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텐센트 클라우드 우회에 한계 드러낸 美 제재, 中 기술 독립 가속화
中 텐센트 클라우드 우회에 한계 드러낸 美 제재, 中 기술 독립 가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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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텐센트, 日 클라우드망 통한 12억 달러 규모 엔비디아 칩 연산권 확보 美 법무부 H100·H200 밀수 기소로 물리 차단 강화, 클라우드 원격접근은 공백 美 의회 원격접근 통제 법안 발의, 엔비디아는 中 수요 회복 불확실

미국의 대중국 반도체 제재가 물리적 통제를 넘어 새로운 국면을 맞이했다. 칩의 직접 반입을 막자 국경 없는 클라우드를 통한 ‘연산 능력 임대’라는 우회로가 열렸기 때문이다. 중국 빅테크 텐센트가 일본을 경유해 미국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최신 칩 성능을 확보하는 사이, 미국은 입법 지연과 현실적 제약으로 전략 수립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에 중국은 미국의 유화책마저 거부한 채 막대한 자본을 앞세워 독자적인 기술 생태계 구축에 돌입했다.
美 규제 공백 파고든 텐센트, 日 경유 12억 달러 ‘연산 망명’
22일(이하 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텐센트는 일본 데이터센터 기업 데이터섹션을 통해 엔비디아의 최신 블랙웰 그래픽처리장치(GPU) B200 1만5,000장에 대한 접근권을 확보했다. 이번 계약 규모는 3년간 12억 달러(약 1조7,800억원)에 달해 데이터센터 가용 물량의 상당 부분이 텐센트에 할당된 것으로 파악되며, 데이터섹션은 이 장기 계약을 기반으로 B200 5,000장 클러스터 구축에 필요한 초기 투자비 2억7,200만 달러(약 4,000억원)를 안정적으로 충당하는 수익 구조를 확보했다.
텐센트는 도쿄 소재 IT 기업 나우나우(NowNaw)를 파트너사로 내세워, 칩을 직접 소유하는 대신 원격 접속을 통해 연산 능력(컴퓨팅 파워)만 빌려 쓰는 방식을 택했다. 이번 계약 성사에는 미국의 정책 변화가 결정적 배경으로 작용했다. 당초 조 바이든 전 행정부는 ‘AI 확산 규칙(AI Diffusion Rule)’을 도입해 이러한 클라우드 우회로를 차단하려 했으나, 지난 5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해당 규칙을 철회하면서 규제 공백이 발생했다. 데이터섹션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오사카 계약을 신속히 마무리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러한 ‘컴퓨팅 오프쇼어링(Off-shoring)’은 일본을 넘어 호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미국 코어위브, 유럽 네비우스와 함께 엔비디아 GPU를 대량 확보해 임대하는 신흥 ‘네오클라우드(Neo-cloud)’ 사업자로 급부상한 데이터섹션은 총 10만 개 이상의 엔비디아 프로세서를 갖춘 초대형 AI 데이터센터 구축을 추진 중이다. 특히 8억 달러(약 1조1,800억원)를 투입해 호주 시드니에 건설할 제2 데이터센터에서는 엔비디아의 차세대 칩 B300 수만 개를 운용할 예정이며, 이곳의 핵심 고객 역시 텐센트가 될 전망이다.
FT 소식통에 따르면 텐센트뿐만 아니라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다른 중국 빅테크들도 해외 데이터센터를 활용해 AI 모델을 훈련하고, 잉여 컴퓨팅 파워를 재판매하는 등 유사한 우회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FT는 이를 “지정학적 회색 지대”라고 평가하면서, 물리적 제품의 이동을 차단하는 데 주력했던 기존 제재가 국경 없는 클라우드 환경 앞에서는 한계를 드러냄에 따라 향후 규제 패러다임이 ‘칩 이동 통제’에서 ‘연산 접근 통제’로 이동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다운그레이드 칩’ 전략 또한 한계에 봉착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은 더 이상 성능을 낮춘 칩을 원하지 않는다”고 언급하며 규제 완화의 실효성을 일축했다. 중국이 자립과 클라우드 우회로 선회하며 통제망이 무력화된 탓이다. 여기에 미 상무부의 클라우드 고객 확인(KYC) 의무화까지 집행 난항을 겪으면서, 미국의 기존 제재 전략은 가상 공간에서부터 총체적인 재검토가 불가피해졌다.
밀수는 잡았지만, 입법 난항·전략 부재 딜레마 빠진 美
가상 공간의 빗장이 풀린 것과 대조적으로, 미 정부는 현실 공간에서 벌어지는 물리적 밀수 시도에 대해서만큼은 전례 없는 강경 대응에 나섰다. 미 법무부는 최근 말레이시아와 태국을 경유해 엔비디아 GPU를 중국으로 불법 수출하려 한 혐의로 4명을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들은 위장 회사를 통해 A100 GPU 400여 개를 이미 반출했으며, 이어 H100 탑재 슈퍼컴퓨터와 H200 GPU까지 밀수를 시도하다 적발됐다. 이 과정에서 중국 측 자금 389만 달러(약 57억7,000만원)가 유입된 정황도 포착됐다.
