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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줄자 무너진 연구 현장, 정부 의존으로 굳어진 韓 R&D 생태계의 민낯

예산 줄자 무너진 연구 현장, 정부 의존으로 굳어진 韓 R&D 생태계의 민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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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year 7 month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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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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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의 사회적 책임을 자각하며 공정하고 균형 있는 시각을 최우선으로 합니다. 꾸준한 추적과 철저한 리서치를 바탕으로 사실만을 전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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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D 예산 삭감에 과제도 공중분해
예산 9.6% 감소하자 연구자 2년새 18%↓
정부 재정에 종속된 연구모델의 한계

2024년에 연구개발(R&D) 과제 축소와 예산 삭감으로 국가 R&D를 수행하는 연구책임자 5명 중 한 명이 과제를 잃은 것으로 나타났다. R&D 예산 삭감과 과제 대형화로 과제 수가 대폭 줄어들며 과제를 맡은 연구자 수가 줄어든 것이 국가 통계에서도 나타난 것이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국 과학기술계가 자생적 경쟁력보다 정부의 시혜적 예산에 얼마나 의존해 왔는지를 증명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질적 성과가 결여된 채 외형적 팽창에만 몰입해 온 국내 연구 생태계의 구조적 취약성을 노출한 것이자, 결과적으로 공적 자금의 효율성을 재고하기 위한 전면적인 체질 개선이 불가피함을 시사한다는 평가다.

연구책임자 11.2% 급감, 연구과제는 13% 축소

6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4년도 국가연구개발사업 조사·분석 결과’에 따르면, 2024년 총 연구책임자 수는 4만1,902명으로 집계됐다. 전년 대비 11.2%(5,281명) 감소한 수치로, 연구책임자 5명 중 1명꼴로 과제를 잃은 셈이다. 이는 예산 삭감과 과제 대형화 기조에 따라 전체 파이가 줄어든 영향이 크다. 2024년 국가 R&D 집행 규모는 26조2,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9.6% 감소했으며, 과제 수 역시 6만696개로 13% 줄어들었다.

연구책임자 감소 추세는 2년 연속 이어지고 있다. 2022년 5만32명을 기록하며 처음으로 5만 명을 넘어섰던 연구책임자 수는 과제 수 감소가 시작된 2023년 4만7,183명으로 5.7% 줄었고, 2024년 대규모 삭감까지 겹치며 2년간 총 17.9%가 감소했다. 전체 참여 연구자 수 또한 2024년 27만6,215명으로 전년 대비 10.8% 줄었다.

R&D 예산이 삭감되면서 ‘인공지능(AI) 기반 침수 피해 통보’ 시스템 개발 등 산업통상자원부 소관 55개 R&D 과제가 중단되며 대규모 매몰비용도 발생했다. 예산 삭감을 이유로 중단된 연구에 2023년까지 이미 투입돼 매몰비용으로 낭비된 정부출연금은 총 637억원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R&D 예산을 삭감하기 전에는 협약 파기 등의 이유로만 연구 과제가 중단됐지만 예산을 투입하지 못해 연구 과제가 중단된 적은 없었다.

중단된 과제 중에는 ‘AIoT(AI+사물인터넷) 기반 침수 위험지역 피해 저감을 위한 실시간 모니터링 통보시스템 개발’, ‘백신 제형 개발 및 대량생산 공정 개발’ 등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사업도 다수 존재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반도체 공정 개선 등 첨단 산업에 대한 연구 과제나 전기차와 태양광 산업 발전 지원 등 탈탄소 전환과 관련된 과제도 중단된 것으로 파악됐다. 산자부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 동안 예산을 100% 삭감해 중단된 R&D 과제는 11건, 50% 이상 삭감된 것은 1,084건에 달한다.

예산 쏟아 부어도 R&D 성과 상용화 저조

이재명 정부가 지난 정부보다 9조원가량 증액한 35조3,000억원 규모의 R&D 예산을 편성하며 역대 최대 수준으로 회복시켰지만, 과학기술계에서는 이미 낭비된 세금과 떠나버린 연구원은 돌아오지 않는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삭감된 R&D 예산이 과학 연구 생태계를 파괴하고 젊은 연구자들을 어렵게 만들 것이라고 비판도 거세다. 한 국내 연구자는 “R&D 투자는 단기적인 연구 성과 창출을 넘어 과학·기술·공학·수학(Science·Technology·Engineering·Mathematics, STEM) 분야의 차세대 전문 인력을 육성하는 핵심 기반”이라며 “초기 경력 연구자들은 이미 자금 부족과 고용 불안정에 노출돼 있어, 예산 변동의 충격을 가장 직접적으로 흡수할 수밖에 없는 위치에 놓여 있다”고 꼬집었다.

