고용 불안은 일자리를 가진 가계의 지출에도 영향을 미친다. 앞으로 소득이 줄거나 끊길 가능성에 대비해 당장의 소비를 미루고 저축을 늘리게 되는 것이다. 해당 기고가 인용한 2024년 중국 인민은행 조사에서도 취약한 고용시장이 저축률 상승의 원인으로 지목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