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준 독립성 흔드는 검찰 수사, 트럼프 폭주 속 달러 패권 ‘경고등’
연준 독립성 흔드는 검찰 수사, 트럼프 폭주 속 달러 패권 ‘경고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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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월 연준 의장 소환한 미 검찰 트럼프와의 충돌, ‘사법전’으로 금리 압박 속 정책 독립성 논란 재점화

미국 연방검찰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연준·Fed) 의장을 소환했다. 금리 인하를 둘러싸고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해 온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갈등이 '사법전'으로 번지며 충돌이 확대되는 모습이다. 금리 정책을 둘러싼 갈등이 백악관과 연준 간의 전면전으로 비화하는 가운데,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금융 시스템에 대한 신뢰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美 검찰 연준 의장에 소환장, 금리인하 안 따르자 보복
11일(이하 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워싱턴DC 연방검찰청은 최근 파월 의장을 상대로 연준 본부 건물 개보수 프로젝트 과정에서의 관리 부실과 의회 위증 혐의에 대해 수사를 개시했다. 이번 수사는 지난해 트럼프 대통령이 임명한 측근 제닌 피로(Jeanine Pirro) 검찰청장이 작년 11월 최종 승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25억 달러(약 3조6,700억원) 규모의 본부 개보수 사업 예산이 초과 집행된 경위와 파월 의장이 지난해 6월 의회 청문회에서 프로젝트의 구체적 내용을 축소 보고했는지 여부를 집중 조사 중이다.
NYT는 이번 수사가 트럼프 대통령과 파월 의장 간 장기 갈등이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고 짚었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물가 안정과 완전 고용이라는 연준의 이중 책무와 상관없이, 경기 부양을 위해 금리를 더 빠르게 인하하라고 파월 의장을 공개적으로 압박하며 사퇴를 종용해 왔다. 그는 지난해 12월 인터뷰에서도 올해 임기가 끝날 파월 의장의 후임자를 지명할 때 '즉각적인 금리 인하를 단행할지' 여부를 핵심 기준으로 삼겠다고 밝히며 연준의 통화정책 독립성을 부정하는 듯한 행보를 보였다. 최근 NYT와의 인터뷰에서는 “이미 후임자를 결정했다”며 자신의 측근 경제 참모인 케빈 해싯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을 유력 후보로 암시하기도 했다.
미국 대통령은 연준 의장의 지명 권한은 있지만, 해임 권한은 없다. 더구나 연준법(The Federal Reserve Act)에 따르면 연준 이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해임할 수 없다. 지난 1935년 미국 대법원은 프랭클린 델라노 루즈벨트 대통령에게 정책 노선 불일치를 이유로는 정부 독립기관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위원을 함부로 해임할 수 없다고 판결한 바 있다. 하지만 이번 형사 수사 결과에 따라 트럼프 대통령이 해임 명분을 확보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파월 의장의 연준 의장 임기는 오는 5월 종료되지만, 이사로서의 임기는 2028년 1월까지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리사 쿡 연준 이사도 사기 혐의를 내세워 해임을 시도한 바 있다.
파월 의장도 자신에 적용된 혐의가 구실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의 노골적 금리 인하 요구에 순응하지 않자 보복 수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그는 11일 연준 공식 엑스(X·구 트위터)를 통해 "이것은 작년 6월 저의 증언이나 건물 공사에 관한 것이 아니다"라며 "연준이 트럼프 대통령 선호와 달리 어떻게 하는 것이 공익에 도움이 될지에 대한 최선의 판단으로 금리를 정해온 것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것은 연준이 증거와 경제 여건에 입각해 금리를 결정해 나갈 수 있을지, 아니면 통화정책이 정치적 협박에 좌우될지에 관한 문제"라며, 향후에도 독립적으로 기준금리를 정하겠다는 입장을 재확인했다.

누가 차기 의장 되든 시장은 독립성 의심할 것
트럼프 대통령이 연준에 금리인하 압박을 지속하는 배경에는 급증한 재정적자가 자리한다. 미 연방정부 부채는 지난해 말 기준 38조5,678억 달러(약 5경5,000조원)에 달한다. 미 의회예산처(CBO)에 따르면 미 부채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100% 수준에서 앞으로 30년 동안 150% 이상으로, 연방정부가 감당해야 하는 순이자 비용은 GDP의 3.2%에서 5.4% 수준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전쟁이나 심각한 경기침체가 아닌 상황에서 GDP 대비 6%대 재정적자가 지속되는 상황은 전례를 찾기 힘들다.
