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딥폴리시] 관세로도 막지 못한 중국산 배터리
[딥폴리시] 관세로도 막지 못한 중국산 배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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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전기차 관세에도 중국 배터리 지배력 유지 경쟁력의 중심은 완성차 아닌 배터리 공급망 관세 한계 속 역량 구축·다변화 필요성 부각
본 기사는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의 SIAI Business Review 시리즈 기고문을 한국 시장 상황에 맞춰 재구성한 글입니다. 본 시리즈는 최신 기술·경제·정책 이슈에 대해 연구자의 시각을 담아, 일반 독자들에게도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기사에 담긴 견해는 집필자의 개인적 의견이며, SIAI 또는 그 소속 기관의 공식 입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유럽연합(EU)은 2025년 중국의 보조금을 받은 전기차(EV)에 관세를 부과하며 수입 억제 효과를 기대했다. 그러나 관세 시행 이후에도 유럽 전기차 시장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영향력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전 세계 전기차 배터리 생산의 약 3분의 2가 중국에 집중돼 있고, 유럽으로 수입되는 전기차 상당수가 중국 배터리 공급망에 의존하는 구조가 유지되고 있다. 관세는 차량 가격을 끌어올렸지만, 경쟁의 핵심인 배터리 공급 구조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다. 정책 당국이 완성차 수입에 초점을 맞추는 사이, 시장 주도권은 이미 배터리 단계에서 결정되고 있었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 지배 구조
중국 전기차 배터리 산업의 경쟁력은 장기간 축적된 생산 확대 과정에서 형성됐다. 중국은 지난 10여 년 동안 배터리 공장을 빠르게 늘리며 생산 능력을 집중적으로 확장해 왔다. 대규모 생산이 지속되면서 공정은 안정화됐고, 단위당 생산 비용과 불량률은 점진적으로 낮아졌다. 이러한 축적 효과는 시간이 지날수록 격차를 벌리며, 후발 주자의 진입을 구조적으로 어렵게 만들고 있다.
비용 측면에서도 중국의 우위는 분명하다. 2024~2025년 전 세계 배터리 팩 평균 가격은 킬로와트시(kWh)당 100달러(약 14만6,600원) 수준까지 하락했다. 중국에서는 일부 배터리 유형의 가격이 이보다 낮게 형성돼 있다. 배터리는 전기차 원가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요소로, 이러한 비용 격차는 완성차에 부과되는 관세 효과를 상당 부분 상쇄한다. 수입 관세가 적용되더라도 배터리 비용이 적으면 최종 차량 가격 경쟁력은 유지된다.
기술 전략 역시 이러한 비용 구조를 뒷받침했다. 중국 제조사들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비교적 이른 시점부터 대규모로 도입했다. LFP 배터리는 에너지 밀도는 낮지만 생산 비용이 적고 안전성이 높아 대중형 전기차에 적합하다. 이 선택은 생산 확대와 가격 인하를 동시에 가능하게 했고, 시장 점유율 확대 속도를 높였다. 반면 유럽과 미국 기업들은 니켈 함량이 높은 배터리에 집중하며 상대적으로 높은 원가 구조를 안게 됐다.
중국의 경쟁력은 배터리 셀 생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원자재 초기 가공부터 셀 제조, 모듈 조립, 최종 배터리 팩 통합까지 공급망 전반이 중국 내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다. 관련 기업과 인력이 밀집한 산업 단지에서는 생산과 물류가 동시에 최적화되며 비용과 시간이 절감된다. 이러한 산업 구조는 단기간에 외부에서 대체하기 어렵다. 완성차에 관세가 부과되더라도 배터리 산업의 핵심 경쟁력이 유지되는 배경이다.

주: EU의 전기차 수입 단가는 관세 적용 이후에도 수출 단가보다 낮은 수준을 유지했으며, 관세는 중국산 전기차의 가격 격차를 좁히는 데 한계를 드러냈다.
관세가 효과를 내지 못한 이유
이 같은 구조 속에서 중국 전기차 배터리를 겨냥한 관세가 실질적인 효과를 내기 어려웠던 이유도 분명해진다. EU는 중국산 전기차에 관세를 부과하면 가격 상승을 통해 수입이 줄고 대체 공급이 늘어날 것으로 판단했다. 그러나 관세 시행 이후에도 완성차 업체들은 중국 배터리 조달을 유지했다. 일부 기업이 조립 거점을 조정했지만, 배터리 공급선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 조립 위치의 변화가 배터리 의존 구조를 흔들지는 못했다.
시장의 이러한 반응에는 비용과 안정성이 동시에 작용했다. 중국 배터리는 관세를 반영하더라도 가격 경쟁력을 유지했고, 대규모 생산을 바탕으로 성능과 품질, 납기 측면에서도 신뢰도를 확보했다. 낮은 비용은 시장 점유율 확대를 이끌었고, 이는 다시 투자와 공정 개선으로 이어지며 경쟁력을 강화했다. 관세는 가격에 일정한 영향을 줬지만, 이러한 축적 구조에는 변화를 주지 못했다. 이로 인해 관세 인상의 한계도 드러났다. 비용 격차를 관세로 메우려는 시도는 보복 가능성을 키우고 소비자 가격 부담을 확대한다. 정치적 부담이 커지는 사이, 중국 생산자들은 효율을 높이고 새로운 수출 경로를 확보하며 대응했다. 정책 비용은 커졌지만, 실질적인 구조 변화는 제한적이었다.
