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BM에 물량 쏠렸다" 메모리업계 웨이퍼 병목 본격화, CAPA 확대는 시간 필요해
"HBM에 물량 쏠렸다" 메모리업계 웨이퍼 병목 본격화, CAPA 확대는 시간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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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BM 생산에 집중하는 메모리 기업들, D램·낸드플래시용 웨이퍼 공급난 코로나19 슈퍼사이클 이후 이어졌던 메모리 업황 침체, 웨이퍼 CAPA '정체' 설비 투자 확대됐으나 단기간 내 공급 절벽 해소될 가능성은 낮아

올해 메모리 제품 가격이 재차 급등할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 '슈퍼사이클'이 지나간 이후 웨이퍼 공급 확대 흐름이 사실상 정체된 가운데, 메모리 업체들이 한정된 웨이퍼 물량을 고대역폭메모리(HBM)에 대거 투입하며 D램·낸드플래시 공급난이 본격화하는 양상이다. 최근 들어 곳곳에서 웨이퍼 설비 투자가 증가하고 있으나, 실제 생산능력(CAPA)이 확대되기까지는 수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반도체 시장 '양분'
5일(현지시각) 미국 전자 산업 매체 EE타임스와 IT 매체 Wccf테크는 글로벌 반도체 시장이 인공지능(AI) 중심의 고부가가치 시장과 소비자 시장으로 양분되며 ‘대(大) 메모리 피벗(The Great Memory Pivot)’ 현상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제조사가 수익성이 월등한 AI용 HBM 생산에 집중하며 일반 D램 공급이 줄어들었고, 이로 인해 올해 초 D램 가격이 대폭 뛸 수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에 따르면 5세대 HBM인 HBM3E는 표준 DDR5보다 웨이퍼 공간을 3배가량 많이 차지한다. 칩 크기 자체가 커진 데다, 수직 적층 공정 난도가 높아 생산 수율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시장조사업체 IDC는 “엔비디아 GPU용 HBM 생산에 웨이퍼 한 장을 투입할 때마다 스마트폰용 LPDDR5X나 PC용 SSD를 만들 웨이퍼가 사라지는 제로섬 게임이 벌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웨이퍼 공급난 속 올해 초 평균 D램 가격은 50~55% 급등할 전망이며, 제조사들이 메모리 비용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소비자 전자제품 가격 역시 최대 20%까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올해 1분기 낸드플래시 계약 가격도 33~38% 높아질 것으로 예측된다. 수개월 전부터 낸드플래시 웨이퍼 공급이 급격히 감소했기 때문이다. 주요 공급업체들이 HBM을 비롯한 기업용·프리미엄 제품에 생산능력을 집중 투입하는 가운데, 구형(레거시) 공정의 조기 축소가 겹치며 주력 용량 웨이퍼 공급이 말라붙은 것이다. 이에 따라 지난 11월 낸드플래시 웨이퍼 계약 가격은 품목별로 최대 60% 이상 급등한 것으로 전해진다.
웨이퍼 공급난 왜 두드러지나
이처럼 웨이퍼 공급이 수요를 따라잡지 못하는 배경에는 코로나19 팬데믹과 함께 도래한 반도체 슈퍼사이클 이후 찾아온 업황 침체 흐름이 있다. 팬데믹 당시 반도체 수요가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전 세계적 웨이퍼 공급난이 본격화했으며, 이 같은 공급 절벽은 2022년 상반기 각 주요국의 경제 상황이 악화한 뒤에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았다. 후방 산업인 웨이퍼는 전방 산업의 변동에 따른 영향을 상대적으로 늦게 받기 때문이다. 실제 2022년 3분기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 주요 반도체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50~60%가량 감소하는 동안 웨이퍼 제조업체들의 영업이익은 줄줄이 뛰어오르기도 했다.
상황이 바뀐 것은 2023년 메모리업계가 일제히 감산에 돌입하면서부터였다. 당시 마이크론은 생산 공정에 투입하는 웨이퍼 수량을 20% 축소했고, SK하이닉스도 보수적 생산 기조를 유지했다. 공급 과잉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은 낮고, 인위적 감산 역시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치던 삼성전자도 결국 실적 부진을 이기지 못하고 인위적 감산을 단행했다. 메모리업계의 웨이퍼 수요 자체가 크게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이에 따라 지난 수년간 대부분의 웨이퍼 업체는 공급량을 크게 확대하지 않은 채 시장 상황을 관망해 왔다.
AI발(發) 반도체 수요 확대 흐름이 본격화한 이후로는 다시 웨이퍼 첨단 설비 투자가 속속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 7월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가 발간한 '300mm 팹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전 세계 웨이퍼 생산능력은 2024년 말부터 2028년까지 연평균 7%의 성장률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월간 웨이퍼 생산능력은 2028년 사상 최대치인 1,110만 장까지 뛸 전망이다. 다만 생산량 증가는 점진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는 만큼, 단기간 내에 공급 절벽이 해소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SK실트론도 단기적 공급 확대 어려워
두산과 인수합병(M&A) 논의를 본격화하며 시장 기대를 키운 SK실트론의 웨이퍼 생산능력 역시 확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앞서 SK는 그룹 차원에서 추진 중인 리밸런싱(사업 구조 재편) 과정에서 SK실트론을 매물로 내놓은 바 있다. SK실트론의 기업가치가 5조원대로 추산되는 것을 감안하면 거래 규모는 3조~4조원대로 추정된다. 두산은 SK실트론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으며, SK 측과 현장 실사, 계약 조건 협의 등의 절차를 거쳐 주식 매매 계약을 체결할 전망이다.
두산그룹이 신성장 전략 기조에 맞춰 적극적으로 반도체 사업을 전개할 가능성이 거론되는 가운데, 업계는 SK실트론의 설비 투자 확대 여부에 이목을 집중하고 있다. SK실트론은 올해까지 구미 3공장에 총 2조3,000억원을 들여 300㎜(12인치) 실리콘웨이퍼 제조 설비를 증설한다고 밝힌 바 있다. 또 미국 베이시티 공장에 6억4,000만 달러(약 9,250억원)를 투자,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생산량을 늘려 안정적 매출 구조를 유지할 방침이다. 향후 시장의 웨이퍼 수요가 커질수록 SK실트론의 설비 투자 계획은 한층 공격적으로 변화할 수 있다.
다만 반도체 웨이퍼 설비 증설은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성과가 반영되는 장기 투자의 개념이다. 웨이퍼 제조 공정은 미세한 오차에도 품질 편차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신규 설비가 기존 라인과 동일한 수율과 신뢰도를 확보할 때까지 반복적인 테스트와 공정 튜닝 과정을 거쳐야 한다. 투자 집행이 마무리되더라도 실제 생산 능력이 유의미하게 확대되는 데에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한 업계 관계자는 “웨이퍼 설비 투자는 통상 장비 반입 이후가 시작”이라며 “시험 가동과 공정 안정화, 고객사 퀄리피케이션(적격성 평가) 등을 거치다 보면 완공 후 실질적인 출하 증가에는 수개월에서 길게는 1~2년 이상이 소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