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 소재부터 AI·반도체까지" 美 제재가 부추긴 中 기술 자립, AI 시대 패권 전쟁 변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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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AI 업계, 화웨이 등 자국 기업 반도체 도입 확대 반도체 웨이퍼, 실리콘-28 등 소재 분야 자립도 가속화 韓·대만 두각 드러낸 AI發 패권 전쟁, 中의 미래 입지는

중국의 인공지능(AI) 기업들이 자국산 반도체 도입 속도를 높여 가고 있다. 미국의 강력한 규제로 엔비디아 등 서방 기업의 첨단 반도체에 대한 접근이 사실상 제한된 가운데, 화웨이, 무어 스레드 등 현지 기업들의 시장 영향력이 급격히 확대되는 양상이다. 이러한 공급망·기술 독립 흐름은 비단 AI 업계를 넘어 중국 첨단 산업계 전반에서 속속 관찰되는 추세다.
中 AI 기업들의 구동 전략 변화
17일(현지시각)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최근 중국의 주요 AI 연구소와 빅테크 기업들은 엔비디아 등 서방 기업의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모델 개발의 전 과정을 자국산 칩으로 지탱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가 생성형 AI 스타트업 지푸AI가 화웨이 테크놀로지스와 공동 개발해 지난 1월 오픈소스로 공개한 이미지 생성 모델 'GLM-이미지'다. 이 모델은 화웨이의 어센드 910 AI 가속기로 구동되는 어센드 아틀라스 800T A2 서버와 자체 민드스포어 딥러닝 프레임워크를 활용해 전 과정 학습을 마쳤다.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모두 중국산으로 구성한 셈이다.
온디바이스 AI 스타트업 모델베스트도 초경량 소형 LLM 시리즈 ‘BitCPM-CANN’의 학습 기반으로 화웨이의 CANN 아키텍처를 채택했다. CANN은 엔비디아의 CUDA에 대응하는 화웨이의 AI 컴퓨팅 소프트웨어 플랫폼이다. 이에 더해 화웨이는 선전 루프 지역 연구소 연구팀과 손잡고 중국 핵심 AI 스타트업 딥시크의 V4 Pro 모델 사후 학습(Post-training)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해당 프로젝트의 골자는 화웨이의 차세대 AI 칩인 어센드 910C가 최소 1,000개 이상 투입된 컴퓨팅 클러스터를 활용해 전체 매개변수를 대상으로 한 파인튜닝을 수행하는 것이다.
중국의 대형 배달·생활 서비스 플랫폼 메이투안도 자체 모델 Longcat-2.0-프리뷰를 통해 자국산 컴퓨팅 인프라 활용을 확대하고 있다. 메이투안은 지난 4월부터 이 모델의 비공개 테스트를 진행 중이며, 사전 학습과 추론 전 과정이 순수 국내 컴퓨팅 클러스터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반도체 제조사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학습 단계에만 5만~6만 개의 중국산 AI 칩이 투입됐다는 설명이다. 이러한 흐름은 학계에서도 확인된다. 베이징대학교 연구팀은 이달 초 5D 물리 공간 시뮬레이션 세계 모델 에보피스-월드를 발표했다. 이 모델의 학습에는 중국 칩 설계 스타트업 무어 스레드의 MTT S5000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자체 소프트웨어 플랫폼 MUSA가 사용됐다. MUSA는 CUDA를 대체하기 위해 개발된 중국산 GPU 컴퓨팅 플랫폼이다.
서방 의존도 낮추는 中 첨단 산업
이 같은 공급망 독립 흐름은 비단 AI 시장을 넘어 중국 첨단 산업계 곳곳에서 관찰되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반도체 웨이퍼다. 중국 최대 디스플레이 기업 BOE는 올 하반기 베이징(北京)에 건설 중인 12인치(300㎜) 웨이퍼 생산 공장의 양산을 본격화할 예정이다. 12인치 웨이퍼는 기존 8인치 웨이퍼보다 생산성이 두 배 이상 높아 AI 칩을 비롯한 고성능 제품 제조에 활용된다. BOE는 향후 최신 패널에 탑재될 디스플레이 구동칩(DDI)과 전력관리반도체(PMIC), 차량용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을 주력 생산하겠다는 방침이다.
세계 2위 TV 기업 TCL의 디스플레이 자회사인 차이나스타(CSOT)도 지난 3월 화합물 반도체 칩 제조사 ‘프리마’를 인수하며 시장에 뛰어들었다. 프리마는 질화갈륨(GaN) 등 화합물 기반 미니·마이크로 발광다이오드(LED) 반도체 칩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보유 중인 기업이다. 중국 3위 디스플레이 제조사 비전옥스는 장쑤성에 총 50억 위안(약 1조1,240억원)을 투입해 유리기판 생산 프로젝트를 가동 중으로, 지난 4월 시운전 생산 라인의 수율(생산품 대비 정상품 비율)을 확보하기 위한 광학·엑스레이 검사 장비를 대거 발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리기판은 기존 유기 소재 대비 미세 회로 구현이 쉽고, 휨 현상이 적어 차세대 AI 반도체 소재로 꼽힌다.