중국의 우위가 기술 역량과 산업 생태계에서 비롯된다는 점 역시 관세의 효과를 제약했다. 세금으로 생산 경험과 숙련 인력, 공급망 통합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장기간의 투자와 인력 축적이 필요하다. 관세는 속도를 늦출 수는 있어도 시장의 방향을 바꾸지는 못했다. 오히려 협력과 공급 계약을 위축시켜 대체 공급망 구축의 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낳았다. 2025년 잇따른 보복 조치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더욱 분명히 했다. 전기차를 겨냥한 조치가 농업 등 다른 산업으로 확산됐지만, 중국 배터리 업체의 입지는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반면 유럽 산업과 소비자에게 비용 부담이 전가됐고, 중국 전기차 배터리에 대한 의존을 낮추겠다는 정책 목표도 달성되지 않았다.

주: 관세 적용 이후에도 EU는 중국산 전기차의 최저 단가 시장으로 남아 있으며, 배터리 중심의 비용 우위가 국경 비용을 흡수해 수입 흐름을 유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배터리 경쟁의 해법
이 같은 경험은 정책의 초점을 다시 설정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중국 전기차 배터리가 시장 경쟁의 중심에 있는 상황에서 관세만으로 구조를 바꾸기는 어렵다. 가격과 공급 안정성을 좌우하는 요소가 생산 능력과 산업 축적에 있기 때문이다. 대응의 중심은 수입 억제보다 국내에서 경쟁력을 쌓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한다. 핵심 과제는 인력 확보, 공공 수요 활용, 생산 여건 정비다.
우선 인력 확충이 필요하다. 배터리 산업은 제조 경험과 공정 이해가 누적될수록 경쟁력이 높아진다. 유럽은 이 분야에서 현장 중심 인력이 충분하지 않다. 실무 역량을 갖춘 인력이 늘어나지 않으면 설비 투자 역시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공공 부문의 수요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구매하는 차량과 대중교통 물량은 시장에 안정적인 기준을 제공한다. 배터리 원산지 정보 공개나 공급 구조에 대한 일정 요건을 통해 기업의 선택을 유도할 수 있다. 이러한 방식은 즉각적인 차단 없이도 공급 구조를 점진적으로 전환하는 효과를 낸다.
생산 여건 정비도 병행돼야 한다. 배터리 공장은 대규모 투자를 전제로 장기간 운영되는 산업 시설이다. 보조금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인허가 절차, 전력 공급, 인력 수급이 함께 작동해야 한다. 정부 지원은 단계적으로 집행하고, 핵심 조건이 충족될 때만 자금을 투입하는 방식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중국 기업을 전면적으로 배제할 필요는 없다. 합작 투자나 기술 협력은 현지 생산을 유지하면서 경험을 축적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특정 국가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공급망이 분산될수록 외부 충격에 대한 대응력은 높아진다.
지연이 키우는 정책 비용
정책의 무게중심을 산업 역량 강화로 옮기는 데 시간이 들고 비용이 발생한다는 지적은 타당하다. 배터리 경쟁력은 단기간에 구축되기 어렵다. 다만 대응을 미루는 선택 역시 비용을 동반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특정 공급망에 대한 의존은 심화되고, 이후 조정에 필요한 대가는 커진다. 핵심은 전환의 난이도가 아니라 관리 여부에 있다.
산업 정책의 비효율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무시할 수 없다. 과거의 실패 사례는 정책 설계에 대한 경계를 요구한다. 그러나 손을 놓는 선택은 대안이 될 수 없다. 정책은 목표와 기간이 명확해야 하며, 성과에 따라 조정돼야 한다. 기업의 역량이 축적될수록 지원은 단계적으로 축소돼야 하고, 성과를 내지 못하는 기업에 장기 보호가 제공돼서는 안 된다.
빠른 탈탄소화를 이유로 중국의 배터리 지배를 수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된다. 그러나 과도한 의존은 협상력을 약화시키고 정책 대응의 폭을 제한한다. 공급 차질이 발생할 경우 사회적 반발도 커질 수 있다. 외부 요인에 좌우되는 전환은 지속적인 지지를 얻기 어렵다.
관세가 정치적으로 필요했다는 평가 역시 일정 부분 성립한다. 신호를 보내고 시간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의미는 있었다. 다만 그 시간이 대안을 구축하는 데 쓰이지 않는다면 관세는 단기 처방에 그친다. 2025년의 경험은 갈등이 얼마나 빠르게 다른 산업으로 확산될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 비용은 증가했지만 핵심 과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유럽에서 중국 전기차 배터리 의존이 지속되는 현실은 경쟁력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준다. 관세는 완성차에 적용됐지만, 우위는 배터리 단계에 남아 있다. 이 격차가 해소되지 않는 한 무역 조치는 가격 상승과 보복을 반복할 가능성이 크다. 배터리는 전략 자산이며, 정책의 초점은 인력 양성, 수요 형성, 생산 능력 확충으로 이동해야 한다. 무역 보호는 보조 수단에 그친다. 공급망 다변화와 산업 역량 축적만이 장기 갈등의 비용을 줄이는 해법이다.
본 연구 기사의 원문은 Charging the Trade War: Why Chinese EV Batteries Explain the Failure of Tariffs — and What Comes Next을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본 기사의 저작권은 스위스 인공지능연구소(SIAI)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