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SMC·삼성·SK 흔드는 기술 유출 리스크, 中 넘어 日·美로 번진 ‘신뢰의 균열’
TSMC·삼성·SK 흔드는 기술 유출 리스크, 中 넘어 日·美로 번진 ‘신뢰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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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SMC 기술 유출에 日 업체 연루, 대만 사회 충격 은퇴한 임원 인텔로 이직, 美 기업으로 수사 대상 확대 삼성·SK도 잇단 유출 피해, 반도체 보안 리스크 확산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기업 TSMC의 최첨단 공정 기술이 오랜 협력 관계를 유지해 온 일본 반도체 장비 업체로 흘러 들어간 정황이 드러나며 대만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여기에 TSMC 임원급 인사의 이직을 계기로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까지 수사 대상에 오르자, 그동안 중국에 집중됐던 기술 위협 인식이 동맹국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국 역시 반도체 핵심 기술 유출 사건이 잇따르며, 첨단 반도체 산업 전반에서 보안과 신뢰의 문제가 구조적 과제로 부상하고 있다.
대만 검찰, 日 TEL 국가안전법 위반 협의로 기소
5일 대만 고등검찰서는 TSMC의 첨단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해 일본 도쿄일렉트론(TEL) 대만 법인을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로 추가 기소했다고 밝혔다. 대만 검찰은 지난해 적발된 TSMC의 2나노미터(㎚·1㎚=10억분의 1m) 공정 기술 유출 사건과 관련해 TEL 측에 관리·감독 부실 책임이 있다고 보고, 법원에 1억2,000만 대만달러(약 56억원)에 달하는 벌금 부과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2022년 5월 국가안전법 개정 이후, 반도체 기술 관련해 '국가 핵심 기술 영업비밀의 역외 사용죄'가 법인에 적용된 첫 사례다.
지난해 8월 대만 검찰은 TSMC의 2나노 공정 기술을 TEL에 유출한 혐의로 전직 TSMC 엔지니어 천 리밍을 구속 기소 한 바 있다. 검찰에 따르면 천씨는 TSMC에서 수율 개선 부서에서 8년간 근무한 후 2022년 TEL 마케팅 부서로 이직했고, 이듬해부터 친분이 있던 TSMC 현직 엔지니어 2명과 접촉해 2나노 공정의 핵심인 에칭 장비 양산 시험 파라미터를 빼돌렸다. 이들은 2023년 8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재택근무용 노트북으로 접근한 기밀문서를 휴대폰으로 촬영해 전달하는 방식을 사용해 지속적으로 기술 유출을 시도한 것으로 조사됐다.
특히 수사 과정에서 천씨가 빼돌린 일부 자료에 대해, TEL 내부 보고를 위해 작업일지를 작성한 정황이 확인돼 논란이 됐다. 이는 사측이 기술 유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으로, 대만 검찰은 TEL이 해당 기술을 자사 반도체 장비 성능 개선에 활용하려 했던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이에 대해 TEL은 "내부 조사 결과, 해당 기술이 실제 자사 제품이나 서비스에 사용된 정황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TSMC, 기술 유출 갈등에 日 투자 속도 조절 나서
이번 사건은 중국 기업이 아닌 일본의 반도체 장비업체와 연관된 기술 유출 사건이라는 점에서 대만 사회에 상당한 충격을 안기고 있다. 통상 반도체업계에서 첨단 반도체 기술 유출 사고가 발생하면 중국 공산당과 연계된 세력으로 중국 기업이 가장 먼저 용의선상에 올라 왔다. 그러나 외교·안보·경제 전반에서 공조 관계를 이어온 일본 기업이 연루됐다는 사실은 기존의 인식을 근본적으로 흔들었다는 평가다. 특히 TEL은 에칭·증착 등 핵심 장비를 공급하며 수십 년간 TSMC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 온 공급망의 핵심 축이라는 점에서 파장이 더욱 크다.