단속 강화와 더불어 물리적 통제 기술도 한층 고도화되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의하면 엔비디아는 고성능 칩의 대략적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위치 검증(location verification)’ 기술을 개발 중이며, 미 정치권에서도 칩의 위치 추적과 우회 위험 보고를 의무화하는 ‘칩 보안법(Chip Security Act)’ 제정 논의가 탄력을 받고 있다. 이는 수출 통제가 칩 자체를 추적하는 기술적 감시 단계로 진입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제재 수위가 높아질수록 입법 의지와 시장 현실 사이의 괴리는 커지고 있다. 클라우드 우회가 현실화되자 미 정가에서는 기술적 접근까지 차단하는 ‘원격 접근 보안법(Remote Access Security Act)’을 발의하고, 적성국 라이선스 승인을 30개월간 제한하는 ‘세이프 칩스법(SAFE CHIPS Act)’을 내놓으며 행정부의 유화책 차단에 나섰다. 하지만 이러한 강경 입법 시도는 시장의 반발과 절차적 난관에 봉착했다. 실제로 자국 고객 주문을 의무적으로 우선 처리하게 하려던 ‘게인 AI 법안(GAIN AI Act)’은 과도한 시장 개입이라는 업계의 비판 속에 올해 국방수권법(NDAA) 최종안에서 제외되며 결국 무산됐다.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미국의 다운그레이드 칩 전략이 중국 시장에서 효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황 CEO는 최근 워싱턴DC에서 “H200 규제가 완화돼도 중국이 이를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라며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는 “우리는 성능을 인위적으로 낮춘 칩을 더 이상 중국에 팔 수 없다”며 중국 시장이 저사양 칩을 거부하고 있음을 시사했다. 이는 중국이 자체 기술 자립을 가속화하거나 클라우드 우회를 통해 원본 고성능을 확보하는 쪽으로 선회했기 때문이다. 결국 미국의 수출 통제망은 안팎으로 실효성 논란에 휩싸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미 상무부가 추진 중인 KYC 의무화 조치마저 막대한 비용과 집행 난항이라는 현실적 딜레마에 부딪히면서, 미국의 제재 전략은 총체적인 재점검이 필요한 시점에 도달했다.

“美 칩은 트로이 목마”, 中 100조 펀드로 기술 요새화 시작
미국이 유화책과 강경책 사이를 오가는 사이, 중국은 미국산 칩을 잠재적 안보 위협으로 규정하고 완전한 기술 독립으로 노선을 굳혔다. 최근 트럼프 행정부 측이 엔비디아 H200의 대중 수출 허용을 시사했지만, 중국 지도부는 이를 반기기보다 칩 내부에 숨겨진 ‘킬 스위치(원격 차단 장치)’나 위치 추적 가능성을 우려하며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다.
미 외교 전문지 내셔널인터레스트(NI)는 “중국은 더 이상 미국의 변덕에 자국 운명을 맡기지 않기로 결심했다”며, 중국 당국이 텐센트, 알리바바 등 빅테크 경영진을 소집해 국산 칩 대체를 주문하고 엔비디아를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조사하는 등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고 전했다. 로이터 역시 엔비디아가 내년 2월 춘절 전 선적을 목표로 물량을 준비 중이나, 미국 내 강경한 입법 움직임과 중국 당국의 까다로운 승인 절차가 맞물려 실제 공급 재개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이러한 안보 우려는 막대한 자본 투입을 동반한 구체적인 자립 정책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 정부는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700억 달러(약 103조8,800억원) 규모의 국가 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정부 조달 목록에서 외산 칩을 전격 배제하며 독자 생태계 구축에 사활을 걸었다. 자본시장이 발달한 미국과 대조적으로 중국은 국가가 직접 나서 리스크가 큰 장기 연구개발(R&D) 자금을 대고 국산 칩 사용을 강제해 초기 시장을 조성하는 방식을 택했다. 이러한 정책적 시그널에 힘입어 무어스레드(Moore Threads) 등 신생 GPU 기업들의 주가가 연일 급등세를 타고 있으며, 중국은 미국의 어설픈 유화책이 기술 완성도를 높일 시간만 벌어줄 뿐이라며 독자 노선을 고수하고 있다.
이에 산업계 일각에서는 서방의 고강도 규제가 오히려 중국의 기술 자립을 자극할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황 CEO는 지난달 5일 영국 런던에서 FT 주최로 열린 ‘AI 퓨처 서밋’에서 “서방의 규제가 중국의 자립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언급하며, 중국이 막대한 에너지 보조금과 저렴한 전력을 활용해 자국 칩의 성능적 열위를 비용 효율성으로 상쇄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미국의 수출 통제망이 강화될수록 중국 또한 자본 투입을 늘려 독자 노선을 모색함에 따라, 양국 기술 생태계의 분리 현상은 점차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