중국은 실리콘 기반 양자컴퓨터 제작에 필수적인 초고순도 동위원소인 실리콘-28의 양산에도 성공했다. 중국 국유 원자력 기업인 중국핵공업집단(CNNC)은 최근 "산하 핵공업 물리화학공정연구원(IPCE)이 동위원소 순도 99.99% 이상의 고순도 실리콘-28을 성공적으로 양산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해당 소재를 독자적으로 대규모 생산한 첫 사례다. 지금까지는 실리콘-28의 생산 능력을 확보한 것은 미국, 유럽 등 서방 주요국의 일부 기업뿐이었다. 연구를 주도한 장훙민 IPCE 소장은 중국 관영 중국중앙TV(CCTV)와의 인터뷰에서 "세 종류의 실리콘 동위원소를 분리해 실리콘-28은 한쪽에 집중시키고, 실리콘-29와 실리콘-30은 다른 쪽에 모으는 방식으로 연구를 진행했다"며 "초고순도 실리콘-28의 국산화는 양자컴퓨팅뿐 아니라 첨단 반도체 제조, 고급 항법 시스템, 정밀 계측 분야에도 폭넓게 활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광반도체 시장에서도 중국의 존재감이 점차 드러나고 있다. 광반도체는 빛을 이용해 전기 신호를 변환하는 구조로 광통신·디스플레이·센서 등에 활용되며, 초고속·저지연 데이터 전송에 강점을 가진다. 아직 해외 선두 기업들이 고급 광칩 생산 능력을 독점 중인 가운데, 중국 기업들은 기술적 난도가 비교적 낮은 고출력연속파(CW) 광원과 고급 전기흡수 변조레이저(EML) 칩을 동시 생산하며 기술적 돌파 기회를 모색하고 있다. 이중 중저가 제품의 경우 국산화가 이미 일부분 달성된 것으로 전해진다.

미래 기술 패권 전망 엇갈려
이러한 중국의 기술 자립 행보에 대한 시각은 엇갈린다. 우선 중국의 현재 역량이 한국·대만 등 패권국을 뛰어넘기는 역부족이라는 평가가 존재한다. 뉴욕타임스(NYT)는 지난 16일 보도를 통해 AI 열풍이 기술 패권의 지도를 바꿔놓고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최첨단 메모리 칩 생산에서는 한국과 대만이 선두 국가로 자리매김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NYT는 이 같은 반도체 호황에서 중국이 사실상 소외돼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20년 전 '하드웨어 붐'이 일었을 당시만 해도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면서 제조업의 기반으로 우뚝 섰지만, 최근에는 미국의 관세 부과와 대중국 제재에 부딪혀 존재감이 약화했다는 진단이다.
다만 반대의 견해도 있다. 미국의 강도 높은 압박이 단기적으로는 중국 기업의 첨단 기술 접근을 제한했지만, 장기적으로는 오히려 중국 정부의 기술 자립 의지를 더 선명하게 만들었다는 분석이다. 실제 중국은 수년 전부터 첨단 산업에 막대한 지원과 투자를 단행해 왔다. 2024년 조성한 3,440억 위안(약 77조3,580억원) 규모 3기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 이른바 ‘빅펀드 3기’가 대표적인 예다. 정책 방향도 같은 흐름을 띠고 있다. 중국은 과학기술 자립을 중장기 국가 계획의 주요 축으로 제시했으며, 차기 5개년 계획에서도 반도체, AI, 기초연구 역량 강화 등이 중점 과제로 거론됐다. 사실상 첨단 기술을 공급망 안보 및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는 핵심 사안으로 취급한 셈이다.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의지는 최근에도 부각됐다. 지난 9일 영국 가디언 등 외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NDRC)를 비롯한 주요 부처들은 전국에 파편화된 컴퓨팅 자원을 하나로 묶어 국가 차원에서 관리하는 '통합 컴퓨팅 허브' 청사진을 확정했다. 이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미국 기술의 완전한 배제다. 중국 정부는 신설되는 데이터센터 내 AI 칩을 포함한 핵심 하드웨어의 80% 이상을 화웨이 등 자국 기업 제품으로 채우도록 의무화했다. 이는 엔비디아, AMD 등 미국 반도체 기업들을 사실상 중국 시장에서 퇴출하겠다는 기술 자립 선언이다. 전국 규모의 데이터센터 운영과 연계망 구축은 차이나모바일, 차이나텔레콤 등 국영 통신사들이 전담하며, 투자를 위한 천문학적인 재원은 중앙정부가 직접 조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