이런 상황에서 통화정책이 재정정책에 종속되는 재정 우위(Fiscal Dominance)에 놓일 경우, 일시적으로는 정부의 재정 부담이 줄어들 수 있으나, 변동성이 더 큰 인플레이션과 차입비용 재상승 등 위기가 뒤따를 수밖에 없다. 특히 시장이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가능성에 대한 신뢰를 상실한다면 '위험 프리미엄(Equity Risk Premium)' 상승으로 부채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시작되고, 결과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끌어내리는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실제 연준은 글로벌 금융 시스템에 있어 ‘닻’ 역할을 한다. 그런 만큼 연준 독립성에 대한 공격은 세계 각국에 다른 통화로 다각화할 필요성을 고민하게 만든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부의장을 역임한 로저 퍼거슨(Roger Ferguson) 미국외교협회 국제경제학 명예연구원은 “연준에 대한 대통령의 압력은 독립성을 약화시키고 세계 기축통화로서 달러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킬 위험이 있다”며 “이러한 불확실성으로 인해 투자자들은 연방 정부가 점점 더 큰 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하며 미 국채에 대한 금리 인상을 요구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시장 일각에서는 지난해 미국 국채금리 변동성 확대와 주요 신용평가사의 미국 국가신용등급 하향 등을 두고 이런 우려가 이미 반영되기 시작했음을 뜻하는 신호라는 해석도 나온다.
경제 석학들, 중앙은행 독립성 훼손에 경고 목소리 일색
연준이 행정부에 휘둘리게 되면 미국 통화정책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글로벌 투자은행(IB) 파이퍼 샌들러(Piper Sandler)는 최근 투자자들에게 보낸 보고서를 통해 “누가 후임이 되든 시장은 연준의 독립성을 의심할 것”이라며 “연준의 정치화는 매우 중대한 사안”이라고 지적했다.
중앙은행에 대한 정치 개입의 위험성은 역사적으로도 증명됐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 1970년대 연준이 정치 개입으로 인해 잘못된 정책을 편 결과 1980년대 초 고금리와 혹독한 경기 침체에 시달린 사례를 들며 “정치적 압력이 심해지면 연준이 데이터가 아닌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움직인다는 의심을 사게 되고, 이는 시장 신뢰를 약화시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세계 경제 석학들도 연준이 정부의 꼭두각시로 전락할 경우 강력한 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미 국채에 대한 투자자 신뢰가 깨질 것으로 내다봤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최근 미국과 영국, 유럽의 경제학자 9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89명의 경제학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압박 “이미 연준의 신뢰를 떨어뜨렸다”고 평가했다. 경제학자 중 42%는 연준 독립성 훼손에 따른 최대 위험 요인으로 “강력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나타날 것으로 봤고, 35%는 “미 국채에 대한 투자자 신뢰 상실 가능성”을 걱정했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의 공격이 연준 독립성에 “의미있는 위험이 아니다”라는 답변은 응답자 94명 중 단 1명에 불과했다.
설문에 참여한 뤼디거 바흐만(Rüdiger Bachmann) 미시간대 경제학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연준 공격이 미국 경제에 피해를 줄 것이라는 관측은 대부분의 경제학자가 동의하는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크리스티안 바우마이스터(Christiane Baumeister) 노트르담대 교수는 “연준이 트럼프 행정부의 꼭두각시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다른 여러 응답자들은 미국의 통화 정책 전망을 “끔찍하다”, “혼란스럽다”, “재앙이나 마찬가지”라고 묘사했다.
이와 함께 독일 금융회사 LBBW의 모리츠 크래머(Moritz Kraemer)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백악관이 연준을 예속시키려 하면서 어떤 위험을 감수할지는 튀르키예를 보면 알 수 있다”며 “미국 달러는 튀르키예 리라보다도 크게 신뢰를 잃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튀르키예는 지난 2019년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Recep Tayyip Erdoğan) 대통령이 자신의 코드와 맞는 인사로 중앙은행장을 갈아치우고 인위적 저금리 정책을 추진한 까닭에 리라화 폭락과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을 겪고 있다. 스위스 취리히의 J사프라 사라신은행 소속 카르스텐 유니우스(Karsten Junius)는 “연준이 생존을 위해 싸우지 않으면 미국 달러도 위기와 마주할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