게다가 공교롭게도 대만과 일본 간 반도체 협력을 둘러싼 밀월 기류는 최근 들어 미묘한 균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TSMC는 지난 2021년 10월 일본 정부의 대규모 보조금 유치 전략에 발맞춰 구마모토 제1공장 설립 계획을 발표했다. 이듬해 4월 착공한 제1공장은 28개월 만인 2024년 2월에 개소해 빠르게 가동에 들어갔고, 같은 시기 제2공장 건설도 공식화됐다. 그러나 기술 유출 사건 직후 진행된 2분기 실적 발표에서 TSMC는 구마모토 제2공장의 구체적인 생산 일정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이에 시장에서는 이미 미국 내 대규모 투자가 진행 중인 상황에서, 일본 투자에 대해서는 속도 조절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대만의 동맹국에 대한 불신은 일본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대만 검찰은 지난해 11월 TSMC를 떠나 인텔에 합류한 로웨이런 전 TSMC 수석부사장의 자택 두 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하고, 그의 재산을 동결했다. 검찰은 로 부사장이 인텔 측에 국가 핵심 기술을 제공했는지를 두고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과기신보, 공상시보 등 대만 언론들은 "75세 노장이 은퇴 후 3개월 만에 적진으로 들어간 것은 명백한 배신이자 기술 유출 시도"라며 격앙된 반응을 내놨다. 이에 대해 인텔은 적법한 영입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압수물에서 첨단 기술 자료가 대거 발견되면서 국가안전법 위반 혐의가 한층 무거워지고 있는 형세다.
中 CXMT, 삼성·SK 핵심 인력 영입해 기술 확보
첨단 반도체 기술 유출로 인한 피해는 국내 기업 역시 예외가 아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도 핵심 반도체 기술 유출 문제로 장기간 곤욕을 치르고 있다. 지난달 검찰은 중국 반도체 기업으로 이직하면서 D램 반도체 핵심 공정 기술 등을 빼돌린 삼성전자 전직 임직원 10명을 산업기술보호법 위반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겼다. 이 가운데 중국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의 1·2기 개발팀에서 활동한 5명은 구속 기소 됐다. 수사 결과 이들은 삼성전자가 수년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세계 최초로 확보한 10나노 D램 공정 기술을 조직적으로 유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삼성전자가 5년에 걸쳐 1조6,00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국가 핵심 기술이다.
CXMT는 2016년 설립 직후부터 삼성전자의 핵심 인력을 집중적으로 영입하며 기술 확보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 핵심 연구원이 이직 직전 수백 단계에 달하는 공정 정보를 자필로 옮겨 적어 반출한 사실도 확인됐다. 기술 확보 과정은 장기간에 걸쳐 치밀하게 진행됐다. 취업 제한 규정을 피하기 위해 위장 회사를 설립하고, 일정 기간 근무 후 중국 본사로 이동하는 방식이 활용됐다. 핵심 인력 영입 과정에서는 기존 연봉의 2~4배, 일부 고위급 인사에게는 수십억원대 보상이 제시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처럼 조직적인 기술 탈취를 통해 CXMT는 설립 초기의 기술 격차와 수율 문제를 극복했고, 2023년 중국 최초이자 세계 네 번째로 10나노대 D램 양산에 성공했다.
수사 과정에서 CXMT가 협력업체를 통해 SK하이닉스의 D램 공정 관련 국가 핵심 기술까지 추가로 확보한 정황도 드러났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핵심 기술을 동시에 확보한 CXMT는 글로벌 D램 시장에서 빠르게 존재감을 키웠고, 기술 자립을 앞세운 중국 반도체 산업 성장의 핵심 축으로 부상했다. 검찰은 기술 유출로 인한 국가 경제 피해 규모를 최소 수십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검찰은 세계 시장 점유율 변화를 토대로 분석한 결과, 기술 유출로 삼성전자의 매출 감소만 수조원대에 이를 것으로 판단했으며, 해당 기술이 유출되지 않았다면 CXMT가 차지한 생산·수출 물량 상당 부분을 국내 기업이 확보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