기존 과제 진행에 대한 어려움도 제기된다. 한 이공계열 연구교수는 “개인 연구과제의 연구비가 별도의 설명이나 사전 조율 없이 22% 삭감됐다”며 “연구 활동비 대부분이 축소되면서 실질적인 연구 진행에 상당한 제약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이어 “중간평가 평가위원으로 활동하니 3년 목표 수행 과제에 대해 2년 차부터 일괄적으로 예산의 60% 이상을 삭감하게 됐다”며 “일부 과제는 최대 80%까지 삭감돼 연구 지속 자체가 사실상 불가능한 수준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공계열 교수도 “5년을 목표로 설정한 과제를 약 3년간 수행한 뒤 중간평가를 받았지만, 예산 조정 이후 지원금이 크게 줄어들면서 연구를 이어갈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과기계의 불만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다. 예산 축소가 곧바로 대규모 실직과 연구 중단으로 연결됐다는 사실은 한국 R&D 생태계가 얼마나 정부 의존적이었는지를 드러낸다는 지적이다. 특히 R&D 예산 삭감에 대한 반발이 설득력을 잃는 지점은 그동안 축적돼 온 연구 성과의 질적 문제다. 다수의 정부 과제가 기술 축적보다는 형식적 결과물 생산에 머물렀다는 그간 비판은 학계 내부에서도 공공연히 제기돼 왔다. 반복되는 유사 연구, 실질적 기술 이전 없는 논문 양산, 산업과 단절된 연구 주제는 구조적 병폐로 누적됐다. 이런 상황에서도 연구 시스템 전반에 대한 자성보다는 예산 확대 요구가 우선시돼 왔다. 연구의 질적 성과에 대한 평가와 책임 구조가 작동하지 않으면서 예산 집행 효율성에 대한 사회적 신뢰도 점차 약화됐다.

혁신 통한 R&D 생태계 재설계 필요

실제로 속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동안 적지 않은 거품이 끼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문재인 정부 5년간 국가 R&D 예산은 10조원 이상 급증했고, 연구비 배분 방식에서도 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100억원대 정부부처 과제를 200여 개 기업에 나눠준 사례도 있었는데, 이를 두고 세간에서는 R&D 지원이 아닌, 중소기업 보조금이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까지 돌았다. 소부장(소재·부품·장비) 육성을 이유로 중소기업 예산 배정을 확대하면서 지역·성별·연령별로 연구비를 배분해 R&D 포퓰리즘이란 비판을 받기도 했으며, 대북사업 관련 중소기업들이 R&D 과제를 중복으로 따낸 사례도 속출했다.

예산 투입으로 이뤄낸 특허 출원과 논문 성과가 산업 경쟁력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것도 문제다. 예산 규모는 2012년 16조원에서 2022년 29조8,000억원, 2023년 31조1,000억원으로 늘어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세계 5위(2023년 기준 OECD 발표)다. 하지만 국가 R&D를 통해 미국·일본·유럽에 모두 출원한 삼극특허 비율은 전체 출원 건수의 1.9% 수준에 불과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특허가 드물다는 의미다. 우수 논문 지표로 쓰이는 HCR(상위 1% 고인용 논문 연구자)의 국가별 순위도 17위에 머물렀다. 국가 R&D 투자 규모가 작은 호주(5위)와 싱가포르(13위)에도 뒤졌다. 이는 연구자들이 연구과제중심운영제도(PBS) 탓에 실패 가능성이 있는 혁신적 연구보다는 ‘될성부른’ 과제에만 매달린 결과다. R&D 성공률은 99%에 달하지만 대형 성과는 미미한 부작용을 초래했다. 한국 과기계가 ‘코리아 패러독스’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PBS는 연구자나 연구기관이 경쟁을 통해 과제를 수주해 인건비나 연구비를 충당하는 제도로, 1996년 연구 경쟁력을 키운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하지만 프로젝트별로 예산이 집행되다 보니, 각 기관이 얼마나 많은 과제를 수주하느냐에 따라 예산 확보가 달라졌다. 이에 연구자들 사이에선 장기적 관점에서 연구를 책임지기보단 자신의 연구 목적에 맞지 않는 과제라도 여러 개 수주해 적당히 기준에 맞는 성과만 내는 문화가 형성됐다. 일부 연구자들은 성공률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학문과 기술에 대해 연구를 시작하지 않고 미국 등 주요국이 이미 시작한 기술을 따라가는 패스트 팔로어(fast follower) 전략을 사용하기도 했다. 국내에 만연한 연구비 나눠 먹기, 과제 쪼개기식 예산 배분 관행 모두 PBS에서 비롯됐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적 학술지 네이처(Nature)는 2024년 “한국은 과학에 막대한 투자를 하지만 놀라울 만큼 성과가 적다”는, 우리 과학계로선 상당히 뼈아픈 기사를 실었다. 다양성 미흡과 폐쇄적인 문화, 정부 규제와 연구 연속성 부족, 기업과 대학 간 선순환 고리 취약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이에 전문가들은 한국 과학기술 미래를 위해서는 정부가 과제 선정과 성과평가 시스템을 제로베이스에서 재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한다. 떨어지고 있는 성장동력을 견인하려면 기업이 하기 힘든 도전적인 첨단 기술 과제를 국가 R&D 사업이 맡아 성과를 내는 협업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연구 주체가 정부 재정에 종속되지 않고, 민간·글로벌 네트워크와 연계된 자생적 성장 구조를 갖출 수 있도록 시스템을 재설계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책임 있는 연구 관리, 산업과 연결된 연구 기획이 병행되지 않는 한, R&D 예산은 언제든지 다시 '버려지는 비용'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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